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좋은 이름이 성공한 인생을 만든다"
자유게시판

[동화] 디노와 덩이 돌보기 - 노금화

by 귤담 2023. 1. 18.

2023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디노와 덩이 돌보기

 

- 노금화

일러스트 = 김유종 기자

 

■ 동화

송아지는 울지도 않고 웅크리고만 있었다. 이틀을 꼬박 굶었다. 디노가 젖병을 입 가까이 대도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숙였다. 당장이라도 젖병을 빼앗아 내가 먹여보고 싶었다. 젖병을 송아지 입에 넣기만 하면 될 걸. 그것 하나 못 하는 디노가 한심스러웠다. 할아버지와 알란은 송아지한테 관심도 없었다. 돌봐야 할 소가 많아서 먹지 않는 송아지 한 마리쯤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나 보다. 나는 송아지가 태어났을 때부터 신경 쓰였다. 하지만 관심 없는 척했다. 디노가 가까이 있어서 더 다가갈 수 없었다. 얄미운 녀석!

송아지 어미는 새끼를 싫어했다. 삼 일 전, 태어나자마자 젖을 먹으려고 다가오는 새끼를 이리저리 피하고 밀어냈다. 엄청 커다란 어미의 다리 사이에서 송아지는 젖을 빨려고 애썼다. 넘어지고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일어나 젖을 쫓았다. 어미는 발까지 구르며 거부하더니 송아지가 젖을 두세 모금이나 먹었을까, 한순간에 송아지를 걷어찼다. 말 그대로 송아지가 날았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뒤로 송아지는 저렇게 웅크리고 주저앉아 꼼짝을 하지 않는다. 갓 태어난 자기 새끼를 차버리다니, 고약하고 나쁜 암소다!

제 새끼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암소는 느긋하게 짚만 먹고 있었다. 커다란 눈이 평화롭기까지 하다. 나는 암소 앞에 있는 짚과 사료를 다 치웠다. 기다란 빗자루로 암소의 코를 간질였다. 재채기시켜서 입에 있는 것마저 뱉게 하고 싶었다. 평안한 표정을 싹 없애고 싶었다. 빗자루로 머리를 치자 암소는 물러서며 피했다. 나는 울타리 밖에서 암소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러다 다쳐.”

디노가 언제 왔는지 바로 옆에서 말했다. 어른처럼 말하는 게 재수 없다. 디노는 할아버지 목장에서 일하는 알란의 아들이다. 알란은 태국 사람이고 아주 젊었을 때부터 할아버지와 소를 키우고 있다. 알란은 결혼하기 위해 태국에 다녀온 일 말고는 목장을 오래 비운 적이 없다. 알란의 가족은 목장 옆에 지은 집에서 살고 있다. 알란의 아내이자 디노의 엄마는 혼자 사는 할아버지 집안일도 도와주고 텃밭도 가꾼다. 바쁠 때는 목장 일도 거든다. 결론은 디노는 부모와 같이 살고 있다.

나는 갑자기 할아버지한테 온 것이다. 엄마는 할아버지의 외동딸이다. 엄마는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당분간 할아버지 집에 있으라고 했다. 엄마의 정리란 아버지와의 이혼이다. 나의 부모는 자주 싸웠다. 세 식구가 같이 있을 때도 거의 없었는데, 그나마 같이 있어도 엄마와 아버지가 싸운 기억밖에 없다. 나한테 관심 없고 바쁜 아버지는 지금까지 어떤 말도 없었다. 할아버지 집에 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생각할수록 화난다. 5학년이나 되었는데,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다 결정된 것이 화난다. 6학년인 디노가 큰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것도 화난다.

“자, 네가 먹여봐.”

디노가 젖병을 내밀며 말했다.

“싫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반사적으로 말했다. 인심 쓰듯 젖병을 주는 태도가 싫었다. 자기 송아지라도 되는 듯 옆에 찰싹 붙어있던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디노가 다시 말했다.

“내가 계속 먹이려고 했는데 안 먹잖아. 네가 해 봐.”

