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3월 22일
*3월22일 오늘은 세계 물의 날.
1992년 제47차 유엔총회에서 물문제의 심각성, 물관리의 중요성, 국가간 협력증진의 중요성 알리고 수자원보호 위해 제정, 우리나라는 1990년에 7월1일을 '물의 날'로 정했다가 1995년부터 세계 물의 날 행사 참여, 2019년 물의 날 주제 '누구도 소외되지않게(Leaving no one behind)', 인종·지위·종교 등에 차별받지않고 모두가 안전한 물 공급받아야 한다는 취지, 국내 주제는 '물,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2021년 물의 날 주제는 ‘물의 가치화’
- 유엔 '2019년 세계 물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40억명이 1년중 한달이상 물부족에 시달림,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인구11,000명) 투발루는 2011년 심각한 물부족으로 비상사태 선포
- 21억명은 정수 처리된 깨끗한 물 공급 못받음, 26억명은 하수처리시설 없이 물을 받아 사용, 오염된 물을 마셔서 걸리는 병은 설사 콜레라 장티푸스 소아마비 A형 간염 등, 전세계 물수요는 매년 1%씩 증가, 2050년에는 지금보다 20~30% 늘어날 것으로 전망, 전세계 오·폐수의 80%가 처리되지 않고 강이나 바다로 들어가 콜레라 같은 전염병 창궐, 위생적 화장실 사용인구는 29억명, 화장실 사용못하는 인구 8억9200만명
- 전세계 자연재해의 90%는 물과 관련, 1995~2015년 전세계에서 발생한 홍수는 23억명에 영향, 2만2000명 이상 목숨 잃고, 재산피해 1000억$(약112조원)
- 지구촌 물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 공유, 지속가능발전을 달성하는데 기여하고자 환경부 대구시 K-water 공동주최로 한국물포럼이 2018년부터 국제물주간(KIWW) 행사를 하는데 2020년도 국제물주간 행사는 대구 엑스코에서 2020.5.11 ~ 5.13에 열림, 2021년은 코로나19로 취소
-- 사람이 기본적으로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의 양은 1인당 7.5~15리터, 현재 지구표면에 있는 물의 양은 13억8,600만㎦, 97.5%가 바닷물, 인간이 쓸 수 있는 물은 2.5%, 쓸 수 있는 물의 68.9%가 빙하와 만년설 29.9%가 지하수 0.3%가 담수호와 하천 0.9%가 흙속에 포함되어 있음
- 우리나라 연간 평균강수량 1,283mm로 세계 평균강수량 973mm에 비해 많지만, 1인당 강수량은 1,550톤/년으로 세계평균 22,096톤/년의 14%, 우리나라 연간강수량은 1,267억톤, 570억톤(45%)은 공기중으로 증발, 396억톤(31%)은 바다로 흘러듦, 쓸 수 있는 물은 301억톤(24%) 하천172억톤(14%) 댐저장수103억톤(8%) 지하수26억톤(2%) 생활용수(62억톤) 농업용수(149억톤) 공업용수(26억톤) 하천유지용수(64억톤) 우리나라 1인당 물사용량 3,951리터
-- 1993년 우리나라를 물부족국가로 분류한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는 유엔산하기관 아닌 사설연구소, PAI가 우리나라를 물부족국가로 분류한 기준도 근거가 없음
*알바니아 술탄 누루즈 기념일
1087년 [음]선종(宣宗) 4년, 송 상인들이 새로 주석한 화엄경판(華嚴經板)을 바침
1118년 [음]예종(睿宗) 13년, 내예(內隷)에게 모욕을 당한 어사대(御史臺)의 관리들이 태업을 벌임
1134년 [음]인종(仁宗) 12년, 민간 아이들에게 『효경(孝經)』과 『논어(論語)』를 배포함
1229년 [음]고종 16년, 화주(和州) 병기고에 화재가 발생함
1229년 [음]고종 16년, 삼사(三司)의 문장고(文帳庫) 불에 탐
1255년 [음]고종(高宗) 42년, 판사천사(判司天事) 안방열(安邦悅)에게 명령하여 몽고군이 파괴한 지릉(智陵)을 보수함
1360년 [음]공민왕(恭愍王) 9년, 홍건적의 배 70여 척이 서해도(西海道) 풍주(豐州) 벽달포(碧達浦)와 서경(西京)의 덕도(德島)·석도(席島)로 들어와 정박한 후 봉주(鳳州)에 들어와 성문을 불태웠다. 또 100여 척이 안악군(安岳郡) 원당포(元堂浦)에 들어와 재물을 노략질하고 민가를 불태우자 아군이 며칠을 싸웠으나 30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적들이 다시 황주(黃州) 비파포(琵琶浦)를 침략하였다.
