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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단편소설] 사라지는 것들, 남는 것들

by 귤담 2023. 1. 5.

[단편소설]

사라지는 것들, 남는 것들

유금호 (소설가)

아프리카 마사이마라와 거기서 보았던 작은 화강암 비석이 그 시간에 왜 갑자기 생각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가벼운 두통과 함께 검은 먹 글씨가 깊게 음각된 작은 비석이 기억의 깊은 곳을 헤집으며 현실처럼 떠올라 보였던 것이다.

 

어렸을 때 마라리아를 앓으면서 열에 들떠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밀림 속을 헤매고 다니는 환각을 몇 번 겪고 나서, 건강할 때도 두통이 오면서 엉뚱한 곳이나, 낯선 시간 속에 혼자 팽개쳐져 있는 듯한 혼란이 와서 당황한 적이 있지만 이번 일은 좀 의외였다. 성장하고 나서는 서울 생활을 시작했던 첫 여름의 한낮, 아스팔트 위로 지열이 아지랑이처럼 깔려 가는 걸 보다가, 한 순간으로 한창 보리가 자라고 있는 시골 밭둑길 생각을 했고, 그 밭둑을 걷는다는 착각으로 휘청이며 두 정거장을 걸어 간 일 말고는 느끼지 못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 비석을 본 건 벌써 3년 전 일이었고, 이미 잊혀진 기억이었다.

친구에게도 그 비석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친구에게 그 비석 이야기를 했으면 밥이나 돈하고는 상관없는 기억을 머리 속에다 담아 가지고 다닌다고 핀잔을 했을 게 뻔한 일이었다.

한달 간 무급 휴가 명령을 받아 실컷 잘 쉬게 되었다고 며칠 전 내가 무덤덤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확실히 자넨 머리 속 코드가 몇 개 잘못 연결된 거 같어, 하고 웃었으니까 그 비석 이야기를 했어도, 할 수 없어. 자넨....그렇게 싱겁게 웃어 버렸을지도 몰랐다. 

 

탄자니아 국경지대에서 바라다 보이던 만년설의 킬리만자로 정상을 휘감고 있던 새털 구름, 시시각각 변해가던 구름 색깔, 킬리만자로를 바라보기 위해 만든 캐냐 쪽의 낮은 언덕 위로 그때 시작되던 저녁 풍경은 사실 낡은 흑백 사진 같이만 기억의 창고 밑바닥에 방치되어 있었다.

아내가 죽은 후 떠났던 그 여행의 기억까지도 아내와의 연상이 싫어서 나는 의도적으로 잊도록 노력해 오기도 했을 것이다.

최근 2년여의 일들, 아내의 화장(火葬) 소식을 들으며 곧바로 국제 공항을 향했던 그 무렵을 나는 내 과거에서 완전하게 삭제해 버린 것으로 치부해 왔다.

 

서울의 하늘답잖게 그때 서쪽 하늘이 분홍에서 주황으로 갈색으로 뒤엉켜 바뀌어 가는 모습을 오래간 만에 보았던 때문일 수도 있었다.

마사이 부족 마을에서도 그때 해가 지고 있었고, 한 떼의 코끼리들이 수풀을 빠져 나와 초원 쪽으로 느릿느릿 움직여 가고 있었는데 이마의 땀을 닦느라 걸음을 멈추었던 나는 언덕길 한쪽에서 조그만 화강암 비석 하나를 보았던 것이다.

香味川純平( 1964-1995).

도대체 아프리카 대륙의 킬리만자로 봉우리가 건너다 보이는 언덕배기에 지극히 동양적인 작은 화강암 비석의 그 일본인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킬리만자로를 꿈꾸던 한 몽상가의 죽음, 아니면 그곳까지 등산을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한 알피니스트의 뼈 가루를 친구들이나 그의 연인이 그 언덕까지 가져다가 묻어준 것일까.

그때 엷은 새털구름이 킬리만자로의 산정을 휘감고 있다가 잠시 신비한 그 이마를 내보여 주었던 생각이 난다. 엉뚱한 공간에서 부딪친 그 일본인의 비석 앞에서 한참 나는 그때 망연해 있었다.

나하고 1년여, 부부라는 이름으로 동거해 온 여자의 흔적은 이미 내게 증오로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을, 그 여자가 내 삶의 한 귀퉁이를 스치고 지나갔다는 증거조차도 없어져 버렸다는 자각을 하면서도 잠시 그 비석 앞에서 나는 이상한 당혹감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친구는 언제고 내게 많은 도움을 주어 왔다. 이 나사 빠진 친구야, 아예 이번 기회, 본적을 옮겨 버려..... 호적까지 깨끗하게 정리되어 버린다구....법이 바뀌었다니까.....별거 중이던 아내가 죽은 것을, 그것도 고속도로에서 젊은 남자들과 함께 유조차를 들이받고 시체조차 너덜너덜해진 채 죽고 말았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그에게만은 그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단호하게 그렇게 말했었다. 아내의 사고 소식을 전화로 전해 온 장모에게, 나는, 그랬어요?.....그렇게만 반문했었다..... 일찍 못 죽은 내 죄지.......아파트 키, 경비실에 맡겨 둘께요.... 그 사람 건 아무 것도 없겠지만 언제 나 없을 때 들려서 그 사람 혹시 뭐 남긴 거 있으면 찾아가세요. .....장모 역시 아내의 죽음에 관련해서 내게 더 이상 다른 말을 전해 오지 않았다. 두 쌍의 남녀가 탄 승용차, 중앙선 넘어 마주 오던 유조차와 충돌. 음주 과속 운전으로 추정,.....이봐. 이번 여행가서 지난 세월 다 훨훨 털고 들어 와. 다시 시작하라구. 거기 원주민 여자라도 하나 꿰어차고 귀국하던지.....그래도 에이즈 발상지가 아프리카라는 것은 안 잊는 게 좋을 걸세. 자넨 늘 물가에 데려다 놓은 어린애 같애서 옆 사람을 좀 조마 조마하는 데가 있으니까 그건 알아서 하고.......친구는 그때 국제 공항 터미널 까지 따라 나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마 내가 인도의 뭄바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나이로비를 향하던 인도양의 하늘을 날고 있을 때 쯤에나, 어쩌면 훨씬 그 이전, 내가 김포에서 비행기 좌석에 착석했을 때 쯤 아내의 너덜거렸던 육신은 이미 잿가루로 변해 서울 근교 산자락이나 한강물 위를 흩어져 갔을 것이었다. 

