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를 위한 변명 - 악의 詩 1' 外 9편 - 이재창
시조를 위한 변명
- 악의 詩 1
이재창
작품을 쓰는 일은 염문을 뿌리는 일
쓰레기통 처박힌 글 10년만에 불러 내는 건
구릿한 쓰레기 더미에 헤엄치는 일이다
사교댄스 용도 밖에 쓸모 없는 빈 말 스텝
신춘문예 당선 자랑 치졸한 언어유희
저속한 애물단지 아니더냐
정말 부끄럽지 않더냐
하찮은 상 나눠 먹기 그저 주워 왔다고
자아도취 인격장애 판치는 문단 저자거리
뭐 그리 대단한 벼슬이던가
새새스런 상 하나
주지도 않겠지만 받지도 않겠다던 그 시인
가려진 당대의 현실마저 경계 할텐가
살아서 심장 둥둥 울리는 매직은 없는 것인가
시조시인을 위한 변명
-악의 詩 2
이재창
이제 시는 죽었고 시인도 죽었다네
이 굶주린 세대에 자기 구원이 무슨 소용 있냐며
치사한 양아치 근성의 마지막 춤사위 본다네
발등에 차이는 게 시인이라던 당신 말이 맞네
웃음을 유혹하는 미세먼지 발암물처럼
사람은 누구나 독기서린
한 자루 칼 쥐고 있다네
비릿한 어물전 좌판 생각해 보았나
꽃 피는 봄날 강가에 서 있는 팜므파탈처럼
제 정신 가지고 사는 놈 몇이나 되겠나
로이 리히텐슈타인 作
시조단을 위한 변명
-악의 詩 3
이재창
"진보주의와 사회주의는 네에미 씹이다"고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던
빛바랜 김수영 시인의 대상은 수정돼야 할걸세
구역질 나는 머슴살이 언제 되살아 났나
숨겨진 선대 간신배 핏줄이 뿌리였었나
문림(文林)을 좀 먹는 기생충, 붓 꺽고 떠나야 할걸세
수사학을 빙자한 행간들이 '네에미 씹'이고
수구꼴통 알랑꾼 일본놈 똥구멍이나 빨걸세
만발한 패거리 저승꽃, 조시(弔詩)를 바치네
악의 詩 4
이재창
이 시대 시인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
인간 구원인가 자기 배설인가
이제는 상 받기 위해 시 쓰는 시대 와버렸으니
시인의 복무마저 이미 사라진 세상
좋은 말로 개선비냐 토라진 좀팽이냐
이제는 문학마저 권력인 시대가 와버렸으니
악의 詩 5
이재창
글 나부랭이 몇 줄로 세상 우습게 보지 마라
등지지 말고, 참여하려면 튀쳐 나와라
세상사 당대 최대 개그를 기웃거리지 마라
문학적 비장함도 예술적 비극미도
형식미학 완성도 운운하는 자 사짜들일세
난해한 분석법 판치는 증오의 대명사일세
악의 詩 6
이재창
추억의 줄빳다 한 번 때려보면 어떨까
키순인가 연식인가 얼굴도장 순인가
홍위병 내리갈궈서 똥군기라도 세워 보라
타투문신 체육대회 위력 과시 어떨까
구사대 임무까지 심지어 슈킹까지
저런 놈 왜 잡아가지 않나 삼재팔난 뭐하나
악의 詩 7
이재창
우리가 존경하는 시인이란 무엇일까
시시한 인간일까 비겁한 인간일까
여전한 기회주의자 일까
철저한 이기주의자 일까
악의 詩 8
이재창
욕 먹어도 배부르게 욕 먹어야 오래 산다더니
육십 나이 거꾸로 먹었나 초등생만도 못한 처신
지독한 잔그릇 인생타령
허허실실 어떻겠나
막무가내 자기 생각 문학도 그릇 나름
한때는 가진 돈도 빽도 없이 쿱쿱했었지
이제는 히든 패 한번 써볼까
닭살 돋는 섰다판이여
악의 詩 9
이재창
시조에게 미안하다, 원한처럼 사무친
옥타곤 링 안에 처절한 대결 하고 싶었다
강호의 계백 들판에
피 터지게 싸우고 싶었다
연구실 책상에서 문단 말아 먹는 시대
누군가 한명은 빙신이 돼 쓰러질 때까지
것 멋든 거품과 가짜들
숨통 끊어주고 싶었다
겨울, 묵언의 밤
-악의 詩 10
이재창
저 들녘 붉게 물든 겨울비가 내립니다
사색의 강을 건너는 눈보라 몰아쳐도
떠나간 밀교의 詩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신경세포 찢는 듯한 또 10년 묵언의 밤
갇힌 꿈마저 몸서리치며 일어서지 못하는
정녕코 불멸의 詩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화사한 연서처럼 다시 날지 않습니다
저녁의 긴 절망이 신새벽 희망으로
끝끝내 머물지 못한 악의 詩여 사랑이여
------------------------------------
◆ 시작 메모
모르진 않지만
시의 난해한 곡해(曲解) 보다는
직설(直說)이 더 큰 힘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
누군들
무심천득(無心天得) 하지 못한 인간일 뿐
나는 양아치도 머슴도 홍위병도 시인도 아니다.
머물 곳 머물지 않고 그냥 흐르는 강물일 뿐
그러한 강물에 돌 던지지 마라.
문학은 이미 내려 놓은 빈 산이다.
허튼 짓 하지 마라.
그리고 떠나갈 뿐이다.
- 이 재 창 -
《좋은시조》2019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