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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원의 공전제가 던지는 메시지 - 송양섭

by 귤담 2025.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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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원의 공전제가 던지는 메시지

글쓴이 송양섭 / 등록일 2025-10-05

격동기의 한복판을 살았던 유형원(1622~1673)은 『반계수록』을 통해 장대한 국가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가 제시한 개혁구상은 국가와 사회 거의 전 부문에 걸쳐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첫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공전제(公田制)’이다.

 

격동의 시대, 이상국가를 꿈꾼 유형원

 

공전제는 농민들에게 ’공전’이라는 토지를 지급하여 생계의 기반으로 삼도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군역을 비롯한 각종 직무에 종사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었다. 공전은 농민뿐 아니라 관료·왕족 등에게도 지급되었고 국가의 각급 기관 등에도 배정되었다.

 

농민 1명이 받는 1경의 공전은 약 5,000평 정도로 유형원은 이 정도 규모라면 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공전제로 육성한 건실한 소농은 유형원이 구상한 국가운영의 원동력이 되었다. 국가는 백성들의 생활기반을 보장해줌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다.

 

유형원이 공전제를 구상한 것은 모름지기 공적 위상을 가져야 할 토지가 사적인 소유에 의해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당시 만연한 사회문제의 원흉은 토지의 사적 소유였다.

 

이러한 생각은 꽤 보편적인 것이기도 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시기 여러 가지 형태로 확인된다. 16세기 영국의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모든 재산의 공유를 주장했고, 19세기 미국의 헨리 조지도 사회적 불평등의 근본적 원인으로 토지사유를 들면서 토지 단일세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중국의 대동사회는 모든 토지를 공유하는 사회였고, 명청대 많은 토지개혁론에서도 이러한 관념이 나타난다.

 

조선후기에도 이익의 한전제나 정약용의 여전제와 정전제 등이 있었다. 유형원이 생각한 이상사회도 이러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정전제를 재해석하여 제시한 공전제는 유형원이 펼쳐낸 국가개혁 구상의 전제였다.

 

민생안정과 부국강병, 두 마리 토끼를

 

공전제는 어떠한 효능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유형원은 당시 주요 경제지표를 토대로 공전제를 적용했을 때 재정과 군사 부문에서 가져올 효과를 제시하였다. 세수는 유형원 당대 약 29만여 곡에서 455만여 곡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대략 15배에 달하는 엄청난 증가였다. 병력의 경우, 5만 6천여 명에서 62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통상 국가재정의 확충은 이른바 증세의 논리로 이어져 담세자(납세자)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는 경우가 많다. 탐욕스러운 군주의 수탈로 간주되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가벼운 조세부과로 백성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야말로 이상적인 것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왕은 부를 민간에 남겨둬야 했다. 이러한 논리는 국가의 부를 덜어서 민간에 보태준다는 의미의 이른바 '손상익하(損上益下)'라는 말로 함축된다. 손상익하야말로 바람직한 경제정책의 지향으로, '손상'과 '익하'는 서로 상충되는 개념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유형원의 공전제는 이러한 관념을 깨고 민생의 안정과 국가재정의 강화가 제로섬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토지를 매개로 한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이야말로 부국강병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증명하고자 했다. 민의 경제적 안정과 부국강병이라는 두 가지 목표의 동시달성이 가능할 뿐 아니라, 민생의 안정이야말로 부국강병의 기초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시장경제가 독립영역으로 자리 잡지 못한 조선왕조에서 국가의 정책은 사회와 민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통사회에서 조세수취와 재정운영이 백성들의 삶을 좌우하는 중대한 요소 중 하나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증세·감세 문제나 통화량이나 이자율의 조절에 시장이 요동치는 데서 보듯, 조세나 재정이 경제영역 전반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경세제민, 물질만이 아닌 삶 전반의 의미

 

한국사회는 고도성장기를 지나 이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거듭되는 경기 침체는 국민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역대 많은 정부가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볼 만한 성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원래 경제, 즉 경세제민은 단지 물질적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인간 삶의 영역 전반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의미를 가진다. 경제성장이라는 성과주의에 매달려 사회적 분배와 국민의 삶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이러한 경제의 본뜻과도 어긋난다.

 

현재 한국사회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난제와 마주해 있다. 이 중에서도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국민 생활을 여유롭고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현재 한국사회가 처한 수많은 난제를 풀기 위한 중요한 열쇠가 아닐까? 유형원이 던지는 메시지는 상식적이지만 잊기도 쉽다. 바쁜 생활 속에서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 사족 :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유형원의 토지개혁론을 ‘균전제’로 잘못 부르는 경우가 있다. ‘공전제’가 맞다. ‘공전제’를 포함한 많은 논자들의 개혁론이 ‘균전’을 지향한 것은 분명하지만, 『반계수록』에서 이를 지칭하는 용어는 분명 ‘공전제’이다.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글쓴이 : 송 양 섭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주요 저서]

『정약용의 눈으로 본 지방사회』(공저·2025)

『동아시아의 근대, 장기지속으로 읽는다』(공저·2021)

『18세기 조선의 공공성과 민본이념-손상익하의 정치학, 그 이상과 현실』(2015)

『조선후기둔전연구』(200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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