 

“출근하자 말자 게시판으로 가는 거야. 회사 게시판에 내 이름이 해고자 명단에 들었나 마음 조릴 때 비하면 요사이는 천당이라니까.”

경제가 뒤틀리면서 감원이다, 조기 퇴직이다,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을 때 친구는 참 일찍이도 그 바람을 타고나서 히죽거리며 마음 좋게 웃어 보였다. 친구는 계속되는 정리 해고자 명단에서 자기 이름이 발견되자 차라리 안도감이 오더라고 내게 이야기했었다. 집행 일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심정보다야 났겠지만 매일 매일 해고자 명단을 보는 일은 피를 말리더라고 했다.

“대리 운전이라는 거, 꼭 지랄 같은 것만은 아니더라고. 술 취한 사람들 푸념을 들으면서 꼭 한달 전이나, 두 달 전 내가 쓴 소주에 취해 했던 말들을 어쩌면 그렇게도 똑 같이들 하고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말이야.”

10년을 지각 한번 않고 근무하던 회사가 기우뚱거리다가 드디어 신년 들어 해직 통보를 받은 친구가 우연하게 새로 시작한 일이 취객들의 대리 운전이었다. 부동산 거래가 뚝 끊긴 중학 동창 사무실에서 바둑을 두다가 옆집 식당 지배인이 술 취한 손님을 집까지 데려다 주었으면 했던 부탁이 말하자면 그의 새 직업의 출발이었던 셈이었다.

“음주 운전 단속, 그게 또 그것대로 묘미가 있더라니까.”

그는 자기의 새로운 일거리가 생각보다 재미있다고 했다.

술꾼들에게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는 한 두 군데 음주단속 장소만 통과시켜 주는 반짝 대리 운전은 조금 스릴도 있고 .......그래서 세상은 한쪽으로 비스듬히만 보면 그렇게 고약한 것만은 아니더라고.....아예 쓸개하고 간하고 빼서 집 빨래 줄에 걸어 놓고 다니지 그래?..... 모처럼 한 마디하고 돌아서면서 그때 왜 나는 콧마루가 그리 시큰해졌는지.....퇴근하고 한 번 와 봐. 자네도 대리 운전 한 번 시켜 줄테니까.... 잘 빠진 젊은 아가씨들, 방안에 까지 에스코트 해 달라는 거는 좀 난처하지만.....그것도 영화같이, 사쁜하게 안아다가 침대에 눕혀주고, 신발도 벗겨 주고....왜 영화 보디가드 있잖어? .....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런 소릴 하는 여자들이 지금 막 제 남자 친구나 약혼자, 애인하고 러브호텔이나 나이트 클럽을 빠져 나온 꽤 잘 생긴 미인들이라는 거야....사람 헷갈리게 하는 게지.....사람..... 숨 넘어 가면 그 뿐이야. 인상 잔뜩 구기고, 인생이 어떻고, 사회가 어떻구....... 그래, 나, 10년 동안 지각 한 번 안 했어. 회사 잘 못 되면 나도 자살하고, 우리 사장도 자살하고, 나, 그러는 줄 알았다구.....한 세상 참 짧은 건데...... 난 공부도 많이 안 했고, 자네 같이 책도 잘 안 읽지만.... 사람은 언젠가 죽고, 죽고 나면 아무 것도 없다는 거. 나, 그건 알아.....누군 안 죽는데?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도, 자네도 다 죽지, 안 죽나?......그 날은 다섯 탕을 뛰어서 수입이 나 보다 나으니까 자기가 소주를 사겠다고 우겼던 날이었다.

“엉뚱한 얘긴데 나는 내가 얼음으로 만들어졌다가 숨이 넘어가면 스르르 녹아서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어 사라졌으면 그런 생각을 가끔 하거든. 시체가 너덜너덜 썩어 가는 거, 무덤으로 남는 거, 어째 영 싫어....”

“이 나사 빠진 친구야. 숨 넘어간 뒤 일을 누가 알아?”

“아니라니까.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내가 말갛게 얼음으로 변해서 녹아 가는 게 보인다고.”

“자, 술이나 마셔. 자네, 아직도 꿈을 꾸면 ..... 자네가 꽃이 되기도 하고, 갈매기로 변해서 수평선 위를 날고.....그러는 건가?”

나는 얼른, 아니야. 괜한 소리지. 그렇게 대꾸하고 술을 비웠다. 꿈속에서만이 아니라 밝은 대낮에도 잠깐씩 그런 몽환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가는 이 친구 아마 술잔을 박살낼지도 몰라서였다.

“시간 날 때 나한테 와서 조수나 한번 해 봐....세상 새로 배우는 거 같어.....웃기지....솔직히 지난 10년, 회사 아니면 죽는 줄 알고 살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한심한 놈이었어.”

친구는 내가 아내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특별한 취미나 여자 쪽에도 신경을 안 쓰고 무미 건조할 만큼 단조롭게 살아가는 게 한심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일종의 생래적 권태랄까. 언제부터였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할 만큼 현실적인 일들에 의욕이나, 욕망, 분노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는 일종의 무력증이 습관처럼 내게 배어 있는 듯 했다. 결혼 후 1년이 지났을 때 아내가 내게 말했었다......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난 당신이라는 남자, 왜 허깨비 같은지 이해가 안돼요......허깨비?....그래요. 무슨 취미가 있는 것도, 무슨 계획이 있는 것도, 하다 못해 화 낼 줄도 모르는 무슨 괴물 같애....그때 그렇게 대꾸했던 기억이 난다......아침에 잠에서 깨어나고 보니까 자기 몸이 한 마리 벌레로 변해 있더라는 외국 소설이 있어. 할 말이 있는데도 벌레가 되어서 식구 들한테 제 이야기가 전해지지도 않고....결국.....당신이 그럼 그 벌레가 되었단 거예요? 뭐예요? 아님 내가 벌레로 변신했다는 거예요?....아내는 담요 한 장과 제 베개를 들고 마루의 소파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 한 두어 주일이 지난 후 우리는 별거에 들어갔었다.

