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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서 그친다는 말 - 송혁기

by 귤담 2023.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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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서 그친다는 말

글쓴이 송혁기 / 등록일 2023-05-23

우리의 몸 어디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가장 앞에 나서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눈과 손이다. 외부를 향하는 감각과 운동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자신의 몸을 향해서도 눈과 손은 참 다양한 일을 한다. 그런데 우리의 몸에서 눈도 손도 미치지 못하는 부위가 있다. 바로 등이다. 거울이 없이는 자신의 등을 볼 수 없고, 아무리 유연하다 해도 등의 모든 부위를 다 만지기는 어렵다.

 

산(☶)이 위아래로 포개진 모양을 지닌 간괘(艮卦)는 산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있는 ‘그침’을 뜻한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그치는지가 중요한데, 우리 몸의 각 부위를 그침의 장소로 들어서 비유로 설명했다. 발, 종아리, 허리, 가슴, 입. 어디에서든 그쳐야 할 때 그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때에 맞게 적절하게 그친다는 게 실제로는 쉽지 않다. 욕망이 생기고 나면 그쳐야 할 순간을 알기도 어렵고 그침을 단행하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등에서 그치면 허물이 없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등은 보이지도 않고 움직일 수도 없기 때문에 욕망도 없는 곳이다. 따라서 아무런 근심도 없이, 강제로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칠 수 있다.

 

 

눈과 손, 그리고 등

 

현대사회가 그침을 모르고 질주하는 이유는 눈과 손이 점점 더 앞서기 때문이다. 눈과 손은 가장 능동적이고 민감하며 욕망이 큰 곳이다. 포노사피엔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요즘 우리의 눈과 손이 온통 집중되는 곳은 스마트폰이다. 현실의 세계와 매우 닮았지만 전혀 다른 세계가 그곳에 펼쳐져 있다. 거기에도 친구가 있고 성취가 있고 욕망이 있고 또 하나의, 혹은 여럿의 자아가 있다. 문제는 그러는 가운데 현실의 관계들은 여전히, 아니 더 심각하게 뒤틀려져 간다는 점이다. 한없이 확장되어버린 욕망에 몸과 마음을 맡겨버린 터에,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그칠지는 이제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 되었다.

 

고려말의 학자 목은 이색은 세 칸짜리 작은 별실에 지지당(知止堂)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노래를 지어 불렀다. “고부가 다투고 부자가 상처 주며, 형제가 싸우고 친구가 반목하네. (중략) 모든 화의 근원은 자기 욕망 때문이니 그 욕망 극복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욕망은 먼지 같고 마음은 거울 같아, 먼지만 제거하면 거울 금세 밝아지네.” 각자의 눈을 가린 욕망만 제거하면 본래의 깊은 은혜가 다시 보이게 되므로 마음을 고달프게 하며 다투지 않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이 자기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그침의 경계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나를 잊어야 그칠 수 있다

 

그렇다면 자기 자리를 벗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할까?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政事)를 도모하지 말라”는 공자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학자들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자신의 근심으로 삼아 왔다. 성호 이익은 “관직에 없으면서 국정에 직접 간여한다면 당연히 죄가 되겠지만, 평소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다면 언젠가 정사를 맡았을 때 어떻게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오히려 국정의 실무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쌓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평생 골몰했다. 생각이 자기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본분을 넘어서는 욕망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지, 마땅히 해야 할 일과 내놓아야 할 말을 그 지위가 아니라는 핑계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송대의 학자 정이는 말했다. “그쳐야 할 곳에서 그치지 못하는 것은 욕망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등에서 그치는 것이 그침의 방법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치니 마음을 어지럽힐 욕망이 없다. 그래서 그 그침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보지 못한다는 것은 나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없으므로 그칠 수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잘하고자 하는 의지는 여기서 말하는 욕망이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서 나의 자리를 위해 다른 자리에 있는 사람의 가치와 역할을 무시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감각도 운동도 없는 등을 동원해서 그침의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침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침이 더욱 어려워진 오늘, 잠시 눈과 손을 거두어들이고 나의 욕망마저 이르지 못하는 등을 떠올리며 그침을 생각해볼 일이다.

 

글쓴이 :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