1413년 [음]태종 13년, 《태조실록(太祖實錄)》을 완성함
1433년 [음]세종 15년, 제례악(祭禮樂) 때 쓰는 관복(冠服) 제도를 정함
1520년 [음]중종 15년, 황해도에 흙비와 우박이 내리고 경상도에 지진 발생함
1527년 [음]중종 22년, 동궁(인종의 거처)에 불탄 쥐를 매다는 일(작서의 변)이 연이어 발생하자 대책을 논의함
1550년 [음]명종 5년, 서울에 흙비가 내림
1600년 [음]선조 33년, 명나라 황제에게 명군의 조선 주둔을 요청함
1609년 [음]광해 1년, 유구국 중산왕에게 후의에 답사하고 우호를 맺을 것이라고 자문을 보냄
1610년 [윤]광해 2년, 교서관(校書館)에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내훈(內訓)》·《서전언해(書傳諺解)》·《시전언해(詩傳諺解)》·《유선록(儒先錄)》 등의 서적을 《좌전(左傳)》의 인쇄가 끝나는 뒤에 즉시 계속 간행하도록 함
1624년 (조선 인조2)이괄, 부하인 기익헌 등의 배신으로 죽음
1626년 [음]인조 4년, 문학하는 신하들을 뽑아 사가독서(賜暇讀書) 하게 함
1640년 [음]인조 18년, 청나라에 사신을 보내 세자의 귀국을 허락해 준 것에 사례함
1666년 [음]현종 7년, 경상도 유생들이 송시열의 복제 문제를 논함
1670년 [음]현종 11년, 경상도 감영 영리청(營吏廳)에 화재가 남
1716년 [윤]숙종 42년, 남원현(南原縣)에 사당을 세워 임진왜란 때 죽은 명나라 장수를 제사 지냄
1738년 [음]영조 14년, 경복궁 문에 익명서가 걸림
1746년 [음]영조 22년, 효령 대군(孝寧大君)의 묘우(廟宇)가 완공되어 제사 지내게 함
1778년 [음]정조 2년, 담사(橝祀)의 달에는 대소의 법악(法樂)을 걸어 두고 연주하지 않게 함
1785년 [음]정조 9년, 이규운·주형채 등을 국문한 후 주형채를 효시할 것을 명함
1794년 [음]정조 18년, 규장각의 이만수가 이황의 편지 모음과 이언적의 《대학속혹문(大學續或問)》을 가져다 바침
1805년 (순조5)실학자 박지원 세상떠남(68세)
1814년 [음]순조 14년, 규장각에서 《홍재전서(弘齋全書)》·《경모궁예제(景慕宮睿製)》를 인쇄하여 올림
1826년 [음]순조 26년, 문무 중시(重試)를 행하여 윤제홍 등을 선발함
1830년 [음]순조 30년, 간사한 말로 민심을 선동한 곽필주를 처형하게 함
1861년 [음]철종 12년, 철종의 어진(御眞)의 도사(圖寫)를 완성(完成)하였다.
1889년 [음]화폐 남발로 물가폭등, 주전소 폐지
1897년 (대한제국 광무1)미국인 모스 인천 우각현에서 경인선 건설 시작, 자금난으로 중단되었다가 일본이 다시 공사 시작해 1898년에 완공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1897년 3월 22일부터 공사에 들어가 1899년 9월 18일 개통됐다. 개통당시 철로 길이는 노량진-제물포 간을 잇는 33.2km였다. 영국철도가 1825년 9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적을 올린지 74년 만이었다.