....둘 다 코드가 전혀 다른 거야. 안 할 말로 궁합이 안 맞는 거지. 자네 부인은 자네하고 근사한 음악회나 연극도 보러 가고, 혼자 증권도 하고, 여행도 가고, 세일하는 백화점에 친구들하고 몰려 다녀야 하는 거라구..... 더러 말이지...락 카페엔가 그런데도 가서 실컷 스트레스도 확실하게 풀고...우선 애가 안 생겨서 그것두 문제고....그런데 자네는 황학동 골동품 골목 아니면 헌 책방이나 기웃거리고, 뭔가..... 사라진 대륙이 어떻고, 공룡의 멸종이 어떻고.... 그런 영양가 없는 책이나 안 들여다보면... 기껏 이야기한다는 게, 어렸을 때 송사리를 몇 마리 잡았는지, 꿀벌 여왕벌이 하루에 알을 몇 개 낳고..... 매미란 놈이 땅 속에서 몇 년을 있다가 나와서....그러니.....안 맞는 거지. ......친구가 내게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나는 역시 이 오랜 친구가 비교적 나를 상세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아내와의 별거가 도리어 나를 훨씬 더 편하게 느끼게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얼떨결에 결정했던 둘의 결혼이기도 했지만 두 사람이 있던 공간에 나 혼자만 남게 되자 그 공간은 내게 두 곱으로 넓어 져서 가슴이 후련했다. 사실 1년여의 동거 생활 중..... 당신 지금은 또 뭘 생각해요? 당신 앞에 사람이 있는 게 보이기는 해요?....그런 식의 질문을 참 여러 번 들었었다. 아, 미안해. 나는 서둘러 사과했지만 지금은 집터조차 개발에 밀려 사라진 시골집 생울타리를 돌면서 고추잠자리를 잡는 내 유년의 잔영(殘影)에서 나는 완전히 빠져 나오지 못한 채였다. 더구나 별거 후 아무 때고 내가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다는 것, 먹고 싶은 것만 먹어도 되고, 먹고 싶은 만큼만 먹어도 되는 것이 꿈속같이 편하다는 느낌이 왔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났을 때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서 잠시 불쾌한 충격이 왔지만 못 견디게 배신감이나 고통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도 현실에의 무중력감이 심하다는 생각은 해 왔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대증요법으로 오래 꿈꾸어 오던 것이 여행이었다.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 가급적이면 문명의 때가 안 묻어 있는 그런 공간, 남미의 아마존 밀림이나, 아프리카나 뉴기니아의 오지, 그런 꿈을 나는 오래 동안 지니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직장 동료들의 젊은 아내를 잃은 동료 직원에 대한 동정과 위로를 구실 삼아 나는 그때 겁 없이

아프리카행 비행기를 탔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여행을 하면서 아내가 죽었다는 생각이 내 의식 일부에 남아서 내 사유의 일부를 끈적이게 하고 있는 거였다.

육신, 영혼, 내세, 윤회...... 그것은 미라를 만들었던 피라미드가 있는 아프리카라는 공간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었다.......인간의 육신이 스러진 뒤에도 그가 머물었던 공간에 그림자가 필요한 것일지......무덤이나 비석은 죽어 버린 사람에 대한 남은 사람들의 기억과 회상의 무게가 맞는 것일지.

게오르규가 그랬던가. 한국의 흙으로 만든 둥그런 무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원래의 지면과 평형을 이루게 되어 있다고 .....그 입체적 봉분이 평면으로 복귀해 가는 속도가 신기하게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죽는 자를 기억하는 질량에 비례하는 느낌으로 다가와 아주 인상 깊었다고......화장(火葬)을 하고 가루로 빻아진 뼈 조각을 사방으로 흩뿌리고 나면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은 순간 무화되어 버리는 것인가.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아내가 죽기 훨씬 오래 전 별거를 결정한 순간부터 아내를 내게서 지워 버렸으니까.

 

“뭘 해 ? 넋 빠진 사람같이....”

손님을 실어다 주고 돌아 온 친구가 큰 소리를 내며 부동산 가게 유리문을 밀고 들어 와 내 앞에 서 있었다.

아, 하고 나는 그때야 내 아둔해진 신경을 책망했다.

흰옷이었다. 그 젊은 여자의 흰옷이 내게 잊혀졌던 기억의 일부를 깨운 모양이었다.

친구에게 자동차 키를 내밀던 여자 손님은 흰 한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일상복이었는지 상복(喪服)이었는지는 쳐다 볼 생각도 안 했지만 자동차 핸들을 잡는데는 참 안 어울리는 복장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만은 확실했다. 어느 순간 그 흰 옷 색깔이 내 기억의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 왔다가 황혼의 색깔에 뒤섞여 여행의 기억 속에 묻힌 필름 한 조각을 끄집어 내 준 모양이었다.

“어때, 오늘 괜찮지?”

그가 만원 권 몇 장을 내 앞에 흔들어 보였다.

“이상한 여자거든. 이곳 식당에서 술 마실 일 있으면 버스나 택시로 나오면 되잖어? 그런데 차를 몰고 와서...혼자 마시고.... 대리 운전 부탁하고.....”

“전에도 그랬나?”

“세 번짼가........누가 죽은 모양이야....여기 식당에 같이 왔던 남자가 죽었고, 그래서 이곳 식당을 다시 찾아오고....그러다 울적해져서 몇 잔 마셔 버리고....”

“그 죽은 사람은 그럼 행복한건가?”

“죽고 난 뒤 일을 누가 알아? 아무튼 또 그 여자 오면, 자네가 한 번 데려다 줘 봐. 그 여자도 자네 같이 나사가 몇 개 풀린 건 확실하니깐.....가면서 말도 걸어 보고....”

 

호기심이 일긴 했지만, 그녀 사정 이야기를 들어 보아야겠다는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일이 이상하게 되느라고 바로 이튿날 밤, 친구 이야기대로 그 여자 차를 내가 운전하게 되어 버렸다.

