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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은 과제물이다 - 임철순

by 귤담 2023.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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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은 과제물이다

글쓴이 임철순 / 등록일 2023-07-04

최근 고려대에 어떤 독지가가 학교 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630억 원을 기부했다. 이 기부금은 1905년 개교 이래 최대이며 국내 대학의 단일 기부액으로는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의 카이스트 기부(766억 원)에 이어 두 번째 규모라고 한다.

 

대학 관계자는 “이 독지가는 2025년 개교 120주년을 맞이하는 고려대의 미래 비전에 공감해 ‘통 큰 기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부자가 코로나19 여파와 15년째 지속되는 등록금 규제 등으로 인해 대학이 겪고 있는 재정위기에 대한 너른 이해를 갖고 있었다”며 “대한민국 도약과 인류 발전을 위해 대학이 분발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를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익명의 거액기부 대학 발전에 큰 도움

 

미담에 어울리게 기부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참 대단한 일이다. 그런 거액을 쾌척키로 결정한 것도 놀랍지만 이름을 밝히지 않고 기부를 실행한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부를 하는 자산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기부자에게 어떤 사연과 성공 스토리가 있는지, 고려대와는 어떤 관계인지 궁금하지만 대학 관계자들은 약속대로 철저히 입을 다물고 언론도 더 이상 캐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뉴스의 감동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이번에는 이중근(82) 부영그룹 회장이 전남 순천의 고향 6개 마을 주민 280여 명과 초중고 동창 80여 명에게 현금을 나눠주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주민들에게는 1인당 2,600만~1억 원을 주었고, 초중고 동창생들에게는 5,000만~1억 원씩 세금도 아예 공제하고 현금으로 주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선심이 의아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 회장은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된 기업인으로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주민들과, 자라나는 과정에서 도움과 우정을 주고받은 친구들이 고마워 돈을 나눠준 것이라고 한다.

 

그의 기부는 미국 배우 조지 클루니가 2013년에 친구 14명에게 100만 달러(약 11억 원)씩 1,400만 달러(155억 원)를 현금으로 준 일을 연상케 한다. 무명 시절에 경제적 기반이 없어 허덕이던 자신을 먹여주며 재워준 친구들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는 예상하지 못한 거액의 영화 수익금이 생기자 차량에 1,400만 달러를 채우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즐거운 ‘기부파티’를 벌였고, 증여세까지 다 내주었다. 그렇게 한 동기에 대해 “이런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거액의 기부와 정답고 두터운 우정이 다 놀랍고 부럽다.

 

최근 국내 대학에도 기업인이나 독지가들의 크고 작은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올들어 경기대에 한 기업이 100억 원 규모의 기부를 약정한 바 있고, 모교 성균관대에 100억 원을 기부한 기업인이 있었다. 동국대에는 익명의 스님이 인재양성 장학기금 3억 원을 내놓았다.

 

투명한 집행과 공개로 기부 선순환을

 

기부금은 대학별 차등이 심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기부자들과 그 액수가 늘어나고 기부의 방법이 다양해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재정의 대부분을 등록금 수익에 의존하는 국내 대학들은 등록금 동결 장기화로 재정난이 심해 총장들의 최우선 업무가 기부금 유치로 꼽힐 정도다. 고려대의 경우도 올 3월 신임 총장 취임 이후 ‘강한 고대’를 기치로 내걸고 기부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630억 원의 기부가 이루어졌다고 자랑하거나 기부자를 설득해 자연계 중앙광장 조성, 옥스퍼드·예일·고려대 연례 포럼 지원을 약속받았다고 생색을 내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대학이 받은 기부금은 순전히 즐거운 선물이기보다 성실하고 정교하게 풀어나가야 할 과제물과 마찬가지다. 정부는 대학에 대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정책을 꾸준히 마련해야 하지만, 대학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많다. 기부금을 받은 이후 어떻게 투명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학내외에 보고해야 옳다. 거액의 기부금을 받은 사실이 크게 보도됐으면 그 이후의 일도 학내 구성원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알도록 해야 한다. 대학 내의 단과대별 차이와 불평등 해소에도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대학 기부문화의 활성화와 선순환은 대학 스스로가 지향하고 노력해야 할 일이다.

 

글쓴이 : 임철순 (데일리임팩트 주필,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