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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이름이 성공한 인생을 만든다"
자유게시판

[수필] 아, 그리운 이름, 아버지

by 귤담 2023. 1. 7.

[수필]

아, 그리운 이름, 아버지

 

유금호(소설가)

 

아버지, 당신을 마음으로 부르면 나는 언제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탱자울타리 과수원 언덕에 서 있는 소년이 됩니다.

 

과실나무를 손질하다가 손짓으로 나를 불러 거기 울타리 사이에 둥지를 만든 뱁새나 오목눈이 둥지를 가리키는 당신이 서 있습니다.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앙증맞은 작은 알이나, 노란 주둥이를 제 머리보다 더 크게 벌려 먹이를 조르는 몇 마리의 새끼 새들, 그것이 아버지와 나만의 얼마나 큰 비밀스러운 재산이었는지 아버지는 모르실 겁니다.

머리칼이 반 남아 더 희어진 이 나이에도 그 작은 산새 둥우리들을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뜁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내게 꿈을 주셨습니다.

태풍이 과수원을 휩쓸고 지난 여름 날 아침이었습니다.

열매는 물론 가지까지 찢겨져나간 황폐해진 배 밭을 바라보면서 아버지, 당신은 내 손을 꼭 쥐며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봐라. 그래도 뿌리는 남아 있다. 뿌리만 있으면 내년에 다시 꽃을 피울 거다.??

1년 농사가 완전 작파된 그 배나무들 앞에 선 아버지의 입모습을 나는 수 십 년이 지난 후 지금도 떠올립니다.

대여섯 살 어린 나이, 눈썹과 코의 윤곽만으로 기억되는 그 날의 당신 모습은 살아가면서 힘들 때마다 나를 항상 그렇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 어린 시절, 때로는 첫 서리 내리기 시작한 과수원에 군데군데 핀 배꽃을 본적도 있습니다.

여름 태풍이 잎과 줄기마저 할퀴고 가 버려서, 내년 봄 필 꽃눈이 그 가을, 처연하게 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해째 농사를 망쳐버린 그 가을 배꽃 앞에서도 아버지, 당신은 작은 내 손을 꼭 쥐셨습니다.

??다음 해에는 괜찮을 것이다.??

아버지, 당신은 그때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인가요.

전쟁 중이던 그 무렵 학교 가는 뚝 길 위, 시체들이 엎디어 있는 모습도 자주 보았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해질 무렵, 그 당시 유일한 장난감이었던 탄피를 줍겠다는 욕심에 시체 곁으로 다가갔다가 동네 아저씨의 썩어가던 입 속에서, 나는 그때 허옇게 꾸물대던 수십, 수백 마리 구더기들과 그 위를 금속성의 파란빛으로 떠돌고 있던 파리 떼를 보았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시체는 무섭지 않았는데, 왜 그 시체의 입 안, 밥알처럼 가득 차 있던 구더기와 파리 떼가 그렇게도 무서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왜 그렇게 우리들 주변에는 끝도 없이 죽음들이 널려 있었을까요?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손아래 동생, 효근이를 묻으면서 견디어냈을 아버지의 고뇌를 훨씬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이 못난 자식은 짐작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이 어느 날, 예고 없이 내 곁을 떠나고, 어두운 한 시대, 제자들이 제 몸에 불을 붙이고 산화해 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무기력 앞에서 나는 아버지 당신을 떠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긴 밤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서툰 글 쓰기 뿐이라는 것도 자각해 갔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가지 찢겨나간 배나무를 일으켜 세우듯 내 글 쓰기는 아마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나마 가난한 상상력과 언어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곤혹감과 허무를 수용하는 동안 아버지, 저도 이제 흰 머리칼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풍이 휩쓸고 지난 배 밭, 그 폐허의 공간 속을 응시하던 아버지, 당신의 입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꿈꾸는 자의 자유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승을 떠나시고 한 동안 참 많이 싸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마사이 원주민 마을에서 킬리만자로의 산정을 황혼 속에서 올려다보기도 했고, 아마존 밀림의 벌거벗은 인디오 마을에서 악어 잡이도 했고, 몽골의 초원, 소똥으로 불을 지피며 주먹 만큼씩 큰 새벽 별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서 떠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결국 내 유년과 앞서 간 동생과, 아버지와 어머니, 5월 어느 날 증발하여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제자들을 지상의 공간 어디에서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뒤, 나는 결국 글을 쓰는 일이 부활이며, 꿈이라는 자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끝도 없이 펼쳐져 간 몽골의 바양고비 푸른 구릉 위로 보라 빛 지츠꽃이 깔려 있었고, 한가하게 흰 구름이 떠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과 친구, 제자들...그 모두 앞서 간 사람들의 음성과 웃음소리를 거기서 들은 듯 했습니다..

 

이제 나는 드디어 앞서 나를 떠난 사랑하던 사람들을 자유롭게 놓아 보내주기로 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부활의 개념이 오는 것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완벽한 자유란 인연의 끈을 놓아주는 것에서 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버지는 앞서간 가족들과 내 친구들, 제자들과 함께 이제 거기 카라코름 초원 위 지츠꽃 사이에, 마추픽추 새벽 하늘 별 언저리에, 우르밤바의 야생 키니네 숲 속에, 시공을 넘어서 그렇게 늘 자유롭게 계실 것입니다.

이제 이승의 어디에서도 아버지 당신을 다시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당신은 늘 내 마음 속에 내 유년과 함께 살아 계십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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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호 (1942-) 소설가

196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하늘을 색칠하라’당선.

장편소설 ‘내 사랑, 풍장“,”열하일기“, ”만적“

소설집 ‘깃발’, ‘새를 위하여’,‘허공중에 배꽃 이파리 하나’

‘속눈썹 한 개 뽑고 나서’ 등.

‘한국소설문학상’, ‘PEN 문학상’,‘ 만우 박영준 문학 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