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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오 - 심경호

by 귤담 202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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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오

글쓴이 심경호 / 등록일 2023-11-27

10월 26일, 보스톤에서 기차로 뉴욕에 도착하여 웨스트 46번가 파라마운트 호텔에 묵었다. 로비는 어두웠다. 표정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쿠션에 묵묵히 앉아 있거나, 둘씩 셋씩 모여 두런두런하거나, 넓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꼭 숙박객들도 아니었다. 쉴 곳 없는 대도회지에서 작은 안식처를 가까스로 찾은 이방인들이었다. 그들 사이로, 검은 양복에 흰 셔츠, 넥타이를 갖춰 입은 안내인이 몸을 꼿꼿이 세우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다. 사내의 검은 구두가 전등 아래 이따금 빛이 났다.

흰 얼굴, 짧은 머리, 느릿느릿한 몸놀림은 <피아노 맨> 뮤직 비디오의 바텐더를 떠올리게 했다. 카운터에 맥주잔을 턱 내려놓고 돌아서서 벽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미소 지으며 머리를 매만지지만, 그는 금전과 유흥의 공간에서 주인일 수 없다. 배우로 성공하리라는 환상은 불룩한 배, 성근 머리, 무심코 흘려보낸 나이가 짖궂게 깨뜨려준다.

소설은 인물의 ‘전형’을 창조하는 것을 본령으로 삼기에, 근대 이후 문학세계의 중심을 차지했다. 하지만 고전 시문의 가치 있는 작품들도 인물의 생기를 이념에 빼앗기지 않았다. 이를테면 좋은 비문은 비주(碑主, 망자)의 삶의 단면을 또렷하게 그려보이고, 더 나아가 인물의 전형을 제시했다. 서양의 비문이 경구, 유언, 추모사를 간단히 적는 것과는 달랐다.

정약용이 복암(茯菴) 이기양(李基讓, 1744-1802)을 위해 작성한 묘지명은 그 한 예이다. 이기양은 권철신·홍낙민·이가환 등과 혼척이라서 신유옥사 때 고문을 받았고 단천(端川)으로 유배되어 죽었다. 「이기양묘지명」에서 정약용은, 생전의 형 정약전(1758-1816)이 단천(丹川)[이천]의 초가로 이기양을 만나러 갔던 이야기를 덧붙여 두었다.

중형이 충주 하담의 성묘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맞으며 단천 초가로 복암을 방문했을 때 공은 마침 집에 없었다.

동자에게 간 곳을 묻고는 그 동자와 함께 이웃집으로 가서 보니, 집은 허물어져가고 장맛비가 새어 스며들어 흙탕이 부엌에 가득하다.

복암은 부뚜막 곁에 작은 솥을 걸쳐두고 땔나무로 멀건 죽을 끓이고 있었다, 나무가 젖어 있어 불이 타오르지 않자, 복암은 해진 깃털부채를 쥐고 부쳐 대었다. 폭폭 팍팍, 필필 포포 …

“어쩐 일이십니까?” 여쭈자, “절할 거 없네!”라고 했다.

얼마 후 복암은 멀건 죽을 떠서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추한 모습의 노파가 축 늘어져서 잔뜩 설사를 해놓아 냄새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약하다.

복암은 노파를 부축해 앉히고는 몸을 기울여 죽을 마시게 하여 연신 따스한 말로 권했지만, 노파는 중얼거리다가 낯을 찡그리고 거푸 신음 소리를 냈다. 공은 다독이며 비위에 맞추어 주었다. 노파가 죽을 다 마시자 다시 눕히고서야 손님인 중형을 이끌고 초가로 돌아갔다.

“왠 노파입니까?”

“내게는 여종이 없는데, 전에 내가 크게 아팠을 때 저 할머니 덕에 살아났소. 자식도 없고 친척도 없고, 외진 곳에 살아 이웃도 없소.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오.”

두 분이 마주보며 크게 웃었다고 한다.

정약전이 구술하고 정약용이 기록한 이 일화는 사람들이 ‘외진 곳에 살아‘ 남의 따스한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는 황폐한 시대를 묘사했다. 그리고 고단한 사람을 다독이는 진정한 인인(仁人)의 전형을 제시했다. 이웃을 이웃으로 품지 못하는 이 사회,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정약용은 묻고 있다.

글쓴이 / 심경호(고려대학교 특훈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