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3월 29일
*1947년 반란 희생자 기념일(Commemoration of the 1947 Rebellion): 마다가스카르
1108년 [음]예종(睿宗) 3년, 영주성(英州城)까지 진격한 여진군을 격퇴함
1126년 [음]인종(仁宗) 4년, 사면령을 내리고 이자겸과 척준경의 일당에게 관직을 하사함
1229년 [음]군기감(軍器監)의 행랑(行廊)에 화재가 발생함
1245년 [음]고종 32년, 강화도에 화재가 발생함
1258년 [음]고종(高宗) 45년, 왕이 백관(百官)의 하례를 받고 공신들에게 최의의 재산을 분배함
1336년 [음]충숙왕(후)(忠肅王(後)) 5년, 전왕의 재물과 공신전(功臣田)을 환수함
1436년 [음]세종 18년, 왜인의 삼포 거주를 제한적으로 허락함
1437년 갑산성(甲山城) 완공
1470년 [음]성종 1년, 금주령을 내림
1540년 [음]중종 35년, 경상 좌도 병마절도사 박영 죽음
1546년 [음]명종 1년, 명나라에서 《지리신서(地理新書)》를 구입하여 옴
1546년 [음]명종 1년, 전국 각지에서 우박이 내림
1583년 [음]정철(鄭澈)이 예조 판서(禮曹判書가 됨
1594년 [음]선조 27년, 유성룡(柳成龍)의 건의에 따라 군제를 진관(鎭管) 체제로 바꿈
1610년 [음]광해 2년, 광해군 생모 공빈(恭嬪) 김씨를 자숙 단인 공성 왕후(慈淑端仁恭聖王后)로 추존함
1632년 [음]인조 10년, 후금이 국경 무역을 요청함
1676년 [음]숙종 2년, 황해도 평산(平山府)에서 화재로 민가 수백 호가 연소됨
1687년 [음] 숙종 13년, 평안도(平安道) 함종현(咸從縣)에 지진이 일어남
1701년 [음]숙종 27년, 청나라의 불법 어획이나 해상 무역을 금지함
1710년 [음]숙종 36년, 동래 부사(東萊府使)가 변경(邊境)의 일들을 바로잡기를 장계함
1722년 [음]경종 2년, 목호룡의 난으로 인해 왕세제(영조)가 물러나려 함
1740년 [음]영조 16년, 황해도 백령진(百翎鎭)에 청나라 사람이 표류해 오니 육로로 돌려보냄
1777년 [음]정조 1년, 《명의록(明義錄)》을 완성함
1786년 [음]정조 10년, 경기의 산에 나무를 심게 함
1795년 [음]정조 19년, 화성의 직로(直路)(우회하지 않은 곧은 길)에 파발참(擺撥站)을 설치함
1795년 정조가 친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와 수원 화성 축성 현황 점검을 위해 수원 화성으로 행차하다.
1809년 [음]순조 9년, 고 장령 송능상을 유일(遺逸)에서 삭제하고 문집의 각판을 파기하라 명함
1811년 (조선 순조11)예문관 화재로 실록 불타버림
1840년 [음]헌종 6년, 죽산부사의 행차에 행패를 부린 자를 효수함
1850년 [음]철종 1년, 청나라 칙사를 맞이함
1894년 동학당 정부에 청원
1895년 동학 농민군 지도자 전봉준 및 접주 손화중·김덕명·최경선·성두한 등 처형됨
1895년 승려의 도성 출입 허락
1896년 (고종33)미국인 모스에게 경인철도 부설권 특허
1910년 민원식·이재극 등, 정우회 조직, 황실 존영·한일 친선 등 7개 강령 발표
1911년 조선은행법 공포, 8월15일 시행
1919년 일본 군인이 의주의 시위 군중을 학살한 의주 학살사건이 발생
1919년 파리장서 제출
1923년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창립총회
1924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복한 작고
1927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월남 이상재(1850-27) 작고
충남 서천군 출생으로 젊어서 일본과 미국을 경험한 근대인이자 세계인이었다. 승지 박정양의 개인비서 수행원으로 10여 년간 지내다 우정국 주사, 워싱턴공사관 서기생, 승정원 우부승지 겸 경영참찬, 학부참사관, 법부참사관, 독립협회 부회장, 조선교육협회 회장, 조선YMCA연합회 회장, 소년척후단(보이스카우트 전신) 총재 등을 역임하면서 민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1924년 9월에 75세의 고령으로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한 월남은 `조선 민족 대변기관`이란 기치를 내걸고 민족 신문의 틀을 닦았다. 그가 사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조선일보는 우리나라 최초로 조석간을 발행하고 신문만화 '멍텅구리'를 연재했으며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를 채용했다. 그 덕에 조선일보는 재정난과 일제의 거듭된 탄압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민족진영의 화합을 강조했다. 그래서 조선기자들의 단합과 좌우 민족진영 단합에 힘썼다. 그 결과가 신간회였다. 1927년 2월 15일 300여명이 모인 신간회 창립총회에 월남은 노환으로 참석할 수 없었지만 그는 만장일치로 회장에 추대됐다. 그만큼 좌우익으로부터 그는 존경받는 어른이었다.