먹이지도 못하면서, 진작 줄 것이지. 하지만 바로 젖병을 받기가 멋쩍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디노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저러다 송아지가 죽으면 어떻게 해.”

그건 절대 안 된다. 나는 젖병을 받아서 들고 송아지한테 갔다. 송아지 입에 젖병을 들이댔지만, 송아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몇 번이고 그랬다. 억지로 젖병 꼭지를 송아지 입에 물리려다 볼에 우유가 튀었다. 갑자기 디노가 우유를 손가락에 묻히더니 송아지 입에 재빨리 넣었다. 송아지가 입맛을 다셨다. 이때다 싶어 젖병을 조금 벌어진 송아지 입에 넣었다. 송아지가 덥석 물더니 빨기 시작했다. 나와 디노의 눈이 마주쳤다.

됐어! 우린 눈으로 말했다. 나는 송아지의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송아지가 젖병을 빠는 힘이 손과 팔로 전해졌다. 짜릿했다.

“퍼! 송아지가 젖병을 빨아!”

디노가 알란을 향해 소리쳤다. 사료를 싣고 온 트럭 운전사와 이야기하고 있던 알란이 다가왔다. 알란은 송아지를 지켜보다 말했다.

“수고했어. 수의사 부를게.”

알란은 아들 디노보다 한국말이 서툴러서 말을 짧게 했다. 그래도 의사소통은 다 됐다. 디노가 송아지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송아지가 먹기 시작하면 수의사한테 진료받기로 약속했어.”

할아버지와 알란은 송아지의 다리가 골절된 거 같다며, 송아지의 살려는 의지를 보려고 기다렸다는 말도 했다. 나는 어른들도 송아지한테 관심이 있다는 것과 디노가 알란을 ‘퍼’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됐다. ‘퍼’는 태국말로 아버지라는 뜻일 것 같다. 인터넷에서 찾아봐야겠다.

수의사는 송아지의 한쪽 다리에 깁스했다. 깁스한 다리를 뻗은 채 엎드려 잠든 송아지는 커다란 개 같았다. 창고와 축사 사이에 짚을 깔고 송아지를 돌보기로 했다. 디노가 담요를 가져와 송아지한테 덮어 줬다. 닭과 오리가 몰려서 지나가고 고양이가 송아지한테 덮어 준 담요 끝자락에서 뒹굴었다.

“송아지가 우유를 먹어서 다행이다. 얘는 까미야. 내가 길에서 주워왔어.”

디노가 고양이 목덜미를 간질이며 말했다. 까만 고양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갸르릉 소리를 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엄마를 졸랐던 일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 나중에는 내가 스스로 돌볼 수 있으면 허락한다고 약속했다. 갑자기 디노가 샘나고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이곳에 와 처음으로 학교에 갔다가 오는 날이었다. 학교는 동네 입구에 있었다. 아침에 갈 때는 할아버지와 갔지만, 올 때는 혼자 걸어왔다. 봄바람이 아직은 쌀쌀했다. 길 양쪽에 빈 논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커다란 가로수들은 가지만 앙상했다. 파란 하늘이 끝없이 이어졌다. 마음이 뒤죽박죽 이상했다.

명절에나 잠깐 다녀갔던 할아버지 집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머릿속이 복잡하면서도 텅 비어 있었다. 가슴에 구멍이라도 뚫렸는지 바람이 숭숭 지나갔다. 멍하게 땅바닥을 보며 걷는데 뭔가가 있었다. 뭐지 싶어 얼굴을 가까이해 들여다봤다. 순간, 뱀과 딱 마주쳤다. 연두색과 검정 주황색이 섞인 긴 몸을 똬리 틀고 있었다. 바로 코앞에! 너무 놀라서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작은 뱀이라지만, 어떻게 저걸 몰라봤지. 진짜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내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주저앉은 것과 디노가 나뭇가지로 뱀을 집어 논바닥으로 던진 것은 동시였다. 먼발치에서만 몇 번 봤던 이 아이가 할아버지가 말하던 알란의 아들 ‘디노’라는 걸 바로 알았다. 아침에 학교 갈 때도 디노와 같이 가자는 걸 내가 싫다고 했었다.