친구가 다른 차 대리 운전을 나간 사이 옆 식당에서 전갈이 왔던 것이다. 우물거리고 있는 내게 부동산이 빨리 움직이라고 눈짓을 했다.....저쪽 가게에도 목 빠지게 제 차례 기다리는 사람들 있수.....그래도 저 박사장이 의리가 있어서 이리루 연락이 온 거지...... 밤이 꽤 깊어진 시간이었다.

 

“친구한테 놀러 나왔다가요. 마침 지금 친구가 나가고 없어서......나도 마침 휴가 중이고 해서......처음인데 괜찮으실지 모르겠네요..”

나는 필요 없는 말인 줄 알면서도 자동차 시동을 걸면서 더듬거리며 내 사정을 설명했다.

“상관없어요......”

백밀러 속에서 여자가 몸을 뒤로 기대며 중얼거렸다.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 행선지를 꼼꼼하게 챙겨 듣고 조심스럽게 핸들을 꺾었다. 

여자는 뒤 창문을 조금 내리더니 담배를 피워 물고 시선으로 창 밖으로 보내 버렸다......담배 피우시면 피세요.....아닙니다. 조금 전 태웠어요.....맘대로 하세요. 그럼..... 세 번을 같은 사람이 데려다 주었는데....아마 그 아저씨 나한테 그랬겠지요. 무슨 미친 예편네가 한 번도 아니고, 매번 같은 식당에서 혼자 싸구려 소주 마시고 대리 운전을 시키는가 하고.....누가 돌아가신 모양이지요?....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여자는 창 밖으로 시선을 보낸 채 담배 연기만 조심스럽게 날렸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혹시 그런 거 아세요?”

“글쎄요. 난, 종교가 없어서요.”

“종교에 의탁하지 않으면 생명은 끊어지고 나면 그 뿐이라는 말인가요?”

“흔적이야 남겠죠. 그 사람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 마음 속에요. 그러다가 그 사람을 아는 사람도 떠나고...또 떠나고...그러다가 없어지고.......그래도 큰 일을 한 사람들, 가령 인류나, 국가나 민족에게 흔적을 남기면..... 학문이나 예술, 그런 것들을 남긴 사람이라면 다를 수도 있겠지요. 또 보통 사람도, 자식을 남기고, 또 남기고...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생명은 이어져 가는 거구요... 그러나 남긴 것을 통해 추억하는 것이지, 본인 입장에서야 죽어 없어졌는데 죽은 사람을 일으켜 세워 놓고 다시 물어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세상을 떴어요. 여러 해 되었지만.....그 사람 죽은 그 며칠 간 그 사람 생각을 하며 술을 마셔요... 그 사람 생각날 만한 곳도 돌아다니기도 하고.....”

“소복 하셨던 걸 뵌 것 같네요.”

“가까운 사람이 죽은 경험이 더러 있겠죠?”

“세월이 간다는 게 결국 알았던 사람들과 사별이 쌓여 가는 것, 그런 게 아닌가요? 아버지, 어머니, 또 친구, 또 남편이나 아내........”

나는 다시 이상하게 내가 아프리카의 그 화강암 비석 앞에 다시 서 있는 듯한 환각을 느꼈다.

“죽기 훨씬 전부터 잊혀지는 사이도 있고....그 사람 무덤이나 비석 앞에 가서야 생각나는 사람도 있고......별거 중이었지만....나도 아내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그 무렵 친구들이 날 위로한다고 아프리카 여행을 시켜준 적이 있는데.... 거기 가서 미이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오거나, 원주민 여자라도 하나 꿰어차고 오라고 ......죄송합니다. 너무 떠들었습니다.”

어쩌다가 결국 키리만자로에서 보았던 작은 비석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고, 여자는 그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이틀 후 시간이 어떤가를 물어 왔다.

세 시간 쯤 걸리는 시골을 다녀와야 되는데 시간이 괜찮으면 운전을 부탁한다고 했다. 보수는 적절하게 계산하겠다고 했다. 나는 한달 간 무급 휴가 중이고 친구의 권유로 오늘 처음으로 대리 운전을 하고 있다고 내 입장을 다시 설명해 주었다.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는 경기도라고만 그녀는 말했다. 

 

이틀 후 나는 약속대로 그녀의 운전석에 앉아 그녀가 지시하는 대로 고속도로에서, 국도로, 두어 시간을 별 말 없이 차를 몰았다. 

러브호텔이 연이어 있는 북한 강변을 따라 가다가 그녀 취향대로 매운탕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녀는 소주를 시켜 혼자 반병 정도를 반주로 마셨다....한잔 드렸으면 좋겠는데....운전 때문에 안 되겠지요? 돌아오는 길에는 한 잔 하세요......대신 그때는 내가 운전하구요.....그랬다가 오늘, 내 일당.... 다시 차비로 받으시게요?....아, 맞아요. 여자 기사는 팁을 더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갑자기 머리칼을 뒤로 젖히며 크게 웃어재끼는 여자의 덧니 한 개와 눈매가 꽤 매혹적이라는 생각을 그때 잠깐 했다.

“이런 시골에서 살아 본적 있어요?”

좁은 시멘트 포장의 마을길로 들어섰을 때 그녀가 물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5월의 신록이 청순한 초록의 물결로 한꺼번에 파도처럼 창을 기어들고 있었다. 가볍게 두통이 왔다.....개구장이 꼬마 때의 내 모습, 보리 이삭이 목을 내밀던 밭둑 길을 걸으며 맡았던 냄새.....나는 초록색의 공기를 깊이 빨아 들였다.....초록색의 일렁거림 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흑백 사진처럼 떠올라 왔다.

“어른이 되곤 한 번도 이런 계절에 시골에 와 보지를 못했습니다.”

아내와는 왜 1년의 동거 중 한 번도 이런 시골길을 같이 와 볼 시도조차 안해 봤을까...... 여자가 뒷 창문을 아래까지 내리고 있었다.

“지난 밤, 처음 봤을 때 댁한테서 풀 냄새가 나더라구요. 신기하게도....”

“내게서 풀 냄새가요?”

