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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재발견 - 김환영

by 귤담 2025.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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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재발견

글쓴이 김환영 / 등록일 2025-04-01

율법은 어감이 막연히 나쁘다. ‘예수는 해방, 율법은 구속’이라는 인식도 있다. ‘구속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죄’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율법은 우리를 보호한다. 율법을 지키면 자유롭다. 결정장애에 걸리기 딱 좋은 복잡한 이 세상. 율법은 의식의 수고를 덜어주는, 자동화된 무의식처럼 작동하며 고민할 일, 스트레스받을 일도 줄인다.

 

율법은 규범이다. 어기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학폭∙미투∙음주운전∙마약∙갑질∙말실수∙∙∙ 어린 날, 젊은 날의 실수도 율법은 가혹하게 벌한다. 유력 장관후보, 대권후보의 감투도 물 건너 간다. 딴 세상 이야기 같던 인과응보∙상선벌악이 갑자기 작동한다.

 

율법, 유대인의 성취와 유관하다는 주장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엔터테인먼트∙정치 분야 셀럽들이 겪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종교적 규범의 세계는 서릿발 같다. 상당수 우리나라 사람들, 미국∙유럽 사람들 사후세계가 있다면 우리는 좋은 곳에 간다고 낙관적으로 기대한다. 《숫타니파타》에 따르면 지옥은 반드시 엄청난 죄를 지어야 가는 곳이 아니다. “아무 때나 잠자는 버릇이 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버릇이 있고, 분발하여 정진하지 않고 게으르며, 걸핏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라고 이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에 나온다.

 

예수도 마찬가지로 엄격하다. 이렇게 말했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 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마태오의 복음서 5:22) “오른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마태오의 복음서 5:29)

 

율법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된다면, “율법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율법의 재발견이 필요하다. 율법은 복잡하다. 몇 가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졌다. 첫째, 율법은 그 본질이 무조건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그리스도교와 달리, 유대교에서는 율법이 신앙의 핵심이다. 마이모니데스, 막스 베버, 토머스 소웰, 찰스 머리, 유발 하라리 같은 많은 석학이 유대인이 이룩한 성과와 율법이 유관하다고 주장한다.

 

둘째, 정도 차이는 있지만, 율법은 모든 종교에 내재한다. 불교의 오계∙팔계, 유교의 예∙오륜, 이슬람의 샤리아 등. 모든 그리스도교 교파에서도 발견된다. 율법에 대체로 부정적인 개신교도 ‘율법적’이라 볼 수 있는 금주∙금연과 주일 지키기를 실천한다. 개신교보다 율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율법적’ 자기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21세기에 맞는 간단한 계율을

 

셋째, 율법은 변한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화한다. 율법을 둘러싼 부침의 주기가 있고 진화도 있다. 율법은 단순화∙복잡화 과정을 거친다. 율법이 대세인 시기가 있고 반율법적∙비율법적∙탈율법적 성향이 득세하는 시기가 있다.

 

예컨대 종교개혁은 반율법적인 운동이었지만, 개신교 중에서도 모범적인 청교도주의에도 율법이 재등장한다.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1850)는 17세기 뉴잉글랜드 청교도 사회의 숨 막히는 율법주의를 그리고 있다. 선불교에서도 계가 중요하지만, 교종이나 초기불교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중시한다. 금주법이나 낙태반대운동 같은 율법적 운동이 급부상하기도 한다. 실학은 오륜을 실천적∙평등적∙실용적으로 비판적으로 재해석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율법친화적이지 않다. ‘오로지 율법으로 구원 받는다’는 그리스도교 교단은 없다. 불교에서도 계를 지켜 성불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가치의 뿌리는 율법이다. ‘나라에 충성, 부모님께 효도’는 3국통일에 기여한 세속오계의 사군이충(事君以忠)·사친이효(事親以孝)를 뿌리로 한다.

 

율법은 간단할 필요도 있다. 예수는 율법의 핵심을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했다.(마태오의 복음서 22:37:40) 경천애인(敬天愛人)∙사인여천(事人如天) 한마디로 충분하다. 율법은 시대에 맞아야 한다. 전쟁과 같은 무한경쟁에서 이기고 남북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21세기 세속오계 같은 간단한 계율이 아쉽다.

글쓴이 : 김 환 영(지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