“바보냐? 뱀한테 얼굴을 들이대다니! 햇볕 쬐고 있던 녀석이 더 놀랐겠다.”

얄밉게 말하는 녀석한테 어떤 말도 하기 싫었다. 부모랑 사는 녀석이 내 마음을 알 리 없었다. 아버지 옆에 늘 붙어있는 녀석, 재수 없었다. 디노는 일하는 알란을 쫓아다니며 뭐라고 계속 떠들었고 가끔 일도 거들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을 향해 걸었다. 뒤에서 걸어오는 디노도 말이 없었다. 목장 옆에 두 집이 나란히 있었다. 나는 현관문을 열며 옆을 슬쩍 봤다. 문손잡이를 잡은 채 내 쪽을 보는 디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디노와는 학교에서 마주쳐도 서로 모른 척했다.

“……준호? 네가 우유를 먹게 해서 다행이라고!”

디노가 계속 말하고 있었다. 내 이름을 알고는 있네. 나는 마음이 좀 느긋해져서 말했다.

“네가 우유를 맛보게 했잖아.”

디노가 씩 웃었다. 피부와 대비되는 하얀 치아가 가지런하게 드러났다. 한쪽에 볼우물도 생겼다. 디노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크고 팔다리가 가늘었다. 나와 다른 모습인데 말하는 것만 들어서는 한국 사람 같았다.

송아지는 그새 깼는지 고개를 들고 우리를 쳐다봤다. 디노가 집으로 달려가더니 젖병에 우유를 담아 왔다. 송아지는 앉은 채 젖병을 빨았다. 귀를 바싹 세우고 코를 벌름거리며 두툼한 입을 우물거렸다.

“앞으로는 깁스 풀었을 때를 대비해 서서 먹게 해야 한다.”

읍에서 돌아온 할아버지가 말했다.

“다리에 자극을 줘야 뼈도 잘 붙고 근력이 생겨 걸을 수 있단다. 늘어나는 몸무게를 지탱할 수도 있고.”

할아버지는 둘이서 잘 키워보라는 말도 했다. 나는 송아지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뭐가 좋을까? 디노도 생각해 본다고 했다.

디노와 나는 어두워지도록 송아지 옆에 있었다.

송아지는 며칠이 지나도록 앉아만 있었다. 운동시키려 해도 서지 않았다. 몇 번을 일으켜도 금방 주저앉고 귀찮다는 듯 고개를 깊이 묻었다. 송아지는 깁스한 다리를 뻗고 앉아 젖병을 빨고 그대로 엎드려 잤다. 내가 송아지의 등을 안아 올려서 버티게 해도 그때뿐이었다. “내가 같이 걸어볼게.”

디노는 송아지의 배와 등을 끌어안은 채 몇 걸음을 걸었다. 허리 숙인 디노의 이마와 송아지의 콧등에 땀이 맺혔다. 둘이 그러고 있는 게 안쓰러우면서도 웃겼다. 디노가 손을 떼자 송아지는 바로 주저앉았다. 사람처럼 한숨까지 쉬었다. 오리 한 쌍이 우리 앞으로 지나갔다. 보란 듯이 짧은 다리로 유난히 뒤뚱거리며 걸었다. 송아지도 곧 걸을 거다. 이름은 뭐가 좋을까.

디노와 나는 학교 갈 때도 같이 가고 올 때도 같이 왔다. 약속을 한 건 아닌데 송아지에 대해 말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학교에는 디노 같은 외국인 아이가 몇 명 더 있었다.

대부분 농장이나 목장에서 일하는 부모와 사는 아이이거나 외국에서 시집온 엄마를 둔 아이였다. 디노는 잘 웃고 뭐든지 척척 잘했다. 처음에는 디노가 인기 많은 게 좀 이상했다. 서울 학교에도 디노와 모습이 비슷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있는 듯 없는 듯 지냈고, 어떤 아이들은 대놓고 무시했다. 나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디노를 처음 봤을 때도 그런 마음이었다. 이곳에서는 내가 그 아이 같았다. 반 아이들은 나한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어차피 잠깐 있다가 갈 곳이라 상관없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디노와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디노와 같이 다니니까 기분 좋았다. 반 아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됐다. 디노가 다니는 학원에도 같이 갔다. 동네는 여전히 낯설었지만, 마음은 가벼워졌다. 디노와 함께 있는 게 즐겁고 시간도 잘 갔다. 크고 작은 나무에는 싹이 진작 트고 풀들도 많이 자라 있었다. 하지만 가로수는 가지만 앙상했다.

