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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이름이 성공한 인생을 만든다"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5월 21일

by 귤담 2023. 5. 10.

오늘의 역사 5월 21일

 

 

목 잘린 풀꽃처럼 등이 굽어 휘청인다.

빈 자리 곳곳 긴 칼 휘두르는 감원 폭력

밥 먹고 사는 일마저

불확실한 우리 삶터.

불혹의 어깨위로 흐트러진 반쪽 얼굴

너희는 볼 탱탱한 기름기로 덧칠하지만

목마른, 이 목마른 갈증

우린 어떻게 넘나.

저 싱그런 거리 곳곳 오뉴월의 속울음을

먼저 떠나간 자리 다시 채워지지 않는

불면의 저문 세기말

고개 떨군 아버지.

                      - 이재창 「IMF를 지내며 - 年代記的 몽타주․21」 전문, (열린시조, 1998 가을호)

 

 

*오늘은 소만 ; 만물이 생장하여 가득찬다는 뜻, 바람이 참 “소만추위에 소머리가 언다” 모내기 준비와 가을보리 수확 한창, 가물 때가 많아 밭곡식 관리와 모판 마르지 않도록 해야 함

*부부의 날 ; 평등하고 민주적인 부부문화 확산과 건전한 가족문화 정착으로 가족해체를 예방하자며 민간단체가 1995년부터 둘(2)이 하나(1) 된다는 뜻에서 오늘 부부의 날 행사 치르다가 2007년에 법정기념일이 됨

*세계문화다양성의 날 ;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적 가치 높이고, 민족간 갈등과 대립 극복하고자 유엔이 2002년에 오늘을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로 지정

*해군의 날: 칠레

*세인트헬레나 데이: 1502년 세인트헬레나의 발견을 기념하는 날

*키아누 리브스의 날 2021년 5월 21일 매트릭스 4 존 윅 4 동시 개봉

*사회복지관의 날: 1983년 5월 21일, 사회복지사업법 일부 개정을 통해 사회복지관 등 복지시설의 운영 또는 지원을 법적으로 명시한 날을 기념하고자 제정됨: 대한민국

 

 

1109년 [음]예종(睿宗) 4년, 동계병마원수(東界兵馬元帥) 윤관(尹瓘)을 서북로(西北路)에 파견

1126년 [음]인종(仁宗,) 4년, 이자겸과 그 처자를 유배보냄

1234년 [음]고종(高宗) 21년, 시중 김취려가 사망함

1236년 [음]고종(高宗) 23년, 몽고군이 관동에 침입함

1283년 [음]세조(世祖)9, 원에서 고려에 권농관을 설치함

1297년 [음]충렬왕(忠烈王) 23년, 왕비 안평공주가 현성사에서 사망함

1397년 [음]태조 6년, 각 도의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를 파하고 각 진(各鎭)에 첨절제사(僉節制使)를 둠

--각도의 병마 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를 파하고 각진(各鎭)의 첨절제사(僉節制使)를 두어 소속인 부근 고을[州]의 병마를 거느려 수어(守禦)에 대비하고, 도관찰사로 하여금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을 상고하게 하였다. 경상도는 4진(鎭)인데, 합포(合浦)·강주(江州)·영해(寧海)·동래(東萊)이고, 전라도의 4진은 목포(木浦)·조양(兆陽)·옥구(沃溝)·흥덕(興德)이고, 충청도의 3진은 순성(蓴城)·남포(藍浦)·이산(伊山)이고, 풍해도(豊海道)의 2진은 풍주(豊州)·옹진(甕津)이고, 강원도의 2진은 삼척(三陟)·간성(杆城)이다.

1434년 [음]세종 16년, 흙비가 내림

1439년 [음]세종 21년, 90세 이상 노인에게 벼슬을 내림

--이진(李蓁)을 호조 참판으로, 남궁계(南宮啓)를 전라도 병마 절제사(兵馬節制使)로 삼았다. 나이가 90세 이상 노인 1백여 명에게 모두 산직(散職)을 제수하였는데, 비록 90세가 차지 아니한 자라도 나이를 올려서 벼슬을 받은 자가 심히 많았다.

1463년 [음]세조 9년, 군자감(軍資監)의 대창(大倉)이 완공됨

--군자감(軍資監)의 대창(大倉)이 낙성되었다. 이 앞서 국가(國家)의 축적(畜積)이 너무 많아서 창름(倉廩)에 용납할 수 없어, 명하여 군자감(軍資監)에서 앞서 철거(撤去)한 인가(人家)를 좌우로 나누어 대창(大倉)을 영조하게 하고, 호조 판서(戶曹判書) 조석문(曹錫文)·행 첨지중추원사(行僉知中樞院事) 김개(金漑)·상산군(商山君) 황효원(黃孝源)·행 호군(行護軍) 강로(姜老) 등에게 그 일을 감독하고 독촉하게 하였더니, 이에 이르러 낙성을 고하였다.