1929년 항공우편규칙 공포(4.1 시행)
1931년 안창호˙조상섭˙차이석 등 상하이 흥사단내에 공평사(公平社) 조직(이사장 안창호)
1937년 소설가 김유정 세상떠남 『봄봄』 『동백꽃』 『만무방』
늑막염과 폐결핵으로 가난과 병마에 시달려 온 소설가 김유정이 1937년 2월 29일 29세를 일기로 요절했다. 그는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 문과를 중퇴, 한때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금광에 몰두하기도 했다. 1935년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같은 해 소설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각각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불과 2년 동안의 작가생활을 통해 30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길 만큼 그의 문학적 정열은 남달리 왕성했다. 데뷔작인 `소낙비`를 비롯 그의 작품은 주로 우직하고 가난한 농민이나 무식한 사람들을 통해 수많은 토속어와 직설적인 비속어, 갖가지 비유와 풍부한 어휘 등 특유의 문체를 선보였다.
대부분 농촌을 무대로 한 것인데 `금 따는 콩밭`은 노다지를 찾으려고 콩밭을 파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그렸고, `봄봄`은 머슴인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의 희극적인 갈등을 소박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린 그의 대표적인 농촌소설이다. 이외에 `동백꽃` `따라지` 등 30여 편의 단편과 1편의 장편, 그리고 1편의 번역소설을 남겼다.
춘천시 신동면에 김유정역이 있다
1945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가재연(1923년~) 작고
1946년 걸 스카우트 발족
1946년 〈제차(諸車)·도보자의 통행 규칙〉 공포. 기차를 제외한 모든 차들은 우측 통행
1949년 반민족 행위 피고 이종형, 자신은 공산당을 토벌한 애국자라고 주장
1950년 판사 10여 명, 친일파 입후보 금지를 규정한 〈선거법〉에 사의 표명
1951년 국회서 국민방위군사건 폭로. (23억원. 양곡 52,000석 착복), 8월13일 김윤근등 5명 사형 집행
임시수도 부산에서 열린 피난국회가 1천여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낸 국민방위군 의혹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진상조사단 구성안을 1951년 3월 29일 통과시켰다.
국민방위군은 6.25전쟁중 중국의 개입으로 상황이 악화되자 국가비상시 예비병력을 양성하고 병력동원을 신속히 하기 위해 `17세 이상, 40세 이하의 남자는 제2국민병에 편입시키고 제2국민병중 학생이 아닌 자는 지원에 의해 지방단위로 편입시킨다`는 내용의 국민방위군설치법이 1950년 12월 통과됨에 따라 조직됐다.
이들은 1.4후퇴 당시 간부들의 부정으로 1천여명에 이르는 대원들이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참극을 겪었다. 국회가 진상조사에 나서자 정부는 방위군을 4월 30일 해체하고 부정의 주범인 김윤근 사령관 등 국민방위군 간부 5명을 1951년 8월 총살해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이로써 국민방위군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부정유출된 자금이 이승만 정부에 유입됐다는 항간의 의혹은 영원히 은폐되고 말았다.
