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5월 24일
쭈그러진 희망을 접으며 난 비상한다.
멀리 사라질 듯 아니, 지금도 내 앞에 있는 군농국민학교를 생각하면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바라다 보이는 남해바다가 아름다웠습니다. 꽃 한 송이 꺾어들고 가는 길목, 나의 무성한 쓸쓸함들이 낫질에 잘려 떨어질 때, 온 산 진달래꽃 붉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그 때 당신은 나의 꽃밭에 새롭게 피고 있었습니다. 아득한 수평선이 남해바다에 와 닿고, 남해바다 수평선이 백두산 상상봉에 와 닿는 군농국민학교 화단에 서면 금방이라도 우리는 하나가 될 것 같았습니다.
눈부신 욕망 흩어진다,
멀리 피는 안개꽃.
- 이재창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 年代記的 몽타주 · 28」 전문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여성의 날 ; 1981년 유럽11개국 여성49명이 모여 정함, 1983년 오늘 약 백만명의 여성이 다양한 형태로 평화촉구행동, 2015년 오늘 15개나라 여성평화운동가30명 참여한 ‘위민 크로스 DMZ’(비무장지대 통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옴) “민간과 민간의 외교를 통해 남북간 새로운 소통의 길을 만들었다.”-리마 보위(노벨평화상 수상자)
*피친차 전투 기념일: 에콰도르
*연방 정부의 날: 벨리즈
*버뮤다 데이: 버뮤다
*독립기념일: 에리트레아
*애국자의 날: 퀘벡주
*올더스게이트 데이: 감리교
1101년 [음]숙종(肅宗) 6년, 송에서 「신의보구방(神醫補救方)」을 보내옴
--송(宋)에서 임의(任懿)와 백가신(白可臣) 등이 돌아왔는데, 송 황제가 『신의보구방(神醫補救方)』을 하사하였다. 왕이 선정전(宣政殿)에서 〈송 황제의〉 조서(詔書)를 받았다.
1363년 [음]공민왕(恭愍王) 12년, 원에서 덕흥군을 고려국왕으로 삼았다는 보고를 받고 왕이 전쟁을 준비함
--이득춘(李得春)이 원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원〉 황제가 덕흥군(德興君)을 국왕으로 삼고 기삼보노(奇三寶奴)를 원자(元子)로 삼아, 요양(遼陽)의 군대를 출병시켜 그들을 호송하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득춘이 일찍이 강지연(姜之衍)을 따라 원에 갔을 때 덕흥군이 자기 마음대로 호군(護軍)에 임명하였는데, 왕이 〈이득춘을〉 불러 보고 무슨 벼슬이냐고 물어보자 이득춘이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왕이 즉시 그를 대호군(大護軍)에 임명하면서 말하기를, “네가 만약 한 마음만 가지고 나를 돕는다면 재상이 되는 것도 어렵지 않으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빠른 시간 내에 화를 입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신하들이 모여서 의논하여 말하기를,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정성을 다해 사대(事大)를 하였으며 강력한 홍건적을 두 차례나 섬멸하였으므로 그 공적이 뚜렷한데, 적신(賊臣) 최유(崔濡)가 〈원〉 조정을 속여 불화를 조성하고 왕을 교체하려고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로 하여금 군사와 민간인을 구분하여 〈민간인은〉 군량을 운반하고 〈군사는〉 출병(出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홍순(洪淳)을 파견하여 연유를 갖추어 써 〈원〉 중서성(中書省)에 올리도록 하였으니, 잠시 동안 군대를 출동시켜 수비하면서 명확한 지시가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십시오.”라고 하였다. 왕은 감히 어쩌지 못하고, 이에 경천흥(慶千興)을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삼아 안주(安州)에 진영을 설치하게 하고, 안우경(安遇慶)을 도지휘사(都指揮使)로 삼아 의주(義州)에 진영을 설치하게 하며, 이구수(李龜壽)를 도순찰사(都巡察使)로 삼아 인주(麟州)에 진영을 설치하게 하고, 이순(李珣)을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삼아 이성(泥城)에 진영을 설치하게 하고, 홍선(洪瑄)을 도병마사(都兵馬使)로 삼아 정주(靜州)에 진영을 설치하게 하며, 우제(禹磾)·박춘(朴椿)을 도병마사(都兵馬使)로 삼아 강계(江界)와 독로강(禿魯江) 등지에 나누어 진영을 설치하게 하였으며, 전공판서(典工判書) 지용수(池龍壽)를 순무사(巡撫使)로 삼아 용주(龍州)에 진영을 설치하게 함으로써 서북 지역을 수비하게 하였는데, 모두 도원수(都元帥)의 지휘를 받게 하였다. 〈또한〉 이인임(李仁任)을 평양윤(平壤尹)으로 삼아 군량을 조달하게 하였으며, 도안무사(都安撫使) 정찬(丁贊)과 한휘(韓暉)는 유병(遊兵)을 거느리고 여러 군영들 사이를 오고 가면서 군사 상황과 움직임을 살피게 하였고, 한방신(韓方信)을 동북면도지휘사(東北面都指揮使)로 삼고 김귀(金貴)를 도병마사(都兵馬使)로 삼아 화주(和州)에 진영을 설치하게 함으로써 동북 지역을 수비하게 하였다.
