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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지 않으심이 드러나리이다 - 심경호

by 귤담 2023.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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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지 않으심이 드러나리이다

글쓴이 심경호 / 등록일 2023-09-1

카톨릭의 위령 기도에 ‘심판에 휘지 않으심이 드러나리이다’라는 말이 있다. 본래 시편 50장에서 다윗이 “당신 눈앞에서 죄를 지었사오니 판결하심 공정하고 심판에 휘지 않으심이 드러나리이다.”라고 고백한 말이라고 한다. 이 구절을 들으면서 나는, 죄의 고백이란 본뜻보다도, 심판과 판결의 공정함에 대해 생각했고, 이 화두는 지금껏 나의 뇌리에서 떠난 적이 없다.

인문학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가 상론(尙論)이다. 상론의 ‘상(尙)’은 ‘위로’의 뜻이니, 『맹자』의 ‘상우(尙友)’란 말이 ‘위로 벗한다’는 뜻인 것과 관련이 있다. 곧, 상론은 역사인물의 행동양식을 일정한 준거에 따라 평단하는 일이다.

 

정조의 『일득록』은 근신들과 나눈 담화 2,688항목을 4목으로 나누었다. 4목 가운데 ‘문학’은 문장과 학문(경학)의 통합을 중시한 분류목이다. 오늘날 사용하는 문학이란 개념은 너무 왜소하게 되고 말았다. ‘정사’는 치도의 이념을 제시했으며, ‘훈어’는 훈요식 정치 담론을 집성했다. 이에 비해 제3 부류 ‘인물’은 인물 평가를 집성했다. 정조보다 앞서, 성호 이익은 『사설』의 전체 3008항목 가운데 3분의 1을 상론에 쏟았다. 지인(知人)을 통해 애민을 이루겠다는 유가정치론이 배후에 놓여 있다.

 

이익은 『사설』에서 주희와 이황을 포함한 많은 인물들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시시비비를 따졌다. 이천선생 즉 정이(程頤, 1033—1107)에 대해서는 두 항목에서 서로 확연히 다르게 논평했다. 철종 때 정이는 부주로 귀양가게 되었는데, 배로 염여퇴를 지날 때 풍랑이 거셌지만 태연했으므로, 강기슭의 초부가 ‘사거여사(舍去如斯) 달거여사(達去如斯)’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익은 “곤액에도 안명(安命)에도 좌우되지 않는 것을 마치 버리듯이 하고, 가야 하기에 가고 그쳐야 하기에 그침을 마치 통달했듯이 했다.”라고 해설했다. 하지만 다른 항목에서 이익은, 정이가 겸손하지 못한 인물이었다고 혹평했다. 정이는 휘종 초 서경국자감 권판에 복직되었는데, 제자 윤돈이 의심하자, “한 달 봉급만 받고나면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라고 변명했다. 이익은 정이가 젊어서부터 관직에 연연했다고 보아, 여러 사실들을 방증으로 제시했다.

 

조선 제왕학의 교본이라고 하면 『정관정요』를 꼽는다. 당 태종 이세민이 위징 등 명신들과 담소한 내용을, 현종 때 오긍이 책문ㆍ쟁간ㆍ의론ㆍ주소(奏疏)로 분류한 것이다. 세종 연간 국가사업으로 완성된 『용비어천가』는 조선 태종을 당 태종에 견주어 현창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 이르면 당 태종 평가가 완전히 뒤바뀐다. 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이세민의 패악을 고발했다. 이익도 정조도, 당 태종의 정치를 언급하지 않았다. 주희가 “당 태종은 인과 의를 빌려 사사로운 짓을 저질렀다.”라고 논단한 것도 참고가 되었겠지만, 이세민이 권력을 잡으려고 형제들을 참살한 패악이나 고구려 침략을 위해 무모하게 군사를 일으킨 죄과는 분명히 따질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역사 기록은 객관적인 것도 상세한 것도 아니다. 이익은 행장과 묘도문자(비문과 지문)에 허위나 은폐가 많다고 개탄했다. 구비(口碑)도 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익은 상론의 때에 여러 기록들과 전문(傳聞)을 대조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역사인물의 공죄를 따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산 인간을 평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신이 아닌 인간이, 인간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일이 가능할까? 성균관대학교 명륜서원에서 『논어』를 강의하다가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어구에서 나는 저 연도의 어구를 다시 떠올렸다. 중론이나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사실판단하는 것, 이것이 요청되리라.

 

글쓴이 : 심경호(고려대학교 특훈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