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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국면에서 생각하는 삼중 평화 - 서보혁

by 귤담 2024.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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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국면에서 생각하는 삼중 평화

글쓴이 서보혁 / 등록일 2024-12-10

지난 12월 3~4일 밤, 윤 대통령이 선포한 불법 계엄은 그 자신의 정치생명을 중단시킴은 물론 한국을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 총체적으로 후퇴시켰다. 비록 짧은 시간의 계엄이었지만 그 파장이 길 것이 분명한데, 윤 대통령의 하야는커녕 탄핵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고 혼란스러운 정국이 이어질 우려가 크다. 민주주의를 거역하는 계엄이 치밀하게 준비되어 온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계엄은 국민들과 야당의 저항으로 6시간으로 끝났다. 그러나 계엄의 이면에는 한국정치가 내전에 깊이, 오래 빠져들었음을 말해준다.

 

한국형 정치 내전의 특수성

 

한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내전적 양상은 여러 측면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지만, 그 특수성으로 ‘군사주의’를 지목할 수 있다. 군사주의는 논자에 따라 정의가 다르지만, 넓게는 제반 갈등을 폭력적으로 해결하는 관행과 의식을 말한다. 이때 ‘폭력적’이란 비민주성, 일방성, 위계성, 법치에 반하는 성격 등과 관련이 있다.

 

탈정치의 정치가 지난 몇 년 사이에 나타난 것은 물론 아니다. 대화와 협상, 타협과 경쟁이 국회 내에서, 국회와 행정부 사이에서 보기 힘들어진 지 오래다. 팬덤정치는 명백한 군사주의적 현상이다. 정치를 우군과 적으로 나누고 경쟁을 적대로, 대화를 충돌로 바꾸고 정당화하는 행동방식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계엄 발표에서 국회를 ‘범죄자 집단의 소굴’로 지칭하고 ‘입법 독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기에는 대통령이 야당은 물론 견제와 균형의 민주정치 원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한국 정치의 내전적 양상은 피아 구도의 형성과 적대적 양상만이 아니라, 그 기준이 분단과 관련이 있다는 데 그 특수성이 있다. 윤 대통령도 계엄 발표에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 북한은 안보 위협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북한‧통일문제는 국내정치적 곤경을 회피하는 소재로 호명받기도 하고 정치적 경쟁세력을 악마화하는 데도 유용하다. 윤 대통령의 계엄 발표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계엄 선포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위협을 주요 명분으로 언급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정치 내전이 국가 단위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트럼프의 귀환과 우크라이나, 중동 및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국제분쟁의 일상화와 그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한국 경제와 안보를 제약할 것이다. 탄핵국면이 길어지면 이런 리스크가 더욱 커질 우려가 높다.

 

한국형 평화의 보편성

 

계엄사태를 특징짓는 주요 행위자는 군부이다. 이번 계엄사태에서 소수 정치군부의 준동으로 군은 총을 들고 국회를 진입하였다. 그에 앞서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을 획책한 것(북한 오물풍선에 대한 원점타격 시도와 그에 따른 북한의 군사적 대응 초래)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군의 불법 정치개입은 다양한 언론에 의해 공개되고 현장 군인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성공할 수 없었다. 북한과의 충돌 우려도 합참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계엄세력이 국민의 목숨과 국가의 안위를 무시하는 처사가 국민들과 야당, 그리고 심지어 군부 내부를 아우르는 민주‧평화의식에 의해 꺾인 것이다.

 

탄핵국면은 계엄을 종식시키고 민주정치를 복원해가는 과정에서 조성된 과도기 상황이다. 그 불안정성과 그 이면 한국정치의 내전적 양상을 반영해 삼중의 평화를 제안해본다. 삼중 평화는 ①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와 법치 원리에 따른 경쟁과 타협, ②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 ③ 개개인의 마음에서 열린 평화, 성찰하는 평화를 말한다.

 

이 셋이 선순환할 때 한국형 평화의 윤곽이 잡힐 수 있을 것이다. 그 출발점으로, 안으로는 법(法), 정치권으로부터 물(水)이 흘러가듯이(去) 모범을 보이는 일이다. 밖으로는 북한과의 갈등을 자제하고 상황을 관리하는 일이다. 평화는 수단, 절차일 뿐만 아니라 목표이자 거울이다. 이상 삼중 평화를 전개해나갈 때 민주정치의 회복을 향한 탈(脫)탄핵국면은 민주정치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필자가 속한 기관의 입장과 무관합니다.)

 

글쓴이 : 서 보 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