1408년 [음]태종 8년,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승하함
1430년 [음]세종 12년, 중국 방식대로 병선(兵船)을 견고하게 제작하기로 함
1434년 [음]세종 16년, 각 도 수령과 감사에게 산천·산맥·도로 등을 그려 바치게 함
1460년 [음]세조 6년, 신숙주(申叔舟)가 좌의정이 됨
--강맹경(姜孟卿)을 영의정(領議政)으로, 신숙주(申叔舟)를 좌의정(左議政)으로, 권남(權擥)을 우의정(右議政)으로, 김하(金何)·이변(李邊)을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로, 이승손(李承孫)을 좌참찬(左參贊)으로, 조석문(曹錫文)을 호조 판서(戶曹判書)로, 홍윤성(洪允成)을 예조 판서(禮曹判書)로, 윤사윤(尹士昀)을 공조 판서(工曹判書)로, 이극배(李克培)를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김순(金淳)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박인(朴璘)을 사간(司諫)으로, 강미수(姜眉壽)·김겸광(金謙光)을 장령(掌令)으로, 강윤범(姜允範)을 지사간원 사(知司諫院事)로 삼았다.
1463년 [음]전라도 강진에서 회회청(回回靑, 도자기에 입히는 푸른 물감)을 채취함
1470년 [음]성종 1년, 명나라 사신에게 산수(山水), 화초(花草)가 그려진 족자(簇子)를 줌
1503년 [음]연산 9년, 좌참찬 윤효손(尹孝孫) 죽음
1548년 [음]명종 3년, 경기도에서 전염병으로 421명이 죽음
1549년 [음]명종 4년, 윤원형(尹元衡)이 우참찬이 됨
1551년 [음]명종 6년, 《대명회전(大明會典)》 중 일부 내용을 삭제한 후 발간하게 함
1561년 [음]명종 16년, 순회 세자빈에게 병이 있으므로 다른 사람을 간택하게 함
1576년 [음]선조 9년, 황해도 연안에서 다리가 셋 달린 송아지가 태어남
1581년 [음]선조 14년, 이이가 공안(貢案)의 개정과 주현(州縣)의 병합을 건의함
1598년 [음]선조 31년, 제독 이여송(李如松)의 화상(畫像)을 평양에 봉안하고 제사 지냄
1605년 [음]선조 38년, 대마 도주가 조선과 일본의 강화(講和)를 주선함
1680년 [음]숙종 6년, 송시열(宋時烈)이 석방됨
1727년 [음]영조 3년, 신사철(申思喆)이 수어사(守禦使)가 됨
1732년 [윤]영조 8년, 제주에 황모(黃蟊)가 들고 전염병이 심함
1776년 [음]정조 즉위년, 송시열(宋時烈)을 효종의 묘정에 배향하게 함
1783년 [음]정조 7년, 고 봉조하 남유용(南有容)의 문집 《뇌연집(雷淵集)》이 간행됨
1839년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권득인.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김아기.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김업이.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남명혁.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박아기.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박희순 루치아 작고
1856년 [음]철종 7년, 각 도의 도형(徒刑)·유형(流刑) 죄인 1,052인을 풀어 줌
1864년 [음]화재로 불탄 종각 재건, 파루 복설
1899년 인천·원산·목포·진남포 등 해관에 기상 관측기 설치, 일본과 기상 통보 교환
1903년 북한의 극작가 송영 작고
1917년 비전향장기수 류한욱 출생
1921년 우리나라 최초의 시 잡지 〈장미촌〉 창간
1923년 김규식, 만주에 고려혁명군 조직
1923년 진주에서 반형평 운동 일어남 : 쇠고기 불매 동맹을 맺고 형평사 간부 구타.
1931년 함경남도 웅기항 준공
1940년 전국 인구 22,080,647명
1946년 첫 외국 무역선 35척, 중국에서 인천에 입항
1947년 여운형, 근로 인민당 결성.
1947년 북한, 남한 당국에 전력 공급비 5백만 달러 청구
1948년 비상시 전력 위원회, 60W 이상 전구 사용 금지령 공포
1949년 남한 17개 형무소 수감자수는 2만2천여명으로 수용능력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짐
1950년 서울시 선거위원회, 입후보자의 만세 삼창을 따라한 선거위원 해임
1952년 한ㆍ미경제조정협정(마이어협정) 조인
1953년 한글학회 등에서 한글간소화 안에 대한 반대성명 냄.
1954년 휘발유 부족으로 버스 운행 중단
1958년 역사학회·진단학회, 공동으로 제1회 전국 역사학대회 개최
1958년 최초 미스유니버스선발대회-한국일보 주최, 59년도 미스 유니버스 선발 대회 예선 합격자 15명 배출
1958년 대한민국의 전 프로야구선수 최동원 출생
1963년 문교부 중-고교 입시제도 개혁
1971년 김대중, 교통사고로 부상 입원, 사고에 의혹 제기
1971년 전 서울시장 김현옥, 와우아파트 붕괴사건 관련 무죄 확정
1973년 중화학공장 건설계획 확정, 철강 화학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 등의 업종
1973년 고대 노동문제연구소 김낙중 사건
1973년 고려대 소장 『청량답순종심용법문(淸凉答順宗心要法門)』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금속활자본으로 밝혀짐, 당나라 순종이 당시의 진국국사 청량(淸凉)과 유심(唯心)에 관하여 문답한 내용을 실은 책으로 고려 충렬왕 23~24년(1297~1298) 간행 추정, 마지막 쪽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86자의 발문(跋文) 따로 붙어있음
1974년 팔당댐 수력발전소(80,000kw) 준공
--팔당댐은 경기도 하남시 배알미동과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사이의 한강 본류에 있는 다목적 댐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류점에서 하류 쪽으로 7㎞ 지점에 위치한다. 1966년 6월 팔당수력발전소 건설에 착수했으며, 7년 6개월에 걸쳐 가물막이공사와 기초굴착공사, 댐 축조공사 등 4단계로 나누어 공사를 진행하여 1973년 준공했다.
