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4월 24일
꽃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올의 바람에도 먼 기척을 밝혀오는
세상사 편지 한 통을 내게 전해 줍니다.
내 앞에 덩그러니 앉아 있질 못합니다
꽃잎은 지면서도 추하지 않는 그리움
이제는 홀로 걷던 길 다시 땅에 숨습니다.
-이재창 시인의 「꽃」 전문 (2000년 시와시학, 겨울호)
“때가 오니 천하가 모두 힘을 같이 했건만/운이 다하니 영웅도 스스로 할 바를 모를 내라/백성을 사랑하는 정의일 뿐 나에게는 과실이 없나니/나라를 위하는 오직 한마음 그 누가 알리(時來天地皆同力 運去英雄不自謀 愛民正義我無失 爲國丹心誰有知)“ -전봉준(1895년 오늘 교수형당함) ‘유시’ “나는 바른 길을 걷다가 죽는 사람이다. 그런데 반역죄를 적용한다면 천고에 유감이다.”-사형선고 받고 한 말
*오늘은 세계 실험동물의 날 1979년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국제생체해부반대협회가 전 대표 휴 다우닝 남작의 생일에 맞춰 제정
*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일: 아르메니아
1011년 [음]현종(顯宗) 2년, 사신을 접대하는 영빈관(迎賓館)과 회선관(會仙館)을 설치함
1283년 [음]충렬왕(忠烈王) 9년, 유성(流星)이 떨어져 궁궐에 화재가 발새함
1413년 [음]태종 13년, 군사(軍士)의 수양부모(收養父母) 상(喪)을 100일로 정함
1427년 [음]세종 9년, 명나라 사신이 구리 도금한 불상을 요청함
1430년 [음]세종 12년, 판우군 부사 변계량(卞季良) 죽음
1469년 [음]예종 1년, 사초(史草)를 몰래 고친 민수(閔粹)를 국문함
1546년 [음]명종 1년, 강원·전라·경상도 등지에 우박이 내려 큰 피해를 입음
1548년 [음]명종 3년, 황해도에서 전염병으로 158명의 사망자 발생
1553년 [음]명종 8년, 이황(李滉)이 대사성(大司成)이 됨
1601년 [음]선조 34년, 이항복(李恒福) 등이 이몽학(李夢鶴)의 난 토벌 공신을 등급별로 기록하여 보고함
1618년 [윤]광해 10년, 비변사가 명의 파병 요청을 수용하고자 청함
1624년 [음]인조 2년, 일본에서 조총(鳥銃)을 사 오게 함
1694년 [음]숙종 20년, 송시열(宋時烈)과 관련되어 처벌받은 사람들을 등용함
1704년 [음]숙종 30년, 여양 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에게 영의정(領議政)을 증직함
1720년 [음]숙종 46년, 숙종의 병이 심해져 시약청(侍藥廳)을 설치함
1725년 [음]영조 1년, 환상(環上)과 신포(身布) 중에 예전 1년 조는 탕감하게 함
1726년 [음]영조 2년, 역대 국왕의 글을 모아 책자로 간행함
1728년 [음]영조 4년, 나만서(羅晩瑞, 아들 나숭곤이 무신의 난에 연루됨)를 처형함
1756년 (조선 영조32)영성군, 암행어사 박문수 세상떠남
ㅡ조선 후기 부정한 관리를 적발한 암행어사로 이름이 높은 문신. 본관은 고령, 자는 성보, 호는 기은으로 소론 계열의 인물이었지만 당론의 폐해를 비판하고 당색에 구애됨이 없이 인재를 등용할 것을 주장했다. 또 농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부담으로서 군포의 폐단을 들고, 이를 적절히 감면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지적했다. 1723년 증광문과에 합격하여 예문관 검열로 벼슬길에 오른 뒤 암행어사가 되어 영남과 호남 지역을 순행하면서 부패한 관리와 제도를 엄정하게 적발하여 많은 일화를 남겼다.