1467년 [음]세조 13년, 남원군 황수신(黃守身, 황희의 아들)이 죽음

1510년 [음]중종 5년, 함경도 안변에 봉화(烽火)를 설치하게 함

1525년 [음]중종 20년, 전라도·충청도 지역에 우박 피해 발생. 함경도에 비 피해 발생

1526년 [음]중종 21년, 전염병으로 사망자가 전라도 142명, 함경도 580명 등 발생

1549년 [음]명종 4년, 충청도를 청홍도(淸洪道)로 고침

--충청도(忠淸道)를 고쳐 청홍도(淸洪道)로 만들고, 충주(忠州)를 강등시켜 유신현(維新縣)으로 만들었다. 이기(李芑)를 의정부 영의정으로, 이해(李瀣)를 청홍도 관찰사로, 이치(李致)를 유신 현감으로 삼았다.

1555년 [음]명종 10년, 정교한 총통(銃筒)을 가지고 온 왜인에게 당상의 직을 줌

1601년 [음]선조 34년, 해초법(海焇法)과 독약 제조법을 전습하게 함

--훈련 도감이 아뢰기를,

"제약(劑藥)하는 사람 손용(孫龍)을 전라 감사 및 통제사의 진영에 보내어 약법(藥法)과 포법(砲法)을 전습(傳習)하게 하였는데, 독약법(毒藥法)·분화법(噴火法) 등은 모두 전습하였으나, 지뢰포(地雷砲)는 화약(火藥)이 매우 귀하기 때문에 전습할 수가 없습니다. 또 해상(海上)의 염초(焰硝) 역시 곧 부안(扶安) 땅에서 구으려고 도감을 통하여 재촉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왔다고 합니다. 지뢰(地雷)는 육전(陸戰)에 제일 중요한 것이고 해초(海焇) 역시 이로움이 많은 것인데, 모두 우리 나라 사람들은 만들 수가 없으므로 그에게 다시 그 제조법(劑造法)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그를 만류할 수 없으니 편의에 따라 입송해야 하겠습니다. 다만 그는 오유충(吳惟忠)의 휘하 사람인데 죄를 얻어 뒤떨어져 있는 것을 마침 도감에서 그가 포초법(砲硝法)에 능하다는 말을 듣고 전습해 달라고 개유(開諭)한 것입니다. 심지어 호남까지 왕래해서 그의 공이 많은데, 그대로 들여보내면 억울하다고 할 듯하니 상물(賞物)을 후히 주어 그의 마음을 위로해 보내지 않을 수 없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해초법(海焇法)은 전습하지 않을 수 없으니 더 머물면서 전습하게 해야 한다. 또 후히 상물을 주는 것도 마땅하다. 다만 처음 남쪽으로 내려 보내기를 청할 때에 내가 전혀 살피지 않고 범연하게 윤하(允下)하였는데, 지금 생각하건대 남쪽으로 내려보내 독약(毒藥) 등의 법을 전수하는 데 있어 원대한 사려가 없었다. 전습한 사람이 만약 왜적에게 포로가 되어 왜적들이 그 법을 전습하게 되면 후일 말할 수 없는 무궁한 화가 있게 될 것이다. 대개 그러한 비법은 경중(京中)에서 해야지 외방에서 전습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일은 상세히 살펴야 한다. 또 전습한 사람과 역관(譯官)에게는 전의 전지(傳旨)에 의해 서계하여 논상하라."

하였다.

1645년 조선인조의 적장자 소현세자 작고 .

1664년 [음]현종 5년, 경상도에 굶주린 백성이 17만 604인, 염병에 걸린 자가 1,617인으로 집계됨

1675년 [윤]숙종 1년, 송시열이 위리안치(圍籬安置,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죄인을 가두는 유배형)됨

--대사헌(大司憲) 이무(李袤), 집의(執義) 오정창(吳挺昌), 장령(掌令) 조사기(趙嗣基), 지평(持平) 유하익(兪夏益)·이항(李沆) 등이 송시열(宋時烈)을 위리 안치(圍籬安置)할 것을 청하고, 헌납(獻納) 목창명(睦昌明)과 정언(正言) 권환(權瑍) 등도 또한 같은 청을 올리니, 임금이 즉시 그대로 따랐다. 송시열(宋時烈)은 기꺼운 모습으로 길을 떠났다. 갓도 쓰지 않고 부채도 들지 않고 관(關)과 영(嶺)을 넘어 1천여 리를 조금도 쉬지 아니하고 매양 금오랑(金吾郞)524) 보다 앞서 갔다. 금오랑 심양필(沈良弼)은 남인(南人)이었으니, 〈송시열에게〉 갖은 침곤(侵困)을 다 주었다. 송시열이 위리(圍籬)된 장소에 들어가서 천천히 심양필에게 말하기를, ‘나 때문에 먼길을 오느라고 참으로 고생이 많았겠소.’ 하면서 신색(神色)이 태연스러웠다. 이에 심양필도 또한 존경하고 감복(感服)하였다. 〈서울에〉 돌아와서 말하기를, ‘송정승[宋相]은 아마도 무언가 얻은 것이 있는 분 같았다.’ 하였다. 처음에 홍여하(洪汝河)가 그의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마땅히 윤영공(尹令公)같이만 되고 그만 두겠소.’ 하였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송시열이 위리(圍籬) 가운데 있으면서도 〈자기에게 닥친〉 근심과 액(厄)을 평화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조금도 마음속에 두지 않고 오직 서적(書籍)만을 탐구(探究)하면서 읽고 외우기를 그치지 않았으며, 《주자대전석의(朱子大全釋疑)》를 저술하였다 한다.

