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좋은 이름이 성공한 인생을 만든다"
다산 글방

실학만 알아서는 실학을 모른다 - 노관범

by 귤담 2023. 9. 25.

> 다산글방 > 풀어쓰는 실학이야기

실학만 알아서는 실학을 모른다

글쓴이 노관범 / 등록일 2023-09-2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하면 제일감으로 떠오르는 것은 개관이다. 역사 답사 자료집 만들 때면 으례 개관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오래 전에는 민백 하나로 지역 개관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어디를 가기는 가는데 그 어디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초보자들을 위해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민백은 대백과사전이니 여기에는 한국학에 관한 수많은 표제어와 그 설명이 담겨 있고 그 자체로 온갖 정보의 바다였다. 문득 학부 수업 한국사강독2 기말 과제가 생각난다. 장지연의 『조선유교연원』 총론 쓰고 총론에 나오는 유학자를 조사해서 적는 것이었다. 민백이 나온 뒤에 개설된 수업이었다면 이 바다 위를 조금 더 신나게 항해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재작년 가을 무척 오랜만에 민백을 꺼내 펼쳐 보았다. 아름다운 종이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실학 항목을 정독하였다. 독자의 즐거운 마음도 한 순간, 곧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순수한 독자가 아니라 집필을 준비하는 저자의 항목 읽기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민백 재집필 대상 항목에 실학이 포함되어 재집필 의뢰가 왔을 때 친절한 설명을 들은 데다 실학 관련 논문도 몇 편 써놓아서 처음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목차 체계도 얼른 떠오르지 않고 읽어야할 문헌은 방대한데 마감은 다가오고 있었다. 겨우겨우 참고문헌 목록의 골격을 확정한 다음 읽기와 쓰기를 반복했다. 그 해 9월과 10월에 걸쳐 밤낮으로 실학에 푹 빠져 있었다. 작가 조정래의 책 제목을 빌린다면 황홀한 글감옥 안에 있었다.

 

민백 실학 원고를 쓰면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실학에 관한 비판적 인식의 대중적인 형성에 기여한 책 하면 김용옥의 『독기학설』이 떠오르기 쉽다. 그러면 이 책이 출판된 1990년이 문제의 그 해였을까? 하지만 「‘실학’ 연구의 반성과 전망」(김현영), 「조선후기 실학 연구의 문제점과 방향」(지두환), 그리고 무엇보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제20회 마지막 실학공개강좌 종합토론이 모두 1987년에 있었다. 그러니 한국 실학의 지식사회학적 연구(이태훈, 2004)가 이 해를 실학 연구의 전환점으로 설정한 것이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앞서 「한국 실학의 반성과 전망」(윤사순, 이을호, 정석종, 정창렬의 좌담, 1985)이 분출했고 또 그보다 앞서 『한국사상의 심층 연구』(1982)에서 정창렬과 김영호에 의해 실학 연구의 과제 또는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모두 실학의 학술사에서 다루어야할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우성의 회고에 의하면 198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 사회의 물질지상주의, 경제제일주의의 폐해로 인해 한국 학계의 관심은 윤리와 철학으로 이동했고 기왕의 실학 연구는 현재성을 잃어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하는 전환기에 처했다. 한국 실학의 학술사에서 1980년대가 이렇게나 중요한 시기인데 그 중요성이 기왕의 실학 연구사 정리 작업에서 충분히 인식되었을까? 아직 학술사의 관심이 충분히 발현되지 못한 연구사 정리 작업들은 주로 실학 연구에 집중했고 상대적으로 실학 인식의 시기별 변화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시기에 분출된 실학을 향한 물음들은 진지하게 검토되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필자가 연초에 이 물음들을 간추려 소개한 데에는 그러한 까닭이 있었다.(「1980년대에 쏟아져 나온 ‘실학’을 향한 물음들」 2023.1.9.) 흔히 1980년대는 변혁의 시기라고 하는데 이러한 시대 정서가 발현된 것이었을까? 경이로움을 느꼈다.

 

아울러 실학 연구의 정체성 문제를 새삼 다시 느꼈다. 실학 연구는 사상사 연구인가, 아니면 사회경제사 연구인가? 실학 연구는 연구 주제로 보면 사상사에 속한다고 보아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사회경제사 전공자의 실학자 읽기가 곧 실학 연구로 구축되었고 실학 지식의 교과서적인 이해로 통용되어 왔다. 단적으로 실학 연구의 황금기라 불리는 1970년대에 나온 실학 연구의 기념비적 문헌의 하나로 성균관대 『한국사상대계』 ‘사회경제사상편’을 꼽을 수 있다. 사상사 전공자의 실학자 읽기와 사회경제사 전공자의 실학자 읽기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이 차이는 생각보다 심대하다. 이를테면 김용섭은 일찍부터 조선후기 유교주의와 실학사상의 이분법을 제안했고, 실학사상의 이해에서 조선후기 사상계의 동향보다는 중세사회 해체기의 문제를 중시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사상사의 시각에서 본다면 실학의 역사적 이해에서 중요한 것은 중세사회 해체기라고 하는 역사철학의 부과보다는 조선후기 사상계라고 하는 역사적 맥락의 설정일 수 있다.

 

만약 사상사의 관점에서 조선후기 실학을 본다면, 조선후기 실학이 조선후기 사상계의 중요한 일부로서 존재했다면 조선후기에 발달하고 확산되는 성리학과 실학의 동시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조선후기 실학이 조선시대 사상사의 중요한 국면으로서 존재했다면 조선전기에 정립한 성리학과 조선후기에 형성되는 실학의 연계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물음이 중요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일찍이 정창렬은 김용섭의 성리학-실학 이분법에 만족하지 않고 성리학에서 실학으로의 전환 계기를 사상사적으로 설명하기를 요청했다. 박충석의 정치사상사 연구와 유봉학의 북학사상 연구는 이에 대한 대답이었다고 하겠다. 전자의 경우 필자의 학창 시절 사상사 수업 시간이 떠오른다. 조선후기 실학자는 성리학을 ‘원론’으로 했고 북학이나 고증학을 ‘방법론’으로 했다는 강론을 자주 들었다.

 

결국 실학만 알아서는 실학을 온전하게 알지 못한다는 평범한 결론에 도달한다. 조선후기 사상계를 알아야 그 중요한 일부로서 실학을 이해하는 맥락을 알게 된다. 민백에서 실학을 읽는 독자는 성리학도 함께 보고 서학도 함께 보고 민간신앙도 함께 보면서 성리학과 실학의 동시성, 실학과 서학의 동시성, 실학과 민간신앙의 동시성에 유념하시기 바란다.

 

글쓴이 : 노관범(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