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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실학’의 의미를 찾는 역사 탐험 - 노관범

by 귤담 2023.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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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실학’의 의미를 찾는 역사 탐험

글쓴이 노관범 / 등록일 2023-12-11

학문의 기초는 언어 이해이다. 혹시 다음 네 음절은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개. 화. 실. 학. 이것은 얼른 보기에도 ‘개화실-학’이나 ‘개-화실학’보다는 ‘개화-실학’으로 읽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러면 ‘개화-실학’의 뜻은 어떻게 새기면 좋을까. 개화도 역사 교과서에서 보이는 어휘이고 실학도 역사 교과서에서 보이는 어휘이다. ‘개화·실학’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개화와 실학을 빨리 말하다 보면 개화·실학이 될 수도 있다. 마침 개화와 실학 하면 여기에 들어맞는 사람도 있다. 실학파의 후손이자 개화파의 스승 하면 떠오르는 인물. 박규수, 바로 그 사람이다. 인물 맞추기 스피드 퀴즈 낼 때 박규수 보고는 얼른 ‘개화·실학’ 하고 외친다면?

 

하지만 사료에 보이는 ‘개화 실학’은 그런 뜻이 아니다. 『매일신문』 1898년 12월 7일자 논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나라에 전에 없던 큰 병 하나가 생겼으니 이 병은 개화라 하는 병이라. 잘된 일이든 못된 일이든 처음 보면 모두 다 개화한 세상이니 그러하다 하여 실상 개화를 모르는지라’. 그 원인은 개화의 참뜻에 대한 몰지각이다. ‘개화라고 하는 것은 때를 헤아려 편리하도록 하여 실상으로 힘써 백성으로 하여금 행하여 가는 것일 따름’인데 한국의 개화는 그렇지 않다. 떳떳하지 못한 행동 하고 패륜을 저질러도 개화, 요란하게 옷치장해도 개화, 이상한 음식 먹어도 개화, 집에 유리창 박아도 개화, 그런 식으로 온갖 개화가 난무하고 있다. 개화의 참뜻과 직결된 키워드, 곧 시세, 편리, 실상, 백성, 이런 어휘들이 실종된 것이 이른바 한국의 개화병이다.

 

그리하여 논설의 마지막 구절이다. ‘개화의 실상을 모르고 나도 개화 너도 개화 밤낮 개화 개화만 하면 이 개화가 필경 전국을 병들게 할 개화이니 지금 참 개화에 유의하는 이들은 개화 실학을 힘쓰고 개화의 화는 아주 떼어내 버리기를 깊이 바라오.’ 이것은 개화의 언어적 접근에 아주 유용하다. 한국 개념사 사전 항목에 <개화>를 넣는다면 필히 참고할 문장이다. 개화의 한쪽 방향에는 ‘개화의 실상’, ‘참 개화’, ‘개화 실학’이 있다. 개화의 다른 방향에는 ‘나도 개화 너도 개화 밤낮 개화 개화’가 있고 ‘전국을 병들게 할 개화’가 있으며 이로부터 오염된 ‘개화의 화’가 있다. 대한제국 초기 『매일신문』이 논하는 한국의 개화, 만민공동회 투쟁과 해산이 일어나는 문제의 그 시기에 『매일신문』의 개화 담론이 흥미롭다.

 

문제는 ‘개화 실학’이라는 용어이다. 이것이 한국의 ‘참 개화’, 한국의 ‘실상 개화’를 위한 실천의 차원에서 제기된다는 맥락은 알겠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을까. 『매일신문』 1898년 11월 5일자 논설에는 ‘실학’이 무엇인지 명확히 소개되어 있다. 즉, 지금 세계 신학문은 허문이 많은 전통 유학과 달리 실상을 밝히지 않는 것이 없다고 이르고는 구체적으로 천문학, 지지학, 격물학, 제조학, 정치학, 법률학, 부국학, 교섭학, 동식물학, 농상광공학 등등을 ‘나라를 부강할 실지 학문’으로 나열하였다. ‘이러한 실학’을 안 배우고 구습에 젖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실학의 언어적 접근에 아주 유용하다. 한국 개념사 사전 항목에 <실학>을 넣는다면 필히 참고할 문장이다. 즉, 실학이란 ‘지금 세계 신학문’과 일치하고 ‘나라를 부강할 실지 학문’으로 풀이되며 다양한 근대 분과 학문을 포괄하되 ‘이러한 실학’으로 지칭될 수 있는 존재이다. 여기서 실학이란 ‘신학문’ 또는 ‘실지 학문’과 통용되는 어휘이고 ‘지금 세계’와 ‘나라 부강’이 그 개념의 기본 방향을 지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면 개화이든 실학이든 서로 별개의 존재가 아님을 발견한다. ‘실상 개화’를 하고 있고 ‘참 개화’를 하고 있다면 개화 세상의 학문이 곧 실학이다. ‘개화 학문’이라 해도 알아들을 말인데 굳이 ‘개화 실학’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 점에서 『매일신문』 1898년 7월 28일자 논설은 개화와 실학이 연접하여 ‘개화 실학’이라는 어휘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를 헤아릴 수 있는 좋은 단서이다. 논설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현재 한국에서 ‘개화라 하는 사람은 실학은 무엇인지 모르고 머리 깎고 양복만 하면 다 되는 줄로 아’는 사람이라고. 그리하여 개화 하면 제일감으로 떠오르는 말은 ‘무실함’이다. 이것은 수구 하면 새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고 그래서 제일감으로 완고함이 떠오르는 것과 비교된다. 이 맥락에서 ‘개화 실학’의 의미에 도달하는 또다른 경로를 알게 된다. 개화에 실(학)이 없다는 세간의 인식을 배경으로 생성된 ‘개화의 실학’이 그것이다. 그것이 ‘지금 세계 신학문’, ‘나라를 부강할 실지 학문’의 ‘이러한 실학’과 만나는 것이다.

 

1898년 한국 언론에 보이는 ‘개화 실학’의 역사 탐험을 마칠 때가 되었다. 마치면서 독자 여러분께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우리는 개화 하면 주로 개화파를 생각한다. 우리는 실학 하면 주로 실학파를 생각한다. 사상의 주체를 상정하고 주체의 사상을 연구하는 방법의 결과이다. 그러나 그 주체도 언어적으로 구성된다. 만약 사상의 언어를 중시하고 언어의 사상을 연구하는 방법으로 진입한다면, 개화란 무엇인가, 실학이란 무엇인가, 이에 관한 의식이 타올랐던 갑오개혁 이후 대한제국 시기야말로 개화의 사상사, 실학의 사상사에서 본판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개화 실학’이라는 용어는 이 국면에서 분출한 인상적인 어휘 현상의 하나였다. 향후 이 시기에 대두한 문제적 키워드의 역사적 정의와 그 언어적 컨텍스트의 변화 과정에 대한 정밀한 학술적 이해가 구축되기를 희망한다. 필롤로지에 기반한 ‘언어의 사상사’를 제안한다.

 

글쓴이 : 노 관 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