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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사상과 ‘K-기업가 정신’?
글쓴이 강수돌 / 등록일 2025-03-25
안타깝게도 남명 조식 선생(1501~1572)은 퇴계 이황(1502~1571),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 등에 비해 훨씬 덜 알려져 있다. 경우에 따라 폄하 내지 왜곡돼 있기도 하다. 심지어 최근엔 남명 조식 선생의 활동무대와 가까운 진주에서 남명 사상으로부터 기업가 정신 내지 K-기업가 정신을 도출하려는 학술적 시도까지 있었다. 남명과 지역사회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 사상과 K-기업가 정신을 연결하려 할까, 하며 심정적 이해는 하나, 이를 학술적으로 근거지우려는 노력은 ‘너무 나간’ 것이다.
남명 연구자도 아닌 내가, 또 경영‧경제를 연구해온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좀 엉뚱하다. 행여 나를 ‘남명과 기업가 정신의 연관성’을 연구할 적임자로 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평생 직언과 지행합일에 충실했던 남명의 ‘을묘사직소’ 정신처럼 감히 용기를 내어 불편한 얘길 하려 한다. 결론적으로, 남명과 기업가 정신을 연결하려는 건 무리다.
남명 사상의 핵심은 ‘영육일체’ 또는 ‘지행합일’
크게 보아, 두 차원이다. 하나는 남명 사상(정신)에서 자본주의 기업가 정신을 도출할 근거는 없다. 오히려 남명 정신은 자본주의 기업가 정신이나 기업 현실을 ‘비판’하기에 좋은 잣대를 제공한다. 두 번째 차원은, 과연 K-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다른 나라의 기업가 정신과 차별성이 뭔지에 대해 한국 경영‧경제학계에서 제대로 논의된 적도 없고 이렇다 할 결론도 없는데, 무엇을 근거로 그 둘의 연속성을 도출하려 하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선 첫 차원에 집중한다. 과연 남명 사상(정신)에서 자본주의 기업가 정신을 도출할 근거가 있는가? 비교적 최근에 진주 지역을 중심으로 남명 사상을 오늘의 기업가 정신, 나아가 K-기업가 정신의 뿌리로 자리매김하려는 학술적 시도(예, 2023년 7월의 국제 학술대회 및 2023년 12월의 국내 학술대회)가 있었다. 처음에 내가 그 학술대회 소문을 들었을 때는 아마 그 결론이 비판적(회의적)이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전혀 아니었다. 좀 거칠게 말하면 남명은 거기서 ‘학술적 고문’을 당한 듯하다. 그 근거는 이렇다.
하나, 내 생각에 남명 사상의 핵심은 ‘영육일체’ 또는 ‘지행합일’이다. 영육일체란 영혼과 육신, 정신과 물질, 도덕과 권력 등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 역으로, 이들을 분리하는 이분법을 극복하자는 얘기! 반면, 인간 노동력을 활용, 사람과 자연의 생명력을 체계적으로 추출하는 자본주의 기업은 남명 반대편, 즉 F. 베이컨(1561~1626)이나 R. 데카르트(1596~1650)의 ‘이분법적’ 사상(인간과 자연을 분리, 경제성장을 위해 자연 정복을 정당화)에 토대한다.
둘, 남명 사상은 16세기 봉건 시대 이론이다. 그런데 이 16세기 이론을 21세기 자본 시대 현실에 적용한다는 창의성은 높이 살 수 있지만, ‘사상누각’의 위험이 있다. 이런 면에서 창의성(Creativity)이라기보다 억지성(Perversity)이 엿보인다.
그래서인지 위 학술대회에선 16세기 남명 사상과 오늘날 21세기 기업가 정신 사이에 “중간좌표”나 “연결고리”를 찾으려 노력했다. 개념적 차원 또는 인적 차원의 연관성을 탐색한 것! 일례로,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 대표적 기업인 삼성, LG, GS, 효성의 창업자들의 연고가 지수초등학교이고, 이들은 양반 유림의 후손들”이란 내용! 또, 남명의 ‘유교적 실용주의’가 상공업 발달의 철학적 기초(특히 “응사구당”, “살활수”, “윤편착륜”)임을 주장하거나 남명의 ‘쇄소응대’론이 18세기 북학파 사상으로 연결돼 결국 상업 내지 기업 발달의 기초로 작용했음을 강조한다. 또, 남명의 공리공담‧구이지학 경계, 진정성과 실천성 강조, 학문의 개방성, 벽립만인의 우뚝한 기상 등에 주목, 실학사상(수기치인, 경세, 치용, 행도, 이용후생, 실사구시)과의 연관성을 부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이게 어떻게 ‘(K-)기업가 정신’으로 연결되는가?
남명 사상으로 오늘의 기업 세계를 ‘비판적 성찰’
오히려 나는 남명의 여러 사상적 단초들이 오늘의 기업 세계 또는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실마리가 된다고 본다. 남명 사상이 그 무엇보다 부의 축적보다 인간됨이나 생명 존중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남명 사상 연구자들이 그간 기업들이 야기한 복합위기(경제, 사회, 생태위기)를 해명하고 비판, 지양하는 데 더 힘을 기울이면 좋겠다. 바로 그런 태도가 남명이 늘 휴대한 ‘성성자(惺惺子)’ 내지 ‘경의검(敬義劍)’의 진의가 아닐까?
■ 글쓴이 : 강 수 돌(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저서]
《자본주의와 생태주의 강의》(2025)
《기후 위기 시대, 슬기로운 경제 수업》(2023)
《팔꿈치 사회》(201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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