 

송시열(宋時烈)의 자(字)는 영보(英甫)요, 호(號)는 우암(尤菴)이며, 회덕(懷德)에서 살았다. 타고난 자질(姿質)이 강의(剛毅)하고 큰 뜻이 있었다. 정축년525) 뒤로부터는 명(明)나라를 위하여 의(義)를 지키고 〈벼슬길에〉 나오지 아니하여, 김상헌(金尙憲)의 추허(推許)가 매우 중하였다. 기축년526) 뒤에 송준길(宋浚吉)과 함께 〈임금의〉 부름을 받아, 김자점(金自點)의 무리들을 탄핵하여 내보냈다. 이에 〈김자점의〉 무리들이 가만히 청(淸)나라 사람에게 〈송시열을〉 참소하여 오랑캐들 가운데 말이 돌기를 ‘동국(東國)의 송장군(宋將軍)이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온다.’ 하여, 청나라 사람들이 요동(遼東)에 군사를 주둔시켜 대비하였다. 이 때문에 경인년527) 에 의순 공주(義順公主)가 〈청나라에〉 가게 되었다. 효종 말년(末年)에 다시 〈송시열을〉 불러들여서 크게 발탁(拔擢)하여 전형(銓衡)528) 자리를 제수(除授)하고 〈청나라에〉 설치(雪恥)할 일을 맡기니, 〈그 군신 사이의〉 계합(契合)이 마치 〈연(燕)나라의〉 악의(樂毅)와 소왕(昭王),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과 소열 황제(昭烈皇帝)와 같았다. 얼마 안되어 효종이 빈천(賓天)하니, 일을 이룰 수 없다는 이유로 곧 다시 〈관직에서〉 물러나 돌아갔다. 만년에는 청주(淸州) 화양동(華陽洞) 가운데에 살았는데 여반(糲飯)529) 과 해어진 옷으로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언제나 안여(晏如)하였다. 선왕(先王)530) 도 또한 〈송시열을〉 스승으로 대하여 예우(禮遇)가 달라지지 않았고, 우상(右相)으로 임명하고 여러 번 불렀으나 사양하였으며, 우상(右相)을 해임시키자, 입조(入朝)하였다가 곧 다시 돌아갔다. 국가가 정축년531) 뒤로 멸망할 뻔하다가 겨우 멸망하지 아니한 것은 송시열이 의리를 부르짖고 분연(奮然)히 일어나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았고 청(淸)나라의 연호(年號)를 쓰지 아니하였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청에 대한〉 원수를 갚는 것을 자신의 임무(任務)로 여겨서였다.

[註 524]금오랑(金吾郞) :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註 525]정축년 : 1637 인조 15년.

[註 526]기축년 : 1649 효종 즉위년.

[註 527]경인년 : 1650 효종 원년.

[註 528]전형(銓衡) : 이조 판서를 가리킴.

[註 529]여반(糲飯) : 매조미쌀로 지은 밥.

[註 530]선왕(先王) : 현종을 가리킴.

[註 531]정축년 : 1637 인조 15년.

1728년 [음]영조 4년, 반역을 꾀한 신석영(申錫永)을 참형에 처함

1755년 [음]영조 31년, 역적의 처(妻)를 사형하지 못하게 함

1762년 [윤]사도 세자(思悼世子)가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음

--조선조 19대 임금 숙종은 나인 출신의 희빈 장씨로부터 균을,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로부터 금을 얻었다. 숙종 사후 균은 경종이 됐고 금은 영조가 됐다. 그러나 세자인 균이 병약한 탓에 조정은 경종과 영조의 즉위를 둘러싸고 당파간의 죽기살기식 암투로 살벌한 분위기였다. 소론은 경종을, 노론은 영조를 지지했다.

경종 즉위 후 승자가 된 소론은 신임사화(辛壬士禍) 등을 일으켜 수십·수백의 노론파를 처형하거나 유배시켰다. 경종이 재위 5년 만에 병사하자 노·소론의 치열한 당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면하고 가까스로 왕위에 오른 영조는 붕당의 폐해를 막기 위해 탕평책을 썼다. 그러나 고질화된 붕당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만무했다.

영조의 유일한 혈육인 세자 선을 둘러싸고 당쟁이 재연된 것이다. 영조가 건강상의 이유로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하게 하자 세자를 등에 업으려는 소론·남인과 이를 저지하려는 노론이 다시 맞붙었다. 한때는 총명했던 세자도 잦은 무고(誣告)와 되풀이되는 영조의 질책으로 정신병적 성향을 보이며 잇단 비행을 저지른다. 영조도 편집증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영조는 못마땅한 세자를 폐위하고 서인으로 강등시킨 후 1762년 5월 13일(음력) 뒤주 속에 가둔다. 초여름 8일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세자는 뒤주에 갇혀 절망과 분노를 토해내며 몸부림치다 숨을 거둔다. 5월 21일이었다. 사도(思悼)는 훗날 이를 후회하고 애도한다는 뜻으로 영조가 내린 시호이다.