1792년 [음]정조 16년, 강원도에서 화재로 간성 민가 161호, 양양 민가 54호, 고성 민가 28호가 연소됨
1801년 [음]순조 1년, 왕실 족보인 《선원보략(璿源譜略)》을 증수하여 완성함
1819년 [윤]순조 19년, 태조가 즉위 전에 말을 달리던 곡산부(谷山府)에 비(碑)를 세움
1862년 [음]철종 13년, 장시(場市)와 포구(浦口)의 무명잡세 등을 혁파하게 함
1871년 [음]신미양요 발생, 중군 어재연(1823~1871) 등 전사자 53∼55명, 부상자 24명 발생
1895년 동학 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 작고
1895년 〈각 지방 감옥서 설치건〉 반포
1902년 경의철도 기공
1915년 조선호텔서 전조선기자대회 개회 - 조선신문협회 조직키로 결정. 경성기자단 발기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 각국에 한국소식 선전 위해 통신부 설립
1921년 이상재-윤익선 등 고학생구제회 창립
1923년 형평사 설립
1924년 조선청년총동맹, 임시대회 개최하여 청년·교양·조직·교육 등 제문제 토의
1925년 경성에서 형평사 전선대회 개최, 진주 총본부를 진주 형평사로 개칭, 경성 중앙 총부 승인
1926년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 김복동 출생
1930년 대한민국의 언론인 조용수 출생
1932년 3.1운동 민족대표33인 이필주 세상떠남
1935년 양주동·이극로·이희승 등 20여 명, 조선음성학회 발기, 창립 총회 개최
1937년 전화 지급 개설 수, 총 5,000대(경성 1,380대)
1941년 조선총독부, 전 조선 국민학교생 대표 선출, 일본 신사 강제 참배
1947년 입법 의원, 〈부일 협력자 처단법〉 수정안 상정
1949년 이승만 대통령, 미군 철수 후 자력 국토통일 기자 회견
1950년 대한정치공작단사건(야당의 간첩접선 적발)
1950년 문교부, 문맹퇴치운동 5개년 계획 발표
1950년 제1회 국전 열림
1951년 공보처, 거창 양민학살사건 진상 발표
1952년 서민호 의원, 순천서 서창선 대위를 사살
ㅡ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제안했으나 국회가 이를 부결하고 오히려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해 이 대통령과 국회가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던 때였다.
1952년 4월24일, 서민호(徐珉濠) 민의원이 이튿날 치러질 제1회 지방의회의원선거 감시차 전남 순천을 찾았다. 오후 8시40분쯤, 서 의원 일행이 한 식당에서 술을 마시던 중 광주에서 출장온 서창선 대위와 사소한 말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이 격해지자 서 의원은 권총을 발사했고 서 대위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국회가 정당방위를 내세워 살인혐의로 구속된 서 의원을 석방시키긴 했지만 이 대통령과 대립하고 있던 국회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서 의원이 평소 내각책임제 개헌에 앞장서 이 대통령이 기피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방선거도 여당인 자유당이 압승을 거둔 터였다. 민족자결단·백골단 등 정체 모를 집단들이 때를 만난 듯 “살인 국회의원 석방한 국회는 해산하라”며 야당 의원들에게 공공연히 테러를 가했다. 곧 닥쳐올 ‘부산정치파동’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5월 25일 0시를 기해 선포된 계엄령으로 다시 수감된 서 의원은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계엄령 해제 후 8년 형이 확정돼 1960년 4·19 때까지 7년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1952년 총리서리에 이윤영 임명
1953년 백두진 제4대 국무총리 취임
1954년 인하공과대학 개교
1957년 한국, 영국 대사 교환
1957년 한-미 항공협정 조인
1960년 이기붕 부통령 사임, 이승만 대통령 자유당총재직 사임
1962년 혁명재판소, 통사당·통일민전 사건 선고
1964년 황종률 전 재무장관을 사직공원 부정불하사건 관련혐의로 구속
1964년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발효
1968년 중요기관과 시설 자체방위 위한 청원경찰 발족
1971년 박정희 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 부산 유세에서 4선 불출마 선언, 후계자 육성 천명
1976년 팔당수원지 건설공사 착공
1978년 소련에 강제착륙했던 KAL기 승객 귀국
1978년 전남 함평에서 고구마 부정수매사건 발생
1979년 한국-세네갈, 경제기술 협력 및 문화협정 체결
1980년 재경 종합대학 교수 361명, 교수재임명제 철폐. 학원민주화촉구 등 학원사태에 관한 성명서 발표
1984년 최신 한국산 구축함, 울산에서 진수
1984년 서울고등법원, 명성사건 항소심에서 김철호 피고인에게 징역 15년을 선고
1985년 전두환 대통령 방미(27일 한.미정상회담, 신문발표문 통해 남북한직접대화등 지지)
1986년 개기월식 7시40분∼자정)
1986년 성균관대, 연3일의 시위로 임시 휴업
1987년 국어연구소 한글맞춤법 및 표준어 개정시안 발표
1987년 박종철 고문 사건 문책으로 직위해제 된 경찰관 3명 보직 발령
1987년 대한결핵협회, 대한민국 15세 이상 인구중 32%가 흡연자이고, 흡연율은 남자 61.5% 여자 7%라고 발표
1989년 한글 워드프로세서 아래아 글 1.0 출시
1989년 남북한기독교대표단,「한반도통일회의」서 한반도비핵화와 평화협정체결등에 노력키로 합의
1989년 전국 115개대학 전임교수 1인당 학생수 (대학원생 포함)는 88년 4월 현재 평균 46.2명이라고 밝혀짐
1989년 건설부, 주택 200만채 건설계획의 일환으로 15개지구 411만평을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추가지정
1989년 언론인, 작가 송지영 사망
1990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4남인 현대 알루미늄 회장 정몽우(45) 극약을 먹고 자살.
