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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과 함께 즐겁게 놀 수는 있다
글쓴이 박석무 / 등록일 2024-12-02
한 나라의 지도자가 뭇 백성들의 마음에 맞는 정치를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제군주 시대에 살았던 다산 정약용은 나라의 지도자를 임금으로 지칭하지 않고 지방관인 목민관을 지도자라 여기고 지도자가 해야 할 온갖 요구사항을 열거하였습니다. 〈목민심서〉라는 책이 바로 지도자인 목민관이 해야 할 일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임금에게 했던 말이라고 이해해도 됩니다. 지도자는 조정이나 감독관청을 두려워해야 하고 백성과 하늘을 두려워하면서 언제나 근엄하고 점잖게 행동해야 하지만, 정사가 제대로 이루어져서 백성들이 만족하게 여기는 때에는 백성들과 함께 기쁘고 즐겁게 풍류를 즐겨도 된다고 했습니다.
“치적(治績)이 이미 이루어지고 뭇 사람들의 마음도 이미 즐거워하거든 풍류를 꾸면서 백성들과 함께 즐기는 것도 선배들의 성대한 일이었다”(飭躬)라고 말하여 백성들의 마음에 흡족한 정치를 한 뒤라면 풍류나 오락을 즐길 수 있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선배들의 여러 예를 들어서 백성들과 함께 즐겼던 일까지 예시하고 있습니다. “송나라의 학자 관인인 황간(黃幹:주자의 사위)이 안경부(安慶府)를 맡아 다스릴 때 치적이 이미 이뤄졌는데 마침 상원일(上元日:정월 보름날)에 등불놀이를 벌이니 백성들이 늙은이는 부축하고 어린애는 이끌고 왕래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한 노파가 있었는데 나이 100세였다. 두 아들이 가마로 모시고 여러 손자가 뒤를 따라 관아로 와서 감사를 드리었다. 황간이 예로 대하며 명해서 술과 안주를 차리게 하고 또 돈과 비단으로 위로하니 노파가 ‘이 늙은이가 온 것은 온 고을의 생령(生靈)을 위해 감사드리려 함이요, 태수께서 내려주시는 것을 바라서가 아닙니다’ 하고는 받지 않고 돌아갔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연인가요. 100세의 노인이 고을 원님의 어진 정치에 감복하여 감사드리려 노구를 이끌고 관아를 방문했으니 태수로서야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요. 그래서 맹자(孟子)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그렇게도 강조했고 ‘선우이후락(先憂而後樂)’을 태수들에게 요구했던 것입니다. 즐거움이야 반드시 백성들과 함께해야 하고, 먼저 백성과 나라를 위해 근심스러워해야 하고, 그런 뒤에야 즐거워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요즘 지방자치 단체에서 여러 가지 위문 공연이나 노래자랑 및 시민잔치 행사를 벌이는 것도 일종의 그런 풍류의 행사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만 치적이 제대로 이루어진 뒤의 일인가는 따져 보아야 할 일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는 참으로 말이 아닙니다. 여론조사의 결과만 보더라도 80%에 가까운 국민이 정치를 잘못한다고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실정임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민생 파탄, 전쟁 위기, 검찰 독재, 민족정기 말살, 외교 참사, 주술 정치, 공천개입 등등 어느 것 하나 국민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지 못하고 불안과 위기의식만 느끼는 참담한 실정일 뿐입니다. 이런 불안·불만·분노의 시절에 대통령이 오락의 하나인 골프를 몰래 치다가 말썽이 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도자가 오락을 즐기는 일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정사가 제대로 이룩된 뒤에 백성들과 함께 오락을 즐기는 일을 다산은 허용했습니다. 정사는 엉망인데, 그것도 혼자서 즐기는 오락을 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그것이 과연 정당한 즐김이었다면 왜 숨기고 거짓말로 넘기려 하는 것일까요. 즐기는 때가 맞아야 하고 백성과 함께 즐기지 않으면 그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 글쓴이 / 박 석 무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 다산학자
· 고산서원 원장
· 저서
『다산의 마음을 찾아―다산학을 말하다①』, 현암사
『다산의 생각을 따라―다산학을 말하다②』, 현암사
『다산에게 배운다』, 창비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목민심서,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 ,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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