1957년 일본, 대한청구권 포기 및 을사보호조약 무효선언
1960년 여당 의원들, 마산 3·15 부정 선거 시위는 공산당 사주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1961년 간첩 임경룡사건 발생
1963년 서울대 문리대생 300여명 군정반대 결의대회
1969년 가짜우유 20만병 양산한 일당 구속
1971년 술집에서 박정희 후보 비난한 김도순, 대통령 선거법 위반으로 첫 구속
1974년 마산 성산패총, 성산 정상에서 또 하나의 성터 발견, 고대 부족국가취락지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
1978년 산림청, 국내 농촌 인구 37%가 임산물 연료에 의존하고 있다고 발표
1979년 공해 업소, 1972년 683개소에서 1978년 말 현재 4,552개소로 7배 증가
1983년 민정당, 서울 잠실종합체육관에서 전당대회 개최
1983년 내한 중인 프레마다사 스리랑카 수상, 자국의 농촌지역 개발 및 건설에 한국이 참여 합의
1985년 남자배구, 중공 꺾고(홍콩) 월드컵본선 진출
1985년 민한당 전당대회, 총재에 조윤형 선출
1985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결성.(의장 문익환)
1986년 국내유가 평균 10% 재인하
1988년 팀스피리트 '88 한·미 연합군 상륙훈련 개시
1988년 정부, 광주사태 치유 방안 마련
1988년 미국 맥도널드 한국 진출
1988년 김중기 서울대 총학생회장 남북학생대화·남북한청년학생 공동체육대회·국토순례대행진 제안
1989년 정부-민정당, 고위당정회의를 갖고 문목사의 판문점 통과 불허 방침 확인
1989년 한국과 헝가리 외무장관은 부다페스트서 양국간 과학기술협정 및 이중과세방지 협약 조인
1989년 정부는 광양, 여천, 구미 등 대규모 공단 인근에 30~100만평 규모의 위성공단을 조성키로
1990년 정부, 민영 TV방송국을 92년에 허용 방침 밝혀
1993년 민자당 김재순 의원, 재산공개파문으로 사퇴와 정계은퇴 선언.
1993년 재산공개파문과 관련, 박준규 임춘원 의원 민자당 탈당 선언.
1994년 김영삼 대통령, 北京대학에서의 연설- 韓.中 협력으로 相生의 새 시대를 열자'고 역설
1994년 조계사 각목 난투극-서의현 원장 3선 연임싸고 개혁요구
조계종의 새 총무원장을 선임하기 위한 종회를 하루 앞둔 1994년 3월 29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서의현 총무원장 지지파와 서원장의 3선을 저지하려는 반대파간에 난투극 등 유혈충돌이 일어났다.
난투극 끝에 시위현장에서 반집행부측 승려와 학생 등 4백 76명이 연행됐고, 이중 폭력 사태에 적극 가담한 승려 14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이번 사태는 서 원장과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 사이의 종단개혁 방법에 대한 시각차로 발생했다. 이를 지켜 본 승가와 재가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모두 심각한 충격에 휩싸였다. 이 와중에서 중앙종회는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의 3선을 의결했다. 이로써 조계종 사태는 일단락 됐지만 분쟁의 불씨는 지속됐다.
1995년 정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신청서 정식 제출
1995년 경기도 광주 주민들 경기도청 점거 골프장 허가반대 기습시위
1995년 부산경찰청 빈민정책 비난유인물 살포 대학생87명 연행
1996년 연세대생 노수석(20세) 등록금인상저지 시위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따른 급성심장마비 세상떠남
1996년 김영삼 대통령, 장학노 전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부정축재사건에 대한 대국민사과의 뜻을 밝혀
1997년 김영삼대통령, 앨 고어 미국 부통령과의 회담 (서울)
1999년 제4차 북미 미사일 회담(평양. -30일)
2001년 한국계 미국인인 전신애씨, 차관보급인 미국 노동부 여성실장에 지명
한국계 미국인인 전신애(58)씨가 2001년 3월 29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차관보급인 미국 노동부 여성실장에 지명됐다. 전씨는 부시 행정부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는 최고위 행정부 관료가 됐다.