1990년 전국 농민회 총연맹(전농) 결성.
1991년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일본) 개막, 남북 단일팀(코리아) 출전
ㅡ일본 지바에서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개막됐다. 남북한은 남북분단 46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단일팀인 `코리아`팀으로 출전했다.
4월 29일에 치러진 여자단체전 결승에서 코리아팀은 중국을 3대 2로 꺾고 세계를 제패했다. 2대 2 동점으로 중국과 숨막히는 접전을 벌인 코리아 여자팀은 마지막 단식에서 북한의 유순복이 중국의 가오준에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조국에 감격적인 승전보를 안겨주었다.
우승의 주역인 홍차옥, 유순복, 현정화, 이분희를 비롯해 우리 동포들은 경기장에 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단일기가 오르고 단일팀가인 아리랑이 울려퍼지는 순간 남북의 7천만 동포는 그야말로 하나라는 것을 실감했다. 특히 이 대회에서 남북의 선수들은 "내몸 하나보다 코리아팀이 더 중요하다!"는 각오하에 코리아팀의 승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연습과 경기에 임했고, 그 결과로 단체전 우승을 일구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92년 딸 실종신고는 아버지 자작극-폭행에 시달린 모녀 가출
1992년 한국교육개발원(원장 신세호),사교육비는 공교육비 8조 6900억원을 초과한 9조 4000억원으로 집계
1993년 박준규 국회의장, 재산공개 파동과 관련 의장직 사퇴서 및 사퇴사유서를 국회에 제출
1993년 정부, 전노협 등 재야노동단체들이 낸 5월1일 세계노동절 기념행사의 공식집회 허가.
1993년 아시아 여성심포지엄(도쿄) 남한 북한 일본 참가 통일문제와 일본의 전쟁책임 논의
1996년 북한 외교담당 고위대표단, 4자회담 논의 위해 미국 방문
1996년 한국노동청년연대 간부13명 중부지역당사건 관련3명 국가보안법으로 무더기연행구속
1996년 강원도 고성에 산불 가옥70채 불탐 이재민160명 산림3,000ha 불탐
1996년 아암도 노점상 이덕인 씨 사망149일만에 장례
1996년 김영삼 대통령 "신노사관계구상" 발표
1997년 노사개혁위원회 설치
1997년 97 서울모터쇼 개막(서울 KOEX전시장)
2000년 중국최고위 조선족 조남기 정협부주석 62년 만에 조국방문
ㅡ조선족 출신으로 중국에서 최고위직에 오른 조남기(74) 정협부주석이 한국 정부 초청으로 2000년 4월 24일부터 5월 3일까지 열흘간 한국을 방문했다. 조 부주석은 방한 기간 중 김대중 대통령과 정·재계 인사들을 만났고, 12살 때 떠난 충북 청원군 강내면 태성리 고향땅을 62년 만에 다시 밟았다.
