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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 접근의 이면 들여다보기
글쓴이 남기정 / 등록일 2024-03-19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올해 초 김정은 위원장이 기시다 수상 앞으로 ‘각하’ 호칭을 붙여 노토반도 대지진에 대한 위로 전문을 보냈다. 이에 일본 정부가 즉각 감사의 뜻을 표명했다. 2월 15일에는 김여정 부부장이 기시다 수상의 적극적인 대북 접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에 즉각 일본 정부가 ‘유의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북일 수교는 한반도에서 정전체제를 극복하고 평화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동반되어야할 일이다. 탈냉전 이후 한반도 정전체제를 극복하고 동북아시아에 평화를 만들어가려는 시도가 세 차례 있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다. 그런데 이 세 차례 시도는 번번이 북일 관계가 경색하면서 좌절되었다. 그래서 북일 관계 진전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수적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경계했던 일본
기본적으로 북일 접근은 정전체제 극복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정작 한국과 북한이 대화를 거부한 채 정전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통일의 당위성 자체를 부정하고 윤석열 정부를 아예 대화상대로 안 본다.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에 집착하며 대화의 채널과 제도적 장치를 제거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과 일본이 수교협상으로 나아가더라도 한국, 북한, 일본의 삼각관계는 서로 어긋나는 트릴레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이 주도하는 정전체제 극복 과정에서 북일관계는 소외되어 왔다. 이제는 북한과 일본이 주도하는 질서에서 한국이 소외될 수 있다.
지난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돌이켜보자. 한국 정부가 정전체제 해체를 위해 노력할 때마다 일본에서는 이에 저항하는 세력이 조직화되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을 배경으로 일본 정부가 미완의 국민적 과제인 북일 수교에 나서자, 일본에서 반북론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마침 같은 시기에 불거진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전면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배경으로 북일 정상회담이 실현되고 평양공동선언이 나오자, 이들은 때마침 불거진 납치 일본인 문제를 제기하며 북일 수교에 반대하는 전선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부정하는 수정주의적 역사관이 전면화하고 혐한의 탁류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자 아베 정부는 북한 경계론을 펴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조언정치를 통해 이에 간섭했다. 볼턴의 회고록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아베는 수정주의 역사관에 입각해 역사전쟁을 선포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반북론자는 동시에 역사 수정주의자다. 수정주의 역사관과 반북 이데올로기는 서로 친화적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등장해서 수정주의 역사관을 채택해서 역사내전을 벌이고 반북 이데올로기를 강화해 북한과 전면적 대결 상태에 들어가 있다. 해체과정에 들어섰던 정전체제는 다시 살아나서 강화되었다.
한반도 국제정치의 운전석을 넘보다
한국전쟁에 후방기지 역할을 수행했던 일본은 정전체제 하에서 기지국가가 되어 생존과 번영을 모색했다. 정전체제 해체는 기지국가의 역할을 종료시키고 미일동맹을 흔들 수 있다. 일본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경계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전면 부정하고 등장한 윤석열 정부 하에서 정전체제는 굳건하다.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기지국가로서 전략적 가치가 상승한 일본은 이제 스스로 정전체제를 운영하는 주체로 나서려 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이 이 지역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걸 계산한 움직임이다.
과거 정전체제 해체가 북일수교를 필요로 했다면, 지금은 정전체제가 유지 강화되는 현실이 북일수교 가능성을 키우는 역설을 낳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하나 둘 내어놓은 대북 지렛대를 일본이 가져가면서 한반도 국제정치의 운전석을 넘보고 있다. 북일이 접근하는 지금 우리 정부는 어디에 서 있는가? 남북 화해협력을 절대악으로, 한일관계 개선을 절대선으로 삼는 주술적 세계관에 빠져 현실 국제정치의 무대에서 아예 내려와 있지는 않은지? 외교안보통일 정책을 총점검하고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글쓴이 : 남 기 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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