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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 인공지능의 시대에 암기 교육이 필수다 - 김재인

by 귤담 2023.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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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 인공지능의 시대에 암기 교육이 필수다

김 재 인 (철학자,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등록일 2023-03-28

암기 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 모든 학습은 '암기'를 기본 축으로 한다. 배운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배운 것이 단편적 정보건, 지식이건, 노하우건, 기교건, 그 무엇이건 간에 말이다. 따라서 교육자가 암기를 기피하거나 백안시해서는 안 된다. 암기가 교육의 기본이자 주춧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검색보다 암기가 항상 더 빠르다.

중요한 건 '무엇을 암기해야 하는가'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이다. '주입식 교육'은 교육 당국이나 교사가 암기할 것을 '일방적으로' 정했다는 데서 문제였다. 왜 다름 아닌 바로 그것을 암기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한 합의가 없었기에, 교육 철학이 들로 산으로 바다로 아무데로나 갔다.

일단 피교육자에게 결정

권이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암기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당사자에게 결정권을 넘기기엔 제약이 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판단력을 길러야 하는 학생에게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건 분명하다. 따라서 그전까지는 교사가 암기할 사항을 지정해 줄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다르면서 나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정해주는 것이 적절할까?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기성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식과 기술의 양과 범위가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그 지식과 기술로 평생 직장 생활을 해낼 수 있었다. 이런 경우라면 암기할 사항은 자연스레 사회적으로 합의될 수 있다. 많이 양보하더라도, 선진국에서 지정해준 양과 범위를 받아들여도 충분했다.

지금은 어떨까? 앞으로는 어때야 할까? 산업화 시대를 기준으로 삼는 어리석음에서 얼른 탈출해도 이미 늦다. 이미 생성 인공지능이 원하는 것을 생성해주는 시대다. 물론 생성물이 완벽하지는 않다. 아니, 완벽할 수 없다. 인공지능이 생성해주는 것에 만족할 정도라면 평균치를 넘지 못하니까. 인공지능 생성물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것을 해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은 본디 '더 나은'을 지향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아니 '조금이라도 다른'이라고 해야 어울릴지 모른다. 인간은 지루한 건 참지 못하니까. 결국, 조금이라도 다르면서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다.

흥미롭게도 인간과 인공지능이 무언가를 생성하는 과정은 상당히 유사하다. 그것은 '암기 → 검색 → 생성'의 순서를 따른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더 정확히 살펴보면, 인간은 '암기 → 내적 필요 →검색 → 생성'의 순서를 밟지만, 인공지능은 ‘암기 → 외적 요청 →검색 → 생성'의 순서로 진행한다. '내적 필요'와 '외적 요청'의 차이가 인간과 인공지능을 나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인간이 생성하려는 이유가 뭔가 자신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면, 인공지능은 인간이 풀라고 시킨 문제를 풀 뿐이다.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는가? 인간에게만 창의성이 발견되는 이유다.

문제를 느끼고 표현하는 힘이 곧 비판

인간은 문제를 느끼고 정의하고 해결하는 존재다. 이는 생명의 과정이기도 하다. 산업화 시대에도 교육은 이 과정에 충실했다. 지금도 그래야 하지만, 조건이 바뀌었다. 지금은 산업화 시대의 규격이 사라졌다. 개개인은 개인 컴퓨터로 무장해서, 19세기였다면 공장이라 불렀을 것을 각자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각자가 생산수단 소유자다. 물질(아톰) 생산물과 달리, 디지털(비트) 생산물은 재생산과 유통 비용이 무료로 수렴한다. 구하는 지식과 기술은 대학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며, 오히려 대학보다 넓은 원천이 널려있다. 그렇다면 교육은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

적어도 교육해야 할 역량의 기초에 문제를 느끼는 힘이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비판의 출발은 문제를 느끼고 표현하는 데 있다. 자유라는 조건이 꼭 필요한 이유다. 이제 주위를 살펴보자.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혹시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지는 않은가? 알게 모르게, 모두를 나락으로 데려가고 있지는 않은가?

글쓴이 / 김재인 (철학자,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