1774년 [음]영조 50년, 단군(檀君)의 사당과 고려 왕릉 등을 모두 보수하게 함

--단군(檀君)의 사당으로부터 전조(前朝)의 여러 능(陵)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사전(祀典)에 있는 곳은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친히 봉심(奉審)하고, 양도(兩道)의 유수(留守)도 또한 똑같이 봉심하도록 하며, 제때에 곧 수보(修補)를 하되 모두 모군(募軍)을 이용하고, 저치미(儲置米)로 회감(會減)하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저치미(儲置米) : 각 고을에 설치한 국고에 예비비(豫備費)로 쌓아 둔 쌀. 각 지방에서 각종 세곡으로 받아들인 쌀을 저축하여 두고 관수 물자(官需物資)의 조달에도 사용하며 또 춘대 추납(春貸秋納)의 구황(救荒)에도 사용함.

1781년 [윤]정조 5년, 관왕묘(關王廟)의 제물(祭物)과 의식(儀式)을 바로잡음

1803년 [음]순조 3년, 수원 유수가 융·건릉 밖에 대황교(大皇橋)를 세움

1825년 [음]순조 25년, 신의 왕후(神懿王后, 태조 비)가 태어난 곳에 비각을 세움

1837년 [음]헌종 3년, 충청도 대흥군(大興郡)에서 괘서(掛書) 사건이 일어나 죄인을 참형함

1871년 신미양요

1894년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정치인 조병옥 출생.

 

 

1902년 일본 제일은행 부산지점, 1원권을 발행 한국에 유통시킴

1902년 한양-개성 전화개통

1921년 민족주체성 세운 사학자 신채호, 독립투쟁단체 ‘통일책진회’ 조직

1923년 평양시내 전차 개통

1926년 양기택, 중국 길림서 고려혁명당 결성

1931년 함흥 지역 5개 중학교 총동맹 휴교

1939년 전국에서 일제히 부·읍·면 의원 선거 실시

1942년 일제, 〈소금 전매령〉 공포

1943년 뉴질랜드 한국 승인

1947년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열림(7.10 결렬)

1949년 최남선, 반민특위 제1회 공판에서 친일 혐의 시인

1953년 화천 수력발전소 복구(81,000kw)

1958년 탈모 비누, 군납사건 발생

1959년 내각책임제개헌안 공고

1960년 내각책임제 개헌안 공고(6.15 국회통과)

1960년 초중고 교사와 대학교수 300여명 대한교육노조연합회 결성

1961년 국가 재건 최고 회의, 〈포고령〉 제6호 공포, 정당·사회 단체·노동조합 강제 해산

1961년 이정재등 깡패 200여명, 서울시내 가두에서 군인들이 조리돌림

1961년 혁명정부 용공분자 2천, 깡패 4,200여명 검거 발표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구속된 학생들의 영장을 기각한 법원에 공수단 소속 군인들이 난입.

1964년 무장군인 법원 난입사건 발생

--5월 21일 새벽 공수단 제1특전단 소속 최문영 대령이 지휘하는 장병 8명과 공수단 출신 민간인 2명이 완전무장하고 법원에 난입, 소동을 벌였다.

이들은 20일 낮 서울대학교 운동장에서 벌인 한일 굴욕외교반대 학생총연합회가 주최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및 성토대회`에 참가한 주모학생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많이 기각했다는 연락을 받고 정치근 담당검사와 양헌판사에게 압력을 넣기 위해 법원청사에 난입했으나 양 판사가 퇴근했다는 말을 듣고 성북구 동소문동에 있는 양판사집까지 찾아가 위세를 과시, 공무중인 판사를 협박했다.

또 6월 6일 새벽 최대령등 제1공수특전단 소속장교8명이 술을 마신후 순찰도중 동아일보사에 침입해 숙직중인 김광희 기자에게 법원난입 사건으로 구속당한 황길수 대위 등에 대해 인신공격성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약45분간 폭언을 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

7월 10일 제6군관구계엄보통군법회의는 법원 및 동아일보사 난입사건의 판결공판을 열고 주모자 최문영 피고인에게 징역 5년, 관련자 4명에게는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장교의 지시를 받아 행동한 하사관등 13명은 무죄를 선고했다.

1966년 북한언어학자 홍기문 남북간기자교류 제의

1967년 김두한 후보 선거연설중 반공법 위반혐의 구속

1969년 신민당 제3차 전당대회, 당헌 개정안 채택하고 총재단 선출

1971년 대일 민간청구권 접수

1973년 대전일보-중부일보 통합해 충남일보로 발족

1974년 도정 9분도 이상의 백미를 전국적으로 판매 금지 조치

1975년 박정희 대통령,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 요담

1977년 미국 카터 대통령 철군계획 반대한 주한미군 참모장 싱글러브 소장 해임

1980년 이희성 계엄 사령관, ‘광주 지역 소수의 폭력 난동자’에 자위권 조치 경고 담화

1980년 광주 '시민군' 본격적으로 무장 나주경찰서 등지 에서 무기 확보, 11공수여단 집단 발포.