경인선은 1889년 주미 대리공사였던 이하영이 귀국하면서 철도 모형을 가져 온 것이 철도부설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조정은 처음 민족자본에 의한 자발적인 철도건설을 시도했으나 자금난 등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고 1896년 미국인 모스가 고종 황제로부터 경인철도 부설권을 받게됐다. 모스는 인천의 미국인 거상 타운센드와 함께 한국개발공사를 설립하고, 1897년 3월 22일 인천 우각리 쇠뿔고개에서 인부 350명을 모아놓고 역사적인 기공식을 가졌다.
1912년 일제, 〈조선 등록세령〉 공포(4.1. 시행)
1913년 대한민국의 음악인 김동진 출생
1914년 호남선(대전~목포), 완전 개통으로 전통식(全通式) 거행
1917년 대한제국의 황족 영선군 이준용 작고
1922년 이승만계 하와이 동포,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 총회 해체, 하와이 대한인 교민단으로 개편
1928년 조선소년총동맹 창립
1932년 조선혁명당소속군인, 신보현 영능가 일본군격파
1933년 계초 방응모 조선일보사 경영권 인수
1938년 삼성그룹의 시초인 삼성상회가 설립.
1947년 3·8선 월남 피난민, 월 평균 1,500명
1947년 남한 각지의 산업기관 24시간 동맹파업 및 학생동맹휴학 발생
1947년 남로당 지도 아래 남한 일대 24시간 총파업
전평(全評-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이 남한 전역에서 24시간 동시파업을 단행했다. 요구조건은 3·1절 기념대회에서 만행을 저지른 경찰관 처벌, 노동자 권리보장, 박헌영 체포령 취소, 구속된 전평 간부 석방, 노동법령 개정, 좌익계 신문 정간조치 취소 등 6개항이었다. 이 파업으로 노동자 2천여 명이 검거되어 전평의 조직이 사실상 와해됐다. 특히 1946년 9월 총파업으로 조직손실이 큰데다 다시 이번 파업으로 간부들이 대량 검거돼 전평은 최후의 결정타를 맞은 셈이 됐다.
1948년 일본정부, 재일교포 학교 폐쇄
1950년 공산 유격대 지도자 김달삼, 강원도 정선에서 사살됨
1953년 헌병총사령부 설치, 초대 사령관 원용덕 소장
1961년 2대 악법(반공법 데모규제법) 반대 서울시민궐기대회 대규모시위
1962년 윤보선 대통령 정치정화법에 불만 표시하고 사임
1962년 3월22일 "나는 대한민국 국민 앞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을 성명하는 바입니다"로 시작하는 윤보선 대통령의 사임 성명서가 발표됐다. 이날 오후 3시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사임 의사를 발표한 윤대통령은 고별회견에서 구정치인에 대한 정치활동정화법이 국민의 인화와 단결에 걸림돌이 될까 우려되며, 모든 질서가 안정되고 국제적 신망이 두터워져 안심하고 물러선다고 밝혔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3월 24일 본회의를 열고 윤대통령의 사임을 받아들여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민정 이양시까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기로 결의했다. 이로써 윤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은 경무대를 `청와대`로 고친지 19개월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후 1960년 8월22일 민참양원 합동회의에서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된 윤대통령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발발하자 한때 사임을 발표한 바 있으나 박정희 소장의 요청으로 사임을 번복한 바 있다.
1963년 군 비상지휘관회의, 군정연장지지-재야정치인 구국선언대회 군정연장반대 데모
1963년 케네디 미 대통령, 5·16 군사 정변 이후 민정 실현 요망의 기자 회견
1965년 단일변동환율제 실시
1965년 천주교 원주교구 설립
1967년 대우그룹이 창립
1967년 북한 조선중앙통신 부사장 이수근 판문점 통해 귀순, 1969년 중앙정보부는 위장귀순이라고 발표, 이수근은 재판받고 1969.7.2 사형집행, 2007년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수근 사건이 중앙정보부 조작이라 결론
1967년 금강대교 기공식
1968년 울산에 석유화학계열 공업단지 기공
1969년 서울 3.1고가도로 개통
서울 도심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삼일고가도로가 착공한지 17개월만에 준공, 1969년 3월 22일 개통되었다. 신설동 제2청계천에서 삼일로까지의 청계로 위에 1백40개의 교각을 세워 만든 이 도로는 가장 높은 곳이 17.7m, 폭 16m이고 총연장 3천7백56m의 논스톱 4차선 자동차전용 도로이다.