“그런게 있어요.... 누구한테든.... 냄새가....휘발유 냄새. 먼지 냄새, 생선 비린 냄새, 식용유 냄새.....시궁창 냄새, 최루탄 냄새, 짐승 냄새......그런 게 있어요.....아마 나한테서는 먼지 냄새가 나지 않을까 모르겠네요....사실 풀 냄새는 조금 슬픈 냄새죠.”

“낳고 자란 시골 고향이 개발 바람으로 사라졌거든요....게으름 탓도 있지만.....”

“풀 냄새에 대해서는 신경 안 써도 될 거에요. 내 멋대로 생각한 거니까......”

마을로 들어가는 길 쪽으로만 시멘트로 포장이 되고 그 이상은 비포장이었다. 그녀는 차를 내려서 잠깐 사방을 둘러보았다. 왼통 신록이었다. 모든 것이 거의 한 빛깔이어서 우리가 초록색의 깊은 바다 한 가운데에 갇혀버린 느낌이 조금 무겁게 다가들었다. 여자 역시 깊고 막막한 바다 한 가운데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잠시 초조하고 당황스러운 복잡한 표정을 보였다......거의 다 온 것 같네요. 차에 다시 오른 여자의 얼굴이 조금전과는 다르게 어두워져 있었다.

 

“이쪽 비포장으로 조금만 올라가 볼래요?”

“처음 오신 길인가요?”

“그래요......아니지요. 상상 속에서는 여러 번 왔으니깐 꼭 처음은 아니기도 하고..”

200여 미터. 간신히 경운기가 올라 다닐 좁은 비탈길은 1단 기어를 넣고도 튀어나온 돌덩어리들이 튀겨 올라 차 밑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나는 가급적 천천히 악셀을 밟으면서 바퀴 한쪽이 길섶의 잡초를 밟도록 조심했다.

칠이 벗겨진 낡은 함석집 하나가 굵은 밑둥을 한 호두 나무 사이에 숨어 있다가 슬그머니 나타난 건 한참 후였다.

“여기가 맞는 것 같네요.....같이 잠깐 내려요.” 

언제 왔는지 누런 잡종개 한 마리가 낯선 사람들을 보고도 짖기는커녕 꼬리를 흔들어 대면서 내 발 밑으로 다가 왔다.

툇마루가 넓은 산골 집은 방문까지 열어 놓은 채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집 전체를 휭하니 둘러보고 나서 제 집이나 처럼 부엌 안으로 들어가 하얀 사기 대접에 냉수 두 그릇을 떠다가 한 그릇을 내밀었다.

“상상보다도 훨씬.... 그래요. 참 지독하게도 조용하군요.”

너무 고요한 정적이 부담스러울 만큼 이상한 무게를 가지고 마루에 걸터앉은 우리의 어깨를 짓눌러 왔다.

“여기하고 똑 같지는 않았지만....나도 너무 조용해서 더러 꿈속에 있는 것 같은 그런 외딴 곳에서 컸어요. 친구가 없으니까 나무나 풀, 산새들이나 산 짐승들하고 이야기도 하고....이해하실지 모르겠네요.... 남쪽이어서 저런 호두 나무 대신 오래 묵은 동백나무가 있었고, 무화과나무, 좀 귀하긴 했지만 우리 집에는 비파나무가 있었고.... ”

“동백꽃을 많이 보셨겠네. 그럼?”

“개량종은 꽃이 시들면 지저분하지만 원래 야생 동백은 시들지 않고 꽃이 그대로 떨어져요. 그걸 주워서 꿀을 빨아먹고, 실에다 꿰어 목걸이를 만들고....”

“상상이 되네요.”

“직접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실제 체험 보다 상상 속의 세계가 더 리얼할 수도 있어요.....동백꽃 이야기는 많이 들었고, 충분히 상상도 했죠...... 그래도 직접 보지는 않았어요. 두려웠다고 할까..... 겨울에 선운사나 여수 오동도에 가면 마음껏 볼 수 있다는 말 듣고도 내 상상이 깨뜨려질까 봐 겁이 났었는지 모르겠네요.”

“동백꽃을 보는 게 겁이 나요?”

“그래요. 시들지도 않고 떨어지는 꽃........무섭지 않아요?”

무엇인가 잘못 화제를 꺼낸 것 같아 호두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겨 담배에 불을 붙였다. 누렁이가 느리게 나를 따라 오더니 내 발 밑에 배를 깔고 엎디어 버렸다.

그때 바로 눈앞의 호두나무 밑동에 앉아 있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커다란 벌 두 마리가 눈에 들어 왔다.....저놈의 왕벌....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왕벌이라고 그랬어요?”

“정확한 표준말은 모르겠구요.”

나는 벌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웅얼거렸다. 가볍던 두통이 무거워지면서 어릇어릇한 현기증이 초록색의 물결과 함께 몰려 왔다.

“대추 익을 무렵 저놈들이 꿀벌 통을 습격하고 해서 대추벌이라고도 불렀는데.... 바위 아래 구멍 같은 데를 뚫고 땅 속에다 집을 짓거든요. 더러 2층, 3층으로 땅 속에 아파트를 만들기도 하고......저놈한테 한번 쏘이면........”

 

대추가 붉은 색으로 변해갈 때면 어김없이 꿀벌 통 주변에 나타나던 커다란 왕벌무리들은 이상하게도 얼핏얼핏 자주 떠올라 오는 기억이었다. 꿀벌 통을 공격해 오던 녀석들은 다른 계절에는 보통 참나무나 밤나무 밑동에 몇 마리씩인가 붙어 있곤 했다.

흔한 말벌보다 몸이 세 곱쯤 큰 이놈에게 우리 집 큰 머슴이 풀을 베다가 쏘인 적이 있었는데 병원까지 실려 가 주사를 맞고도 사흘을 앓아 누워 있었고, 사랑채를 나왔을 때까지도 부어 오른 얼굴이 삶은 돼지 같다고 작은 머슴이 키득대며 놀리던 생각이 났다. 뒷집의 잘 짖지 않던 늙은 똥개도 이놈에게 쏘인 적이 있었는데 머리 전체가 본래보다 두 곱쯤 부풀어 버려서 꼬마 애들이 그 똥개가 사자로 변신을 한 것이라고 떠들었던 일 역시 기억한다.

