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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구가 시급하다 - 김환영

by 귤담 2024.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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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구가 시급하다

 

글쓴이 김환영 / 등록일 2024-11-05

 

 

세상은 복잡하다. 그래서 경구(警句)가 필요하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경구를 “진리나 삶에 대한 느낌이나 사상을 간결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말”이라고 정의한다. 경구에는 힘이 있다. “하면 된다” “못 살겠다 갈아엎자”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같은 경구는 국민∙유권자를 움직인다.

 

강한 종교는 경구가 강하다. 예수 관련 경구로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가 있다.(마태오 22:21) 로마제국에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답이다. ‘동문서답’인지도 모른다. 사실 예수는 질문에 답한 것이 아니라 질문에 질문으로 응수했다.

 

‘카이사르 카이사르, 하느님 하느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 해법에 압도된 듯하다. 그런데 이렇게 묻는 사람은 없었을까. “무엇이 카이사르 것, 무엇이 하느님 것이란 말이요? 가축과 곡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 것이니, 세금을 내지 말라는 말이요? 가축과 곡식은 세금을 부과하는 돈으로 바꿀 수 있으니 카이사르의 것이기도 하오. 그러니 내라는 말이요?”

 

당시 신문이 있었다면, 각 신문이 속한 정파에 따라 상반된 제목을 뽑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이다.

▷신문1. “예수, ‘하느님께 속하는 가축과 곡식을 세금으로 바치면 안 된다’며 민중을 선동”

▷신문2. “예수, ‘하느님의 것인 기도와 찬양만 하느님께 잘 드리면 된다’며 세금 납부 묵인∙∙∙ 예수도 친로마 민족반역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신문3. “예수, 반대파들이 파놓은 함정을 하느님의 아드님다운 지혜로 멋있게 돌파”

 

‘카이사르 카이사르, 하느님 하느님’(Caesar, Caesar; God, God)은 세속주의와 정경분리의 원천 텍스트 중 하나다. 세속주의는 지나친 쾌락이나 물질주의 같은 뭔가 부정적인 것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세속주의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말샘’은 세속주의를 “사회 제도나 그 운영 등에서 종교적 영향력을 제거하고, 세속과 종교 각각의 독립적인 영역을 구분하고 인정하자는 주장이나 견해”라고 정리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서부유럽이 팽창한 결과다. 세속주의는 서구가 시작한 국제∙정치∙경제적 빅뱅의 비법 중 하나로 작용했다. 다른 문명권과 달리 서구는 세속과 종교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분리 덕분에 자본주의∙민주주의라는 세속과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모두 각기 전 세계로 뻗어 나가며 번창했다. 아직도 세상 많은 나라가 세속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속주의 물결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다.

 

그리스도교에서 나온 또 다른 글로벌 경구로 “예할 때 예, 아니오 할 때 아니오(Yes, yes; no, no)”가 있다.(마태오 5:37) 이 경구는 실용주의와 래디컬리즘과 직결된다. 어떤 주장이나 정책이 우리가 표방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궁극적인 통일과 국익에 부합되는지 실용적으로 그리고 냉정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 물론 무엇이 카이사르의 것이고 무엇이 하느님의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예 할 것과 아니오 할 것의 식별은 어렵다. 하지만 구분이 필요하다는 원칙이 서면 ‘시작이 반’이니 엄청난 진전이 있는 것이다.

 

암울한 현실, 우리에게 필요한 경구를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라는 경구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아시아가 세상을 이끌게 된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경구는 어떤 것들일까. 불교∙유교 등 한국 종교 전통에서 나오는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是佛)”, “인내천(人乃天)”,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인여천(事人如天)”, “홍익인간(弘益人間)”과 같은 것들이 아닐까. 또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어떤 경구를 이 땅에서 발전시킬 것인가.

 

지난 수백 년이 서구화(Westernization) 시대였다면, 언젠가 동양화(Easternization) 시대가 개막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동양화 시대의 지도국가가 될 수 있다. 그러기에는 정치∙경제∙사회적 현실이 암울해 보인다. 세계 중심국은커녕 나라가 사라진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를 더욱 강하고 부유하게 만들 경구가 시급하다. 과거에 나왔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국민소득 1000불, 수출 100억불” “호헌철폐 독재타도”와 같은 뜨거운 경구를 들고나오는 정치세력과 지도자가 필요하다.

 

■ 글쓴이: 김 환 영 (지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