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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강조한 자덕(慈德) - 김문식

by 귤담 2025.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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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강조한 자덕(慈德)

글쓴이 김문식 / 등록일 2025-10-30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인 손흥민 선수가 얼마 전에 영국의 토트넘 홋스퍼팀에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FC팀으로 이적하였다. 당시 신문에서는 손 선수의 이적 사실을 보도하면서 ‘축구를 잘하고 잘 생기기도 한데다 인성이 좋은 완성형 선수’라 하였다. 필자는 여기서 ‘인성이 좋다’는 표현에 눈길이 갔다. 손 선수가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가진 선수이면서도 늘 겸손하고 예의가 바르며, 동료 선수를 잘 챙기는 것을 인성이 좋다고 표현한 것이다.

 

명덕(明德)은 효(孝), 제(弟), 자(慈)의 세 덕목

 

다산이 활동한 시대로 가면 인성이 좋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덕(德)이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유덕자(有德者) 혹은 덕망(德望)이 높은 사람을 중시하였다. 그리고 덕이 두텁고 인심이 후하다는 의미의 후덕(厚德)한 사람이란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다. 이를테면 유모를 고를 때는 말수가 적고 후덕한 사람을 구하였고, 스승을 정할 때는 학덕(學德) 즉 학문과 덕망을 고루 갖춘 사람을 찾았다.

 

『대학』은 “대학의 도는 명덕(明德)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도달함에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다산은 여기에서 밝혀야 하는 명덕을 효(孝), 제(弟), 자(慈)라는 세 가지 덕목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가정에 적용하면 자식은 효, 형제는 제, 부모는 자를 실천해야 하고, 사회에 적용하면 군주를 섬기는 효, 연장자를 섬기는 제, 대중을 부리는 자를 실천해야 한다고 하였다.

 

『대학』의 명덕을 효 제 자로 해석한 학자는 다산 이전에도 여러 사람이 있었고, 윤휴나 이덕흠 같은 조선의 학자도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 서명응은 정조가 건립한 규장각(奎章閣)을 국왕이 효 제 자를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는 기관으로 보았다. 규장각이란 이름은 세조가 짓고, 그 편액은 숙종이 썼으며, 영조 대의 편차인(編次人)을 확대하여 관리를 두었으므로 효라 하였고, 규장각 소속의 하급 관리가 상급자를 예로 섬기고 공경하였으므로 제라 하였으며, 당의 학사원(學士院), 송의 용도각(龍圖閣), 명의 내각(內閣) 제도를 참고하여 규장각에 소속된 학자들을 예우하였으니 자라 하였다. 정조는 규장각을 통해 효 제 자를 실천하는 모범을 보였고, 이를 본 백성들이 국왕을 본받아 효 제 자를 실천하게 되기를 바랐다는 말이다.

 

부모를 섬김, 연장자를 대우, 어린이를 보살핌

 

다산은 『대학』의 명덕을 효 제 자로 해석함과 아울러 태학(성균관)과 향교의 교육을 이 세 가지 덕을 실천하는 의례로 설명한 것이 특이하다. 다산은 대학을 태학으로 보고, 태학의 학생은 천자의 아들이나 고위 관리의 적자처럼 장차 국정을 이끌 지도자로 보았다. 그리고 태학의 교육은 효 제 자를 실천하는 세 가지 예로 보았다. 첫 번째로 효를 실천하는 예는 노노(老老) 즉 백성의 노인을 노인으로 섬기는 것으로 군주가 기로(耆老)들을 봉양하는 양로례(養老禮)이고, 두 번째로 제를 실천하는 예는 장장(長長) 즉 백성의 연장자를 연장자로 섬기는 것으로 세자가 성균관에서 연장자를 우대하는 입학례(入學禮)였다. 세 번째로 자를 실천하는 예는 휼고(恤孤) 즉 백성의 어린이를 사랑으로 기르는 것으로 군주가 고아를 먹이는 향고례(饗孤禮)였다. 다산의 장차 국가의 지도자가 될 태학의 학생들이 이 세 가지 예를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천하에 명덕을 밝힐 수 있다고 보았다.