 

그 왕벌들은 대개 서너 마리씩 편대를 이루어 우리 집 모퉁이에 있던 꿀벌 통을 공격해 왔다. 문제는 이놈들의 공격이 시작되면 꿀벌들의 방어 역시 악착같다는 점이다. 도저히 덩치로 봐서도 맞수가 아닌데도 꿀벌들은 한 마리씩, 때로는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그 큰 덩치 앞에 전신으로 부딪치다가 머리통이 통째로 잘라져 나가곤 했다.

 

나는 집 뒤 켠 야산으로 연결된 밤나무 아래 놓인 꿀벌 통들을 발견한 순간 현기증이 심해지면서 천천히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초록색의 풍경들이 부옇게 흐려지면서 거기 꿀벌 통 뒤쪽에 갈퀴 만한 벌채를 들고 왕벌을 노려보며 씩씩거리는 빡빡머리소년이 환영으로 떠올라 왔기 때문이었다. 원근법이 무시된 그림같이 소년의 뒤에 희부연하게 서 있는 큰 머슴의 부어 오른 얼굴과 작은 머슴의 웃으면 눈이 아예 없어지는 얼굴, 또 벌에 쏘인 뒷 집 늙은 똥개......

내가 어떻게 거기 서 있는 것일까. 20년이나 시간을 거슬러 꾀꼬리 새끼를 꺼내러 올라 갔던 그 밤나무 아래에 내가 어떻게 다시 서 있을 수 있을까. 

 

왕벌의 톱니 같은 입에 한 순간으로 앞에 있던 동료의 목이 댕겅댕겅 잘려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꿀벌들은 사형 집행의 차례를 기다리는 순교자와 같이 끝도 없이 왕벌의 턱밑을 파고들었다. 가까이에서 딸각, 딸각, 꿀벌들의 목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 온다. 그리고 뒤이어 꿀벌 통 출입구에는 갈색의 꿀벌 시체들이 무더기로 쌓여가고, 더러 계속되는 저항에 한 두 마리의 왕벌 시체가 나뒹굴기도 한다. 심한 경우 한 통의 꿀벌들이 몇 마리의 이 왕벌에 의해 전멸하는 일까지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왕벌이 어미 꿀벌의 시체를 먹는 일은 거의 없다. 이네들이 노리는 것은 벌통 안에 있는 새끼와 꿀이고, 결국 한 통의 어미 꿀벌이 전멸한다해도 이 왕벌들은 몸이 크기 때문에 결코 벌통 안까지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들의 이 소모적인 공격은 때로 몇 시간씩 계속되고, 꿀벌들의 방어 역시 한 통이 고스란히 전멸될 때까지 계속되는 거였다.

 

“꿀벌을 습격하는 왕벌 집을 찾아서 해가 진 뒤 태우러 가곤 했다고 해요.”

어느새 여자가 유령처럼 내 뒤에 서 있었다.

“됫병에다 가득 석유를 넣고.... 바위 밑을 파헤치고...날아 오르는 놈들은 석유 불에 날개가 타서 나 뒹굴고.....내가 그랬어요....데모 때 화염병 만드는 기술이 그때부터 생긴 것 아니냐고.....그는 씨익 웃기만 했어요......결국 꿀벌 한 통이 전멸할 때까지 이기지 못할 걸 알면서도 도전을 계속하는 꿀벌의 생리를 어렸을 때는 이해를 못했다고 해요.” 

나는 현기증 때문에 밤나무에 등을 기대었다.

“....그 왕벌 사냥이 기억에 깊이 남았던지 그는 여러 번 그 이야기를 했어요...”

그럼 기억에 남고 말고요......낮에 알아두었던 왕벌 집을 향해서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석유통과 불쏘시개, 삽, 괭이....거기에 커다란 벌채를 어깨에 총처럼 메고 집을 나설 때는 꼭 전쟁터에 나가는 용사 같은 기분이고 말고요. 벌집 입구에 불을 피워 놓고 입구를 괭이로 파 뒤집으면 놀라 날아 오르는 왕벌들은 불빛만 보고 뛰어 들었다가 떨어져 내리고, 깜깜한 밤을 낼름대며 타오르던 불길 속에서 우리의 가슴속은 한도 없이 훨훨 뜨겁고 전율스레 타오르고요......그 왕벌 집 태우러 다니던 이야기를 나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지요. 그 이야기라면 밤을 새우면서도 이야기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 그렇게 까지 생각한 적이 있으니까요. 

 

언젠가는 불교의 소지공양(燒指供養) 이야기를 했어요.......제 손가락 끝에 기름을 발라 불을 밝힌다는 그 의식 이야기를 고향의 작은 암자 노스님에게서 들었다더군요......그 이야기를 하면서 우울해 보였어요.....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제 몸둥이 모두에 시너를 붓고 불을 붙이는 소신(燒身)의 공양(供養)을 상상하다가 치를 떨었어요....... 촌스럽던 시골 청년.....기껏해야 골짜기 계곡 물에서 해머로 바위를 내려쳐 기절해서 떠 오른 물고기 잡고, 벌 집 태우던 이야기, 입에 올릴 화제래야 거기에 감자 밭 망쳐 놓은 늙은 멧돼지, 옥수수 밭 휘저어 놓은 오소리 이야기.....그런 게 그의 전부였어요.....아, 혹시 송화(松花)로 만든 다식(茶食)을 드셔 본적 있어요?.....소나무 꽃가루가 날리면, 산골 아낙이 하얀 한지를 소나무 밑에 깔아 놓고 날리는 꽃가루를 받는다는군요.......얻어먹은 적이 있어요......그가 온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이며 외쳐 대었던 구호 내용을 전 하나도 기억 못해요. 제 몸을 다 불살라 외칠 만큼 그것들이 가치 있었던 것인지도 난 알고 싶지 않아요...... 다만 그가 소지 공양 이야기를 했을 때 왜, 예감처럼 그의 온몸에 불이 붙는 환영을 보았는지 그게 더 소름 끼치게 무서웠고.......꿀벌들 싸움을 보면서 자란 사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일들이 끔찍하고 무서웠고....그가 지금은 동지들이 같이 묻힌 묘역에서 잘못 되어 가는 역사의 한쪽을 향해 두 주먹을 쥐고 쳐다보고 있는지, 아니면 산골 청년으로 돌아 가 꿀벌 통에 모여드는 왕벌들을 쫓고 있는지 난 알지 못해요......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오솔길 내려오는 저기노인네들 있죠?..... 젊은 사람을 보면 죽고 없는 자식 생각이 또 날 수도 있잖겠어요? 