“벚꽃이 피면 엄청나!”

내 생각을 알았는지, 디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래? 그것보다 송아지 이름 말이야, 복덩이 어때? 덩이라고 불러도 좋고.”

“…….”

디노는 생각해둔 이름이 있을까? 나는 다시 말했다.

“네가 지은 이름 있어?”

“있긴 했는데……, 복덩이가 좋은데? 복덩이, 덩이!”

어느 순간 덩이가 스스로 두 발짝을 뗐다. 좀 버티는 것 같아 내가 손을 놓은 순간이었다. 디노와 나는 동시에 덩이를 끌어안았다. 한번 발을 뗀 덩이는 버티고 서서 젖병을 빨았다. 서 있는 게 익숙해지자 젖병을 빨며 당기고 밀기까지 했다. 젖병을 잡은 손에 적당한 힘을 주지 않으면 놓칠 것 같았다. 덩이는 닭을 쫓아다니기도 하고 고양이의 얼굴을 핥기도 했다. 내가 다가가면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디노는 자기를 더 알아본다고 했다. 우리는 시험해 보기로 했다.

“덩이야 이리 와, 이쪽!”

나는 덩이를 향해 말했다.

“휘이익! 이쪽이야, 이쪽! 휘익!”

디노가 나와 일곱 발짝쯤 떨어진 곳에서 소리쳤다. 휘파람까지 불며.

덩이는 우리와 삼각형 모양으로 떨어져 서 있었다. 덩이는 나와 디노를 번갈아 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영리한 녀석! 덩이는 뒤로 조금 물러나더니 주저앉았다. 온 동네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 디노 말대로 엄청났다. 꽃망울이 맺힌 것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가득, 확 폈다. 꽃잎이 눈처럼 날리며 길가와 논을 덮었다. 길을 걷는 나와 디노의 머리와 어깨 위에도 떨어졌다. 지금까지 봄마다 벚꽃을 봤을 텐데, 처음 보는 기분이었다. 아름답다! 저절로 아름답다는 말이 떠오르고 엄마가 생각났다. 아버지도. 마음이 또 이상해지려고 했다.

“경주다!”

나는 디노한테 소리치고 냅다 달렸다. 디노가 뭐라고 하면서 뒤따라왔다.

얼마나 달렸을까, 길에 송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할아버지 목장과 산으로 갈라지는 길에서 한참 내려온 곳이었다. 송아지가 있어서 놀랐는데, 그게 깁스한 덩이라 더 놀랐다. 내가 다가가자 덩이는 뒤로 물러났다. 개처럼 반기기를 기대했었나, 살짝 실망했다. 덩이는 디노와 내가 잡을 수 없는 만큼씩만 멀어졌다. 아직은 뛰지를 못해서 그런 건지 우리와 장난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바싹 다가가면 아예 멀리 가버리거나 괜히 뛰다가 다칠 것 같았다.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조바심으로 애타는데 덩이는 느긋했다. 주위를 살피고 날리는 벚꽃잎을 쫓기도 했다. 디노가 논으로 내려가 가로지르더니 나와 반대쪽에 섰다. 덩이를 사이에 두고. 일단 산과 읍으로 가는 길은 막은 셈이다. 마음이 놓였다. 나는 길에 주저앉았다. 덩이가 싫증을 내거나 지칠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 디노도 내 마음과 같은지 아예 다리를 쭉 뻗고 앉았다. 파란 하늘이 온통 벚꽃이고 디노와 덩이가 있었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준호! 너랑 같이 있으니까 좋다!”

디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도! 나는 그냥 손만 흔들었다.

