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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프라의 상속과 그 문화(文華) :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 김학수

by 귤담 2023.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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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프라의 상속과 그 문화(文華) :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글쓴이 김학수 / 등록일 2023-02-27

성호학의 양성자 가운데 식산 이만부(李萬敷, 1664-1732)라는 석학이 있다. 그는 본디 서울의 기환자제(綺紈子弟)로 태어났지만 과거와 사환을 마다하고 평생 독서와 저술에 매진한 순유(醇儒)였다. 성호의 형 이잠(李潛)과 이서(李漵)와는 집우(執友)의 관계였기에 성호 또한 어릴 때부터 그의 학문적 태도와 지취(旨趣)를 관감(觀感)·훈습(薰習)하며 남인실학의 토대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17세기 문벌사회에서 과거(科擧)와 사환에 대한 자단(自斷)은 말그대로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 더구나 고조로부터 부친에 이르기까지 내리 4대가 문과에 합격한 사환가에서 이만부가 자처한 백두(白頭)의 길은 용인되기 어려운 일탈행위였다.

 

우선 아버지부터 설득해야 했고, 혹시나 모를 험한 사태를 걱정하여 면담보다는 필담을 택했다. 사안의 심각성만큼이나 사연도 길었지만 진정성에다 향후 비전을 명쾌하게 제시한 편지[上庭下稟廢擧書]는 아버지 이옥(李沃)의 불만스런 동의를 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만부는 학문의 본질을 양심(養心)으로 인식했고, 그것은 과욕(寡慾)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만부에게 과거는 천하의 대욕(大慾)이 이글거리는 용광로이자 동시대 청년 유자들의 에너지를 송두리째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착상되었다. 이에 그는 성정(性情)을 파탄시키는 이욕(利慾)의 굴레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했고, 옛사람의 그 가르침을 복응(服膺)하여 학문을 통해 조선의 문명성을 고양하는 것으로써 선언에 따른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숨은 조력자의 존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조부 이관징(李觀徵, 1618-1695)이었다. 벼슬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정경의 반열에까지 올라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고, 원우완인(元祐完人)으로 일컬어질만큼 인덕도 쌓은 그에게도 남모르는 고충이 있었다. 바로 ‘학자콤플렉스’였다. 대대로 어사화를 꽂고 금관자, 옥관자를 드리운 이가 집안에 가득했지만 ‘유자(儒者)’로 행신할 수 있는 가족 구성원은 사실상 전무했기 때문이다. 사환의 외피에 도학의 컨텐츠를 담아 한 시대가 주목하는 집안을 일구고 싶었던 것이 봉조하(奉朝賀)의 직함을 띄고 있었던 그의 마지막 염원이었던 것이다.

 

이 무렵 그가 눈여겨 본 손자가 바로 만부였다. 이관징은 슬하에 4자 10손을두었지만 호학의 천품을 허여(許與)할 수 있는 존재는 만부가 유일했던 것 같다. 모든 관심과 격려는 만부에게로 쏠렸고, 그것의 하이라이트는 애장 서책의 내림이었다.

 

1693년 이관징이 숙종으로부터 하사받은 논어언해 손자 만부에게 증여 _식산종택 소장

 

현종과 숙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이관징은 다수의 내사본을 소장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4서 5경을 비롯하여 학인들의 지적 기호(嗜好)를 자극할만한 진본(珍本)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관례대로라면 이 책들은 장손 만수(萬秀)의 몫으로 대물림되었겠지만 그의 판단은 달랐다. 내사본은 물론이거니와 애장본의 대부분을 만부에게 전계했고, 거기에는 마지막 하사본인 <논어언해>도 포함되었다. 남김없이 다 준것이었다. 이것은 학자 탄생의 갈망을 담은 지식인프라의 상속이었고, ‘학자집안’의 이룸이라는 웅대한 미션의 부여였다. 서책의 전계 사실은 족보에 각인(刻印)되어 그 누구의 잡답도 불허하는 안전장치로 작동했다.

아들의 폐거(廢擧)를 받아들였던 이옥의 용단, 전폭적인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던 조부 이관징의 ‘학자프로젝트’는 대성공을 거두며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식산은 재취 처향인 상주로 낙향해서도 끝내 초심을 지킴으로써 ‘처사(處士)’·‘징사(徵士)’의 예칭을 얻었고, 정력적인 독서를 통해 식산집(息山集;20책), 역통(易統;3책), 역대상편람(易大象編覽;1책), 사서강목(四書講目;4책), 도동편(道東編;9책), 노여론(魯餘論;1책), 태학성전(太學成典;3책), 예기상절(禮記詳節;5책), 지서(志書;4책), 독서법(讀書法;1책), 독서일기(讀書日記;1책) 등 무려 50 여책에 달하는 한국유학사에 빛나는 저술을 남김으로써 아버지와 조부의 믿음과 기대에 부응했던 것이다.

메달을 목에 건 선수에게만 열광할 것이 아니라 그 선수를 길러낸 코치의 노고를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쓴이 : 김학수(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한국사학 전공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