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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글쓴이 김진균 / 등록일 2024-08-06
2014년 <시사IN> 신년호에 한 독자가 보내온 4만7천원에 대한 사연이 실렸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배상이 청구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한 독자가 10만명의 시민이 보태면 그 돈 갚아줄 수 있지 않겠냐며 보내온 것이었다. 노동자에게 전달된 해고통지서도 노란 봉투에 담겨 있었지만 한달치 희망을 담던 예전 월급봉투도 노란색이었으니, 노란색을 절망에서 희망으로 전환하는 상징으로 삼자는 취지에서 노란 봉투를 사용했다고 한다. 수만명의 시민이 동참한 노란봉투의 기적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사람 살리는 법
물론 시민들의 십시일반은 큰 응원이 되었으리라 믿지만, 안타깝게도 그 힘으로도 버틸 수 없는 무간도의 중력이 해고노동자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파업에 대한 과잉 폭력 진압을 겪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려 일상을 유지할 수도 없었을 노동자들이, 국가와 회사와 보험사들로부터 제기된 손해배상 가압류에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까지 몰렸던 것이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도 어려웠지만, 아르바이트를 해도 손해배상 가압류 집행액을 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이 없다. 생계가 불가능했다. 이 고통 속에 해고노동자가 삶을 버리고, 그 고통과 원망을 함께하던 배우자가 아파트 베란다 밖 허공으로 걸어나가기도 했다. 알려진 사람만 33명이다.
2003년 한진중공업노조 지회장 김주익은 합의된 임금단체협상안을 파기한 회사에 항의하기 위해 타워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었다. 회사는 손해배상 청구로 조합원들을 협박하며 노조 간부들의 집까지 가압류한 상태였다. 김주익의 통장에는 165만원 월급에서 가압류 집행액을 빼고 13만원이 입금되었다. 그는 타워크레인에서 내려가면 어린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바퀴달린 신발을 사주겠노라고 세 아이에게 약속했지만 그 돈으로는 신발 한 켤레 사기에도 빠듯했다. 129일째 되는 날 그는 거기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동료 곽재규도, 최강서도, 두산중공업의 배달호도 손해배상에 목숨을 잃었다.
손해배상 청구는 살인도구이다. 그걸 잘 알게 된 기업은 이 비열한 도구를 한번 써본 뒤에 손에서 놓지 않는다. 폭력 진압과 해고와 구속에 이어 또 하나의 도구를 조자룡 헌 칼 쓰듯 돌려쓰고 싶을 것이다. 노동조합에 수십억 수백억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백년을 갚아도 못 갚을 빚을 갑자기 지게 된 노동자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부진정연대책임이라 하여 동료가 포기하면 그만큼 더 갚아야 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 연쇄적으로 삶의 의지가 바닥나는 것이 보인다.
노란봉투의 기적이 한달치의 희망에서 삶의 희망으로 부풀어오르는 방법이 있어야 했다. 손해배상 청구가 남발되는 우리나라의 야만적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시민들이 나섰다. 불법 파견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과 더불어 손해배상 제한이 이번에 노란봉투법으로 무르익게 된 사연이다. 이번에도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대통령은 거부할 수 없는 국민적 손해배상 청구를 마주하게 되리라.
세계적으로도 당당해지려면
정부는 이 개정안이 사업주의 재산권 행사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우기고 있다. 헌법은 노동삼권이라 불리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일부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그 행사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반면에 재산권은 그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정하고 그 행사도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해야 한다고 제한하고 있다. 노동삼권의 실현이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불평은, 제한적 권리를 위해 보편적 권리를 무시하고 공공복리를 포기하는 반헌법적 발상에서나 나올 소리인 것이다.
재산권이라는 민법적 가치가 노동권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도록 해석되는 우리나라의 법률은 세계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다. 프랑스는 불법행위와 손해의 관계를 엄밀히 입증해야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영국에서는 노조의 규모에 따라 손해배상액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일하면 월급 250만원을 받는 노동자가 파업 며칠에 수억원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실직고하라. 손해배상은 재산상 손실 때문이 아니지 않은가. 수십 수백억원의 부진정연대책임을 지게 된 노동자가 크레인을 올려다볼 때 회사는 슬쩍 다가오지 않던가, 어용 노조로 옮겨오면 손배 명단에서 제외시켜주겠다고.
■ 글쓴이 : 김 진 균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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