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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제도(親族制度), 어떻게 변해왔는가?
글쓴이 곽진 / 등록일 2023-1-16
친족(親族)과 종법질서(宗法秩序)
친족구성은 지속적인 가계의 계승을 이루고 유지하는 방법으로 조상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단위이다. 이른바, 친족(親族), 일가(一家), 종친(宗親), 종중(宗中), 문중(門中) 등의 말들은 조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족 단위들을 부르는 용어들이다. 의미상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거의 유사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친족집단에 변화가 일어난다. 혼인으로 맺어진 여자 가(家)와의 관계, 여자 가를 친족의 범위에 포함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친족집단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친족 범위는 일정한 범주의 종족(宗族)에 모계(母系)와 처계(妻系)를 넣어 친족으로 설정했다. 그 범위를 정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당시 사회의 문화와 정치사적인 흐름이 파악되는데, 이는 여자 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역할 지우느냐가 그 사회의 성격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남자 가계(家系) 조상을 중심으로 종법질서(宗法秩序)가 뿌리내리면서 친족집단 구성이 가속화되었고, 17세기 족보 제작이 확대되자 친족의 구성과 연대 의식은 더욱 힘을 받아 가문(家門) 문화가 활짝 열린다.
유교적 이념의 확산에 따라 조상을 모시는 제례(祭禮)와 상례 등으로 종법질서가 강화되면서 맏아들 중심의 가계 유지와 동족의 혈통을 중시하게 되었다. 현재 이름뿐인 호주제도(戶主制度)와 다르지만, 호주의 권위는 이 제도의 문화적 지지를 받아 기능했다.
종법질서를 제도적으로 받쳐준 제도가 족보편찬이다. 족보편찬에서 등장한 현안 역시 여자 가와의 관계 설정이다. 한때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근친금혼(近親禁婚)이나 동성불혼(同姓不婚) 등도 맞아들이는 여자를 대우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말하자면 어머니를, 부인을, 며느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대우할 것인가 하는, 사회 문화적인 인식과 밀접한 관계 아래 놓인 사안이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옛 혼인제도는 여자 가가 주도권을 가지고 이루어져 왔다. ‘장가간다(丈家)’ 혹은 ‘장가든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는 모계사회의 유습으로 고구려의 데릴사위제도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사실 족보 제도가 정착하기 전의 한반도의 혼인은 동족간(同族間), 근친간(近親間) 혼인의 자취들이 문헌 자료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형이 죽은 뒤에 동생이 형수를 맞이한다거나<고구려>, 씨족 집단 내에서 혼례가<신라> 생기는 것 등이다. 족보가 만들어지기 전이라지만 우리의 옛 전통이요 풍습이었던 셈이다.
상속(相續)과 제사(祭祀)
가부장적 문화 아래서 여성의 재산상속은 매우 불리했다. 가족들의 동질성을 조상의 제사를 통해 확보하고 가족 간의 질서를 유지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제사를 전담하는 장자(長子)가 부모 재산의 대부분을 상속받았다. 자연 딸의 몫은 미미했다.
이와 달리 한편에서는 고구려의 혼인 유습과 상속제 등이 그대로 존속되고 있었다. 시집가는 딸에게도 적절한 재산 분할이 이루어졌다. 이른바 아들딸 구별 없이 이루어진 1;1의 상속 즉, 균분(均分) 제도가 그것이다. 21C 우리가 애써 마련한 상속제도가 놀랍게도 이와 닮았다.
제사도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다. 맏아들 혼자 전담하지 않았다. 윤회봉사(輪回奉祀), 곧 자녀들이 차례대로, 또는 형편이 되는 자식이나 시집간 딸이 모시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렇다면 굳이 장자에게 많은 재산을 상속할 근거가 약했고 부모의 사랑과 믿음을 얻은 자녀에게 큰 몫이 돌아가는 게 당연했다. 부모에게 믿음을 주었다는 말에는 부모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뜻이 숨어있었다.
오늘날 가정의 중요 갈등 중 하나는 재사와 상속권이라 해도 무방하다. 물려받은 재산은 부족한데 부모의 노후와 제사를 맡아야 한다는 부담에서 생긴 불만이다. 그뿐 아니다. 늘어난 수명연장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처럼 친족문화에서 파생된 제사, 상속, 상례, 혼인 등에 생긴 급격한 변화는 여성에 대한 권리와 지위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시대 의식의 성장이 큰 촉매제로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글쓴이 / 곽 진 상지대학교 명예교수. (사)다산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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