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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덕(明德)은 효제자(孝弟慈) - 박석무

by 귤담 2025.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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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덕(明德)은 효제자(孝弟慈)

글쓴이 박석무 / 등록일 2025-12-01

동양 사회는 애초부터 가장 앞세우는 일이 인간 윤리의 실천이었습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정(政)이나 형(刑)으로 백성을 통솔하는 일보다는 도덕 윤리인 예(禮)로 통치할 때에만 참으로 격조 높은 세상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유교 사회가 실천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목표를 인(仁)에 두고, 효제(孝弟)야말로 인을 실천해내는 근본이라고 분명하게 밝혀, 효제라는 윤리의 실천이 바로 유교 사회가 이룩해야 하는 최대의 목표라고 설정했습니다.

 

유교 사회에서 인(仁)과 나란히 달성해야 할 목표의 다른 하나는 『대학』에 나오는 ‘명덕(明德)’이라는 윤리입니다. 『논어』가 인(仁)을 목표로 했다면, 『대학』은 명덕을 밝히는 일에 목표를 두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명덕이 무엇이냐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에 이르러 명덕은 이(理)라는 관념의 세계로 해석하였습니다. 허령불매(虛靈不昧)하여 온갖 이치〔衆理〕를 갖춘 것이 명덕이라는 주자의 해석으로 유교의 관념화가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효제가 유교의 근본임을 잊지 않고 “공자지도 효제이이(孔子之道孝弟而已)”로 선언하고 명덕도 이치가 아니라 ‘효제자(孝弟慈)’라는 실천윤리를 주장하였습니다. 명덕이 ‘효제자’라는 주장은 중국이나 조선에서도 극히 소수의 의견이 있었지만, 다산은 젊은 시절 임금에게 보고하는 글에서부터 명덕은 ‘효제자’라는 확고한 신념을 피력했으며, 마침내 『대학』의 경학 연구에서 명확하게 온갖 경의 이론을 근거로 하여 ‘효제자’라고 못 박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문제는 다산 경학(經學)의 대단한 내용으로 성리학적 경전 해석을 실용과 실천의 실학적 논리로 전환시킨 위대한 업적입니다. 『대학』이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라는 전제 아래 요순 정치의 복원을 위한 정치철학서라고 할 때, 수신에서 평천하에 이르려면 ‘효제자’의 윤리의 실천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학』의 목표가 명덕에 있다면 명덕은 필연적으로 ‘효제자’일 수밖에 없다는 명쾌한 다산의 논리는 어느 누구도 반박할 방법이 없을 뿐입니다.

 

21세기 오늘의 세상, 온 세계는 자본주의 말폐에 직면하여 금전만능과 권력만능에 완전히 빠져들면서 ‘효제자’라는 아름답고 착한 인간 윤리는 자취를 감춰가는 인류의 위기에 근접해 갑니다.

 

공자 이래로 오늘날까지 ‘효제자’가 완전히 행해지고 실천되는 세상은 없었습니다. 요순시대가 끝나면서 공자 시대까지 춘추전국시대가 진행되면서 천하가 평화롭기 위해서는 ‘효제자’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서 유교를 창시했던 공자, 오륜(五倫)이라는 윤리를 내세운 맹자의 주장이 합해졌지만, 우리 인류에게 ‘효제자’가 꽃피우는 세상은 없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대통령이 국민을 죽이려 하고 국군이 그 나라 국민을 죽이겠다고 계엄에 가담하는 그런 세상도 무서운 위기인데,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데까지 이르고만 세상, ‘효제자’의 실천과 실행 없이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요.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도하고(孝), 형제간에 우애하고(弟), 어린이나 고아 등을 정성껏 보살펴 주는(慈) 윤리의 실천 없이,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겠습니까. 인류가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효제자, 우리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꽃피우는 ‘K-효제자’의 세상을 만들면 어떨까요. 조선 후기 망국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다산의 뜻대로 우리 모두 ‘효제자’의 세상으로 돌아갑시다.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