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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통일’과 ‘그래도 통일’ 사이에서 - 서보혁

by 귤담 2024.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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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통일’과 ‘그래도 통일’ 사이에서

글쓴이 서보혁 / 등록일 2024-08-13

2024년 벽두에 김정은 정권이 남북한 관계를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선언하여 국내외에 충격을 주었다. 북한 내적으로는 김일성, 김정일이 천명해온 ‘자주적 연방제 통일’ 방안을 부정하였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의 통치 정당성에 도전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이 일어나기도 했다. 북한은 남한(정부와 시민사회 모두)을 향해서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를 부정하고 어떠한 대화도 거부하고 있다. 북한의 통일 포기 선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있다/없다 반반으로 나뉘고 있다. 북한의 그런 태도 변화에는 장기화된 체제 위협인식을 핵으로 돌파하려는 북한정권의 핵 야망이 주된 요인으로, 갈지(之)자를 보여온 점도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신이 보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김정은의 통일 부정과 젊은 층의 통일 무관심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래 북한은 핵능력의 고도화를 추진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한국,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다자적‧독자적 제재를 받고 있다. 북한의 핵 야망은 남북한 체제 이질감과 경제 격차와 결합해 국민들의 통일의식을 약화시키고 대북관을 악화시켰다. 특히 젊은 층으로부터 통일에 대한 무관심이 두드러져 정부가 통일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북한과 국제사회만이 아니라 국민 여론에도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지난 4-5월 통일연구원이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 총 1,001명을 대상으로 한 면접조사를 통해 국민들의 통일의식을 조사하였다(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 표집오차는 ±3.1%P). 이 조사에서 통일 지지도가 최저치(52.9%)로 나타났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나타난 통일 지지도 52.7%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다. 통일 지지도에 세대 간 차이가 크다는 것은 이제 널려 알려져 있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73.6%가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변한 반면,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46.5%만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하였다. 통일을 지지하는 이유로 ‘같은 민족’은 전쟁세대에서 45.1%인데 비해, 밀레니얼세대는 26.1%에 그쳤다. 젊은 세대일수록 ‘전쟁위협 해소’를 가장 중요한 통일의 이유로 선택했다.

 

위 조사에서 북한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인 태도가 우세함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이 적화통일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49.7%로, 평화협상이 전개되던 2018년 이후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그 원인으로 북한의 군사도발과 핵능력 고도화를 꼽을 수 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경제제재가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기 어렵다는 응답으로 이어졌다. 조사 결과 대북 제재로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 수 있다고 평가한 비율은 15.4%에 불과해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북한이 핵무기를 외교적 수단으로만 활용하고 남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명제에 대한 의구심이 증가하였다. 이 질문에 대한 긍정 응답은 2017년 최고치(54.9%)를 기록한 이후 하락세가 뚜렷했는데 올해 조사에서는 46.5%로 가장 낮았다.

 

국제정세의 악화와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저하로 단기적으로 통일 환경은 양호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아랍 전쟁과 미국 대선 등 국제정세는 남북대화의 가능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또 남북이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재편 흐름에 편승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한반도 일대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 구도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경제, 문화는 물론 정치, 군사, 정보 분야에 걸쳐 전개되면서 남북대화 전망을 제약할 수 있다. 제반 대내외 정세가 통일 환경에 유리하지 않다. 다만, 북한이 통일과 민족을 부정하고 대결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 대선 결과와 미중관계를 내다보면서 남북대화와 북미대화 사이에서 저울질을 할 수도 있다.

 

평화 감수성을 갖춘 대안적 통일 담론을

 

결국 약화된 통일에 대한 관심을 올리려면 국민들의 통일 여론 속에 숨어있는 정책 대안을 찾아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 하나는 균형적인 대북정책이다. 위 통일의식조사에서 국민들은 북한의 적대국 두 국가론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의 정책 대안으로 ‘대화 재개 및 협력관계 회복’에 31.9%, ‘압박을 통한 북한 내부 변화 유도’ 29.8%, ‘한미일 협력 강화’ 35%의 응답을 보였다. 대화와 압박, 남북 채널과 국제 채널의 균형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특정 정책 수단에 쏠리는 접근은 효과는 없고 부작용이 크다. 두 번째 시사점은 통일 담론의 재구성이다. 세대 간에 통일에 대한 관심은 물론 통일 비전에 차이가 나타났는데, 이를 융합하는 대안적 통일 담론을 기대하는 것이다. 마침 금번 광복절 기념사에서 대통령이 새로운 통일 담론을 제안할 것이라고 한다.

 

미래 세대의 고민과 세계적 시대정신을 고려한다면 통일 담론이 민족, 국가, 이념에 갇혀있을 수는 없다. 전쟁, 인권 침해, 불평등, 기후 위기 등 인류 미래를 위협하는 복합 위기를 극복할 보편가치들을 조화롭게 추구하는 통일 담론이 대안이다. 아직도 통일인가 하는 청산주의적 태도와 그래도 통일이라는 고정관념은 지양할 바이다. 그리고 문을 닫아건 북한과 다시 대화를 시작하려면 평화 감수성을 갖추는 것이 기본이다.

 

글쓴이 : 서 보 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