조 부주석은 12살 때인 1938년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를 따라 중국 길림성 영길현으로 이주, 중학을 졸업한 뒤 중국 팔로군에 입대하여 직업군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6·25 당시 후근부 사령관인 홍쉐즈의 통역장교로 근무하며 중국 인민지원군의 군수품 수송에 큰 역할을 한 공을 인정받아 출세가도를 달렸다.
옌볜 조선족 자치주 인민정부 주석과 지린성 성장 등을 지낸 그는 1987년 인민해방군 총후근부 사령관에 임명됐고, 이듬해 중국군 최고 계급인 상장으로 진급했다. 예편 후인 1998년 3월 제9기 전인대에서 정협 부주석에 뽑혔다.
2002년 800년 잠깬 `고려의 빛` 군산앞바다서 발굴
ㅡ서해안 바다 속에서 잠자던 신비의 고려청자 비색(翡色)이 800년 만에 햇빛을 봤다. 전북 군산시 비안도 근해에서 12세기 후반기의 고려청자가 다량 발굴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2002년 4월 24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인양한 고려청자 일부를 공개했다.
군산 비안도 앞바다에서 인양된 고려청자 450여점은 고려청자 전성기인 12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이며 그동안 15차례 있었던 ‘고려청자’ 해저 발굴 사상 가장 양질의 것으로 밝혀졌다.
한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다가 발견했다고 신고해와, 국립해양유물전시관과 문화재청이 발굴 인양한 고려청자는 454점에 달했으며, 앞으로 정식 발굴조사를 거칠 경우 더 많은 양의 청자가 인양될 예정이다. 발굴된 청자는 대접과 접시, 통 모양 잔 등 다양했으며, 연꽃과 모란을 주로 새겼다. 형태가 제대로 남아 있는것은 150점 정도였다.
2003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
2004년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관련 국제사회 지원 공식 요청
2004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 시노드에서 한국 정교회를 수도 대교구로 승격
2007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차남을 때린 술집 종업원 보복 폭행으로 파문
2014년 헌법재판소 16세미만 청소년의 인터넷게임 접속 막는 셧다운제 합헌결정(7대2)
2021년 문대통령, 이현주 세월호특검 임명...“의문없게 엄정 수사”
2022년 대통령 관저로 외교장관 공관 확정...“김건희 여사, 결정후 방문”
2022년 코로나19 감염병 등급 2등급으로 하향...일상회복 본격화
1533년 네덜란드의 초대 세습 총독 빌럼 1세 판 오라녜 출생
1608년 프랑스의 왕족 오를레앙 공작 가스통 출생
1731년 영국의 소설가·언론인 대니얼 디포 작고
1743년 영국의 방직기 발명가 카트라이트 출생
1743년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의 후궁 각혜황귀비 출생
1771년 일본, 야에야마(八重山) 지진·쓰나미로 약 1만2000여명 사망
1800년 미국에서 의회도서관이 존 애덤스에 의해 설립
1845년 스페인 문학가 시피텔러 출생
1856년 프랑스의 군인 겸 정치가 앙리 필리프 페탱 출생
1877년 러시아-터키 전쟁 일어남
1898년 스페인, 쿠바 봉쇄한 미국에 전쟁 선포
ㅡ`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19세기 중엽부터 신에게서 새로운 땅을 개척하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믿어온 미국 팽창주의자들의 영토확장 슬로건이자 명분이었다. 캐나다ㆍ멕시코ㆍ쿠바까지 합병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1895년, 16세기부터 줄곧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에서 대(對) 스페인 독립전쟁이 시작됐다. 스페인의 탄압이 거세지자 미국인들 사이에서 군사개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업인들은 새로운 시장을 위해, 종교인들은 가톨릭의 쿠바를 개신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참전을 재촉했다.
1898년 2월15일, 쿠바 아바나항에 정박중인 미국 전함 메인호가 갑자기 폭발, 배에 타고 있던 군인 260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원인불명으로 판명됐지만 선동적인 신문들은 스페인의 음모라며 자국민의 감정을 부추겼다.
미국이 쿠바를 봉쇄하며 압박을 가해오자 궁지에 몰린 스페인이 1898년 4월24일,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식민지를 둘러싼 미국ㆍ스페인 간의 제국주의 전쟁이 불을 뿜었다.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3개월 만에 끝난 짧은 전쟁이었지만 미국이 얻은 열매는 너무나 달콤했다. 그해 12월 파리조약은 쿠바를 독립시키고 필리핀ㆍ괌ㆍ푸에르토리코를 미국의 영토로 복속시킨다고 결정했다. 하와이는 7월에 태평양 진출 교두보로 미국에 병합된 상태였다.