 

성균관과 지방의 교육은 덕을 실천하는 의례로

 

다산은 태학의 세 가지 예를 지방의 향교 교육으로 확대하였으며, 이는 『목민심서』에 잘 나타난다. 태학에서는 군주와 세자가 세 가지 예를 거행하여 모범을 보였으나 지방에서는 수령이 이를 거행하는 모범을 보여야 했다. 수령은 백성의 살림살이를 살필 뿐만 아니라 백성을 가르치는 임무까지 가졌기 때문이다. 또한 태학에서 거행하는 세 가지 예는 양로례, 입학례, 향고례였으나 지방에서는 제를 실천하는 입학례가 향음례(향음주례)로 바뀌었다. 수령이 양로례, 향음례, 향고례를 거행하는 장소는 향교였고, 세 가지 의례를 거행하는 시기는 음력 9월, 음력 10월, 음력 2월이었다. 이때는 농사를 짓지 않는 농한기라 의례를 거행하기 편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수령이 주인이 되어 빈(賓)으로 초대하는 대상은 의례마다 달랐다. 양로례는 80세 이상의 노인을 초대하였고, 향음례는 70세 이하의 사람이었으며, 향고례는 나라를 위해 죽은 충신의 후손이었다. 연령대를 기준으로 보면 노인층, 중장년층, 청년층으로 구분되었다.

 

수령이 이들을 예우하는 방식도 달랐다. 먼저 좌석이 구분되었다. 양로례의 빈은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동쪽에 앉은 수령보다 높은 자리에 앉았고, 향음례의 빈은 서북쪽에 앉아 동남쪽에 앉은 수령과 마주 보았으며, 향고례의 빈은 서쪽에 앉아 북쪽에 앉은 수령보다 낮은 자리에 앉았다. 수령이 이들을 맞이할 때는 대문 밖까지 나와 절을 하였고, 좌석에 앉아 술과 음식을 올릴 때도 빈에게 먼저 권하는 방식으로 예우하였다. 또한 양로례와 향음례에는 음악 연주와 가수의 노래가 있었으며, 양로례에서는 빈에게 붓과 종이를 제공하여 수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게 하였다. 이때 노인들은 수령에게 민원 사항을 전달할 수 있었다.

 

다산이 가장 중시한 것은 자덕(慈德)을 실천하는 향고례였다. 다산은 향고의 고(孤)를 고아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희생된 충신의 자손으로 보았고, 수령이 향고례를 거행함으로써 백성에게 자덕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하였다. 다산은 『목민심서』의 애민(愛民) 편에서 각종 고통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제하는 휼민(恤民) 방안을 제시하였다. 고아를 거두어 길러서 백성의 부모 노릇을 해야 한다거나 장애인과 중환자의 역(役)을 면제해 주어야 한다는 방안이 그러한 예이다. 그러나 다산은 수령의 임무는 백성의 살림살이를 돌보는 애민이나 휼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백성에게 명덕을 가르치는 교민(敎民)의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다산은 수령이 각 고을에서 양로례, 향음례, 향고례를 거행하여 효 제 자를 실천하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백성들에게 효 제 자를 가르칠 수 있다고 보았다.

 

명덕 실천, 지도자가 모범을 보여야

 

앞서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며, 지극한 선에 도달하는 것’이라 하였다. 다산은 이를 군주나 수령과 같은 지도자가 양로례, 향음례(입학례), 향고례를 거행하여 명덕에 해당하는 효 제 자를 실천하고, 이를 보고 배운 백성들이 효 제 자를 실천하게 되면 지극한 선에 도달한다고 해석하였다. 지도자에게 효 제 자를 실천하는 모범을 보일 것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6월에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지급되었다. 이는 민간 소비를 활성화하여 민생경제를 회복하려는 조치로 애민 내지는 휼민 방안에 해당하며, 교민 방안이라 하기에는 미흡함이 있다. 다산은 명덕을 효 제 자로 파악하고, 지도자의 명덕 실천을 강조하였으며, 모든 사람이 지도자를 본받아 명덕을 실천하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보았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덕이 있는 사람, 인성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모범을 보일 지도자가 나오길 기대한다.

 

글쓴이 : 김 문 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

-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 (전) 한국실학학회 회장

[주요 저서]

- 『조선후기 경학사상 연구』,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정조의 제왕학』, 『조선후기 지식인의 대외인식』, 『왕세자의 입학식』, 『정조의 생각』, 『조선 왕실의 외교의례』, 『원행을묘정리의궤』 등

☞ 이 글은 2025 신(新) 경세유표 연구 및 교육 지원사업 의 하나로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