공동체의 약속, 폭력의 배제 -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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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약속, 폭력의 배제
글쓴이 김태희 / 등록일 2025-02-25
우리는 정치적 견해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정치공동체를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약속한 것이 있다. 그것은 헌법에 담겨있다. 헌법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꼽을 수 있다. 최근 이 두 가치가 위기에 직면했다.
민주주의란 논쟁적인 개념이지만, ‘다수의 지배’를 핵심 원리로 파악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다수의 폭정을 의미하지 않는 것은 소수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지배에서 다수-소수 관계는 바뀔 수 있다. 다수의 결정은 바로 ‘선거’를 통해 이뤄진다.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위한 중요한 장치이다. 선거는 승패가 확정되지 않은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현재 집권자가 선거에 패배해서 조용히 물러날 수 있고, 다음 선거에 승리해서 돌아올 수 있다. ‘최강자의 법칙’에 따라 집권자를 정하는 체제는 평화로운 권력 교체를 보장할 수 없다. ‘다수의 법칙’은 다수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설득을 주된 도구로 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화적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침해하는 행위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권력분립을 전제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권력 구성을 하는 것, 그리고 모든 법적 행위가 헌법에 부합하도록 요구하는 것, 사법적 구제를 보장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한다. 헌법재판소 9인의 재판관 구성을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각각 3인씩 결정하게 한 것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침해하는 행위가 최근 발생했다. 그것은 현직 대통령 윤석열에 의해서였다. 평온한 12월 3일 밤, 실체적·절차적 요건이 미비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국민의 선거로 구성된 헌법기관인 국회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였으며, 비상계엄이 허용하는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어진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서울서부지방법원 습격사건도 충격적이다. 군대 동원에 실패하고서 거리의 무법자를 동원한 셈이다. 폭력으로 법원을 공격하다니 그 무모함에 놀랍고, 저항권 행사라 강변하는 것엔 어처구니없다. (저항권이란 국가기관의 헌법침해행위가 중대·명백한데도 다른 합법적 구제수단이 없을 때, 국민이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며, 비폭력을 원칙으로 한다.)
12·3 이후 나타난 파시즘 전조 현상은 우리 사회에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극우 유튜버들은 무책임한 내용으로 조회수 상승에 열을 올리며, 혐오를 조장하고 공격성을 자극한다. 여기에 거리의 행동대가 가세하여 우리 사회를 폭력적인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마침 지난주 〈시사IN〉(910호, 2025.2.25.)에 ‘2025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분석기사가 실렸다. 여론조사 결과는 보수층 내의 분열을 보여주었다.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 가운데, 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은 40% 정도였다. 이들은 다른 보수와 구별되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용납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과 극우 유튜브의 시청 시간이 길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폭력의 배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
〈시사IN〉 기사가 시사하듯, 현 상황을 단순히 양 진영이 대립하는 틀로만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극단적 세력을 보수 전체로 오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를 자임하는 일부 국회의원이나 언론 패널이 명백한 범법행위인 서부지법 폭력을 두둔하거나 적극 비판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일까. 자칫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단초를 제공할까 걱정이다. 양당 독점체제와 진영논리는 우리의 관점과 선택을 가두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택일과 승자독식의 구조는 어떻게든 완화되어야 한다.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행위, 그 전모에 관해 아직도 의문이 많다. 하지만 명백히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위헌·위법성이 중대하다. 윤 대통령은 서부지법 폭력을 촉발하고, 설득력 있는 근거 없이 선거제도의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취임 때 선서한 헌법준수의무를 저버리고 헌법 질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그는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을 추구했다. 그것은 폭력을 예정한다.
정치공동체의 약속 가운데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이 있다. 바로 폭력의 배제다. 불법적 폭력을 선동하는 극단주의 세력의 위협을 제거하고, 평화적 경쟁 룰이 작동하는 민주적 정치 질서를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것이 급선무다. 우리 정치공동체의 평화를 염원하는 다수 시민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 글쓴이 : 김 태 희(정치학·역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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