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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인정한 재상, 정자산을 떠올리며 - 송혁기

by 귤담 202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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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인정한 재상, 정자산을 떠올리며

글쓴이 송혁기 / 등록일 2024-04-09

제(齊)나라 관중(管仲)과 정(鄭)나라 자산(子産)은 공자가 높이 인정한 재상들이다. 관중의 경우 그 지대한 공헌과 함께 단점도 언급했지만, 자산에 대해서는 찬사로 일관했다. 외교 수사에 능하고 자비로운 재상이었을 뿐 아니라, 공손함과 성실함, 다정함과 의로움을 겸비한 군자라는 논평이 <논어>에 실려있고, <춘추좌씨전>에도 공자가 자산의 구체적인 언행을 듣고 찬탄하였다는 대목이 여러 번 보인다. 자산의 부고에 공자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옛사람의 은혜로움을 후세에 남겨준 사람이다.”

 

제나라를 초강대국으로 만든 관중도 대단하지만,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정나라를 아무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강소국으로 만든 자산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정나라 내에서도 강성한 귀족들에 눌려 정치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자산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춘추좌씨전>에 의하면, 너그러움과 엄격함을 조화롭게 운용했으며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각자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활용했다는 점, 특권층의 일탈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백성들의 고통은 자애롭게 돌보았다는 점, 비판 여론을 막지 않고 개선의 근거로 삼았으며 실력과 명분을 기반으로 강대국에 당당하게 대응하여 국익을 취했다는 점 등을 그 주된 이유로 들 수 있다.

 

때에 맞는 답을 위한 끊임없는 외줄 타기

 

집권 초기, 자산은 명문대가인 백석(伯石)에게 일을 시키면서 성읍을 주었다.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자 자산은 국가 안정을 위해 우선 힘 있는 이들의 욕망을 적절히 채워줄 필요가 있다고 답한다. 백석은 뜻밖의 선물에 도리어 두려워하며 반납하려 했으나 자산은 다시 그를 고관의 지위로 올려준다. 자산 역시 백석을 인정하기는커녕 그 인간성을 혐오했다. 하지만 국가의 안정을 위해 전략적 제휴를 한 것이다. 이처럼 자산은 때에 따라 정말 필요하다면 명분보다 실리를 취할 줄 알았던 인물이다.

 

자피(子皮)가 친애하는 사람을 읍재로 삼고자 하자 자산은 연소함을 이유로 반대했다. 자피는 자산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전폭적으로 지지해 준 인물이다. 하지만 바탕이 괜찮은 사람이니 일을 하면서 배워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좋게 말하는 자피에게 자산은 매섭게 일갈한다. “그대의 사랑은 사람을 다치게 할 뿐이니 누가 그대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겠습니까? 배운 뒤에 다스리는 것이지 다스림을 배움의 과정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누가 값비싼 비단을 마름질 연습용으로 쓴단 말입니까?”

 

지방관 수행을 비단 마름질에 비유하는 관용적 표현을 낳은 일화다. 이 말을 들은 자피가 감탄하면서 나랏일은 물론 집안일까지도 앞으로 자산의 명대로 처리하겠다고 하자 자산은 다시 말한다. “각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은 것은 각 사람의 얼굴이 같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어찌 그대의 얼굴이 제 얼굴과 같겠습니까?” 각자의 상황이 다르고 사람 마음 역시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자산은 잘 알았다.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정치를 펼친 것이야말로 자산의 자산다운 점이었다. 정해진 원칙만 따르기는 오히려 쉽지만, 자산은 끊임없는 탐색과 아슬아슬한 균형잡기를 통해 때에 맞는 답을 찾아갔다.

 

남을 훼손하여 내 뜻을 이루지 않는다는 원칙

 

자산이 섬기던 정나라 군주 간공이 죽었다. 장례를 위해 길을 내야 하는데 그 중간에 유씨 집안의 사당이 있었다. 그 건물을 헐면 오전에 하관할 수 있고 아니면 정오가 되어야 가능한 상황이었다. 여러 제후국에서 문상 온 빈객들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 헐어야 한다고들 했지만, 자산은 지체되더라도 헐지 말고 돌아가라고 명했다. 군주의 장례를 위해 백성의 손해는 무시되어도 그만이었던 시대였지만, 남을 훼손하여 자기 뜻을 이루는 것은 예(禮)가 아님을 알았던 것이다. 때에 따라 명분과 실리를 오가며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근간에는 누군가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이득을 취하지는 않겠다는 원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역과 나라의 정치를 대신 맡아줄 이들을 선발하는 일이 다양한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 2,500여 년 전의 정나라는 너무 멀고 오래된 이야기지만, 고군분투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때에 맞는 답을 찾아나가고 나름의 원칙을 견지하고자 힘쓴 자산의 말과 행동은 여전히 울림을 준다. 이런 정치인을 오늘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총선의 계절, 오늘의 정치판 이야기를 잔뜩 썼다가 다 지워 버리고 그 옛날 자산의 이야기만으로 지면 대부분을 채운 뜻도, 그런 한 가닥 소망 때문이다.

 

글쓴이 : 송 혁 기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