댐은 높이 29m, 길이 510m, 총저수량 2억 4,400만t의 중력식 콘크리트 잠언제로, 일류문비(너비 20m, 높이 16.75m)는 15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전소 내에는 저낙차 지점의 수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밸브형 수평축 카프란 수차 4대와 2만 2,000kW 발전기 4대를 설치했다.
이 댐의 완공으로 연간 2억 5,600kW의 전력을 생산하여 경인지구의 첨두수요를 담당할 수 있게 되었으며, 수도권 광역 상수도의 취수원으로서 서울 및 수도권지역에 하루 260만t의 물을 공급하여 상수도 용수 부족을 해결했다. 또한 1초당 124t의 물을 발전하여 방류함으로써 한강의 범람 및 오염 방지에도 기여하고 있다.
1975년 상공부 금값 완전자유화 발표
1977년 하비브ㆍ브라운 미국 대통령특사, 박정희 대통령과 회담코 철군문제 협의
1980년 광주계엄군 항공기 이용, 선무방송. 계엄군, 곳곳에서 오인사격으로 군인들 다수 사망
1980년 서울구치소에서 10.26 관련 김재규 교수형 집행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시해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1980년 5월 24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박정희와 육사2기 동기였으나 연장자인 박정희를 `상급자`로 모셨다. 건설부장관을 거쳐 1976년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돼 대통령 지근에서 보좌하다 직속부하인 박선호, 박흥주 등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했다.
암살동기를 둘러싸고 민주화를 위한 거사로 그를 찬양하는 사람도 있으나 차지철 경호실장과의 권력 다툼에서 비롯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결국 김재규는 내란목적의 살인혐의로 기소돼 군사재판에서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수괴미수죄로 사형선고를 받아 이날 오전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됐다.
1982년 한국-호주 수뇌회담 서울서 개최
1982년 참치잡이 원양어선 태양 112호, 태풍으로 태평양에서 침몰. 선원 18명 모두 실종
1983년 서울 개포동 현대아파트서 아파트채권입찰제 첫 실시
1984년 수산청, 경남 자란만 일대를 청정해역으로 추가 지정, 거제·한산만의 지정기간 연장
1987년 박찬영 선수, WBA 밴텀급 타이틀 획득
--1980년 11월 18일 프로 데뷔. 1987년 5월 24일 WBA 밴텀급 챔피언 등극하였으나. 1차 방어전에 실패하였으며 1992년 3월 31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였다
프로 통산전적 33승(16KO)5패2무.
1988년 김상협 한적 총재, 남북직통전화를 통해 남북학생회담 개최를 반대한다고 북한측에 밝혀
1988년 87년도 미스코리아 진 장윤정,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에서 2위
1988년 종합주가지수, 사상 처음으로 700선 돌파
1989년 국교생 살해범 중학생-논현동 학동국민학교
1989년 폴란드 서울무역사무소 개설. 초대소장에 슬라보이르 오콘 취임
1989년 경찰, 서울 논현동 학동국교 화장실 추행 살해범 中3 서모군을 붙잡아 살인과 강간 혐의로 구속
1989년 국보급 고려시대 金書대장경 발견. 녹인 금물로 쓴 것, 1319년 제작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일본 공식방문(∼26일)
1990년 김일성 남북단일의석 유엔공동가입방안 전민족적 통일전선 형성 등 조국통일5대방침 제시
1990년 김정일 신설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임명됨
1990년 국세청, 국내 30대재벌이 위장취득한 부동산은 89년말 현재 1039만5000평에 달한다고 공개
1990년 서울형사지법, 前 전대협의장 임종철 피고인(23)에게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
1990년 訪日중인 노태우 대통령은 동경의 영빈관에서 도이(土井) 일본 사회당 위원장과 회담
1990년 노대통령, 일본 공식방문. 일왕, 「불행한 과거에 통석(痛惜)의 念」사과
1991년 91년 노재봉 내각 퇴진 - 강경대사태로 정원식 총리임명
1993년 태평양경제협의회 서울총회-미국등 24개국 정관계인사 참석 김영삼 대통령,`新외교'를 선언
1993년 내무부, 청주 우암아파트 붕괴사고 이후 전국 10년 이상 복합건물 안전점검 실시
1995년 조각가 문신씨 별세
--탄탄한 조형 언어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입체예술의 독창적 경지를 이룩했던 세계 조각계의 큰별이 졌다. 1995년 5월 24일 별세한 조각가 문신씨는 한국전통의 미를 추상조각에 담는 독창적 예술로 국제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이다.
자크 도판느, 레스타니등 프랑스의 저명한 평론가들이 문씨를 세계화단의 지평에서 평가했는데 그런 평가는 서양미술의 모방을 지양,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한 그의 독창성과 치열한 예술혼의 결실이었다. 그의 창작열은 1990년대 초 위암 선고를 받고도 타계 전까지 개인전을 위해 빈틈없는 작업을 해 온데서도 알 수 있다.
