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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남조선’을 버릴 때
글쓴이 조운찬 / 등록일 2026-05-19
일연의 《삼국유사》는 ‘고조선’을 시작으로 우리 역사를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고조선’은 ‘위만조선’ 이전의 옛 조선, 즉 ‘단군조선’을 가리킨다. 일연은 문헌을 인용해 위만조선에 앞서는 ‘기자조선’의 존재를 언급했지만, 고조선의 중심 서술은 단군에 맞춰져 있다. 중국 고대 문헌 《산해경》도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고 전했다. ‘조선’은 우리 민족 최초의 국호이자 한반도 일원을 가리키는 가장 오래된 용어다.
고대국가 조선이 망한 뒤 1,500여 년이 지나 또 하나의 ‘조선’, 이씨왕조의 조선이 탄생했다. ‘조선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해동 나라들의 국호는 많았지만, 기자만이 중국 천자의 명을 받아 조선왕이 되었다며 기자의 ‘조선’을 계승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조선왕조의 국호는 ‘고조선’인 ‘단군조선’보다 여말선초의 지식인들에게 문명국으로 떠받들어졌던 ‘기자조선’의 영향을 더 받았다.
국호의 두 흐름, ‘조선’과 ‘한’
전통 시대에 ‘조선’과 견줄 만한 국호로는 ‘한’(韓)을 들 수 있다. 진한, 마한, 변한의 삼한에 뿌리를 둔 ‘한국’은 삼한의 맥을 잇는 백제, 신라, 가야를 포괄한다. 지리적으로는 한반도 중남부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한’(韓) 국가들의 맥은 통일신라 때까지 이어졌다. 또 고구려를 계승하며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도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국호인데, 오늘날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세계인들과 만나고 있다.
근대국가로 들어오면서 국호에 나라의 상징과 국가 정치체제를 담아내면서 국호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조선 말기 고종이 황제라 칭하면서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명명한 것은 제국주의 시대에 열강을 향해 독립국임을 선포하면서 사대적이며 봉건적인 국호라는 비난을 받던 ‘조선’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국권을 빼앗긴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나 단체들은 광복된 날을 기약하며 제각기 미래의 국호들을 준비하였다. 대한제국 정부에 관여했거나 국권 회복 투쟁을 벌였던 독립운동가나 지식인들은 ‘대한’, ‘한’, ‘한국’ 등을 미래 독립국가의 국호 키워드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는 황제가 아닌 ‘민’이 통치하는 나라였다. 상해, 한성 등지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였다.
우익 민족주의 계열이 ‘대한’(한국)을 선택했다면, 좌익 사회주의자들은 ‘조선’을 선호하였다. 수천 년 동안 한반도를 일컫는 용어인 데다 조선 500여 년간 국호로 쓰여 일반 민중들에게 ‘조선’만큼 친숙한 이름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해방 후 남과 북에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서 고착화되었다. 남과 북에 각각 들어선 ‘대한민국’(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이라는 두 나라의 국호는 역설적으로 하나의 나라로 거듭나자는 독립투쟁과 통일운동의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개선 위한 현실 긍정의 첫걸음, 국호 불러주기
이처럼 국호의 역사를 길게 살핀 것은 근래 남과 북에서 상대방의 공식 국호를 칭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3월 개정한 헌법에 남과 북의 두 국가론을 명문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 헌법에서는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표기하고, ‘북반부’나 ‘조국통일’과 같은 통일 관련 용어도 삭제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통일부 주최 학술토론회에서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 남북 관계를 한·조(한국·조선) 관계로 지칭하면서 사실상 ‘조선’의 국호를 공론화했다. 정 장관의 발언은 2023년 말 북한이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대남정책의 방향 전환을 선언한 데 대한 대응적 맥락에서 나왔지만, 남북을 정상적인 국가 관계로 구축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정 장관의 발언은 분명 ‘파격’이다. 야당은 북한 국호를 공론화한 정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로 으르렁대는 형제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만나는 이웃이 나은 법이다. 남북 관계를 ‘한겨레’, ‘한민족’이라는 온정주의만으로 풀어갈 수는 없다. 충돌보다 공존을, 적대보다 평화를 원한다면 오히려 감정을 걷어내고 냉정하게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향후 개헌 때 우리 헌법상의 영토 규정 및 ‘통일 지향’의 문구 수정도 고려해 볼 만하다.
북한이 모든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이 정상 국가의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북한의 국호를 호명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태도 변화일 수 있다. 남과 북이 각각 ‘북한’과 ‘남조선’이라는 말로 서로를 옥죄는 대신, ‘조선’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일은 현실을 긍정하면서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 글쓴이 : 조 운 찬 (문화 칼럼니스트)

- 문화 칼럼니스트
-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저서]
《망우리 비명록》(파이돈, 2025, 공저)
《우리 문학을 이끈 11명의 작가들》(빈빈책방, 2024)
《옛글의 풍경에 취하다》(역사공간, 2019)
《문집탐독》(역사공간, 2018)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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