 

우리가 자동차를 세워둔 호두 나무 아래쪽으로 내려 왔을때는 노인 부부가 이미 산비탈 오솔길을 빠져 나와 버린 후였다.

자동차 문을 막 열어 젖혔을 때 남자 노인은 손사래를 치면서 서너 걸음 가깝게다가 섰고, 노인 앞에서 그녀 역시 그 자리에 굳어 붙은 듯 움직이질 않았다.

“아, 이눔아, 아무리 직장 일이 바빠두 그렇지....한 달에 한 번은 낯짝을 보여야지.....뭘 허냐? 어서 안 올라 오구....저 할망구, 글쎄 내 눈이 얼매나 좋은데...허허, 아무리 먼발치로라도 제 자식허구, 며느리도 못 알아볼까 봐서......드룹이 얼매나 통통허니 살이 올랐는지....”

노인은 잠시 나를 쏘아보더니 자기 할 말을 다 했는지 마루 쪽을 향해 훠어이, 훠어이 걸음을 옮겨 놓았고, 바구니를 옆구리에 낀 할머니의 눈이 남편의 좁은 뒷 어깨에서 나 쪽으로, 여자 얼굴 쪽으로 옮겨왔다.....미안 하우. 영감이 자꾸 정신을 놔 가지구.....괜찮다가도 정신을 놓쳐 버리고 .......할머니의 눈가에서 나는 언뜻 눈물을 보았다.

“아 뭣혀? 저 할망구. 어서 드룹 데치지 않고? 아이들 시장하겠구먼.....그리고 뭐허냐? 어서 안 올라오고? ”

노인은 마당 귀퉁이에서 서서 우리 쪽을 향해 다시 칼칼한 목소리를 보냈다. 할머니의 젖은 눈이 여자의 눈으로, 다시 내 눈 쪽으로 안타깝게 옮겨왔다.

“예, 아버님. 지금 올라가요.”

놀랍게도 여자가 마루 쪽을 향해 큰 소리로 대꾸했다.

그녀 손이 한 순간 내 손을 찾아 쥐면서, 올라가요. 우리. 그렇게 가만히 소곤거렸다.

“거 머시냐? 청설모란 놈들이 호두를 다 따먹어 치운다. 순구, 늬 전에 그 덫 엇다 두었나 좀 찾아 봐라. 덫이라도 놔야 쓰겄다.....”

우리는 무성하게 잎을 펼친 호두 나무를 동시에 꼭대기까지 올려다보았고,.....영감 말마따나 철성모가 어찌나 많아졌는지.....할머니의 흐린 말끝을 들었다....할머니의 눈이 다시 여자와 내 눈을 향해 간절하게 열렸다.

 

뜨거운 물에 데쳐낸 엄지 손가락 만큼씩한 두릅에 초고추장, 어린 취나물 무침, 더덕으로 담근 술,..... 5월 산야의 생명력들이 추억의 조각과 함께 깊게 베인 산골 음식에, 나는 노인이 따라 놓은 더덕 술 한잔을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마셨다.

노인은 금방 불콰해진 얼굴로 기분이 달떠 보였다......많이들 먹어. 이거 다 이 산 정기에다, 애비, 에미 정성인 게여. 서울서 돈 있다고 먹을 수 있는 게 아니 잖어?....노인은 우리가 산골 음식을 맛있게 먹자 더 없이 흡족한 듯 계속 입가에 웃음을 묻히고 있다가 잠시 공허한 눈빛을 서녘 하늘로 보냈다. 할머니의 시선이 불안하게 움직였다. 노인의 눈이 잠시 그윽하게 여자를 향하면서 좌석에 잠시 불안한 침묵이 흘렀다. 노인이 다시 시선을 서쪽 하늘로 보내며 입을 열었다.

“얘, 애기야.”

“예?”

여자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여자라는 거는 거, 뭣이냐.....높은 공부헌 거하고는 상관없이 혼인을 혔으면 생산을 혀야 하는 거, 아니냐?.....입이 짧어서 음식을 피라미 새끼 모냥 늘 그리 먹어서 애가 안 들어서는 거여.....”

“예. 아버님. 많이 먹을게요.”

“암 그래야지. 순구 너도 말이다.....거, 조상 대 잇는 거를 허투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애비 말 알것지? 그러고 새 애기를 잘 맥여야 한다.”

“예, 그러문요.”

나는 어물거리며 대꾸하면서도 등허리를 타고 찬 땀이 흘렀다. 여자의 이마에도 작은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많이들 먹어라, 나는 좀 눌란다......노인이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띄우고 방문을 밀고 들어가자, 할머니는 그때야 눈에 맺혔던 눈물을 볼 위로 흘려 내렸다...샥씨, 고마우. 그리고 젊은이도......할머니의 매 발톱 같은 앙상한 두 손이 두 사람의 손을 한꺼번에 싸안아 쓸어 내렸다.....이 두릅, 두 번째 돋은 거 지금 꺾어 온거유. 좀 먹어 봐. 영감은 푹 한 숨 잘거구먼.....멀쩡한 자식 놈 대학교 보내서 죽이고 나서는....벌써 여러 해째유.....영감, 그래두 오늘은 푹 자믄서 좋은 꿈 꿀거구먼.....자, 내 한 잔 따루어 주지.....샥씨가 신랑한테 한 잔 권해 봐. 이거 산삼 못잖은 거여.....할머니의 술잔을, 여자가 따라 주는 술잔을, 나는 연거퍼 비워가다가 한 순간 머리 속을 관통해 흘러가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나도 노인이 누워 있는 방안에 들어가 잠시 노인 곁에 누워 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잠시만 누웠다 일어나서 청설모잡이 덫을 찾아 놓고, 벌통 곁에 큰 벌채를 준비해 두었다가 왕벌을 잡으면서 여자에게 아이를 낳도록 했으면 싶어진다.....운전 해야 합니다. 더 마시면 안되요..... 저쪽 방, 불 떼 놓을 기여... 하룻밤이라두 자구 가구....다 인연이우, 이것두....할머니가 연신 내 잔에 술을 채우고 있었다.....운전은 제가 해도 되요......샥씨가 조금 더 권해 보아. 이거 산삼 못잖은 거여.......아닙니다. 청설모 덫을 어디다 두었는지 영 생각이 안 나요.......벌채는 내가 헛간에다 두었는데.....그놈의 대추벌 집 태우러 갈 때 쓰려고 장화랑, 석유통이랑...벌채는 헛간에 세워 뒀어요. 