1943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한 전씨는 지난 1965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남편의 권유로 미국의 노스웨스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리노이주 이중언어교육센터에서 일하다 2년 만에 난민교육센터 소장으로 승진했고, 1984년 주지사 선거에서 소수 민족을 대표해 열심히 뛴 공로로 아시아계 담당 주지사 특별보좌관에 임명돼 1989년까지 일했다.
이어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일리노이주 정부 각료급인 재정담당국장(1989~1991)과 노동담당국장(1991~1999)을 맡았다. 전씨는 지명 당시 시카고의 ITR사 상무로 일하고 있었으며, 남편은 미국 국립 아르곤연구소 대기공학 연구부장이었다
2001년 인천국제공항 8년4개월만에 개항(공사비 7조8천억원).
21세기 동북아 허브(중심) 공항을 목표로 건설된 인천국제공항이 2001년 3월 29일 개항했다. 인천공항은 이날 오전 4시 46분 방콕발 아시아나 항공의 첫 착륙과 오전 8시 30분 마닐라행 대한항공의 이륙을 시작으로 한국의 새 관문 역할을 시작했다.
여객기 281편, 화물기 58편 등 모두 339편의 항공편 이·착륙이 이상없이 이뤄졌다. 인천공항을 통해 입·출국한 승객은 4만3000여명에 이르렀다.
수치로 본 인천공항은 단군 이래 최대의 공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각종 진기록들로 가득차 있다. 부지면적 1700만평은 여의도의 18배 크기이며, 45만장의 설계도면을 쌓으면 15층 건물 높이에 이른다. 연건평 15만평 크기의 여객터미널은 여의도 63빌딩의 3.1배이며, 축구장 60개 크기이다. 또 바닥면적 기준으로 국내 최대의 건축물이자 단일 공항 건축물로는 세계 최대다. 관제탑은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100.4m로 지진이 일어날 경우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복합 내진장치가 설치돼 있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의 영종대교는 2층 왕복 6차선 도로, 1층에 철도와 4차선 도로가 함께 붙어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교량이다
2002년 기상청, 경상남도 합천 부근에서 실시한 인공 강우 실험 성공 발표
2003년 조계종 전(前) 종정 서암스님 입적
2003년 ‘제주 4·3사건’ 정부 보고서 55년 만에 채택
1948년 발생한 제주 4·3사건을 ‘남로당의 무장봉기와 이에 대한 공권력의 무자비한 과잉 진압에 따른 주민 피해’로 규정한 정부 차원의 보고서가 사건 발생 55년 만에 조건부로 채택됐다.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위원장 고건 국무총리)’는 29일 정부중앙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내부 기구인 ‘진상조사보고서 기획단’에서 제출한 4·3 보고서를 수정, 채택했다.
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4·3사건 원인에 대해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 봉기가 있었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하게 주민들이 희생되었다’고 4·3사건을 규정하고,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추모사업이 적극 추진돼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고 김한욱(金漢昱) 4·3사건처리지원단장이 밝혔다. 또 4·3사건 전체 희생자 수를 2만5000~3만명으로 추정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적절한 명예회복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위원회는 기획단에서 건의한 4·3사건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사과 4·3사건 추모기념일 제정 4·3사건 관련 유가족들에 생계비 지원 등 7개항의 ‘대정부 건의안’을 접수하고 정부차원에서 검토하기로 했다.
한편 지난 21일 ‘보고서 초안이 피해자 사례에 치우쳐 있다’며 사퇴 의사를 밝힌 김점곤 경희대 교수는 회의에 불참했다. 또 회의에 참석했던 한광덕, 이황우 위원 등 군(軍)과 경찰을 대표하는 위원들이 보고서 동의를 거부해 논란이 예상되었다
2006년 국제노동기구, 한국 정부에 공무원 단결권 확대와 파업권 허용 촉구의 권고문 채택
2009년 김연아, 최초 200점 돌파하며 세계선수권 정상
2009년 비운의 기업인 양정모 전 국제그룹(재계서열 7위)회장 세상떠남, 국제그룹은 전두환 정권과의 불화설에 이어 그룹 해체되는 비극
2010년 국어학자 이응백 선생 별세
2016년 대한민국 정부 부처의 상징이 태극문양으로 통일되었다.