시속 60km로 달릴 수 있으며 삼일로 등 4곳엔 차가 오르내릴수 있는 램프(고속 도로가 입체 교차할 때 두 도로를 연결하는, 활처럼 굽은 도로. 또는, 일반 도로에서 고속 도로로 접어들거나, 고속 도로에서 일반 도로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만든 도로)시설을 갖추었다. 1967년 10월 14일 착공, 총공사비 15억3천만원을 들여 연인원 10만명을 동원하였다.
1972년 이화여대 86년 만에 남학생 첫 수강
1973년 남해대교 개통
1973년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부근 고분 발굴 착수
1975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벽골제 발견
1975년 한승헌 변호사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1977년 사학자 김상기 세상떠남
1980년 여자핸드볼 올림픽출전권 첫 획득, 모스크바올림픽 불참으로 출전은 못함, 여자핸드볼은 1984 LA올림픽부터 2021 도쿄올림픽까지 10회연속 올림픽 출전, 2012 런던올림픽까지 8회연속 4강진출하고 우승2회 준우승3회, 2016 리우올림픽과 2021 도쿄올림픽에서는 4강진출 실패
1983년 아마드 샤 말레이지아 국왕 내한
1983년 서울시, 청사의 강남 이전 계획 백지화
1985년 어선 제6 어성호, 소흑산도 근해서 표류중인 중공해군 어뢰정 1척의 구조요청 받고 예인
1986년 국회, 제9대 대법원장 김용철 임명동의안 가결
1987년 부랑인 수용시설 부산 형제복지원 원생 1명, 집단구타로 사망 23일 원생 35명 집단탈출
1987년 5인조람보살인강도단-폭행 수장 방화 광란 3시간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 방미
1989년 가정용 난방 에너지, 연탄 85%(1988년 말 현재)
1989년 88년말 현재 5만6615개 법인이 보유한 토지는 4486㎢이며 이중 공업용지는 4.1%에 불과
1989년 포항제철이 88년에 1308t의 조강을 생산, 세계 6위 기록
1989년 한국피코 노조원 200여명, 美 상공회의소 점거. 임금체불 도주 미국인 사장 규탄, 경찰 강제 해산
1990년 한국·체코 대사급 수교 서명
1990년 한-소 항공협정 발효
1990년 GATT 발표, 한국 수출입 세계 13위
1991년 한국은행,90년중 기업자금 부족 규모는 사상 최대인 28조7510억원.
1991년 서울-평양-연길-바로아(소련) 4개도시 친선축구대회 개최 결정
1992년 이지문 중위 군부재자투표행위 내부고발, 이 중위는 기자회견직후 근무지이탈로 연행 구속되고 이등병으로 파면됐는데, 3년간의 법정다툼 끝에 파면 취소되고 중위로 전역, 군복무 전 취업했던 삼성그룹은 민주화운동심의위원회의 복직권고 무시하고 끝내 복직시키지 않음
1992년 제63회 동아마라톤 겸 바르셀로나올림픽 대표 선발전(춘천) 한국전력의 김재용선수(26) 1위를 차지
1993년 한-미-일 3국 북한핵문제관련 뉴욕 실무회의
1993년 공직자 재산등록 공개-이만섭 국회의장 선출-박준규 사퇴
1993년 민자당, 당무위원 및 소속의원 161명의 재산을 일괄 공개. 최고액은 김진재 의원의 277억원.
1993년 정부는 물가보다 경기부양에 역점을 둔 '신경제 100일계획'확정 발표.
1993년 제64회 동아마라톤에서 김완기가 2시간9분 25초로 국내 최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
1995년 외무부, 팔라우와 외교관계를 수립 발표
1995년 홍천 내촌면 5개 초등학교, 화상수업 시작
1996년 공노명 외무장관, 장쩌민 중국국가주석을 예방, 남북대화재개를 위해 중국이중재역할을 해달라' 요청
1996년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협의회 발족
2001년 북한, 정주영 현대명예회장 조문사절단 파견
2001년 서울고등법원이 상문고 학내 분규를 촉발한 구재단의 복귀가 부당하다고 판결
2003년 인터넷 포털 한미르, 최초로 블로그 서비스 시작
2004년 국회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
2004년 한국,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서 11개 금메달 획득, ‘금 신기록’ 달성
2005년 박봉주 북한 내각총리 중국 방문
2007년 전국 사립대학총장협의회, 3불 정책(본고사·고교 등급제·기여 입학제 금지) 폐지 요구
2009년 김점선 화가 별세
1946년 개성에서 태어난 김씨는 이화여대 교육공학과를 졸업한 뒤 그림에 대한 열망을 누르지 못해 1972년 홍익대 대학원(회화)에 입학했다. 김씨는 같은 해 작품이 파리 비엔날레 출품작으로 뽑히면서 두각을 드러냈고, 1987년과 1988년에는 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 최우수예술가'(미술 부문)에 오르기도 했다.