일본 큐슈의 탄광지대에서 태어나 도쿄 일본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1961년 파리에 간 후 생계를 위해 고성을 뜯어 고치는 석공 일을 하면서 조각의 길로 들어섰다. 우주나 자연을 대칭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미학 이념을 바탕으로 한 그의 조각들은 우리의 전통 도자기를 연상케 하는 유연한 선, 절제와 균형의 아름다움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1년에는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유고와 헝가리 등 동구권 순회 전시를 개최해 `미래가 기억해야할 위대한 예술가`란 격찬을 받기도 했다. 위암을 알아오던 중에도 사재를 털어 평생의 꿈이던 `문신미술관`을 지어 고향인 마산에 바쳤다
1996년 세계보건기구, 한국이 세계 5위 담배 소비국이라고 발표
1997년 재일문학 작가 김달수 별세
--일본 속의 한국문화 발굴을 통해 왜곡된 한-일 역사를 바로잡는데 평생을 바친 재일교포 작가 김달수(77)씨가 1997년 5월 24일 간부전증으로 도쿄 나가노구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김달수 옹은 전후 ‘재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요, 역사연구가였다. 그는 책상물림식 문학과 역사를 거부하고 일본 내에 흩어진 한국 문화의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집대성한 선구적 작가였다.
경상남도 창원이 고향인 그는 10살 때 어머니를 찾아 일본으로 무작정 도항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중도 포기해야 했던 그는 초등학교 3년과 대학 3년이 학력의 전부였다. 초등학교 중퇴 후 공사장 막노동, 폐품수집 등을 하면서도 공부에 대한 미련 때문에 뒤늦게 일본대학 예술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가나가와 신문과 경성신문 기자를 거쳐 해방 후 ‘민주조선’이란 잡지를 창간했고 여기에 식민지하 한국 민족의 고뇌와 저항을 그린 작품 ‘후예의 거리’를 연재(1949년), 작가로서 정식 등단했다.
이어 역시 재일조선인 차별문제를 주제로 한 ‘현해탄’ ‘박씨들의 재판’ ‘태백산맥’ ‘밀항자’ 등의 작품을 잇따라 내놓아 작가로서 평가를 굳히는 동시에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1970년대 들어 나라, 교토, 오사카 등 일본 내에 흩어진 한국문화 유적지를 직접 찾아 고증하면서 12권 짜리 ‘일본 속의 조선문화’를 집필했다
1999년 오늘 한겨레신문 고급옷로비 의혹사건 첫 보도,
ㅡ김대중 대통령 대폭 개각(17개 부처중 11개 부처 장관 바꿈), 옷로비의혹은 검찰수사와 국회청문회에서 의혹 해소되지않아 헌정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제 도입, 여성4인의 거짓말게임은 법무부장관과 검찰 청와대 법무비서관 사직동팀 등 고위층남성의 거짓말게임으로 확대, 결국 대통령에게만 보고되는 청와대 사직동팀 내사보고서 유출과 사건수사의 축소․왜곡문제로 이어지면서 김태정 법무장관과 박주선 청와대 법무비서관 구속
1999년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특별시를 방문
2002년 미국 축구대표팀 입국, 공항·호텔 주변에 무장특공대원과 장갑차 등 병력 1천여 명 배치
2004년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이후 일반인의 휴대전화 사용금지
2004년 일제시대 조선인들, 중국 지린성 지안 고구려 장군총 앞에서 촬영한 사진 첫 공개
--일제시대 조선 사람들이 중국 지린성 지안 고구려 장군총 앞에서 찍은 사진이 2004년 5월 24일 처음 공개됐다. 서길수 고구려연구회장이 최근 재중동포 허창흘씨로부터 입수한 이 사진은 1910년대에 조선사람들이 소풍나와서 찍은 것으로 추정되며,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남녀 학생들과 흰 머릿수건을 쓴 여인들, 중절모에 두루마기로 치장한 남성들 모습이 친근하다.
서 회장은 “일제시대 장군총 사진으로 지금까지 공개된 것은 일본 학자들이 현지 답사하면서 촬영한 것이 전부로, 이 사진은 당시 장군총의 상황뿐 아니라 조선인들이 장군총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사진 촬영 당시 지안에서는 장군총을 ‘황제무덤’이라 불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대한민국 국회방송 개국
2004년 조흥은행 마지막 주총 개최
--“미국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 23번이 영구 결번된 것처럼 조흥은행의 상장번호(코드번호) ‘000010’도 영구 결번돼 증권거래소에 보관될 것입니다. ” 최동수 조흥은행장은 2004년 5월 24일 오전 임시 주주총회장에서 비감(非感)한 표정으로 연신 눈시울을 훔쳤다. 이날 주총은 15분 만에 끝났다. 참석한 주주도 40여명에 불과했다.
이날 주총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조흥은행이 107년간 동고동락했던 소액투자자들과 이별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 주총은 조흥은행 주주들의 남은 주식을 모회사인 신한금융지주회사(2003년 9월 조흥은행을 인수) 주식으로 교환하는 계약을 승인했다. 앞으로 조흥은행 주총은 신한금융지주라는 단일 주주만이 참여하게 됐다.
이날 주총은 조흥은행 주식의 상장폐지도 결정했다. 조흥은행 주식이 증권거래소에 첫 상장된 것은 1956년이었다. 그러나 신한금융지주가 조흥 주식 100%를 소유하게 되면서 주식 분산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7월부터 상장이 폐지되게 됐다.
2005년 병역기피 목적의 국적포기 방지를 위한 〈국적법〉 발효, 국적포기 신고자 1,800여명
2006년 드라마작가 조소혜씨 별세
--광주여상 졸업 후 은행원을 거쳐 1984년 ‘드라마 게임-선택’으로 데뷔한 그는 역대 드라마 최고 회당 시청률(65.8%)을 기록한 ‘첫사랑’을 비롯, ‘젊은이의 양지’, ‘억새바람’등의 인기 드라마를 썼다.
유족과 MBC는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벽제승화원에서 화장을 한 후, 의정부 MBC 문화동산 나무 아래 유골을 묻는 수목장(樹木葬)을 치를 예정이다.
