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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순례길>과 봄을 기다리는 마음
글쓴이 정근식 / 등록일 2023-02-14
죽기 전에 순례를 떠나고 싶다는 노인, 살생을 너무 많이 하여 업을 씻어야 한다는 젊은이, 출산을 앞둔 임산부와 어린 소녀, 이렇게 3가족, 11명이 설을 지낸 다음 날, ‘신들의 땅’ 라싸와 성산을 향해 순례에 나선다. 이들은 취사도구와 옷가지, 텐트를 작은 트랙터에 싣고, 삼보일배, 오체투지를 하면서 장장 2,500km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이들이 고향 마을을 떠난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 날씨가 풀려 강물이 흘러넘치고, 지나는 마을 곳곳에 꽃이 가득했을 때, 이들은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가다듬었다. 그때 이들을 맞이한 꽃은 무엇이었을까? 중국의 장양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영혼의 순례길> 이야기이다. 서로를 다독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순례 도중에 아이를 낳거나 성산 수미산에서 노인이 목숨을 거두는 일을 당하면서도 담담하고 평온한 이들의 모습은, 인간이 가진 영성의 고귀함과 숭고함을 느끼게 했다.
매화에 관한 추억
광양 소학정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연이어 순천 금둔사의 납월매도 피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직 서울 근교의 산비탈 응지에는 잔설이 남아 있지만, 작은 냇가를 채우는 물소리가 제법 졸졸거린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 집중할 수 있다면, 봄이 오는 소리는 이보다 더 치열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꽁꽁 얼었던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고, 눈이 녹아 물가에 떨어지는 소리가 이마를 때린다. 약간 과장하자면, 매화 눈 터지는 소리는 또 어떤가.
남녘으로부터의 화신은 매화에 관한 나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첫 번째 기억은 일본 미야기현에 있는 조선매화에 관한 것이다. 1990년대 중반, 나는 센다이의 도호쿠대학을 방문한 길에 일본의 3대 경승의 하나로 일컬어졌던 마쓰시마(松島)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즈이간지(瑞巖寺)를 방문했다. 조선 매화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한쪽은 홍매, 또 한쪽은 백매, 늙었지만 옆으로 누워있는 자태가 대단했다. 이들은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센다이지방의 영주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가 1593년 창덕궁 선정전에서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와룡매를 보고 나는 처음으로 매화의 기품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400년전의 전쟁을 생각하며 몹시 착잡한 심정이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이 매화의 자목들이 화해의 의미로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 앞에 심어졌다.
두 번째 기억은 2003년 봄에 보았던 섬진강의 매화에 관한 것이다. 나는 전남대학교 교정에서 봄이 올 때마다 대명매의 우아한 자태를 감상하곤 했지만, 하동 호암마을과 광양 매화농원에서 본 백매와 홍매의 아름다움은 또 다른 것이었다. 특히 희다못해 푸른 기운이 감도는 청매가 뿜어내는 향기는 너무 신선했다. 섬진강 강변에 깔린 향기에 취해 나는 너무 쉽게 다짐을 해버렸다. 서울에 가더라도 꼭 일년에 한번, 3월 중순에는 반드시 이곳을 찾겠노라고. 그러나 번잡스러운 서울생활은 이 다짐을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만들었고, 덤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심리적 부담감까지 안겨주었다.
순례하는 마음으로
코로나 3년의 어려움이 약간 아물고,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지나면서, 올해는 약간 편안한 마음으로 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항상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는 듯하다. 일상적인 정쟁은 차치하고라도, 미중갈등에 따라 한반도와 대만을 둘러싼 신냉전의 기운이 심상치 않은 데다가 튀르키예의 대지진 소식은 우리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사회적 지혜를 모으고, 우울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영혼의 순례길>에서 순례단이 만난 어느 마을의 노인장은 이렇게 말했다. “순례는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길이야. 모두의 안녕과 행복을 먼저 빌고, 그 다음에 자신의 소원을 비는 것이지.” 올 봄에는 그의 말대로, 순례하는 마음으로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는 여행을 하고 싶다. 호사가들은 호남 5매나 산청 3매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아련한 기억이나 상상을 자극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꽃 하나라도 만날 수 있다면 큰 보람이 될 것이다. 정년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20년전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다.
글쓴이 :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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