1980년 국무총리서리에 박충훈 임명

1981년 새세대육영회 창립(회장 이순자)

1982년 전두환 대통령 개각 단행

1984년 재경대학 총장, 학원사태관련 공동성명 발표

1984년 제63ㆍ64차 관세협력이사회(CCC) 개막(25일 관세기술협력기금창설- 서울선언 채택)

1985년 서울대와 고려대생 21명 미국문화원 점거

1986년 서울대, 고려대생 21명, 부산 미문화원 검거 농성

1986년 미국 하원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 스티븐 솔라즈 의원, 한국 민주화 촉구 결의안 채택

1987년 제16회 전국소년체전 개막(∼25일, 부산)

1987년 박종철 고문 축소 조작 드러나-박처원 치안감 등 3명 더 있다

1987년 김일성 중공방문 북경밀담-등, 심천보고 가시오

1987년 출판인 359명, 시국 성명

1989년 89로터리클럽 세계대회 서울서 개막

--89로터리클럽 세계대회가 1989년 5월 21일부터 나흘간 서울에서 열렸다. 로터리세계대회는 1910년부터 1년에 한번씩 각국을 돌며 개최되는 연례행사로 이번 서울대회는 로터리 사상 최대규모였다. 1백20개국으로부터 4만2천여명이 참가했다. 개막식은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가졌으나 대회참가자가 많아 두 번에 나눠 거행했다.

봉사를 모든 산업활동의 기초로 삼고있는 로터리가 창립된 것은 1905년. 미국의 변호사 폴 해리스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선의와 우정`이란 신념아래 친구인 석탄광업자 실베스터 실, 광산기사 가스로아, 양복점 주인 쇼래 등과 함께 모임을 만들어 각 회원의 사무실을 순번으로 돌아가며 회합을 갖기 시작한 것이 로터리의 시원이다. 한국 로터리는 지난 1973년 `로터리 장학재단`을 설립해 무의촌 진료, 장애자 봉사활동 등 이웃에 대한 봉사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업을 펼쳐왔다

1990년 문교부, 91년부터 중.고교에 월반. 유급 제도 도입을 허용키로

1990년 근로소득세 7월부터 경감

1992년 국무회의,「교원 지위향상을 위한 교섭 협의에 관한 규정안」을 의결.

1992년 보병3사단 180GP 남방 800m(3명 사살) 간첩침투

1993년 교통부, 642억원의 총사업비를 들여 세운 김해 국제공항 국내선 여객터미널 개관.

1995년 한.러시아, 방위산업군수협력 양해각서에 가서명

1996년 재단법인 한국문화번역금고 발족

1996년 이수성 국무총리, 루마니아 방문중 바타로이유 총리와 회담

1997년 레흐 바웬사 전폴란드 대통령 한국 방문

1998년 한국은행, 1/4분기 경제 성장률 마이너스 3.8%로 18년 만에 최저치라고 발표

 

2000년 대법원, 월간 『한국논단』이 천주교 인권위원회를 친북 이적세력으로 명예 훼손한 혐의 인정, 배상 판결

2000년 대한극장 철거

--좌석수 1924석이란 엄청난 크기로 대형극장 시대를 주도했던 대한극장이 2000년 5월 21일 ‘징기스칸’ 상영을 마지막으로 멀티플렉스(상영관 6개 이상에 각종 편의-오락시설을 갖춘 극장) 변신을 위해 철거에 들어갔다.

1956년 건립된 대한극장은 1개 극장에서 몇달씩 롱런하며 관객몰이를 해온 단일 개봉관 시대 대형극장의 상징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복합관이 들어서고 시설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대한극장도 쇠락하기 시작했다. 대한극장의 철거로 이젠 국내에서 온전히 70mm 필름 영화를 감상할 기회도 사라지게됐다. 대한극장은 그동안 ‘닥터 지바고’ ‘벤허’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은 대작들을 70mm로 상영해왔다.

2004년 한국계 첼리스트 구세라씨 줄리아드 석사 2년 연속 수석, 윌리엄 슈만상 수상

2004년 ‘부부의 날’ 제정

--부부의 날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부부문화를 만들기 위한 기념일로, 1995년 민간단체인 부부의 날 위원회가 '건강한 부부와 행복한 가정은 밝고 희망찬 사회를 만드는 디딤돌'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관련 행사를 개최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2001년 4월 '부부의 날 국가 기념일 제정에 관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고, 6년이 지난 2007년 5월 2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부부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5월 21일로 정해진 까닭은 가정의 달 5월에 두 사람(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2004년 백혈병 극복한 이호, 산악인 허영호과 유럽 최고봉 ‘엘브루스’ 등정에 성공