 

香味川純平. 동양적인 화강암 비석이 떠오른다. 그 위를 아프리카의 1월 하순, 선선하고 상쾌한 석양 공기가 지나다가 내 귓불을 간지럽힌다. 깊이 숨을 들어 마신다. 한국의 산골, 5월과 캐냐의 1월 저녁 공기는 기온에서도, 습도에서도, 냄새에서도 너무 닮아 있다. 노을을 빗겨 받은 비석 위로 저녁 바람이 스치면서 평면의 흑백사진은 물기 머금은 입체감으로 부풀어오르고, 거기 싱싱한 초록빛이 채워지기 시작한다........여자가 언제부터 노래하듯 중얼거리고 있었을까...그녀 중얼거리는 어휘들이, 그 낱말 하나 하나가 색깔이 되어 날아 오르다가 둥실거리며 구름으로 변하여 킬리만자로 산정을 향해 떠올라 가고 있었다.......그냥 좋아하는 친구로......그 애를 보면 5월의 풀 냄새가 나는 것 같았거든요.....그애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 역시 신석기 시대 어디 쯤에 같이 가 있는 느낌이 들곤 그랬으니까요.....그 애가 최루탄 가스 속에서 분신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고개를 저었어요.... 다른 사람, 비슷한 사람이었을 거라고......장례식이 요란스럽게 끝나고 나서야 언젠가 그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꿀벌 이야기에다, 시골 암자의 노스님과 나누었다던 소지 공양 이야기가 왜 그처럼 한참 뒤에 생각났는지........ 그와의 대사를 회상하며 소신(燒身) 공양(供養)을 떠올리며 으스스해졌던 기억이 나고 .....그래요......그냥 3년이 갔어요........다른 남자애들도 만났고.....사랑 같은 것도 해 보구......3년이 지나고 우습지요. 나는 3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애를 위해 해마다 며칠간 씩을 나름대로 상복(喪服)을 입었어요......왜, 죽은 지 3년이나 지나서야 그 애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심리적 확인이 왔을까요?......다시 그 애를 만날 수도 없고, 그 애가 죽은 뒤 그 애를 민주 투사라고 떠들던 친구들 마져 다 흩어져 버린 뒤.... 세삼스럽게 그 애를 사랑하고 있었노라고 그런 여자......동백꽃은 시들지 않고 추하지 않게 떨어진다는 게 두려워서 그것도 못 보러 가고.......어디서 어디까지가 환청이고 환영인지.....나는 다시 캐냐의 국경지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싱그럽게 이마를 스치는 바람 속에 서 있었다. 킬리만자로 산정이 올려 보이던 탄자니아 국경지대. 작은 비석 위의 이름..... 분명 일본인의 이름이었는지 어두어져서 자신이 없어진다. 어쩌면 그건 한글로 비문이 새겨 있는 듯도 싶어진다..... 황순구(1967ㅡ1992). 그렇게 새겨져 있었다는 느낌도 왔다..... 

 

서울 시내에 가까운 휴게소에 와서야 나는 내가 여자가 운전하는 차 속에 잠들었던 걸 알고 황당해져서 두 손으로 머리칼을 움켰다. 차가운 음료수 캔을 내 이마에다 대고 여자가 차 밖에서 웃고 있었다. 낮하고는 다르게 그 웃음이 쓸쓸해 보였다.

밖은 이미 어두워 있었다.

“여자 기사, 팁 비싼 줄 알죠? 거기다 숙박비까지 계산해야겠는데요”

“아, 이거.....”

“왕벌 집 태우러 가는 꿈꾸었어요?”

여자가 담배 한 개피를 내밀고 자기도 불을 붙여 물었다.

“풀 냄새를 많이 맡아 난 기분이 좋아요.....싱싱한 두릅도 많이 먹고......오늘로 나, 그 애 놓아주기로 했어요......제 맘대로 지내도록..... 한데요, 그 청설모 덫은 어디 다 두고 그렇게 못 찾아요? 벌채하고 석유통은 헛간에 두었다면요?”

여자가 점심때처럼 머리를 뒤로 젖히며 날카롭고 유쾌하게 다시 웃어댔다.

어둠 때문에 낯처럼 그녀의 덧니가 보이지 않았다. 

“친구가 내 머리 속 코드 몇 개가 잘못 연결되었다고 맨 날 구박을 했는데.....”

“당분간 대리 운전도 무급 휴직하는 게 좋겠어요.....그래도 겨울에 혹시.... 다시 우리가 만나면 동백꽃이나 한번 보러 갈래요? 그때는 돌아오는 길, 운전 제대로 하기로 하구요.” 

차가 출발하자 조금 내려놓은 창문으로 5월의 밤 공기 속에 더덕 향과 동백 향이 뒤섞여 짙게 베어 있는 것을 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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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호 (1942-) 소설가

196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하늘을 색칠하라’당선.

장편소설 ‘내 사랑, 풍장“,”열하일기“, ”만적“

소설집 ‘깃발’, ‘새를 위하여’,‘허공중에 배꽃 이파리 하나’

‘속눈썹 한 개 뽑고 나서’ 등.

‘한국소설문학상’, ‘PEN 문학상’,‘ 만우 박영준 문학 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