일러스트 = 김유종 기자

덩이가 설사병에 걸렸다. 폭우가 몰려왔다가 간 다음 날부터다. 폭우는 굉장했다. 집 안이 들썩거리고 창문까지 흔들렸었다. 축사 곳곳에 비가 들이쳤다. 할아버지가 송아지한테 설사병은 무서운 거라고,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고 했다. 알란이 약을 먹이고 주사도 맞혔다. 우유를 먹이면 안 된다고 해서 젖병에 이온 음료를 넣어 먹였다. 디노 엄마가 끓여준 따뜻한 보리차에 설탕을 타서 먹이기도 했다. 덩이는 배가 고픈지 주는 대로 잘 먹었다. 하지만 먹는 대로 설사했다. 그래도 계속 먹였다. 탈수증을 막기 위해서였다. 알란이 우리한테 덩이를 위해 할 일을 줬다.

디노와 나는 덩이 똥을 열심히 찾고 관찰했다. 수시로 바닥을 살폈다. 설사병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물 같던 설사가 삼 일째부터 점점 걸쭉해졌다. 그다음 날부터 우유를 먹일 수 있게 됐다. 젖병을 빠는 덩이의 눈에 물기까지 맺혔다. 덩이가 젖병을 빨며 바싹 다가왔다. 나는 뒤로 물러서며 중심을 잡아야 했다. 자칫하면 넘어질 것 같았다. 덩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코를 들이밀며 계속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힘차게 젖병을 빨았다. 왜 이제야 우유를 주냐며 항의하는 것 같았다. 디노가 옆에서 계속 웃었다.

디노의 엄마가 봄나물 반찬 몇 가지를 갖고 왔다.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몇 번이나 드셨다. 엄마도 할아버지가 봄나물 좋아하는 걸 알까? 알란은 할아버지가 원하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일할 때 보면 할아버지와 알란은 말 한마디 없이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엄마는 저렇게 할 수도 없고 이곳에서 살지도 않을 것이다. 잠깐 다니러 갈 때도 소똥 냄새가 싫다며 집 안에만 있다가 후다닥 서울로 가기 바빴다. 나도 그랬었다. 일 년에 두세 번 보는 엄마와 나보다 디노네가 할아버지한테는 더 가족 같겠다. 샘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함께 지내다 보니 할아버지에 대해 알게 되고, 그래서 더 좋아졌다. 할아버지는 저녁 식사를 하면 바로 잠들었다. 두세 시간쯤 곯아떨어졌다 일어나면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오후에 잠깐 낮잠을 자는 거로 잠은 충분하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새벽까지 책을 읽거나 뭔가 썼다. 무슨 책인지 궁금했는데, 대부분 시집일 줄은 몰랐다. 그럼 시를 쓰시는 건가? 어쩔 수 없이 왔지만, 할아버지와 디노, 덩이가 있는 이곳이 좋다. 물론 소똥은 여전히 싫다. 그래도 덩이 똥은 참을 수 있다. 똥은 다 똥이지만, 다르다!

“젖 먹으려는 새끼를 발로 차 버리다니 이해할 수 없어요.”

덩이의 깁스를 떼는 날 할아버지한테 말했다. 지금보다 작았던 덩이가 날아올랐다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이 생생했다. 죽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덜컥했다. 덩이의 눈에서 눈곱을 떼어주며 할아버지가 말했다.

“어미 소가 젖을 먹으려는 새끼를 밀어내는 일이 드물지만, 가끔 있단다. 특히 처음 송아지를 낳은 어미는 젖 먹이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지.”

할아버지는 덩이의 귀를 당기며 꼼꼼히 살피고 다시 말했다.

“결코 새끼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니란다.”

“그래도…….”

덩이를 낳은 어미 소가 그랬다는 게 싫다. 부모가 이혼한 아이들을 몇 명 알지만, 우리 부모가 그럴 줄은 몰랐다.

“준호야, 어른도 마찬가지야. 어른이라고 모든 일을 다 알고 잘하는 건 아니지. 실수도 하고.”