2004년 이정렬 서울남부지법 판사 종교·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첫 무죄판결,

ㅡ7월15일 대법원 “양심의 자유보다 병역의 의무가 우선”한다며 유죄 판결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병역기피자 3명에 대해 법원이 2004년 5월 21일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는 이날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 병역소집을 거부한 혐의로 기소된 오모씨에 대해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하는 행위가 오직 양심상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서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보호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경우에는 병역법상 징집에 응하지 않을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같은 종교 신자로 양심적 병역기피를 주장하는 조모씨에 대해서는 “소명이 충분하지 못하다”며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병무청은 이날 ‘양심적 병역기피 무죄 선고에 관한 병무청 입장’이란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안보환경 속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다면 병역의무 이행의 기본질서가 와해돼 국가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며 “종교적 신념에 의한 대체복무를 인정할 경우 종교상 특혜시비가 있을 수 있는 만큼 병역의무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특정 종교인들에 대한 병역상 혜택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2005년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사망

--정세영(77)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2005년 5월 21일 별세했다.

정세영 명예회장은 1957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후, 1967년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1987년 현대그룹 및 현대자동차 회장을 거쳐 99년부터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으로 재직했다. 또 1977년 한·영 경제협력위원장, 1998년부터 한미협회 회장을 맡았다.고인은 현대차 초대 사장 재직시절 우리 기술로 만든 첫 국산차 ‘포니’ 개발을 주도,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포니 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고인은 2000년 폐암 치료를 받은 후 1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서 의사의 진단을 받는 등 건강 관리에 철저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폐렴 증세가 갑자기 악화돼 입원해 치료를 받아 왔다.1999년부터 아들 정몽규 회장과 함께 현대산업개발을 경영해 왔고, 최근 자신의 현대산업개발 지분 전량을 정몽규 회장 등 가족들에게 매각,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했다.유족으로는 부인 박영자(69) 여사와 외아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딸 숙영씨와 유경씨, 큰사위 노경수 서울대 교수, 둘째사위 김종엽씨, 며느리 김나영씨 등이 있다.

2006년 칸 국제영화제 운영위원회 정기이사회, 한국의 스크린쿼터 사수투쟁 지지 공식 발표

2007년 민노당 노회찬 의원 불구속 기소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2007년 5월 21일 ‘안기부 X파일’사건 때 ‘삼성에서 떡값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을 명예훼손 및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노 의원은 2005년 8월 국회 법사위 회의에 앞서 ‘안기부 X파일’을 근거로 “1997년 검찰 고위 간부들이 삼성에서 떡값을 받았다”며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A변호사 등 전·현직 검찰간부 6~7명의 실명을 인쇄물과 이메일로 기자들에게 배포하고,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게시한 혐의다.

국회의원이 의정 활동 차원에서 배포한 자료 때문에 명예훼손으로 기소 당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2009년 오은선, 히말라야 고봉 11개째 등정

--5월 21일 국내 대표적 여성 산악인 오은선(43.블랙야크)씨가 히말라야 고봉 14개 중 11개를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오 씨는 이날 오후 1시30분(현지시간) 무산소로 히말라야 8천m급 고봉 14좌 중 7번째로 높은 해발 8천167m 높이의 다울라기리 정상을 밟았다. 오 씨는 7천300m 높이의 제3캠프에서 새벽 1시30분에 출발해 12시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오 대장이 11개봉 등정에 성공함에 따라 세계 여성 산악인들의 히말라야 14좌 완등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현재 호주의 겔린데 칼텐브루너(39)와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36)이 12개 봉을 등정해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 오 대장이 비록 경쟁자들에 비해 1개봉이 뒤처진 상태이지만 등반 시기 등을 고려하면 오 대장이 유리한 고지에 올라와 있다.

히말라야 14좌는 1986년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처음으로 등정한 뒤 국내에선 박영석·엄홍길·한왕용씨가 차례로 완등했지만 여성 산악인은 아직 어느 누구도 정복하지 못했다.

200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첫 존엄사 인정 판결,

ㅡ식물인간상태의 김모(77세)할머니 가족의 세브란스병원 상대 ‘무의미한 연명장치의 제거 등 청구소송’에서 인공호흡기 떼라고 판결한 원심을 다수의견으로 확정, 2004년 보라매병원사건에서 경제적 이유 내세운 가족의 요구대로 치료중단한 의료진에 살인방조죄 적용했던 것과 다른 판결

-- 존엄사(death with dignity)=죽음에 직면한 환자가 품위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생명유지조치 중지하는 것

2015년 삼성라이온즈의 구자욱이 두산베어스를 상대로 홈런을 쏘아올리며 역대 팀통산 첫 번째 4000홈런을 기록

2015년 오늘 인천 송도에서 열린 세계교육포럼에서 교육평등(2030까지 교육투자 GDP 4-6%까지 늘림) ‘인천선언’ 발표

2015년 박근혜 대통령 황교안 법무장관을 총리 후보로 지명

2015년 서울대에 450억원 기부…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명예이사장 별세

--정석규(86·鄭晳圭) 신양문화재단 명예이사장은 1952년 서울 공대를 졸업한 뒤 1967년 태성고무화학을 설립했다. 1989년에는 신양문화재단을 만들어 활발한 기부 활동과 장학사업을 펼쳐왔다.

