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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用數) - 심경호

by 귤담 202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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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用數)

 

글쓴이 심경호 / 등록일 2023-03-13

2023년 2월 10일 성균관대학교 명륜서원 단기 프로그램의 수료증을 받았다. 강민정 선생님의 「전통 수학의 이해 “구장산술”을 중심으로」 과목을 열흘간 수강하면서, 전통 산술에 관한 주요 개념들을 공부할 수 있어서 기뻤다. 제대로 된 공부에 여태 입문하지 못했던 것이 한스럽기도 했다.

 

근대 이전 학문의 사유나 생활에서 수(數)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날짜 추정, 밭 면적 계산, 곡물 사이의 수확량 비교와 환산, 조세의 부과에서부터, 병선의 제작, 악률의 제정, 지상과 달까지의 거리 확인, 천세력의 추산, 역사의 장기 변동과 단기 변화에 대한 성찰에 이르기까지, 학문과 생활에서 수로 표현해야 할 사항은 너무도 많았다. 지구 개념이 도입된 이후에는 지구의 크기, 관측 지점의 위도, 지구와 항성천의 거리 등을 탐구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관측기를 사용하여 기왕의 수치(數値)를 확인하고 새로운 용수(用數)로 대체하고자 노력했다.

 

강민정 선생님의 옥고에 따르면, 퇴계 이황은 54세 때인 1554년부터 십여 년 동안 『상명산법(詳明算法)』으로 가감승제(加減乘除)를 공부하기 시작해서 65세 때는 개방법(제곱근 계산법)을 익혔다. 내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성호 이익은 50대 중반에, 심의(深衣) 재단 때 주희의 지척(指尺)을 버리고 각 개인의 신체 비율을 고려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또 천주교 교리서적 『주제군징(主制君徵)』에서 천체 이론에 관심을 두되, 그 책이 땅과의 거리를 말하지 않았으므로 천체의 크기를 측정할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여겨 새로운 계산법을 제안했다. 이익은 『서집전』의 ‘기삼백(朞三百)’ 주에 대해 『주비산경(周髀算經)』을 기초로 기영(氣盈)과 삭허(朔虛)의 개념을 이용하여 19년 7회 치윤법[19년 章法、Metonic cycle]을 정리하기도 했다. 조선후기에는 ‘기삼백’의 치윤법을 이해해야 천재라고 인정했는데, 이익과 마찬가지로 계산법을 제시한 예는 매우 드물다. 풍석 서유구(徐有榘)는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의 「기삼백」에서 용수(用數)를 들었는데, 계산 방식은 보여주지 않았다.

 

1990년에 고 서여 민영규 선생님은 내게, 김석문(金錫文)의 『역학도해(易學圖解)』에 나타난 천문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조선 학술의 수준과 한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는 학부 재학 때 「수학」 과목과 「한국과학사」 과목을 수강했지만, 담당하신 교수님들은 김석문의 연구를 다루지 않았다. 그 이후 국내에 여러 연구성과들이 나와 다행이다. 그런데 일본 교토대학 수학과를 나오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철학사를 전공했던 도쿄대학 교수가 2010년에 『조선수학사』를 출간했다. 우리나라 수학사를 외국 연구자의 저술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학문이 보편성을 띤다고는 해도,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조선후기의 ‘실학’은 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존의 용수(用數)를 공리로서 인정하는가, 새로운 용수로 대체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인간과 집단,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는 준거의 변화와 큰 관련이 있다. 이익은 산술에서 방원(方圓)과 구고(句股)의 적멱(積羃)은 꼭 익혀야 한다고 말했고, 유학자라면 보천(步天)ㆍ악률(樂律)은 반드시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토지 면적 계산법을 제시했는데, 『구고원류(勾股源流)』는 그의 저술이라고 전한다. 남병길은 1856년에 『구장술해(九章術解)』를 저술했다.

 

최근 ‘유학과 과학’의 주제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발명품의 확인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실학’이 아니다. 조선의 학자들은 어떤 용수를 공리로 인정했던 것일까? 원주율 3을 더 정확한 용수로 대체하려고 했을까? 그 성과를 담은 결과물은 무엇일까? 시방 나는 궁금하다.

 

글쓴이 : 심경호(고려대학교 특훈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