할아버지가 나를 가만히 보더니 말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대로 결정하는 경우는 많다. 이번에도 엄마는 여름 방학 전에 날 데리러 온다고 했다. 아버지한테도 전화가 왔다. 엄마와 잘 지내라고, 자주 만나러 온다고 했다. 엄마가 언제 데리러 올지, 아버지가 얼마나 자주 날 만나러 올지 알 수 없다. 이곳에 더 있고 싶기도 하고 엄마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이상하다. 시간이 지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는 게 많아지는데, 확신할 수 있는 건 점점 없어진다. 복잡해진다. 그렇다고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새로운 일과 신나는 일이 많다. 덩이의 목덜미를 쓸어주고 있던 디노와 눈이 마주쳤다. 디노가 씩 웃었다. 어쩐지 내 마음을 다 아는 것 같았다.

알란이 작은 톱을 들고 왔다. 디노와 나는 덩이의 몸통과 다리를 잡았다. 할아버지가 깁스한 다리를 붙잡았고, 알란이 톱으로 깁스를 갈랐다. 덩이의 깁스 뗀 다리는 다른 다리보다 조금 가늘었다. 골절됐던 곳인지 황색 털 위에 가로로 하얀 자국이 남았다. 다리 위쪽에 딱딱한 깁스 끝이 파고든 상처도 있었다. 덩이가 기우뚱하게 서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깁스를 뗀 느낌이 어색한가 보다.

“잘 견뎌낸 훈장!”

디노가 하얀 자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이건 영광의 상처구나.”

할아버지가 말하며 깁스 상처에 약을 발랐다.

알란이 디노를 넓은 축사에 넣었다. 나는 반대편으로 돌아가서 덩이를 불렀다. 덩이가 냉큼 달려왔다. 저쪽에서 디노가 덩이를 불렀다. 이번에는 덩이가 디노한테로 달려갔다. 덩이는 축사 끝에서 끝으로 몇 번이고 내달렸다. 울타리에 부딪힐 것 같아 마음 졸였는데, 덩이는 정확하게 멈췄다가 반대쪽으로 다시 달렸다. 마른 몸에 배만 볼록한 덩이가 꼬리를 쭉 뻗고 달리는 모습이 우스웠다. 자랑스러웠다.

할아버지가 나와 디노를 불러 덩이 옆에 서게 했다. 찰칵, 우리의 모습이 네모난 사진에 담겼다. 알란이 할아버지와 내가 나란히 있는 사진을 찍었다. 나는 디노의 콧구멍이 커다랗게 나오게 사진을 찍었다. 디노가 내 얼굴에 핸드폰을 가까이 해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우리는 핸드폰을 들어 올리며 서로 사진을 찍겠다고 난리를 떨었다. 디노와 내가 뛰자 덩이도 덩달아 뛰어다녔다.

 

 

 

 

 

 

 

다른 환경서 자라 함께 산다는 건… 막막해도 서로를 북돋는 일

[2023 문화일보 신춘문예]

강정연(왼쪽) 작가와 김지은 평론가가 동화부문 응모작을 살펴보고 있다. 박윤슬 기자

 

■ 동화 심사평

 

어린이는 가족과 함께 자라나지만 그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순간도 있다. 영원할 줄 알았던 가족과 떨어지게 되면 어린이는 상당한 흔들림을 겪지만 남은 사람들, 새로운 가족과 함께 안정을 찾고 마음을 회복한다.

 

이번 신춘문예에는 가족의 만남, 결별, 재구성을 담은 작품들이 다수 응모된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을 다루는 방식에서 상처만을 강조하거나 가족 형태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는 작품들도 있어서 아쉬웠다. 여러 작품 중에서 주목했던 작품은 다음과 같다.

