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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결과와 일본의 ‘교활한’ 외교
글쓴이 남기정 / 등록일 2024-11-12
트럼프2.0의 시대가 열렸다. 선거일 직전 해리스의 박빙 승리 가능성이 미국 주류 미디어에서 나오고, 어김없이 이를 그대로 받아 적은 한국 언론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 당선을 놀라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SNS와 인터넷 미디어에서는 일본의 몇몇 발신자들이 미국 밑바닥 민심을 들려주며 트럼프 당선을 확신하는 전망들을 내놓고 있었다.
지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직후, 힐러리에 올인했던 데 대한 뼈저린 반성이 필요하다며 일본 정부에 대미 공공외교 네트워크 재구축을 제언하는 글을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있다. 이후 일본 정부도 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전제하고 사태의 전개를 맞춰 보니 일본 외교의 치밀함이 새삼 놀랍다. 작년 10월 24일의 외무성 인사에 주목해 보자. 그날 하루에 미국, 러시아, 중국 대사가 새로 임명되었다.
작년 10월 임명된 일본의 주요국 대사를 보니
먼저 주미대사로 야마다 시게오(山田重夫)가 발탁되었다. 2012년 주미대사 공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다시 그의 이력을 살펴보니, 국가안전보장국 심의관이었던 이력이 눈에 띈다. 야치 쇼타로(谷内正太郎)가 국가안전보장국장이던 시기다. 야치는 볼턴 회고록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그는 아베와 트럼프 사이에서 미일관계를 조율하는 외교의 최전선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이다.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를 상대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던 시기다. 이 인사가 각의로 결정된 것은 2023년 8월 8일이었다. 이때 윤석열 정부는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에 올인하고 있었다.
야마다 대사가 임명된 2023년 10월 24일, 주중대사로 가나스키 겐지(金杉憲治)가 임명되었다. 중국통이 아닌 대사로는 7년 만의 일이었다. 한국 근무 경험이 있고, 2016년 아시아대양주국장을 역임하며 북한 미사일 발사 시험에 대응했던 경력으로 볼 때, 중국을 통한 대북 외교의 일환 정도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그의 경력을 다시 보니 여기에도 숨은 그림이 있다. 2018년과 2019년 북미 정상회담 때, 싱가포르와 하노이 등에서 정보를 수집하던 총책임자가 그였다. 그렇다면 이 인사도 트럼프 대비의 흔적인 것인가.
주미, 주중 대사가 임명되던 날, 무토 아키라(武藤顯)가 새로 주러 대사로 임명되었다. 작년 말 착임해서 올해 2월 첫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무토 대사는 대러 제재를 유지하면서도 문화교류사업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또한 일본 정부가 “영토문제를 해결해서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는 방침을 견지”하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교류 확대를 언급하는 데 대해 질문이 들어오자, 그는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발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당당히 밝혔다.
무토는 러시아과장 보좌, 러시아과 수석사무관, 러시아대사관 일등서기관 및 참사관, 그리고 러시아과장 등의 이력을 쌓아온 러시아 전문가다. 그리고 미 대선 이틀 전인 지난 11월 5일, 신임장 제정식에서 푸틴 대통령과 유창한 러시아어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날 러시아어로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끝나면”, 즉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끝나면 평화조약을 위한 교섭을 재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교활한' 외교를
다시 주미 대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워싱턴 정가에서는 야마다 대사가 착임한 뒤 지난 연초 주미일본대사관에서 열었던 파티에 대해 이런저런 입방아가 있었던 모양이다. 착임 축하 인사를 했던 미국 측 참석자가 트럼프 정권에서 주일대사를 했던 하가티 상원의원이었던 것이다. 일본 정부가 트럼프 진영에 배려하고 있는 게 아니냐며 민주당 쪽에서 불쾌해 했다는 소문이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사토 마사루(佐藤優)라는 평론가가 어딘가 유튜브 방송에서 했던 말이 갑자기 다시 떠오른다. “러시아는 일본이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므로 ‘교활하다’고 보고 있는데, 그건 나쁘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다. 러시아가 일본을 협상의 상대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사토는 일본 외무성에서 러시아 관련 정보 분석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사람이다. 일본의 대러 외교가 칭찬할 만하다는 취지의 말이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그런 ‘교활한’ 외교를 할 수 있을까.
■ 글쓴이 : 남 기 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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