2006년 제네바 성당서 고(故) 이종욱 WHO 사무총장 장례식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장례식이 24일 스위스 제네바의 중앙역 인근 노트르담 성당에서 WHO 주관으로 거행됐다.
장례식에는 아시아를 순방 중인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대신해 마크 말록 브라운 유엔사무차장이 참석한 것을 비롯, WHO를 포함한 유엔 산하 국제기구들의 수장들과 직원, 각국 보건장관과 외교사절, 지인들이 대거 운집했다.
장례식은 실바노 토마시 주교가 집전하는 가톨릭 미사 형식으로 1시간 30분가량 거행됐다. 미사 후반부에는 아들 충호(28)씨가 조사를 통해 고인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100%의 노력을 다했다”며 부친의 생전 모습을 소개했다. 이어 WHO 대표, 한국의 조문 사절인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놓여 있는 제단에 올라 고인의 발자취를 기리는 조사를 낭독했고 최혁 주 제네바 대표부 대사 내외와 리철 북한 대표부 대사(주 스위스 대사 겸임) 일행이 이를 경청했다.
유골은 28일 서울에 도착했다. 29일 서울에서 영결식을 가진 뒤 대전 국립묘지 묘역에 안장됐다.
2007년 한국과 미국 한미FTA협정문 동시공개
2007년 미국, MD(미사일방어) 요격 실험 북한 '대포동 2호' 대비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결정에 따라 2008년 5월 24일부터 대규모의 거리시위가 진행되었다. 광우병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수정안 장관고시가 발효되면서 청계천 광장과 시청 광장을 중심으로 촛불 문화제의 형식으로 진행된 시위는 과격 시위로 번져나가는 등 정부와 국민간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이후 두달여간 계속된 시위는 촛불시위 진행 관련자 및 참가자들이 체포되고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민심수습에 나서면서 진정되었다.
2009년 박찬욱 감독 '박쥐',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가 2009년 5월 24일(현지시각) 막을 내린 제6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2004년 '올드보이'로 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던 박 감독은 두 번째로 칸의 초청을 받아 두 차례 모두 본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그가 차례로 받은 심사위원대상과 심사위원상은 1등상인 황금종려상에 이어 각각 2등과 3등상에 해당한다. 세계 3대 영화제만 따지면 '올드보이'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베를린 영화제 알프레드바우어상)에 이은 세 번째 본상 수상이다.
이날 칸 뤼미에르 극장서 열린 시상식에서 박 감독은 "진정한 예술가가 되려면 먼 것 같다"고 운을 뗀 뒤 "창작의 즐거움이 영화를 만드는 동력인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칸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8차례 진출했던 한국영화가 본상을 받기는 4번째. 2002년 '취화선'(임권택)이 감독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올드보이'(박찬욱)가 심사위원대상, 2007년 '밀양'(이창동)이 여우주연상(전도연)을 받았다. 심사위원상은 '박쥐'가 처음이다.
'박쥐'는 신부 상현(송강호)이 우연히 흡혈귀가 되어 친구의 아내 태주(김옥빈)와 치명적인 사랑에 빠져들어 친구를 죽인다는 파격적인 내용의 뱀파이어 영화다.
2009년 북한 풍계리에서 2차핵실험 단거리미사일3발 발사
2010년 김광일 전 대통령 비서실장 별세
--1980년대 부산지역 재야운동의 한 축을 이뤘던 김광일 전 국회의원(13대)이 2010년 5월 2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유신시절 반공법 위반 학생에게 무죄를 선고해 파란을 일으킨 뒤 법관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자 곧바로 옷을 벗을 정도로 강골(强骨)이다. 1974년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 뒤, 1980년대까지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등 굵직한 시국관련 변호를 맡는 등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정치는 1988년 13대 총선 때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이끌던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에서 당선되면서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당시 YS에게 천거해 정치적 대부 역할을 했던 사람이 김 전 의원이었다.
YS와의 인연은 1990년 3당 합당 때 민자당 합류를 거부한 뒤 14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이끈 국민당에 입당하면서 끊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곧 정 전 회장과 결별하면서 정계를 은퇴한 그를 YS가 1994년 국민고충처리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재신임했고, 이듬해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 대국민연설 통해 개성공단 뺀 남북교류협력 전면중단, 1988년 노태우정부의 7.7선언이후 22년간 지속된 남북협력관계 끊김
2010년 이명박대통령 5.24조치 실시.
--3월 26일 우리 해군함정 천안함이 백령도근처 해안에서 침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정부는이 천안함이 북한해군이 쏜 어뢰에 맞아 침몰하였다고 발표한다.
2010년 5월 24일에는 524조치를 취하게 된다.
524조치는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이며 북한선박의 남측 해운 운항 전면 불허, 남북교류중단, 대북신규투자금지, 대북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등이 중심내용이다
524 조치 이후 민간의 인도적 목적이 의한 지원사업도 정부와 협의를 거치지 않으면 불가능하게 되었다.
2012년 대법원 일제의 강제동원피해자들에 대한 일본기업의 손해배상책임 인정하는 첫 판결(전범기업인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징용피해자와 유족들의 손해배상과 미지급임금 청구소송)
2015 ‘위민 크로스 DMZ’(15개 나라 여성 평화운동가 30명 참여) 비무장지대 통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옴
2015년 KBS 1TV에서 TV쇼 진품명품이 방영 20주년, 1,000회 방송
2015년 애국지사 김영하 선생 별세
--애국지사 김영하(96) 선생이 24일 오전 9시 53분 별세했다.
