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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이름이 성공한 인생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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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

by 귤담 2023.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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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약간만 늘어져도 그 본성을 쉽게 드러낸다. 그러니 하늘과 땅이 운수를 통해서 휘두르기 좋다. 사람들은 그 근본이 잘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노릇하는 종교를 좋아하니 자신의 본래 가치를 찾는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면 천박해지기 쉽고 고귀해지기 어렵다. 그 결말은 뻔하다. 결국 그 찾은 가치만큼 누린다. 왜 세상은 영원한 이상세상이 되지 못할까? 그것은 바로 사람이 가진 성품이 쉽게 휘둘리기 때문에 그런것이다. 사람은 대부분 너무 가볍다.

수행이 어려운것은 이런것을 극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서양 영화가 보여주는 마블시리즈처럼 초인이 우연처럼 능력으로 가져지는것이 아니라 동양의 철학을 바탕으로 보면 성품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성품은 안보고 능력만으로 세상을 볼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밝혔듯이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각자가 잘나서 서있지만 창생을 조금도 품지 못하는 이유를 깊이 반성하고 그 너머에 있는 이치를 봐야한다. 그러나 사람이란 출발이 얄팍하기에 그것이 어렵다. 그러나 어렵지만 또한 못도달할것도 아니다.

그래서 간혹 그것을 도달하는 사람이 있다. 즉 성품이 인간이 가진 얄팍함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神(신)이 되기도하고 仙(선)이 되기도한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을 보라. 결국 얄팍하고 극강의 기회주의자이며 그짓을 하고도 부끄러워할줄도 모르는 천박한 성품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佛(불)에 福祿(복록)을 맡긴것이며 그것도 새불에 맡긴것이지 묵은 불은 천박하기가 바닥수준이다. 결국 지금의 세월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면 그 과정이 어렵고 어려운것은 이런 이유때문이다. 仙(선)도 佛(불)도 儒(유)도 묵은 기운에 머물면 결국 빠르게 퇴보한다.

지금은 모두가 갱신하는 과정에 있다. 즉 仙(선)도 佛(불)도 儒(유)도 모두 바뀌고 있다. 사람의 질이 떨어지니 마음이 얄팍해지고 영원한 시간만 생각하지 자신이 채워야할것이 무엇인지 보지 않는다. 그러니 근기가 저급한것이며 영겁의 시간을 누릴만한 힘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 결국 존재의 그 기저에 흐르는 德(덕)은 지을수 있을때 지어야 쓸수 있는것이지 이 德(덕)도 쌓을수 있는 환경이 못되면 쌓기가 어렵다는것을 모른다. 한심한 사람의 얄팍한 근기는 누리기는 좋아해도 이 德(덕)을 쌓기는 등한시 한다. 결국 그러니 지금과 같은 꼴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번도 더바뀌면서 영원을 노래하고 영겁을 이야기하는것은 정작 그 실상을 모른다는 반증이다. 인간은 인간으로써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먼저 충실히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지금으로부터 앞으로 성인이 와서 수만년을 이어가며 옳은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지만 이 과정에서 또 빌빌거리면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뻔한것이다. 그러나 알아야할것은 가면갈수록 더더욱 어려운 길과 과정을 통해서 발전을 이어간다. 즉 쉬운일은 전혀 없으며 이번은 知足天(지족천)의 관할이라 만족을 가르키지만 그 다음부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니 더 엇나가기 쉽고 더 수행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정작 쌓은 德(덕)은 없는데 그 德(덕)을 정량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德(덕)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서 어디까지 쌓을수가 있는지 달라진다. 그런데 위치는 선천적이라 어쩔수 없지만 그 역량을 어디까지 미치게 만드는지는 결국 각자가 행하는 각고의 노력과 정성에 달렸다. 어려워도 좋아도 늘 같은 마음으로 무량한 德(덕)을 쌓아가는 것은 쉬운것이 아니다. 오만년의 세월속에 얼마나 인간이 뻗어나갈까는 각자의 수행에 달렸다. 세상에 태어나서 누리기만 할려고 하면 후천에 갈수 없다.

그것을 가리기 위해서 여지껏 시련의 시간이 존재한것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소설을 써도 결국 德(덕)이 안되면 다다를수 없고 들어갈수도 없다. 건방떨다가 나락으로 떨어지기는 쉬워도 쌓아야할 德(덕)이 종교팔이가 생각하는것은 德(덕)이 아니라 죄악이 되기 쉽다. 그러니 한심한 종교찌끄레기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역겹기 그지 없다. 그러나 아직은 그렇게 생각할수 있는 자유가 있을때가 좋다. 그러나 머지 않아서 대비겁이 시작될때 그 무게를 잴때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심판대에서 재게 된다.

그러나 상상속에서 살때와 실질적인 그 무게를 느낄때는 다른법이다. 결국 그것이 자격미달로 판명되면 무서운 댓가가 따른다. 그것도 각자의 선택이다. 知足天(지족천)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지나침이다. 결국 그 자격이 있는지 시험에 들때 그 자격이 안된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 댓가는 처절하게 돌아간다. 그래서 결국 중국의 예언서에는 함부로 新主(신주)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한것은 그 말을 가려라는 것과 같다. 원하던 원치 않던 그 기준점이 형성되고 그로 인하여 책임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출처] 인과응보|작성자 보석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