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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仁)의 본성이 말하는 공존의 의미 - 백민정

by 귤담 2023.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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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仁)의 본성이 말하는 공존의 의미

글쓴이 백민정 / 등록일 2023-08-1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중시한 학문의 양대 산맥은 심학(心學)과 예학(禮學)이라고 할 수 있다. 심학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살리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며 동시에 타인과 함께 사는 길을 보여주는 배움의 바탕이었다. 예학은 나의 욕망과 감정을,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실현하는 행동규범을 제시했다. 18세기에 활동한 유학자 성호 이익(星湖 李瀷:1681-1763)은 제사의례와 심학의 본령[仁]이 만나는 지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버지에게 제사를 지내면 (아버지의) 친형제들이 함께 인(仁)을 행할 수 있다. 증조부와 고조부에게 제사를 함께 지내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 제후가 자기 관할 영역에 있는 산천에 제사를 지내면 그 산천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인(仁)을 행할 수 있다. 천자가 교외 지역과 사직단에서 제사를 지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인(仁)을 행할 수 있다.”(『論語疾書』「八佾」11) 성호에게 제사의례란 사람이 타고난 인의 본성을 함께 실현하도록 돕는 공동의 행동양식을 의미했다. 그는 제사에 참여한 자들이 의례를 통해 서로 공감하고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한다고 보았다. 유학자들에게 의례는 사람의 감정과 욕망을 자발적으로 표현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본성에서부터 확장된 공적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성호가 생각한 인의 의미와 공적 삶의 관계는, 신유학자들이 주목한 사람의 본성과 사회적 공공성의 문제를 심화시킨 것이다. 북송시대 유학자 정호(程顥:1032-1085)는 수족이 마비된 상태를 불인(不仁)으로 본 의학서의 표현을 빌어,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는 협소한 마음을 불인(不仁)하다고 보았다. 그는 세상의 일을 마치 자기 일처럼 여기는 마음을 인(仁)이라고 말한다.(『河南程氏遺書』권2) 이것은 연평 이동(李侗:1093-1163)이 나와 너 사이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 마음, 나와 네가 다르다는 구별의식이 사라진 마음을 인이라고 본 것과 같다. 연평은 주희에게 피차 구별이 없는 마음, 사심이 없는 마음[無私心]을 인이라고 전한다(『延平答問』41). 그는 사심이 없는 상태, 나와 타자 사이 치우친 감정과 욕망의 경계가 없을 때 사람의 마음은 가장 크게 확장된 공적 상태[廓然大公]에 이른다고 보았다.(『延平答問』28) 이곳에서 이동이 인의 마음으로 묘사한 ‘확연대공’이란 표현에 주목해보자. 이 말도 정호에게서 연원한 것이다. 정호는 천지의 마음이 무심(無心)하므로 세상을 두루 공평하게 대하고, 성인은 무정(無情)하므로 모든 사태를 순조롭게 대한다고 했다(『河南程氏文集』권2). 무심과 무정은 사적 자의식, 협소한 자기애를 벗어난 상태를 일컫는다. 정호와 이동은 공부하는 자는 천지와 성인을 배우면서 자기 마음을 확연대공하게 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들에게 심학은 마음을 크게 넓혀서 사적 의식의 경계를 넘어 타인과 공명하게 만드는 배움이었다.

 

여기서 유학자들이 대공(大公), 가장 공적인 상태라고 지목한 것이 사람 마음[心]과 관련된 것을 알 수 있다. 스승의 관점을 이은 주희, 그는 인(仁)이 마음에 주어진 본성의 원리라면, 공(公)은 그 본성을 타인과 만나 외적으로 실현한 것이라고 말한다.(『朱子語類』권6, 102) 그는 사람이 인(仁)한 다음에야 공(公)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인간 본성이 이미 공공적 성격을 갖는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유학자들은 공의 근원을 인간의 본성[仁]에서 찾았다. 그들은 나와 타자를 모두 살리려는 힘을 가리키는 인(仁)이란 본성이, 인간 공동체에서 구현되는 모든 공적 가치들의 존재론적 근거라고 믿었다. 그들은 사람이 가진 공공적 본성을 자발적으로 실천해서 만들어낸 공존의 삶을 공(公)이라고 이해했다. 공의 의미를 인간 본성을 자율적으로 실천한 결과로서 이해한 관점은 성호에게서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그는 인(仁)이란 나와 다른 대상 간에 분열과 괴리가 없는 상태라고 이해한다. 그는 나에게만 해당되는 사적 욕구를 개입시키지 않아야 비로소 인의 효과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인의 구체적 효과란 곧 나와 타인 사이에 이루어진 공적인 관계를 의미한다.(『星湖僿說』권21, 經史門, 「毋我」) 그는 인이라는 본성을 자발적으로 확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타인과의 공적 관계는, 내가 타인의 욕구와 감정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일심동체의 상태와 같다고 말한다. 그에게 공(公)이란 어떤 제도나 절차, 분배의 공정성 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자들의 공속적(共屬的) 관계, 공존의 모습을 가리켰다.

