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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집을 올려다보며 - 임철순

by 귤담 202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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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집을 올려다보며

글쓴이 임철순 / 등록일 2023-03-1

요즘 들어 까치집을 자주 올려다보게 된다. 생각보다 많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바로 옆에도 5층 높이의 나무 꼭대기에 까치가 집을 지었다. 어떻게 저런 곳에 저렇게 정교하게 집을 지을까, 절로 감탄하게 된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온 지금, 까치도 사람처럼 새봄을 반겨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일까.

 

까치는 큰 나무 위에 마른 가지를 모아 공 모양으로 집을 짓는다. 아무렇게나 나뭇가지를 얹은 것 같은데 실은 정교한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다니 놀랍다. 나뭇가지가 쌓이면 서로 얽혀 ‘재밍(jamming)’이라는 현상이 나타나 한 조각이 움직이면 나머지도 따라 움직이는 구조로 단단히 고정된다. 어수선한 머리를 까치가 집을 지었다고 말하지만 그 어수선함 속에 탄탄한 질서와 과학이 있다. 까치집 아래 떨어진 나뭇가지가 많으면 그 주인은 집 짓는 게 서투른 어린 까치라고 한다.

 

사람에게 이롭고 정직한 길조

 

사람과 함께 살아온 텃새 까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류다. ‘나라 새 뽑기 운동’(1964년, 국제조류회의 한국본부와 한국일보사)에서 1위로 뽑혔고, 지자체의 상징 새에도 까치가 가장 많다. 해충을 잡아먹는 익조(益鳥)이며 반가운 소식을 알리는 길조(吉鳥)로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까치가 남쪽 가지에 집을 지으면 그 나무에 가까운 집의 주인에게 벼슬자리 같은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기도 했다.

 

까치는 정직한 새다. 집을 짓되 매우 높게 하고 짜임새를 튼튼하게 하며 새끼를 기르되 사람들이 그 교미하는 때를 볼 수 없게 한다. 그리고 까치는 꼬리가 길어 바람이 옆에서 불면 꼬리가 기울어지고 뒤에서 불면 꼬리가 꺾이므로 언제나 바람 부는 쪽을 향해서 선다. ‘회남자(淮南子)’ 무칭훈(繆稱訓)에 “까치집을 보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안다.[鵲巢知風之所起]”는 말이 나온다.

 

정약용(丁若鏞)은 ‘중수 만일암기(重修挽日菴記)’라는 글에서 “집을 지을 때 누에는 창자에서 실을 뽑아내고, 제비는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고, 까치는 열심히 풀과 볏짚을 물어오느라 입이 헐고 꼬리가 빠져도 피곤한 줄 모른다.”고 썼다. 인간이 집을 짓는 것도 이들 미물과 다를 바 없고 목숨의 길고 짧음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는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 처자식과 후손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렇게 까치를 통해 인간의 삶을 생각하다 보니 까치가 등장하는 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규보(李奎報)는 까치가 정남쪽 나무에 집을 짓자 짐짓 대범한 척하다가 “이 영특한 새가 집 짓는 걸 보고/기쁜 빛이 눈썹 가에 나타나/초조하게 집이 이루어지길 기다리며/눈을 들어 높은 나무 우러른다.”고 읊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덕무(李德懋)의 글이다. 마포 외삼촌 댁의 큰 산수유 나무 꼭대기에 까치가 절반쯤 집을 짓고 가버리자 외삼촌이 “네가 상량문을 지으면 까치가 집을 완성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상량문을 지었더니 까치가 마침내 집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런 글을 쓰게 한 사람도 우습지만 쓰란다고 그대로 쓰는 사람도 대단하다. 다들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을 것이다.

 

까치는 사실 사나운 새이면서 전신주 같은 곳에도 집을 지어 전기사고를 유발하는 위험한 짓도 한다. 시끄럽게 떠들면 “아침 까치 같다”고 하고, 허풍을 잘 떠는 사람을 가리켜 “까치 뱃바닥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까치의 좋은 면만 보려 하거나 과일을 다 따지 않고 까치밥으로 남겨 놓는 것은 인간사회에 어둡고 부정적인 일이 하도 많기 때문이 아닐까.

 

흑백이 반반인 ‘조화의 날갯짓’

 

장유(張維)의 시가 까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준다. “백로는 원래 희고 까마귀는 본디 흑색/흑과 백이 반반인 건 나무 위의 저 까치/하늘이 만물 낼 때 색깔도 정해 주었나니/흑백으로 미추(美醜)를 나눠서는 안 되리라.”

 

갈라지고 나뉘어 원수처럼 매일 싸우고, 흑백 논리로 모든 걸 재단하는 우리 사회를 이 시를 읽으면서 더욱 개탄하게 된다. 내게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제발 세상이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요즘 자주 까치집을 올려다보고 있다. 흑과 백이 반반인 새가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날아다니며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다.

 

글쓴이 : 임 철 순(데일리임팩트 주필,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