2017년 10대 2명 잔혹한 초등학생 살인 저지름, 초등2년생(8세) 유괴살인 주검훼손, 1심에서 법정최고형(1명은 징역20년, 1명은 무기징역) 선고
2018년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다.
2021년 수도권은 6년만에, 전국은 11년만에 최악의 황사가 일어났다.
2021년 4차 재난지원금 오늘부터 지급
기원전 87년 전한 한무제 작고
845년 라그나르 로드브로크가 이끄는 바이킹족에 급습당한 파리가 함락되다. 도시를 파괴하지 않는 조건으로 막대한 양의 돈(몸값)을 지불하고 해방되다.
1058년 교황 스테파노 9세 작고
1368년 일본의 고무라카미 천황 사망
1430년 오스만 제국 무라트 2세가 비잔틴 제국 도시 테살로니키를 점령
1461년 장미전쟁: 토우턴 전투 - 요크가의 왕 에드워드가 앙주의 마거릿을 물리친 후
즉위, 에드워드 4세가 되다.
1746년 카를로 보나파르트 출생
1790년 미국의 제10대 대통령(1841-45) 존 타일러 출생
1807년 하인리히 올베르스가 소행성 4 베스타를 발견.
1848년 미국의 모피 왕 애스터 작고
1867년 미국의 야구 선수 사이 영 출생
1891년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쇠라 작고
1905년 미국의 한국계 영화배우 안필립 출생
1912년 영국탐험가 스코트 남극에서 얼어죽음
1916년 미국의 정치인 유진 매카시 출생
1918년 미국의 기업인 샘 월턴 출생
1937년 폴란드의 작곡가 카롤 시마노프스키 작고
1938년 뮌헨회담, 주데텐란트 獨양도 합의
1938년 3월에 오스트리아를 침공·합병한 히틀러가 다시 발톱을 세워 9월 초 체코령 주데텐란트를 요구하자 체코는 동맹국인 영국과 프랑스에 안전보장을 호소했다. 9월 15일 영국 총리 체임벌린이 독일로 날아가 히틀러와 마주앉았으나 향후 1주일간 무력 침공을 자제하겠다는 언질만 받아냈다. 독일과의 충돌을 피하고 싶었던 체임벌린은 프랑스 총리 달라디에와 이 문제를 협의한 끝에 체코를 독일에 넘기자는 결론을 내렸다. 체코는 “자신들의 평화를 위해 우리를 희생시킨다”고 볼멘소리만 했을 뿐 영·불의 합의를 따라야 했다. 힘 없는 국가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22일의 두 번째 회동에서 히틀러가 주데텐란트를 ‘즉시’ 넘기라는, 전보다 더 강경한 조건을 제시했을 때 체코와 영·불은 더 이상 밀릴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총동원령을 내리고 함대까지 동원하는 등 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최후 통첩을 보내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영·불은 꼬리를 내리며 타협으로 방향을 틀었다.
9월 29일 당사국인 체코를 제외시킨 채 뮌헨에 모인 체임벌린·달라디에·히틀러·무솔리니는 밤샘 협상 끝에 주데텐란트를 독일로 양도한다는 ‘뮌헨협정’에 서명했다. 체코에는 비극의 시작이었지만 체임벌린에게는 전쟁을 예방한 영웅이라는 영국인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듬해 3월 히틀러가 체코의 나머지 영토까지 점령함으로써 체임벌린은 평화의 사도에서 굴욕외교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1963년 아르헨티나 군부 쿠데타
1967년 프랑스 최초 핵잠수함 진수
1969년 프랑스 나토통합군서 탈퇴
1973년 닉슨 미대통령, 베트남 전쟁 종결을 선언, 베트남파병 미군 철수완료
최후까지 남아있던 90명의 미군을 태운 C141 수송기가 1973년 3월 29일 오후 5시30분 남베트남 사이공으로부터 일본 요코다 기지로 향했다. 최대 54만을 기록했던 베트남주둔 미군병사가 모두 철수한 것이다. 투입 전비만해도 1380억달러, 사망자수만해도 4만6천명에 달한 미국의 베트남개입은 이로써 막을 내렸다.