경북 영주 출신으로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던 1939년 항일 독립운동단체인 조선학생동지회를 조직해 활동했다. 1941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2017년 촛불집회 이끈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해산 공식선언, 4.29까지 촛불집회23차례 참가인원1,684만8천명
2018년 트럼프 미대통령 공개서한 통해 북미정상회담 전격취소
2021년 방탄소년단 빌보드 뮤직어워드2021 4관왕, 톱 듀오/그룹(두번째 수상), 톱 송 세일즈 아티스트, 톱 소셜 아티스트(5년 연속 수상), 톱 셀링 송
2021년 문재인 대통령, 3박5일간 방미일정 마치고 귀국
2022년 정호영 자진 사퇴...尹석열정부 장관후보자 두 번째 낙마
2022년 95세 송해,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 등재
2022년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 엄수
1218년 제5차 십자군이 이집트를 향해 아크레를 떠나다.
1494년 이탈리아의 화가 폰토르모 출생
1543년 지동설 주장한 폴란드천문학자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세상떠남(70세)
-- 가톨릭으로부터 배척당해 이름도 없는 무덤에 쓸쓸히 잠들어있던 코페르니쿠스의 공식장례식이 467년만인 2010.5.22 폴란드 포롬보르크 시 대성당에서 교황특사 참석한 가운데 치러짐
-- 갈릴레이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자 가톨릭은 코페르니쿠스의 책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태양은 우주의 중심이며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는 태양중심설(지동설) 주장한 이 책이 출판된 1543년은 과학혁명의 원년으로 평가됨)를 1616년 에 배교적 저술로 지정, 200년이 지난 1828년 교황청 금서목록에서 삭제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 5월 24일 7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죽기 전 서구사상에 커다란 공헌을 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 이제껏 공인되어 온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뒤집었다. 당시 분위기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던 지동설은 후에 갈릴레오, 케플러와 뉴턴의 연구를 거쳐 18세기 경에는 완전한 진리로 자리매김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고는 그때까지 사람들이 품어왔던 우주관에 대한 완전한 변혁을 요구한 것으로, 우주에 대한 철학적인 개념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1473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코페르니쿠스는 18세때 신부가 되기 위해 크라코프대에 입학했다. 그는 이곳에서 수학과 천문학 강의를 들으며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 즉 천동설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1496년 이탈리아에 유학해 볼로냐대에서 그리스 철학과 천문학을, 파도바대에서 의학과 교회법을 공부했다. 1512년 신부가 된 그는 그때부터 밤마다 옥상에서 천체관측을 시작했다.
점차 지동설을 확신한 그는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전 4권)를 1525년부터 5년간 정리했으나 이단자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 책의 출판을 계속 미뤘다. 다만 책의 개요를 정리해 제한된 부수로 자비 출판해서 천문학자들과 교황 클레멘트 7세에게 돌렸으나 다행히 교황으로부터 아무런 문책이 없었고 제자인 레티쿠스가 권유하자 자신감을 갖고 출판을 결심했다. 원고가 레티쿠스의 손을 거쳐 뉘른베르크의 활판 인쇄소로 넘어간 것은 1542년이었고, 이 책의 인쇄 견본이 그에게 전달된 것은 그가 죽어가는 자리에서였다.
1544년 영국의 물리학자, 의사 윌리엄 길버트 출생
1607년 100 명의 영국인 이주자가 미국 최초의 영국 식민지인 제임스 타운에 정박
1738년 감리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잉글랜드 성공회 신부가 저녁에 회심하다.
1743년 프랑스 혁명가 마라 출생
1792년 중부 베트남의 황제(1820~41) 민 망 출생
1819년 빅토리아 영국 여왕 출생
1844년 모르스부호 처음으로 송수신 성공
--“What God hath wrought?(하느님은 무엇을 하시는가)”-모르스가 자기가 발명한 전신기와 모르스부호로 처음으로 타전한 말
1844년 워싱턴 D.C.와 볼티모어간 전신이 공식적으로 개통하
1855년 영국의 극작가 아서 윙 피네로 출생
1862년 남북전쟁-쉐넌도어계곡 전역에서 잭슨이 뱅크스의 후위 부대를 기습했다. 잭슨은 이 전투로 프랭크 로얄을 점령
1899년 시인 앙리 미쇼 출생
1900년 영국 오렌지자유국 합병
1901년 영국의 언론인 헤일리 출생
1905년 소련의 소설가 숄로호프 출생 - 1965년 노벨문학상 수상
1915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
1923년 아일랜드 내전이 끝남
1935년 미국 메이저리그 첫 야간경기
1941년 미국가수 밥 딜런 태어남,
--2016년 노벨문학상 받음 “아무 것도 갖지 않았을 때 잃을 것도 없지. 그러면 넌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감출 비밀도 없지. 자, 어때 홀로 서는 것이. 완전히 무명인 것처럼, 구르는 돌처럼 되는 것이...” -밥 딜런의 히트곡
-- “딜런은 록 역사에서 어떤 아티스트보다 두드러진 업적 한 가지를 남겼다. 그것은 ‘가사쓰기’였다. 너무 난해하여 의미를 꿰뚫기는 어렵지만 정직하고 초현실적인 딜런의 가사만큼 신의 칼날처럼 듣는 이의 마음을 찌른 예는 일찍 없었다.”-제임스 오도넬(록 평론가) 『The Rock Book』
1941년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 영국 전함 후드호 격침
1945년 미국 B29기(250대) 동경을 야간폭격
1950년 영화배우 잉그리드 버그만,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결혼
1954년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 사망
--5월 24일, 전설적인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가 베트남전을 취재하던 중 지뢰를 밟고 폭사했다. 1913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18세 때 유태인 추방정책에 따라 베를린으로 거주지를 옮긴 카파는 그곳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뒤 한 통신사에서 암실 보조로 일하며 포토 저널리즘을 익혔다. 히틀러의 유태인 박해를 피해 다시 파리로 옮긴 카파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인민전선에 가담, 종군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카파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38년 스페인 내전 때 한 병사가 총탄에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촬영한 ‘병사의 죽음’이 라이프지 표지에 실리면서였다. 전쟁의 결정적인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촬영한 이 사진으로 포토 저널리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가 그에게 쏟아졌지만 한편에서는 사진이 지나치게 리얼하고 강렬한 탓에 연출 사진이 아니냐는 논란까지 일었다.