1904년 네덜란드 태생의 미국 화가 데 쿠닝 출생
1908년 이케다 기쿠나 일본 도쿄대교수 단맛 짠맛 쓴맛 신맛 이어 다섯번째 맛 감칠맛(우마미) 존재 확인 발표
1909년 터키, 반혁명군 진압으로 모하메트 5세 즉위
1915년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시작됨,
ㅡ약150만명정도 학살 추정 “20세기 최초의 인종학살로 여겨지는 비극을 아르메니아인들이 겪었다.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이다.”-프란치스코 교황 ‘아르메니아 대학살100주년 추모미사(2015.4.12)’에서
- 2012.1.23 프랑스의회 ‘아르메니아인대학살 부인금지법' 통과로 터키-프랑스 관계악화, 유럽의회는 2015.4.15 터키정부 상대로 ‘인종학살(제노사이드) 인정하라’는 결의안 채택
1916년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 아일랜드 독립선언, 영국의 폭격으로 실패
1916년 아일랜드 시민군, 부활절 봉기
ㅡ부활절 다음날에 아일랜드의 민족주의 지도자 페트릭 헨리 피어스가 아일랜드 공화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반영 봉기를 일으켰다. 봉기 자체는 실패로 끝났지만, 후에 성립된 아일랜드공화국 실현의 기점이 되었다.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피어스는 아일랜드 시민군을 지휘했다. 이 봉기에는 더블린 노동자들과 얼스터 의용군에 대항해 창설된 아일랜드 의용군, 아일랜드 공화주의 형제단, 신페인 당원 등이 참여했다.
봉기계획을 미리 안 영국이 무기 밀수 혐의로 로저 케이스먼트 경을 체포하자 아일랜드 의용군 지도자 맥닐은 계획을 취소했다. 그러나 2,000명 정도의 시민군은 더블린 중앙우체국을 점령하고 아일랜드 공화국 선언문을 낭독했다.
결국 영국군에 밀린 시민군은 항복했고, 지도자 피어스와 동료 13명은 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은 뒤 총살당했다. 부활절 봉기는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의 종말을 예고했다.
1926년 독일-소련 우호중립조약 체결
1942년 `빨간머리 앤` 작가 몽고메리 사망
ㅡ앤 셜리는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이었다. 빨간 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얼굴, 긴 머리. 부모님을 일찍 여읜 것도, 2층 다락방 창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것도, 또 마음의 친구와 변함없는 우정을 맹세하던 것도 모두 작가 자신을 앤 셜리에 투영한 것이었다.
1874년 11월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작은 집에서 태어난 그녀는 2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의고 외가에서 길러졌다. 대학 졸업 후 교단에 올라 선생님이 됐지만, 그녀가 24살 되던 1896년 우체국장이던 외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외할머니를 도와 우체국 일을 도왔다.
그리고 그녀가 30세가 되던 1904년, ‘빨간머리 앤’ 을 쓰기 시작했다. 봄에 시작한 집필은 그 해 10월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러나 출판사로부터 모두 외면당하는 수모를 겪어야했고, 그로부터 3년 후 다락방에서 우연히 원고를 발견한 몽고메리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결국 미국 보스턴의 한 출판사에 출판을 의뢰, 1908년 첫 작품 ‘빨간머리 앤’ 이 발간됐다. 이후 ‘빨간머리 앤’ 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후에도 앤을 주인공으로 하는 속편들이 계속 출간, 일본에서는 만화영화로도 제작돼 각국에 수출됐다.
1945년 독일, 연합군에 항복 제의
1949년 중국군 남경 입성
1951년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사쿠라기초 사고가 발생
1955년 반둥회의(아시아-아프리카 회의) 폐막
ㅡ1955년 4월 18일 아시아 23개국과 아프리카 6개국이 모여 '제1차 아시아·아프리카회의'를 열고 7일간 논의한 반둥회의 결과, 24일 `세계 평화와 국제협력 증진에 관한 선언`이 채택됐다. 회의는 선언을 발표하고 폐막됐다. 이른바 `반둥 10원칙`이라 불리는 이 선언은 비동맹과 중립주의, 상호협력 등의 정신을 담은 것으로 `제3세계`라는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다.
