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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古經)을 읽는 재미
글쓴이 박석무 / 등록일 2024-11-04
그 무덥던 여름도 갔습니다. 가을도 기울면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바야흐로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계절입니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야 할 이런 때, 고경(古經)을 읽는 재미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재미입니다. 세상이 하도 잘못되어 가고, 모두가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요즘, 마음이라도 삭히려고 정치철학이 가득 담긴 『서경(書經)』을 꺼내서, 고대의 정치와 비교하여 오늘의 정치가 얼마나 무도한 정치인가를 확인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서오경에 속하는 『서경』은 민본(民本)사상을 바탕에 깔고 나라의 근본인 백성을 위하고, 백성들이 편안하고 넉넉하게 살아갈 대경대법(大經大法)을 가르쳐주는 책이자, 백성들의 뜻에 따르지 않는 임금은 자신이 망하는 것은 물론 나라까지 망하고 만다는 교훈을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때문에 요순시대의 정치를 복원하고자 온 마음을 기울였던 다산 정약용도 『서경』에 대한 연구는 다른 어떤 경서보다도 깊고 넓게 연구를 계속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중형 정약전과도 『서경』을 읽으며 요순시대의 이상을 실현하자는 다짐을 했었고,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반드시 『서경』은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태갑 하(太甲 下)」에 나오는 한 구절만 보아도 백성들이 얼마나 높고 무서운 존재인가를 그냥 알게 해줍니다. “無輕民事, 惟難, 無安厥位, 惟危(무경민사, 유난, 무안궐위, 유위)”라는 구절을 풀어서 읽어봅니다. “백성과 관계하는 일(民事)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니, 참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일 것이다. 임금의 지위가 편안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위태로운 처지임을 생각하라”라고 대충 번역할 수 있습니다. 민사를 가볍게 여기다가는 참으로 어려운 처지에 이를 것이고 임금의 지위가 편안하다고 여기다가는 참으로 위험한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오늘 우리의 정치 현실과 견주어 보면, 정말로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2년을 넘긴 이태원 참사만 해도 쉽게 비교될 이야기입니다. 159명의 귀중한 목숨을 잃은 국민의 일, 그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정부는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진실을 밝히는 일에 방해만 놓고 있었는가요. 유족들의 한 맺힌 비통한 울음에 전혀 답해 줄 줄을 모르던 정부, 그렇게 민사를 가볍게 여겨도 되는 건가요. 여기서 배태될 어려움을 생각지도 않고 있으니, 정치를 그렇게 해서야 되는 일인가요. 채상병의 죽음, 국민의 한 사람인 해병대 상병이 지휘관의 잘못된 지휘로 목숨을 잃는 비운을 당했는데 그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일에 가볍게 여기기는 고사하고 아예 조사하는 일까지 가로막고 있으니, 이게 어찌 민사를 처리하는 서경의 교훈에 따르는 정치인가요. 이런 일에서 벌어진 어려움이 결코 만만치 않을 텐데, 막무가내로 뭉개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입니다.
임금의 지위를 편안하게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문제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특검법을 통과시켜 정부가 공포할 것을 요구하면 보내는 법마다 거부권만 행사하고 있으니 이렇게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가볍게 여겨서야 되는 일인가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니 거부하면 어쩔 테냐고 자신의 지위를 안전하게만 생각하고 그에 따른 위험은 생각지도 않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입니다. 민생을 무겁게 여기고 국법도 존엄하게 해야 한다던 다산의 뜻에 따르더라도 제발 『서경』의 교훈을 잊지 않는 정치로 돌아가기를 고대합니다.
■ 글쓴이 : 박석무(다산학자・우석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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