북베트남은 `베트남인민의 승리`라는 짧은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사관, 영사관등의 민간인을 포함한 3500명의 미국인이 남베트남에 남아있자 해방전선측은 위장한 군사요원이라고 비난했다.
닉슨대통령은 이날 TV방송을 통해 전쟁종결을 선언했다.
1974년 진시황릉 첫 발견
1974년 3월 29일 양쯔파(楊志發)라는 농부가 가뭄에 신음하는 대지 위로 곡괭이를 내려찍었다. 곡괭이는 흙으로 빚은 사람 머리와 부딪치며 책에만 전해오던 진시황릉 발굴의 서곡이 됐다. 황릉을 지키던 흙인형, `병마용(兵馬傭)` 6000여명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후 370여만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장장 37년에 걸쳐 이 능을 완성했다. 진시황 사후 아들 진2세는 그를 안장할 때 이 능을 건축한 공인들이 능의 비밀을 누설할 것이 염려되어 모든 공인들을 전부 능안에 가두었으며, 왕궁내의 모든 미혼의 궁녀들을 진시왕과 함께 생매장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초패왕 항우와 농민 봉기군 황소가 이 무덤을 발굴한 적이 있지만, 그안의 보물을 전부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후에도 도굴꾼들에 의해 여러번 약탈당하고 심지어 90일동안 화염에 쌓였던 적도 있었다
1975년 이집트대통령 수에즈 운하 통행재개 발표
1980년 루마니아 신내각 발족
1980년 영국출신 미국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세상떠남
1981년 호르헤 비델라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다.
1983년 미국 미사일요격(ABM)체제 집행위 설치
1991년 고르바초프의 사임을 촉구하는 반정부시위 발생(5만여명)
1999년 미국 다우지수 사상 처음 1만 돌파
2003년 사스(SARS) 첫 확인한 우르바니 박사, 사스로 사망
괴질(SARS)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세계보건기구(WHO) 소속 의사 카를로 우르바니(46·이탈리아) 박사가 29일 이 병으로 사망했다.
WHO 소속 전염병 전문가로 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의 공중보건 업무를 담당해 온 우르바니 박사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호흡기 질환 증세를 보이는 미국인 사업가를 치료하다가 괴질의 존재를 확인하고 WHO에 보고했다. 우르바니 박사는 이 환자로부터 괴질에 감염됐으며 태국 방콕으로 후송돼 15일간 치료받다 숨졌다.
이탈리아 안코나 의대를 졸업한 우르바니 박사는 ‘국경없는 의사회’ 이탈리아 지부장을 역임했다
2004년 아일랜드 `금연법` 공포, 술집 등 공공장소서 금연 위반시 벌금 최고 440만원
2004년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가 전체 회원으로 NATO에 가입
2009년 음악가 모리스 자르 별세
1924년 프랑스 리옹에서 출생한 그는 60년대 할리우드로 터전을 옮겨 존 프랑켄하이머, 앨프리드 히치콕, 존 휴스턴 등의 거장 감독들과 작업하면서 150여편의 영화 음악을 만들었고 '닥터 지바고' '아라비아의 로렌스' '인도로 가는 길' 등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 지하철 연쇄 폭탄 테러 발생, 41명이 사망하고 88명이 부상
2016년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와 자위대의 무력 사용과 활동 반경의 확대를 규정한 일본의 ‘평화안전법제’가 시행되었다.
2017년 지중해에서 리비아 난민선(47명) 침몰, 감비아 소년(16세)만 살아남음
2020년 폴란드의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작고
2020년 미국의 물리학자 필립 워런 앤더슨 작고
2021년 알바니아의 정치인, 전 총리 바시킴 피노 작고
2021년 미얀마군 지난 27일 군부쿠데타 규탄 시위대 무차별 총격 100여명 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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