모교 서울대에 1987년 1000만원 기부를 시작으로 신양학술정보관 3개 동을 짓는 등 총 450억원을 기부했다. 서울대 학생들은 그를 '신양 할아버지'라고 불러왔다.

2005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상', 2008년 '한국공학한림원 대상'을 받았다

2017년 7인조그룹 방탄소년단(BTS) ‘2017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상 수상, 빌보드 연말결산 올해의 아티스트 10위 오름

2017년 대한민국 태생 미국 입양인 출신 화제인물 필립 클레이 작고.

2021년 성추행 피해 공군 여부사관 자살

2021년 文대통령, 알링턴 국립묘지 헌화...한미동맹 강조

2021년 내일부터 75세 이상자 화이자 1차 접종 재개

2022년 한미정상 반도체 동맹 선언, 북핵대응.경제안보 놓고 90분간 대좌

2022년 한덕수 국무총리 임명

 

 

 

BC334년 알렉산더 대왕 페르시아군대 격파

252년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초대 황제 손권 작고

954년 중국 후당의 정치가 풍도 작고.

1086년 송나라의 개혁 정치가 왕안석 작고.

1471년 독일의 화가, 판화가, 조각가 알브레히트 뒤러 출생

1506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사망

1527년 스페인의 펠리페 2세 출생

1688년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 출생

1786년 스웨덴의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 작고.

1799년 영국의 화석 수집상이자 고생물학자 메리 애닝 출생

1816년 라이베리아의 초대 총리이자 2대 대통령 스티븐 벤슨 출생

1844년 프랑스 화가 루소 출생

1851년 프랑스의 정치가 부르주아 출생, 국제연맹 결성 추진으로 1920년 노벨 평화상 수상

1860년 네덜란드의 생리학자 에인트호벤 출생, 심장의 전기적 성질을 발견한 공로로 1924년 노벨 의학상 수상

1871년 파리코뮌 `피의 일주일` 시작

--5월21일, 이른바 `피의 일주일`로 불리는 대살육전이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됐다. 프로이센의 꼭두각시 정부인 국민회의가 파리코뮌을 진압하기 위해 군을 투입한 것이다. 1년 전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참패한 프랑스는 포로로 잡힌 나폴레옹 3세를 대신해 국민회의가 정권을 장악했지만 파리 만은 그들의 통치권 밖에 있었다.

파리는 자치구를 뜻하는 코뮌을 발족시켜 프로이센에 굴복한 정부를 향해 분노를 표출시키고 있었다. 패배에 따른 좌절감도 분노를 증폭시켰다. 노동자ㆍ학자ㆍ저널리스트 등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코뮌의원은 친(親)프로이센ㆍ부르주아 정부에 철저 항전을 선언했다. 혁신적인 정책들을 속속 발표하면서 한편에서는 파리 대주교를 살해하는 등 보수세력에 대한 과격한 투쟁도 서슴지 않아 곳곳에 유혈이 낭자했다. 적기(赤旗)가 처음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관망하던 국민회의 군대가 마침내 파리에 투입됐다. 피의 보복이 시작된 것이다. 시민들은 튈르리궁ㆍ오르세궁 등을 불태우며 죽음으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3만여명이 학살돼 세느강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일주일 만에 진압된 파리코뮌을 놓고 좌파와 우파는 해석을 달리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라며 추켜세운 반면 우파들은 `난동의 온상`이라며 비난했다. 이후 파리는

1900년 북경주재 외교단, 청정부에게 의화단을 엄격히 진압하여 주도록 요구

1914년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아자르 출생

1921년 소련의 과학자, 사회운동가 안드레이 사하로프 출생

1958년 미국의 수학자커티스 맥멀린 출생

1977년까지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시장을 두지 않았다.

1904년 FIFA 결성(파리)

1904년 프랑스 정교분리문제로 대교황청관계 악화 바티칸대사 소환

1906년 알프스산맥을 뚫는 싱플로터널 개통식(이탈리아.스위스 국왕 참석)

1907년 중국혁명동맹회 광동성 황강봉기 실패

1934년 이라크의 키르쿠크 유전에서 팔레스타인 하이파항까지의 석유파이프라인 완성

1935년 네덜란드식물학자 휴고 드브리스 세상떠남((87세), 식물잡종연구로 멘델의 법칙 재발견, 달맞이꽃의 실험 관찰로 유명한 ‘돌연변이설’ 발표

1938년 30명이 살해된 쓰야마 사건이 일어남

1940년 독일군, 볼로뉴를 점령하고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분리

1943년 코민테른 해체

1947년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개최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1947년 5월 21일 열렸지만 소련의 무리한 요구가 회의를 또 결렬시켰다. 소련이 공위 참가를 위해 등록한 남한측 425개 단체를 118개로 줄일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소련은 특히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반대하는 정당과 회원 1만명 이하의 군소단체는 협의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반탁운동을 `의사표현의 자유`로 간주하며 소련의 제의를 거부했다.