전쟁이 있는 곳에는 카파가 있었다. 중일전쟁, 공습하의 런던, 북아프리카 전선, 시칠리아 공략, 노르망디 상륙작전, 2차대전 때의 파리해방 등이 주무대였다. 특히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은 종군기자 카파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카파는 이때 108장의 역사적인 사진을 촬영했으나 흥분한 암실조수가 현상된 필름을 말리다 과열로 망쳐버리는 바람에 8장만 겨우 건질 수 있었다. 더구나 피사체까지 흔들려 정상적인 경우라면 폐기됐어야 했지만 라이프지는 상륙작전의 긴박감이 잘 드러난다며 게재를 결정했다.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는 게 라이프지가 붙인 사진설명이었다. 이후 이 사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대명사가 됐다.
위험을 무릅쓰고 전장을 누빈 그의 기자정신은 그의 이름을 딴 ‘카파이즘’으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종군기자의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라는 게 종군기자로서의 그의 자세였다.
1955년 뤼순을 중국에 넘기는 중-소공동성명 발표
1957년 체코의 소설가 테레자 보우치코바 출생
1958년 제3회 동경아시안게임 개막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가 1958년 5월 24일 오후 3시부터 동경 신궁외원에 새로 마련된 일본국립경기장에서 약7만5천명의 관중들이 모인 가운데 개막됐다.
아시아 20개국 1,412명의 선수들은 12개의 정식종목과 2개의 시범종목(유도, 배드민턴)에 걸린 2백50개의 메달을 놓고 9일 간에 걸쳐 땀을 흘렸다. 한국은 이창훈 선수를 통해 마라톤 왕국의 명예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8만여명의 관중이 운집한 도쿄국립경기장에서 2시간 32분55초 만에 영광의 결승 테이프를 끊은 것이다. 주최국 일본은 육상에서 12개 수영 27종목에서 26개의 종목을 휩쓸어 발군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특히 수영에서는 일본 선수 3명이 3관왕의 영예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필드하키에서는 올림픽 6연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인도가 4전 전승을 기록해 역시 필드하키 강국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개최국 일본이 금메달 67개를 획득함으로써 대회 3연패의 영광을 안았고, 그 뒤를 이어 필리핀이 금8 은19 동21개로 2위를 한국이 금8 은7 동12개로 3위를 차지했다
1959년 미국의 외교관 존 포스터 덜레스 작고
1962년 미국 유인위성 오로라 7호, 지구 3회전후 귀환
1964년 페루서 축구경기 중 관중 난동 500여명 압사, 정부 계엄령 선포
--5월 24일 아르헨티나와 페루간에 벌어진 축구경기에서 심판의 불공정한 판정에 불만을 품은 관중들이 폭동을 일으켜 500명이 사망하고 천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페루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기본권을 정지시켰다.
이날 페루의 수도 리마시에서 있은 아르헨티나 대 페루의 축구시합은 동경 올림픽에 참가할 남미대표팀 선발전으로 4만5천명이상의 축구팬들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루었다. 전반전은 0대0으로 끝났고, 후반전 15분에 1점을 얻은 아르헨티나는 35분에 한선수의 실수로 자살골을 넣었으나 우루과이인 심판이 무효라고 선언, 관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분노한 리마의 축구팬들은 관람석에서 뛰쳐나와 경기장의 창문들을 부쉈다. 차를 뒤집고 난동이 점차로 심해져 상점들을 약탈했으며 빌딩에 불을 지르기까지에 이르렀다.
결국, 경찰들이 최루탄을 발사했고, 4만5천명의 군중들에게 경찰견을 풀면서 사태를 수습했다. 이날 난동의 희생자 대부분은 압사에 의해서였다
1966년 유럽우주개발기구(ELDO) 최초의 로켓트 `유럽1호` 발사
1974년 빅 밴드 재즈의 창시자 중 한사람인 미국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듀크 엘링턴 사망
1976년 영국-프랑스 공동개발한 콩코드기 취항(런던-파리-워싱턴)
--영국과 프랑스가 1976년 5월 24일 양국 합작초음속여객기인 콩코드기의 미국항로 취항을 각각 시작했다. 영국항공과 프랑스항공소속 콩코드기는 이날 정오직후 런던 히드로 공항과 파리의 샤를르 드골 공항을 각각 수분간격으로 이륙했으며 평균음속 2배의 속도로 대서양을 횡단, 이륙 3시간45분 만인 5월 25일 새벽1시경 워싱턴 근교의 델라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날 취항개시와 함께 미국에서는 콩코드기의 공해에 관한 13개월간의 점검이 시작됐는데 미국은 콩코드기의 소음 및 공해가 환경에 중대한 피해를 주지않는지의 여부를 시험토록 영불 양국 콩코드기의 시험취항에 동의했었다.