회의 참가국이 속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대륙 이름을 따 'AA히의'라고도 하고 개최지의 이름을 따서 보통 반둥회의라고 불리는 이 모임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잇달아 독립한 구 식민지 국가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이 회의를 마련한 것은 콜롬보 그룹이라고 불리던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버마(미얀마)의 5개국이었다. 남-북한, 대만, 남아공, 이스라엘 등 어느 한 진영에 현저하게 치우쳤거나 인종차별적인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이 초청됐다. 29개국의 국기가 휘날리는 회의장에 자리를 함께 한 320명의 사절단은 14억명을 대표했으며 이는 당시 전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둥회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주도되던 국제무대에 많은 새로운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개최국의 이점을 십분 활용한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중국의 강경 이미지를 누그러뜨리는데 탁월한 수완을 보인 주은래 등은 이 회의를 통해 국제적 인물로 떠올랐다.
그러나 반둥의 회의장에서 드러난 각국의 상이한 이해관계는 곧 이어 발생한 중국-인도 국경분쟁, 중소분쟁 등으로 심화됐고 결국 알제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제2차 아시아-아프리카회의`는 무산되고 말았다.그러나 반둥회의를 계기로 등장한 `비동맹` 그룹은 점차 세를 더해갔고 이들은 1960, 70년대를 지나면서 국제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다.
1956년 중국군, 대만의 금문도 포격
1960년 이란에 대지진
1961년 영국-소련 공동으로 라오스 휴전
1964년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발효
1965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전국외국인기업체 국유화 선언
1967년 이탈리아의 추기경 엔리코 단테 작고
1967년 소련우주선 소유즈1호 지구귀환중 추락 조종사 코마로프 대령 사망
1968년 모리셔스가 유엔에 가입
1970년 중국 첫 무인인공위성 발사 성공, 미국 소련 프랑스 일본 이어 5번째 우주국 됨
1975년 에티오피아 토지 국유화
1979년 로디지아 90년간의 백인통치 끝내고 첫 흑인정부 수립(초대총리 무초레와 주교)
1981년 미국정부, 소련으로 곡물수출 금지조치 해제 발
1982년 영국, 대 아르헨티나전서 남조지아 탈환
1983년 오스트리아 총선서 사회당이 과반수 획득
1990년 중국-소련 국경수비대 감군협정 체결
1990년 허블우주망원경이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실려서 발
1996년 유엔 마약과 돈세탁 대처위해 무기명계좌 금지촉구결의안 통과
1997년 AR-15 소총을 개발한 미국의 총기 발명가 유진 스토너 작고
2003년 베이징, 초ㆍ중ㆍ고교 사스(SARS)로 임시 휴교
ㅡ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갈수록 확산되는 중국에서 베이징(北京)시 당국은 각 초·중·고교들에 대해 24일부터 2주일간 휴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22일 허용했다. 이에 따라 시내 대부분의 초·중·고교들이 휴교에 들어가기로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3일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캐나다 토론토 3곳을 홍콩·중국 광둥성에 이어 여행 자제 권고 지역으로 추가 지정했다
중국 정부는 5월 1일부터 시작되는 노동절 연휴 동안 대규모 인구 이동으로 인한 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성(省) 간 여행을 금하라는 긴급 통지문을 하달했다. 또 사스 방역을 책임진 공직자가 업무 수행을 제대로 못할 경우 엄벌에 처하고, 사스 관련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전원 체포키로 했다고 신화통신 등 관영 언론들이 보도했다.
지난 22일 오후 10시(현지시각) 현재 홍콩을 포함한 중국 전역의 새로운 사스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하루 전에 비해 각각 171명(홍콩 24명)과 15명(홍콩 6명)이 늘어났다. 이로써 총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3763명과 211명에 달했다. 특히 사스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베이징시에서는 하루 동안 105명의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7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4년 프랑스 갱스터 영화 감독 호세 지오바니 사망
ㅡ‘암살자(La Scoumoune)’ 와 ‘암흑가의 두 사람(Deux Hommes Dans La Ville)’ 등 프랑스 갱스터 영화 감독 호세 지오바니가 2004년 4월 24일 스위스 로잔 병원에서 타계했다.