 

‘나를 길들여 놓고선’은 마을로 내려온 멧돼지의 시점에서 야생동물이 인간과 함께 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이야기다. 마당에서 고구마를 훔쳐 먹던 어린 멧돼지를 발견한 현우는 ‘인절미’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그와 가족이 되기를 꿈꾸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야생의 삶을 왜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현우가 멧돼지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둘이 쌓아온 관계가 급격하게 희미해져 버리는 것이 아쉬움이었다. ‘곰을 만나면’은 교실을 삼엄하게 운영하는 선생님과 대결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생각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어린이들의 진지하고 거침없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스스로 어른의 행위에서 타당한 부분과 부당한 부분을 발견해낸다. 다만 그 갈등과 탐색이 대화의 연속으로 진행되고 그 때문에 역동적인 전환점조차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점이 아쉬웠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디노와 덩이 돌보기’는 아직 잘 일어서지 못하는 갓 태어난 송아지 덩이를 돌보면서 5학년 준호와 6학년 디노가 친구가 되는 이야기다. 간단한 구성 같지만 작품 안에 우리 공동체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켜켜이 담겨 있다. 이주 배경을 지닌 디노와 준호의 우정, 가족의 결별과 슬픔,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같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축사에 폭우가 내리고 엄마의 발길질에 골절상을 입은 송아지는 주저앉아 뭘 먹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이렇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한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끼리 의지하고 서로 힘을 북돋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이 짧은 이야기는 보여준다. 송아지와 어린이가 등장하는 여러 고전들의 변주곡처럼 잔잔하면서도 심지가 깊은 이야기다. 감정을 절제한 문장이 두 어린이의 성장을 담백하게 그려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투고하신 여러분께는 응원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 오늘의 어린이가 놓인 삶의 국면을 더욱 다양하게 담은 동화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지은·강정연

 

 

 

 

 

글을 써도 된다는 ‘선물’… 감사로 채우고 노력할 것

[당선소감]

노금화 동화 당선자
 
 

■ 동화 당선소감

 

늦은 오후, 당선 연락을 받았습니다. 통화를 하는 중에도 믿기지 않는 마음과 감사함에 우왕좌왕했습니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실감이 나면서, 귀한 상임을 새삼 알게 됐습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덜컥 당선된 것이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이 마음을 감사함으로 채우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자고 다독였습니다.

 

‘……그건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일일 뿐, 고양이의 눈은 하늘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돼……’ 어느 작품에서 치열하고 구차하게 살지만, 고결함을 기억하려는 고양이가 한 말을 메모해 뒀습니다. 그 고양이처럼 살고 싶은 마음에 글을 썼습니다. 고민해 완성된 문장 하나, 이야기 하나가 주는 충만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젊지 않은 나이에 왜, 어떻게 글을 쓰게 됐는지 생각하곤 합니다. 생각의 끝과 가슴 안쪽에는 늘 친정엄마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외국에 나가신 아버지와 친척들한테 편지를 많이 썼습니다.

 

귀찮아하는 저를 붙들어 앉히고 엄마는 전할 말을 받아쓰게 했습니다. 불러주는 말을 글로 쓰고도 여백이 많은 편지지에 어떤 내용을 채울지 고민했습니다. 조금 색다른 안부 말과 이야기를 쓰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상과 자연, 마음을 묘사할 단어들을 찾았습니다.

 

책이 귀하던 때, 처음으로 엄마가 사준 것이 세계 문학 전집이었습니다.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됐습니다. 제 문학의 시작은 그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일찍 하늘로 가신 부모님께 당선 소식이 전해지길 소망합니다.

 

묵묵히 응원해준 남편과 유진, 유리 두 딸에게 당선 소식을 전합니다. 오롯한 혼자만의 시간을 이해해줘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동리목월문학관의 이채형 교수님 감사합니다. 멀리 이사 온 후에도 ‘글은 쓰고 있소?’ ‘글 열심히 쓰시오’라고 주신 문자에 올해에야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랜 친구인 박혜원 작가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마음은 가까운데, 문학적으로는 높고 멀었던 벗과 조금쯤 가까워진 것이 기쁩니다. 더 노력해서 나란히 걷고 싶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 외에도 일상의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있을 문우들과 지인들에게 저의 행운이 전달되길 바랍니다.

 

특별한 선물을 주신 문화일보와 심사하신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글을 써도 된다는, 계속 글을 쓰라는 뜻으로 알고 노력하겠습니다.

 

 

 

△노금화

 

1968년 서울 출생. 교육학을 전공하고 독서와 논술 수업을 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창작아카데미에서 소설과 동화를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