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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미의식과 선(善) - 박수밀

by 귤담 2023.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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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미의식과 선(善)

 

글쓴이 박수밀 / 등록일 2023-09-11

다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선은 기본적으로 선(善)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드러난다. 그러므로 다산의 미의식을 이해하려면 다산의 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신에 대해 낙선호고(樂善好古)라고 한데서 알 수 있듯이 다산은 선을 행하기에 힘쓰고 옛것을 좋아한 사람이다. 다산은 인간의 마음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본성[性]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악(惡)에 쉽게 빠지는 기질이 있다고 본다. 하늘이 인간에게 자주지권(自主之權)을 부여했으므로 선을 택하느냐 악을 택하느냐는 오로지 인간 자신의 주체적 선택이며 선에 밝아서 선을 의지적으로 선택해야 선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모든 일마다 선을 다하지 못하면 선하지 않은 사람과 매한가지라고 말한다.

 

다산에게 선이란 악(惡)에 대응되는 의미뿐 아니라 현실을 나아지게 한다는 뜻도 갖는다. 다산은 선을, 선세선속(善世善俗) 즉 세상을 고치고 풍속을 개선한다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그러므로 다산의 선은 세상을 바로잡아 구제하는 광제일세(匡濟一世)의 정신과 연결된다.

 

다산이 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세상은 그때 저기가 아니라 지금 이곳[於斯]이다. 다산은, “미(美)와 선(善)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이것(斯)’으로 극치를 이루니, ‘이것’ 위에 다시는 더할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시간으로는 현재이고 공간으로는 이곳이다. 다산은 진정한 미와 선은 지금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다산은 옛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옛것’은 요순과 주공, 공자의 시절이며 다산은 이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아 그 정신을 따르고자 했다.

 

그렇다면 옛것을 좋아한다고 말해 놓고 이곳이 지극히 소중하다는,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발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다산은 배움의 본보기는 옛것, 곧 요순과 공자에 두고 고대의 민본 사상과 원시 유가의 정신을 배우려 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호고(好古)일 것이다. 하지만 옛것을 통해 배운 것을 궁극적으로 실현할 곳은 지금 이곳이라는 현실에 있다. 다산은 현실은 개선되고 개혁되어야 할 곳이라 보고, 지금 이곳을 고치고 나아지게 하여 가장 아름답고 선한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이것[於斯]의 정신이다. 다산은 원시 유가 경전으로 돌아가 자신의 혜안으로 그 정신을 재해석한 후에 지금의 일상과 현실에 미와 선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다산은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마음공부는 벽을 마주 보며 마음을 갈고 닦는 개인의 면벽 수양이 아니다. 다산은 “옛사람의 이른바 정심(正心)은 일에 나아가 사물에 접촉하는 것[應事接物]에 있지 고요함을 주로 하여 침묵을 지키는 데 있지 않다.”라고 하여 마음 수양이 세계와 접촉하는 데 있다고 본다. 다른 글에서도 계속 외부와의 ‘접촉’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마음공부를 하는 궁극의 목표가 자아실현에 머물지 않고 외부 세계와 꾸준히 접촉하는 데 있음을 말해 준다.

 

다산이 부단히 외부 세계와 접촉하고 실천을 강조한 것이야말로 원시 유가의 정신을 잘 습득한 것이다. 주자학을 배우는 사람들은 독서 자체에 함몰된 나머지 학문이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데로 흐르고 말았다. 하지만 다산은 원시 유가의 정신을 잘 배워 실천하자고 역설했다. 사실 공자가 말하는 진정한 배움은 이론과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인간으로서 실천해야 하는 도리를 행하는 것이다. 『논어』를 직접 읽어보라. 공자의 말씀은 관계 속에서 인간의 도리를 행하기 위한 일상의 실천 윤리이다.

 

다산은 인간 중심의 도덕적 아름다움을 지향한다. 다산은 “이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면 누구겠는가?”라고 묻는다. 세계의 중심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며 인간은 만물을 지배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 중심의 효용론적 관점은 차갑고 메말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다산은 말한다.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을 불쌍히 여겨서 항상 힘이 없는 사람을 구제해 주고 재물이 없는 사람을 구원해 주고자 하여 배회하면서 차마 그들을 버려둘 수 없는 뜻을 둔 뒤에야 바야흐로 시가 된다.” 세상과 인간을 향한 바로 이 지점에 다산의 심미 태도가 녹아 있다. 다산은 문학의 가치가 사회적 약자의 삶에 공감하고 이들 옆에 있으면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도와주는 데 있다고 본다. 그의 인간 중심과 엄격한 도덕률은 휴머니즘과 인간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따뜻하고 부드럽다. 다산은 부당한 현실에 대해서는 차갑고 격발하고 분노했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고 따뜻했다. 고통받는 백성과 소외된 인간에 대해서는 연민과 공감의 시선을 보냈다. 그리하여 그의 문학은 격발하면서도 온화하고 풍자적이면서도 따뜻하다.

 

다산은 사물과 인간의 차이를 말하면서도 인간과 인간에 대해서는 차별을 두지 않는다. 다산은 지위와 신분으로 인간을 가르지 않고 선한 인간과 악한 인간으로 가른다. 학자는 선한 마음을 길러서 인간 세상과 현실을 더 나은 단계로 만들어나가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과 사회를 고쳐서 더 나아진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다산의 선(善)이고 미(美)라 하겠다.

 

글쓴이 : 박 수 밀(한양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