김씨는 개인전만 60차례 열면서 지칠 줄 모르고 그림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나는 그린다. 고로 존재한다"고 천명할 정도였다. 캔버스 작업뿐 아니라 작품이 곽 휴지 상자에 인쇄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격식을 따지지 않았다. 화실에만 안주한 것이 아니라 폭넓게 사회 활동을 했으며, 소설가 박완서·최인호씨, 이해인 수녀 등과도 교분이 깊었다.
김점선씨는 2007년 난소암이 발병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그림과 저술 활동에 더욱 몰입했다. 최근에는 자서전 '점선뎐'을 내고 자신을 찾아온 암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초연하게 적었다.
2010년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소녀시대, 정규 2집 리패키지 "Run Devil Run" 발매.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 개봉.
2013년 정부조직법공포안 국무회의 의결 17부3처17청으로 개편
2013년 의정부시의회 대마도 반환촉구, 대한민국정부차원의 반환촉구 요청
2014년 울산문수야구장,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개장.
2015년 ‘건국 1세대’ 송인상 전 재무부 장관 별세
2015년 인천 강화도의 캠핑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5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 당하는 참사가 발생
2017년 오후 8시 50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서 침몰된 세월호가 사고 1072일 만에 본 인양을 시작했다. 마침 이날 원주시에서 노란 리본 모양을 한 권운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2018년 10차 개헌안 공개
2018년 오후 11시경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오늘 25일 시행
2022년 이수지, ‘아동문학 노벨상’ 안데르센상 영예...한국작가 첫 수상
1384년 명나라 과거제도 공포
1459년 신성 로마 황제 막시밀리안 1세 출생
1687년 프랑스 작곡가 장바티스트 륄리 사망
1758년 조나단 에드워드(1703년~) 출생 : 미국의 신학자
1797년 독일 제2제국 초대 황제 빌헬름 1세 출생
1832년 독일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세상떠남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인간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재능과 정열을 남김없이 써버리고 후회없이 살다간 근대 유럽 최고의 지성인이었고 예술가였다. 그를 정의한다는 것은 그를 속박할 뿐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신적인 예지까지 터득했다는 평가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하이네는 그를 가리켜 “머리 끝에서 발바닥까지 천재”라고 예찬했고, T S 엘리엇은 “시인이라기보다 현인”이라고 경외했다. 시인·화가·무대연출가·정치가·과학자…. 괴테의 관심분야는 다양하다 못해 실로 초인적이었다. 문학사에 우뚝 선 존재였음은 물론 2,700여점의 그림을 남긴 화가였고 26년간 바이마르 궁정극장을 이끌며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280번이나 공연한 무대연출가였으며 바이마르 총리에까지 오른 정치가였다.
1895년 파리에서 최초의 무성영화 상영
1910년 스코틀랜드 열차 충돌로 227명 사망
1913년 중화민국의 정치인 쑹자오런 작고
1916년 위안스카이가 '중화 제국' 황제를 퇴위
1923년 프랑스의 무언극 배우 마르셀 마르소 출생
1933년 이란의 정치인 아볼하산 바니사드르 출생
1933년 나치 독일, 하인리히 히믈러, 다하우 강제 수용소 설립.
