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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은 권력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글쓴이 권순긍 / 등록일 2024-07-30
요즘 영부인 김건희 여사(‘김여사’라 통칭)의 검찰 비공개 ‘특혜조사’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조사가 거의 끝날 무렵에 보고를 받고 이른바 수사팀으로부터 ‘패싱’ 당한 이원석 검찰총장은 22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께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우리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말씀 드렸다. 그러나 대통령 부인 조사 과정에서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대국민 사과까지 해야 했다.
그 대목에 등장한 말이 ‘법불아귀(法不阿貴)’다. 《한비자(韓非子)》 〈유도(有度)〉편에 나오는 말로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엄정한 법도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뒤에 ‘승불요곡(繩不撓曲)’이 붙어 “법은 권력자에게 아부하지 않고, 먹줄은 (나무가) 굽은 것을 따라 휘지 않는다”고 한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기에 민주국가에서는 당연한 말이다. 법원 앞에 두 눈을 가리고 서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 상(像)도 바로 공정한 판결을 상징한다. 해서 검찰총장은 “법 위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민주공화국이 무너지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4년 끌어온 주가조작 수사의 실상은?
김여사의 혐의는 2009년부터 시작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최근 불거진 명품백 수수 의혹이다. 주가조작 사건은 지난 4년간 검찰에서 한 번도 부르지 않다가 최근 야당에서 ‘특검’을 하자고 들이대니 서둘러 수사에 착수하여 ‘면죄부’를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당연히 피의자인 김여사를 검찰청사로 소환해야 하는데, 공휴일인 20일에 아무도 모르게 대통령 경호처 부속건물로 검사들을 거꾸로 ‘소환’해 조사를 받았다. 게다가 조사받는다는 게 알려지면 조사를 거부하겠다고 하며 검사들의 휴대폰을 모조리 ‘압수’하기도 했다. 누가 누구를 조사한 건지 알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런데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혐의를 받는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은 23일 새벽 전격 구속됐으니, 어찌 된 일인가?)
이미 지난 5월 법무부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팀을 전면 교체하고 수사팀장으로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대변인을 맡았던 이창수 검사를 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상식선에서 봐도 김여사 수사에 대비한 인사로 보여진다. 그러니 이원석 검찰총장의 ‘패싱’에 대한 진상조사 지시에 중앙지검장은 거부의사를 밝혔고,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복원 요청을 거절하며 중앙지검장과 직접 소통하겠다고 했다. (실상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박탈은 추미애 법무부장관 당시 배우자가 주가조작에 연루돼 있기에 이해충돌로 시행된 것인데, 지금은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이 조항을 적용하니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더 놀라운 사실은 최근 채상병 사망사건 외압에서 “절대 사표 내지 마라. 내가 VIP한테 얘기를 하겠다”고 언급하며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운동으로 의혹을 받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여기에 연루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지난해 2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인물로 이미 1심 법원은 블랙펄인베스트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의 컨트롤타워라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니 김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고구마 줄기처럼 어디까지 얽혀있을지 알 수가 없다. (검찰총장은 이제부터는 수사를 제대로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민’과 ‘하늘’을 두려워해야
게다가 지난 6월 10일 국민권익위원회는 김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을 ‘제재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이미 종결 처리한 바 있다. 더욱이 명품백 수수 의혹을 수사하던 부부장 검사마저 항의성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으니 누가 적극적으로 수사하겠는가? 그러니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최근 한 보수논객은 MBC에서 김여사 ‘특혜수사’를 비난하면서 국민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보수층의 나무가 성냥개비 하나 때문에 불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공정과 상식’을 외치던 현 정권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공멸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리라. 〈tv조선〉 앵커조차 저녁 뉴스 〈앵커칼럼〉에서 김여사 조사가 검찰총장을 패싱한 것을 두고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 비판할 정도다. (차라리 이 기회에 김여사 전례에 따라 피의자 보호 차원에서 원하는 장소에서 검사들을 불러 조사받을 수 있게 하자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다산은 ‘부령 도호부사 이종영에게 당부한다[送富寧都護李鍾英赴任序]’란 글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 네 가지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래로는 백성을 두려워하고, 위로는 대간(臺諫)을 두려워해야 하며, 더 위로는 조정(朝廷)을 두려워하고, 또 더 위로는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백성과 하늘은 바로 앞에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임하고 몸으로 거느리고 함께 호흡하고 있으니, 잠시도 떨어질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가까운 것이다. 무릇 도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찌 이를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수사가 어찌 될지 지켜볼 일이다.
■ 글쓴이 : 권 순 긍 (세명대 명예교수, 전 한국고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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