미소공위가 계속해서 공전상태에 빠지자 미국은 1.한반도 문제를 미영소중 4국회의에서 논의할 것 2.남북한에 각각 입법기관을 설치할 것 3.남북 입법기관 대표들이 논의해 통일정부를 수립할 것 등을 제안했지만 소련은 남북분열을 조장하는 제안이라며 반대해 결국 2차 공위도 10월 18일 5개월 만에 결렬됐다.

1953년 독일의 수학자 에른스트 체르멜로 작고

1956년 미국 수폭투하 실험 성공. 비키니섬서

1957년 소모사 니카라과 대통령 피살

1957년 인도서 아시아 최대의 우라늄광 발견

1960년 남 칠레에 진도8.3 지진 사망5천여명

1960년 괌도에서 2차대전 중 살아남은 일본인 발견

1961년 미국 앨러배마주 인종차별반대 폭동

1963년 국제 공산당 해산

1972년 예수 자처한 호주인 라즐로 토스, 바티칸시티 성베드로 성당의 미켈란젤로 피에타 상 망치로 훼손시킴

1974년 산야 태국 내각 총사퇴

1981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 취임

1984년 앰네스티 인터내셔날 엘살바도르에서 5년간 4만명이 학살되었다고 보고

1988년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치가 디노 그란디 작고

1991년 17년 철권통치의 맹기투스 에티오피아 대통령 국외로 탈출

1991년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 내전중인 스리랑카에 평화유지군파견 결정한 라지브 간디 인도총리 선거유세중 폭탄으로 암살

--라지브 간디 전 인도총리가 1991년 5월 21일 남부의 타밀 나두주에서 지방유세 도중 자살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이에 따라 지난 1947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후 40여 년간 인도를 통치해온 네루 일가는 가족 중 3명을 비명횡사로 잃은 비운의 가문이 됐다. 라지브 간디는 인도 초대 총리인 네루의 손자이자 인디라 간디의 아들이었다. 라지브 간디의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 전 총리는 시크교도인 자신의 경호원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으며, 동생 산자이 간디 역시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졌다.

네루 전 총리의 외동딸이었던 인디라 간디는 당초 두아들 중 권력지향적 성향이 강했던 차남 산자이 간디를 후계자로 지목했었다. 그러나 산자이가 뜻밖의 죽음을 당하자 평소 정치에 무관심했던 장남 라지브 간디가 정계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인도는 라지브 간디의 암살사건으로 정치적 혼란상태에 빠져들었고, 경제적으로도 파산직전까지 몰려 국정의 방향타를 잃고 혼란을 거듭했다.

1993년 인도네시아 법원, 동티모르 독립투사이자 현재 동티모르 대통령인 사나나 구스마오에 종신형 선고. (그 후 20년으로 감형)

1996년 탄자니아 여객선, 빅토리아호에서 전복 5백여명 사망

1998년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32년만에 사임, 후임에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 대통령 선출.

ㅡ야당과 학생의 민주화와 개혁요구에 밀려 하비비 부통령에게 권력 넘기고 물러남, 그 뒤 인도네시아는 하비비 퇴진과 수하르토 재판요구 시위로 시끄러웠고 경제위기로 식량난 겪음

1999년 일본참의원 지문날인제 폐지하는 내용의 외국인등록법개정안 가결

200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첼시를 승부차기 끝에 6:5로 꺾고 세 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

2010년 일본, 세계 최초 금성 탐사 위성 발사

2010년 프랑스 파리 현대미술관에서 역대최고액인 5억유로 상당의 미술품 도난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 모여있는 프랑스 파리의 현대 미술관에 걸려있던 피카소와 마티스의 명작 다섯 점이하룻 밤 사이 사라졌다 도난당한 미술품 가치를 시가로 따지면 5억 유로, 우리돈으로 7천5백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번에 도난당한 작품은 피카소의 '비둘기와 완두콩’을 비롯해, 마티스의 '전원’ 등 5점입니다. 그림 도난사건 가운데 역대 최고가인데 범인은 복면을 쓰고 창문을 통해 들어와 그림을 훔진 뒤 액자는 버리고 달아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아이슬란드 남동부 그림스보튼 화산폭발, 화산재 유럽대륙 뒤덮음, 아이슬란드 영공 폐쇄

2014년 브랜드전문 시장조사업체 밀워드 브라운 리서치 2014년도 1위브랜드 구글이라 발표, 브랜드가치 1588억4300만$로 2013년 1위브랜드 애플(1478억8천만$) 제침, 100대 브랜드 유일한 한국기업 삼성전자 브랜드가치 259억$로 29위

2020년 미국의 경제학자 올리버 E. 윌리엄슨 작고

2021년 이스라엘-하마스, 열흘만에 조건 없이 휴전...이집트.유엔 중재

2021년 푸틴 “러시아 물려는 자는 이를 모두 뽑아 물수 업게 만들 것”

2022년 미국의 신학자 로즈메리 래드퍼드 류터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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