1935년 독일, 유럽최초로 정기적인 TV방송 개시
1943년 미국의 음악가,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 출생
1945년 카이로에서 이집트 등 7개국 아랍연맹 결성
중동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고 아랍제국의 주권과 독립을 수호하기 위한 아랍연맹이 1945년 3월 22일 결성됐다. 초기 가맹국은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 이집트 예멘 등 7개국이었으나 현재는 20개국과 PLO가 가입되어 있다. 그러나 창설멤버인 이집트는 이스라엘과의 평화조약 체결을 이유로 자격정치처분을 받았다.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며 유태국가를 팔레스티나에 건설하려하자 전쟁돌입을 결의했다. 1990년 8월 카이로에서 열린 긴급정상회의에서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하고 쿠웨이트에서의 이라크군 즉각 철수 및 사우디아라비아에 아랍연합군 파견을 결의한 바 있다.
1947년 트루먼, 파괴분자의 관직추방 명령
1948년 영국의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 출생
1955년 라트비아의 대통령 발디스 자틀레르스 출생
1957년 미군기, 태평양 횡단중 실종으로 67명 사망
1958년 미국, 열전자엔진 발명
1963년 비틀즈의 첫번째 스튜디오앨범 Please Please Me가 발표
1966년 켄터베리 대주교 교황청 방문
1968년 아제르바이잔의 기업인 무바리즈 만시모프 출생
1972년 미국상원 남녀평등 인정하는 헌법수정안 가결
1975년 로디지아 민족지도자 헤르베르트 치테포의 장례식
1977년 인디라 간디 인도 수상 사임
1982년 스위스 유엔가입 발의
1995년 러시아의 우주비행사 발레리 폴랴코프가 미르 우주 정거장에서 437일의 우주 체류 기록을 세우고 귀환.
1996년 프랑스의 소설가 모리악 사망
2001년 만화영화 ‘톰과 제리’ 제작자 윌리엄 해너 세상떠남
‘톰과 제리’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등 세계인들에게 친숙한 만화를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선구자 윌리엄 해너가 2001년 3월 22일 90세의 나이로 숨졌다. 1910년 미국 멜로즈에서 태어난 해너는 원래 기술자였으나, 대공황때 실업자가 되자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퍼시픽 아트 앤드 타이틀에 일자리를 얻으면서 만화영화계에 첫 발을 디뎠다.
1937년 MGM사에 입사해 만난 조지프 바버라는 그의 평생 콤비였다. 두 사람은 1957년까지 만화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인 ‘톰과 제리’ 를 만들었고, 해너-바버라 프로덕션을 세워 ‘플린스톤’ 과 ‘더 젯슨스’ 등의 히트작을 냈다. 해너가 감독을, 바버라는 그림을 맡은 ‘톰과 제리’ 시리즈는 1백편 이상이나 제작됐다. ‘톰과 제리’ 시리즈의 첫 편격은 1940년에 만든 ‘퍼스 케츠 더 부트’ 였다. 이 작품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자 MGM은 이들에게 후속편을 주문했다. 이후 ‘톰과 제리’ 시리즈는 아카데미상을 일곱 번이나 수상했다.
2004년 스타더스트호, 혜성 ‘코멧 와일드 2’ 근거리 촬영 성공
2004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창설자 야신 피살
팔레스타인 최대의 저항운동 단체인 ‘하마스(Hamas)’의 창설자이자 정신적 지도자인 셰이크 아메드 야신이 2004년 3월 22일 새벽 가자시티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졌다. 야신은 이날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지구 내 가자시티의 사브라지구에 있는 알 무자마아 이슬람 사원에서 새벽 예배를 마치고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나서다 이스라엘 헬기가 쏜 미사일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진 것이다.
사건 직후 이스라엘 라디오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직접지시에 의한 것이었다고 보도하자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곳곳에는 팔레스타인인 수만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격렬한 항의시위를 전개, 이스라엘군과 유혈충돌이 속출했다.
2008년 타이완 총통선거 야당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후보 당선
2014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러시아와 크림 공화국 합병 조약에 최종 서명
2016년 벨기에 브뤼셀 공항과 지하철역에서 IS 연쇄폭탄테러 사망34명 부상230여명
2016년 버락 오바마 미대통령 현직으론 88년만에 쿠바 방문
2022년 132명 탄 中 여객기 산에 추락
'오늘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역사 3월 24일 (0) | 2023.02.18 |
---|---|
오늘의 역사 3월 23일 (0) | 2023.02.18 |
오늘의 역사 3월 21일 (0) | 2023.02.15 |
오늘의 역사 3월 20일 (1) | 2023.02.15 |
오늘의 역사 3월 19일 (0) | 2023.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