1923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시실리에서 유년을 보낸 호세 지오바니는 2차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동했으며, 전후에는 범죄조직 가담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사면되는 등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았다.
1967년 ‘대모험’ 으로 데뷔한 그는 알랭 들롱 주연의 ‘시실리안’(1969), ‘암흑가의 두 사람’(1973), ‘르 지탕’(1974) 등의 수작을 낳았다.
2004년 화장품 ‘에스티 로더’ 창업자 에스티 로더 세상떠남, 130여개나라에 10억$이상 수출, 1998년 「타임」 선정 ‘가장 영향력있는 20세기 천재경영자20인’ 중 유일한 여성
2005년 보수성향의 독일출신 베네딕토 16세 제265대 교황에 오름
ㅡ24일 오전 10시 바티칸의 성 베드로광장에는 35만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즉위 미사가 거행됐다.
5개의 붉은 십자가로 수놓은 흰 영대(領帶)가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어깨 위에 놓였다. 성 베드로가 고기잡이 하는 모습을 새긴 어부의 반지(페스카토리오)가 교황의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지는 순간 성 베드로광장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제265대 교황이 즉위하는 순간이다.
이 의식은 이날 미사의 가장 상징적인 순서. 어부의 반지는 교황이 공식 문서에 찍는 옥새로 사용되는 것으로 교황의 권위를 상징한다. 영대는 어린 양의 털로 짠 2.4m의 흰색 모직 띠로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린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붉은 십자가 5개가 실크로 수놓아졌으며 3개의 못을 상징하는 3개의 금빛 핀으로 교황의 금빛 망토에 고정됐다.
모든 추기경들이 교황에게 충성을 서약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 대신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명(추기경 3명, 주교 1명, 사제 1명, 부제 1명, 수녀 1명, 수도사 1명, 부부 1쌍 그리고 어린이 2명)이 대표로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손에 입맞췄다. 그중에는 김수환 추기경도 있었고, 이탈리아에 사는 한국 교민 민동수·박은희씨 부부와 아들 재희군도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교황 앞에 나아갔다.
2008년 미국 메이저 리그 야구의 내셔널 리그 구단 시카고 컵스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이어 메이저 리그 사상 2번째 10000승을 달성
2009년 자유형 100m, 47초 벽 깬 베르나르
ㅡ알랭 베르나르(26·프랑스)가 수영 남자 자유형 100m의 47초 벽을 허물었다. 베르나르는 2009년 4월 24일 열린 프랑스 선수권(몽펠리에) 자유형 100m 준결선에서 46초94를 기록, 에이먼 설리번(호주)이 갖고 있던 종전 세계기록(47초05)을 0.11초 앞당겼다.
2009년 멕시코와 미국 일부 지역에서 신종 바이러스인 돼지 인플루엔자가 번지면서 약10명의 사망자가 발생
2011년 최초로 에베레스트 두 번 오른 셰르파 곰부 별세
ㅡ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등반대의 최연소 셰르파이자,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두 번 등정한 유명 셰르파인 나왕 곰부(79)가 24일 인도에서 별세했다.
곰부는 21살이던 1953년 고(故)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함께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숙부인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를 따라 힐러리 경의 등반대에 합류했다.
당시에는 정상에 서지 못했으나 10년 후 짐 휘태커가 이끈 첫 미국 등반대를 인도해 최고봉에 올랐고, 다시 2년 뒤 인도 등반대의 안내를 맡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두 번 오른 사람이 됐다.
이후에도 히말라야 일대에서 수십 개의 새 등정로를 개척하는 등 셰르파 집단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3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 의류공장 건물붕괴 사망622명 “노예노동이 부른 참사”-프란치스코 교황, “이윤이라는 이름의 살인”-로이 라메시 찬드라(다카 무역노조위원장)
2021년 독일의 가수 크리스타 루트비히 작고
2021년 이스라엘의 패션디자이너 알베르 엘바즈 작고
'오늘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역사 4월 26일 (0) | 2023.03.23 |
---|---|
오늘의 역사 4월 25일 (2) | 2023.03.23 |
오늘의 역사 4월 23일 (0) | 2023.03.21 |
오늘의 역사 4월 22일 (0) | 2023.03.21 |
오늘의 역사 4월 21일 (0) | 2023.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