1977년 소련 포드고르니 연방최고회의의장 해임
1981년 에콰도르 대통령 롤도스 아길레라 사망
1983년 미국 정부 AIDS를 국가 최우선 의료질병으로 지정
1988년 소련 단교21년만에 이스라엘 외교관에 첫 비자발급
1991년 COCOM 공산권 수출금지 품목 축소
1992년 수친다 태국 총리, 유혈사태 책임지고 사임
--수친다 크라프라윤(58) 태국 총리가 1992년 5월 24일 TV연설을 통해 자신의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수백명의 사상자를 냈던 유혈사태가 일단락됐다. 수친다 총리는 5분간의 사임서 낭독에서 "나 자신의 실수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또 의회에서의 헌법개정 논의 촉진을 위해 국왕에게 사임서를 제출했다" 고 말했다.
수친다 총리가 이날 사임을 공식 발표함으로써 그는 지난 4월 7일 총리에 지명된 뒤 48일간 재임한 최단명 총리로 기록되게 됐다. 수친다 장군은 1933년 8월 8일 방콕에서 태어났다. 그는 추라촘클라오 사관학교의 1958년도 졸업동기생 모임인 제5반의 지도자다. 제5반은 태국의 군-정-재계의 핵심세력을 이루고 있다.
수친다는 웨스트 포인트 등의 미 군사학교에서도 교육을 받은 군 엘리트로서 월남전 당시 태국 파견군의 포병사령관을 역임했고 지난 1971년 워싱턴주재 태국대사관에서 무관보로 일하기도 했으며 1980년에 태국군 부총사령관이 된 후 이듬해 총사령관직에 올랐다.
1992년 토머스 클레스틸, 오스트리아 대통령에 당선
--오스트리아 국민당 소속의 토머스 클레스틸 의원이 1992년 5월 24일 신임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압도적 표차로 오스트리아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토머스 클레스틸은 "초당적인 대통령직 수행으로 오스트리아인들을 하나로 묶겠다"면서 "대화와 정직, 품위, 협력의 새로운 정치문화를 촉구하고 시민들은 더 많이 말하고 정당은 말을 줄여야 한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1932년 수도 빈에서 전차운전사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35년 간의 직업외교관 경력 중 18년을 미국에서 근무한 미국통이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오스트리아 대표로 외교계에 입문한 클레스틸 당선자는 주워싱턴 대사관 근무를 거쳐 미국과의 오랜 인연을 맺었으며 이후 유엔대사, 워싱턴대사 등을 역임하고 당선 전 5년 간은 국내에서 근무해왔다.
1993년 에리트리아공화국, 에티오피아로부터 분리독립해 민주국가로 공식출범
2000년 네팔 최고의 `셰르파`인 아파, 에베레스트 11번째 등정 성공
--네팔의 유명한 `셰르파`인 아파(40)가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11번째 정복하는 데 성공,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아파는 미국인 등산가와 동료 셰르파 등 12명과 한 팀을 이뤄 2000년 5월 24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아파는 1999년 10월 은퇴한 셰르파 앙 리타(52), 2000년 5월 세째주에 최단시간(15시간 56분)에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셰르파 바부 치리와 함께 `에베레스트 10회 등정`의 세계신기록을 공동 보유하고 있다가 이번에 기록을 깼다.
아파는 고도 8천m 위치에 설치된 마지막 캠프를 출발해 남동능선을 따라 정상 정복에 성공, 티베트-네팔 루트를 통해 에베레스트에 오른 세계최초의 등반가로 기록됐다. 그는 1996년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하산하다가 숨진 뉴질랜드 등반가 롭 홀과 팀을 이뤄 1989년 에베레스트에 처음으로 오르는 데 성공했다. 이후 1년에 한번씩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셈이다. 1998년 5월29일 9번째 등정에 성공했으며 지난해 5월26일 미국인 등산가와 함께 10번째로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올라 셰르파 앙 리타에 이어 10번째 등정의 대기록을 세웠다.
2000년 이스라엘, 남부 레바논 철군 완료
--이스라엘군이 2000년 5월 24일 남부 레바논에서의 철수를 완료했다. 이에따라 1978년 이 지역을 점령, `안전지대`를 설치한 이스라엘군과 친이스라엘계 민병대 남부레바논군(SLA)은 22일 전격적으로 철수를 시작했고, 23일 새벽에는 현지 이스라엘군 사령부 빈트 야바일이 철수에 들어갔다.
탱크와 트럭 등을 타고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로 철수하는 병사들은 경적을 울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일부 병사들은 감격에 젖어 고국의 땅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스라엘군이 물러난 남부 레바논의 다수 마을은 이슬람 무장세력인 헤즈볼라가 장악한 가운데 유엔평화유지군이 이곳에 진주했다
2004년 런던 미술품 보관창고 ‘모마트(Momart)’ 대형화재 발생
--5월 24일 영국 런던의 미술품 보관창고 ‘모마트(Momart)’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 영국 현대미술을 이끌어 온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손실됐다.
런던 동부 레이톤 소재 모마트 예술품 창고에는 트레이시 에민, 채프먼 형제, 데미언 허스트, 사라 루카스, 게리 흄 등 1980년대 이후 혜성과 같이 등장해 영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창조했던 작가들의 대표작들이 대량으로 보관돼 있었다.
또한 이것들은 세계적인 미술 컬렉터 찰스 사치를 비롯, 내셔널 갤러리·테이트 모던·버킹엄궁 소유의 미술작품들이었다. 특히 이번 화재로 작품을 100여점이나 잃은 사치는 영국과 미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런데 실의에 빠진 컬렉터 중에는 한국인도 있었다. 바로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김창일 회장이었다. 찰스 사치의 대변인은 “화재 현장에서 터너상에 빛나는 에민의 ‘텐트―내가 잠자리를 같이 했던 사람들 1963~1995’ 등이 소실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피해 규모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치는 큰 충격에 빠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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