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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잘 기르는 법 - 송혁기

by 귤담 2023.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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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잘 기르는 법

글쓴이 송혁기 / 등록일 2023-01-31

대학이 위기라는 말이 곧잘 오르내린다. 학령 인구의 감소와 대학 재정의 악화 등으로 인한 개별 대학의 어려움도 심각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위기의식은 “오늘날 대학 교육에 무슨 효용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비롯한다.

 

국가 재건을 위한 소수의 엘리트를 키워내던 60~70년대, 경제 발전으로 양질의 취업 시장이 팽창하던 80~90년대 중반까지, 적어도 대학 교육의 현실적 효용성을 의심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외환 위기로 국제통화기금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던 때부터 이른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부의 양극화가 고착화하면서 이전까지 신분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했던 대학 입시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점차 줄어든 면도 있다. 여기에 최근 몇 년간 감염병의 대유행으로 전면적인 비대면 교육이 시행되면서, 대학은 효용성 높은 다양한 비대면 교육 매체들과 무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노출되었다.

 

대학이 위기인 진정한 이유

 

교육을 효용성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어느 길이 옳은지가 중요하지, 현실적인 이익만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질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효용성의 열세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대체 불가한 가치를 제시해야 할 텐데, 오늘의 대학이 그럴 만한 무게와 동력을 가졌다고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이것이 대학이 위기라는 말에 아프게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래를 여는 창의적인 가치가 더 이상 대학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대학은 과거의 명성이라는 밑천이 떨어질 때까지 서서히, 어쩌면 매우 급속히 사라져갈 운명에 처한 것이다.

 

정약용이 둘째 아들 정학유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네가 닭을 기른다고 들었다. 참으로 좋은 일이다.” 아버지의 정치적 좌절로 인해 과거 시험을 볼 기회마저 단절된 아들의 입장에서는, 옳은 길을 추구해야 할 사대부 신분으로서 생계의 이익을 위해 양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유배지에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정약용은 아들을 칭찬하면서, 다만 이 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품위 있는 것과 저속한 것, 맑은 것과 탁한 것의 변별이 있음을 강조했다.

 

정약용이 우선 제안한 것은 연구와 실험을 통한 개선이다. 관련 서적들을 섭렵, 숙독하여 좋은 기술을 선별적으로 도입하고, 닭을 종류별로 나누어 길러 보기도 하고 시설을 다르게 만들어 보기도 하는 비교 실험을 통해 효율을 높이기 위한 개선 방법을 도출하라는 것이다. 다음 으로 정약용은 닭을 제재로 시를 쓰라고 권했다. 닭의 생태를 매일 세세하게 관찰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깊이 고민하는 과정은, 이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계에 관한 기존의 지식을 집대성하여 체계적인 저술을 하라고 제언했다. 이렇게 한다면 닭 기르는 일이 단순한 기술을 넘어 고상한 풍취에 이르게 되고, 이익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일에서도 옳은 길을 발견하며 맑고 높은 품격을 갖추게 된다고 했다.

 

창의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제까지 해오던 대로 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이 창의성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경험을 벗어난 어딘가에서 솟아오르거나 떨어지는 게 아니다. 결국은 얼마나 깊이 성찰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가에 달렸다. 생성 인공지능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시대가 이미 왔지만, 여전히 관건은 “무엇을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 있다. 단장취의의 비약이 허락된다면, 200여 년 전 궁지에 처한 아들에게 보낸 정약용의 권면에서 오늘 위기 상황 가운데 대학이 대학이어야 할 모습을 읽는다. 치밀한 독서와 개방적인 토론, 실패를 감수하는 실험과 깊이 있는 관찰, 새로운 발견과 참신한 표현 등을 익히고 배우며 품격 있는 자유를 누리는 곳.

 

대학에 이런 기대를 하기는 이미 늦었다는 진단도 있다. 이런 활동이 대학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만큼 이런 일을 잘 해낼 요건을 갖춘 곳이 없다는 점도 사실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 모여 있고 아직 어디에도 매어있지 않은 젊은 인재들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사회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협업과 혁신의 길을 모색하되, 동시에 대학으로서의 본질에 충실하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변별성 있는 품격을 갖추기 위한 대학의 뼈아픈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규제와 관리를 넘어서 대학이 실질적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전폭적이고 장기적인 국가적 지원이 절실하다. 시간이 많지 않다. 대학의 존속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글쓴이 :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