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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와 N수 - 김진균

by 귤담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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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와 N수

글쓴이 김진균 / 등록일 2023-12-19

전국에서 의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는 어디일까? 서울대. 그렇다면 서울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는? 연고대. 이어가기 씁쓸한 농담이지만 거의 사실이 된 듯하다. 올해도 여지없이 장기결석 학생들 중의 일부가 수능 끝난 뒤 기말고사 시간에 나와 멍한 표정으로 백지 답안지를 냈다. 수업일수 1/3 이상 결석자에게는 학칙상 성적을 부여할 수 없다는 점을 알려주면, 잠깐 눈동자만 흔들릴 뿐 멍한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대부분 휴학 없는 반수에 실패한 학생들이라 F학점이 얹힌다 해도 좌절감이 더 커지는 것도 아닐 것이며, 지금 머릿속에는 내년에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생각뿐이리라.

대입제도는 왜 이 모양일까

올해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불수능으로 불리고 있다. 킬러문항을 없애라는 대통령의 지시와 상위권 변별력이라는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입장이 결합하여, 몇 개의 초고난도 문항을 없애는 대신 고난도 문제를 대거 출제한 것이다. 불수능의 원점수 만점자와 표준점수 최고점자가 모두 서울 강남 유명 입시학원 출신의 재수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원 인근 전셋값마저 폭등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킬러문항과 더불어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했던 대통령의 지시를 조롱하면서 입시 컨설팅 업체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원점수 만점자가 표준점수로 전환하면 왜 최고점자가 되지 않는지, 수시에서 합격권에 들었던 학생이 불수능을 만나면 왜 불합격되는 것인지, 왜 지원하는 대학마다 다른 입시 전략을 짜야 하는지, 킬러문항이나 불수능 혹은 물수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너무 복잡해서 학생과 그 양육자들이 대입 제도의 속성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없다. 최상의 성취를 얻기 위해서는 입시학원과 컨설팅 업체에 거액의 사교육비를 지불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불안과 공포를 다스리는 비법 약제를 사교육 시장에서 구매하는 셈이다.

공동체 소멸의 원인

한국 사회에서 대입은 예전부터 남은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적 사건으로 대접받아 왔다. 그러나 태풍의 눈처럼 다른 노력 변수들을 거의 다 빨아들이게까지 된 것은 최근의 현상이다. 결과는 사교육 시장의 최대 성장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최근 설문에서 세계 최저 출생률의 원인으로 국민들이 지목했다는 “자녀 양육과 교육 부담”은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대치동에 거주하면서 유명 입시강사의 수업을 듣게 하고 유명 입시 컨설턴트와 상담을 여유 있게 받을 정도의 수입이 아니라면, 내 자녀가 소위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면 내 자녀도 나처럼 이 지옥 같은 노동환경에서 평생을 허덕거려야 할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녀라면 아예 태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녀가 지옥을 만나지 않도록 해주는 방법이 된다고들 결정한 것이다. 여유 있는 수입이 보장된 부모들은 내 자식이 소위 좋은 대학에 가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한다. 어지간한 위치를 점유해도 까딱 잘못하면 저 지옥 같은 노동환경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낭떠러지에서 가장 멀리 있다고 알려진 가장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대학으로 보내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첫해에 못 보내면 사교육비에 세월까지 얹어서 지출한다. 재수, 삼수, N수를 시켜서라도 보내려고 하는 그곳은 서울대 의대이다. 다시 퀴즈. 서울대 의대에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는? 다른 대학 의대라고 한다.

이 미로의 대입 제도와 복마전 같은 사교육 시장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모두 서울대 의대를 정점으로 하는 도도한 한줄 세우기 강물의 하구 삼각주이다. 삼각주에 폭탄을 터뜨려봐야 거대한 강물에 휩쓸려오는 퇴적물은 계속 쌓여만 갈 것이고, 올해처럼 혼란의 아비규환만 야기할 것이다. 이 탁한 퇴적물은 투명한 상류의 지옥 같은 노동환경에서 흘러내려온 것들이다. 여성, 소기업, 비정규직, 일용직, 생산직 등등에 대한 투명한 차별과 착취를 모두가 지켜보고 겪었으니, 다들 한줄 세우기의 정점을 향해 도도하게 달려가는 것이 개인 입장에서는 본능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 입장에서의 합리적 선택들이 결국 공동체의 소멸을 불러온다면, 공동체는 새로운 전망을 갖고 이 물길을 돌려놓을 생각을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개인적 합리성과 공동체의 합리성이 일치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물길이 막혀 강물이 다 썩기 전까지 시간이 얼마 없다.

글쓴이 : 김진균(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