 

오늘날 우리는 정치적 공공성이 수많은 사회제도와 조직들, 공권력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공공성이 어떤 강제력을 수반하는 제도나 공정한 절차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고 보지, 개인의 심성 문제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학자들도 오랜 시간 다양한 법전들과 형벌체계를 고안하고 시험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강제적인 법조문과 처벌이 인간의 자발성을 억압하고, 결과적으로 공의 가치를 원만하게 실현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인류애를 표방하는 어떤 공적 가치도, 그것이 외부에서 강제될 때 사람을 옥죄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유학자들은 공적 가치를 실현할 때 외부의 강제가 아닌 인간의 자발성에 주목했고, 바로 이런 이유로 인간이 가진 내적 본성을 스스로 실현하는 자발적 노력을 중시했다.

 

성호는 인의 가치를 망각하면 결국 사람들이 서로 다투며 경쟁하게 된다고 우려한다(『星湖全書』권1, 詩, 「戱作反絶交詩」). 함께 살고 공존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사람의 본성[仁]을 망각할 때, 나와 타인은 남이 되며 돈과 권력, 이권을 다투고 경쟁하는 적대적 관계가 된다. 그는 성인의 공공성이 타인과 세상을 마치 만물일체인 것처럼 여기는 반면 보통 사람의 공공성은 자기 개인, 자기 집안이라는 한계를 넘기 어렵다고 경계한다(『星湖全書』권7, 『四七新編』4, 「聖賢之七情」). 타인의 아픔과 슬픔은 나의 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며, 이것은 결국 공속적 성격을 가진 자신의 본성조차 잊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성호는 같은 조상에게, 같은 산천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자들은 함께 인을 실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조상의 혼령과 산천의 신명은, 사심을 가진 유한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공존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존재론적 근거다. 말하자면 조상과 귀신의 혼령, 상제의 존재는 인간의 공공성을 보증하는 형이상학적 근거였다고 볼 수 있다. 성호 이익과 성호학파 문인들은 상제와 천주의 존재, 귀신의 의미를 숙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호는 사후에 존재하는 다양한 혼령들의 성격을 생각했고(『星湖僿說』권27, 經史門, 「神理在上」), 물리적 하늘[天]과 다른 인격적인 주재자 상제의 존재를 고민했다(『星湖僿說』권1, 天地門, 「配天配帝」). 유학자에게 상제와 귀신의 공공성은, 인간의 본성 그리고 본성에 따라 구현된 인간의 공적 삶을 위해 기능하였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공(公)의 의미에 주목한다면 그것은 공정성, 정의 개념에 대한 사회적 관심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하다는 착각』 등 영미권의 서적들이 여러 해 전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사회에서는 정의 자체보다는 공정성, 특히 기회균등과 절차적 공정성이 주된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사회 같은 추상적인 가치보다는, 혹독한 경쟁에 내몰린 개인으로서 내가 누구에게도 피해를 받지 않고 나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응분의 보상을 받고자 하는 심리가 지배적임을 보여준다. 요컨대 우리도 전지구적 위력을 발휘하는 ‘능력주의’ 담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능력주의는 한 개인의 입장에서 내가 얼마나 공정하게 내 몫을 챙길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지, 내 이웃과 타자가 어떻게 살고 있으며,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정말 정의로운 곳인지 등에 대한 확장된 관심을 동반하지 않는다.

 

제도에 따른 절차적 공정성과 강제적 법률은 그것 나름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나와 타인이 함께 사는 공존과 상생의 큰 그림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기회가 균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다면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개인들은 승복해야 하며 결과에 대해 각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정치적 자유주의와 능력주의의 공통된 기반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균등한 기회와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환상은, 능력 있는 개인들이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 소수자, 이방인을 보호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나의 본성을 공공적 본성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자신을 온전하게 실현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타자들과 잘 관계 맺고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이다. 그것이 나를 풍요롭게 완성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유학자들이 공(公)의 가치를 자기 본성을 자발적으로 실현한 결과로 보고 함께 사는 공존의 의미를 숙고한 점을 상기해본다.

 

글쓴이 : 백민정(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