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글방 > 다산포럼
항전 의지와 반국가세력
글쓴이 김진균 / 등록일 2024-09-24
1866년 봄 조선에서는 프랑스 신부들이 조선인 천주교도들과 함께 처형되는 병인박해가 있었고, 가을에는 프랑스 군대가 영종도와 강화도를 점령한 병인양요도 있었다. 조선을 침공한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불안한 권력 지반 위에서 좌충우돌하다 병인박해로 빌미를 잡힌 대원군 정권의 오판 역시 합리화될 수 없다. 게다가 병인년 내내 지속된 외교와 국방의 위기 속에서 대원군 정권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붙이며, 열악한 환경의 병졸들에게 항전 의지만 강요하고 있었다.
권력 불안이 자초한 외교와 국방의 위기
당초 2차 아편전쟁 수습 과정에서 청나라로부터 연해주를 할양받아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과 대치하게 된 러시아가 국경을 넘나들며 통상을 요구해 온 일로 인해 조선 조정은 불안에 휩싸이고 있었다. 대원군은 프랑스의 힘을 빌려 러시아를 제압하자는 천주교도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마침 조선에서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던 파리외방선교회 신부들에게 포교의 자유를 암시하며 한양으로 불러들이도록 천주교도들과 협상하였다. 프랑스 본국과의 교섭창구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신부들이 대원군을 만나러 오는 사이 조정에는 북경에서 서양 세력의 잔학 행위가 보고되고, 이로 인해 여론이 쇄국으로 더욱 쏠리며 천주교 배척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고종의 위태로운 즉위 이후 아슬아슬한 권력 지반을 나누며 협조하던 조대비마저 대원군과 천주교도의 협상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대원군으로서는 정치 생명에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이 순간 대원군은 협상 파트너였던 천주교도들을 처절하게 탄압하며 거대한 공안정국을 형성하여 권력 안정을 도모하였다.
프랑스 극동함대의 로즈 제독은 이를 빌미로 조선을 침공할 계획을 세웠고, 청나라는 조선에게 프랑스의 침공에 대비하라고 자문하였다. 대원군 정권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프랑스 극동함대는 강화도와 한강 하구의 수로를 측량하며 해안에서 위력을 과시했다. 이제 조선은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직접적 침공의 공포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백성을 반국가세력으로 간주하던 조정
이때 총융사로 있던 신헌(申櫶)은 자신을 보좌하던 강위(姜瑋)에게 해안 방어 전술을 구상하게 했다. 10년 뒤 개항의 실무를 주도하게 되는 강위도 이때까지는 해안 방어를 통해 조선을 보존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강화도에서 한양까지의 경로를 점검한 강위는 민보(民堡)를 제안한다. 민보는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소규모 성채를 곳곳에 건설하여, 정규군이 제대로 방어전을 치르기 어려운 때 전술적으로 민가를 소각하고 백성들을 민보에 수용하여 적이 지쳐 물러날 때까지 농성하게 하는, 일종의 청야전술(淸野戰術)이다.
백성들이 농성하고 있는 민보를 배후에 두고 깊숙이 공략해 들어가는 것은 침략군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다. 민보를 하나하나 함락시키면서 전진한다면 공략 속도가 매우 더뎌져서 방어군은 유리한 전황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정예군 운영을 기대하기 힘든 현실에서 백성들의 생존 의지를 해안 방어의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이었던 것이다.
강위는 민보 설치를 요청하는 상소문을 대필하여 신헌에게 제출하게 하고, 민보에 대한 우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정권 실세를 찾아갔다. 그러나 정권 실세는 민보의 설치를 반대하고 나섰고 결과적으로 신헌은 상소문을 제출하지도 못했다. 민보 설치를 반대한 이유는 백성들이 민보를 소굴로 삼아 조정에 대항할 것이 우려된다는 점이었다.
백성들의 생존 의지를 제물로 삼아 해안을 방어해 보려는 강위의 의도도 전쟁 공학적 냉혈한 계산에 의한 것이지만, 온 나라가 침공의 공포에 질려 있는 동안 백성들을 잠재적 반국가세력으로 간주하는 정권 실세의 공안적 판단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대비할 짧은 시간 동안 우왕좌왕하다 병인양요를 맞게 된 대원군 정권은, 괴롭다고 화친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요 도성에 쳐들어온다고 도망가는 것은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는 포고를 발표하며 항전 의지를 선전했다. 백성들을 잠재적 반국가세력으로 간주하는 정권이 무엇을 지키자고 항전 의지를 불태운 것일까?
■ 글쓴이 : 김 진 균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 (사)다산연구소 연구실장 )
[저서]
〈추금 강위 평전〉(소명출판, 2024)
〈모던한문학〉(학자원, 2015)
〈한문학과 근대 전환기〉(다운샘, 2009) 등
'다산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갖 망동으로 나라를 망치는 정권 - 박석무 (1) | 2024.10.07 |
---|---|
정인보의 정약용 : 신교육의 선구자, 브나로드의 실천가? - 노관범 (3) | 2024.10.05 |
소동파, 박지원, 정약용의 ‘이용후생’ - 이경구 (4) | 2024.09.20 |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어른이자 스승 - 김영죽 (4) | 2024.09.16 |
도망친 왕, 포획된 왕 - 김태희 (1) | 2024.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