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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이름이 성공한 인생을 만든다"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3월 28일​​​​​

by 귤담 2023. 2. 21.

오늘의 역사 3월 28일

 

 

*교사의 날: 체코슬로바키아

*센노 리큐 추모일: 일본 다도의 원조.

*천일염의 날: 대한민국

 

 

1256년 [음]고종(高宗) 43년, 송군비(宋君斐)가 입암산성(笠巖山城)에서 몽고군을 물리침

1258년 최의(1233년~) 작고 : 고려의 최씨 무신정권 4대 집정자, 고려 후기의 무신, 실권자

1272년 [음]원종(元宗) 13년, 태묘(太廟)가 완공되어 9실(室)의 신주(神主)를 봉안(奉安)함

1448년 [음]세종 30년, 사서(四書)를 한글로 번역하게 함

1456년 [음]세조 2년, 양성지가 편의(便宜) 24사를 건의함

1471년 [음]성종 2년, 향교 교생(校生)들에게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강습하게 함

1514년 [음]중종 9년, 공조 판서 정광세 죽음

1548년 [음]명종 3년, 강원도 철원에 흙비가 내림. 경기 지역에 우박이 내림

1620년 [음]광해 12년, 후금에 투항한 강홍립의 처리 문제를 논의함

1643년 (조선 인조21)이순신에 충무공 시호 내림

1659년 [윤]효종 10년, 남해의 싸움터에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기념비를 세움

1676년 [음]숙종 2년, 개성에 화재로 민가 572호가 연소됨

1679년 [음]숙종 5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증보 간행함

1686년 [음]숙종 12년, 현감 김창국의 딸(영빈 김씨)을 숙의에 책봉함

1689년 [윤]숙종 15년, 기사환국에 연루된 전(前)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이 사사됨

1739년 [음]영조 15년, 중종 비 신비의 시호를 ‘단경(端敬)’으로 올림

1745년 [음]영조 21년, 만동묘(萬東廟)의 중수(重修)를 논의함

1746년 [음]영조 22년, 영조가 지은 《자성편(自省編)》이 완성되어 진강(進講)하게 함

1765년 [음]영조 41년, 알성 문·무과가 실시됨

1769년 [음]영조 45년, 명릉(숙종 능)을 보토(補土, 패인 곳에 흙을 보충함)한 사람들을 포상함

1777년 [음]정조 1년, 종부시(宗簿寺)에서 정리하여 올린 《선원보략(璿源譜略)》을 봉모당에 봉안하게 함

1781년 [음]정조 5년, 검열 김재찬이 《이문강의(摛文講義)》를 편찬하여 올림

1785년 [음]정조 9년, 역모와 관련한 옥사를 결말지을 것을 명함

1786년 [음]정조 10년, 숙종이 지은 삼충도상찬(三忠圖像贊)과 삼충도상(三忠圖像)을 삼충사에 봉안하게 함

1799년 [음]정조 23년, 주자소에서 인쇄하여 올린 《은배시집(恩杯詩集)》을 차등 있게 하사함

1799년 [음]정조 23년, 비변사가 정은 10냥을 천은 8냥으로 대납할 수 있게 함

1845년 [음]헌종 11년, 주청사가 청나라에서 돌아옴

1865년 [음]비변사, 의정부에 통합

1894년 (고종31)조선의 혁명가, 김옥균 상하이에서 조선 조정이 보낸 자객 홍종우에게 살해됨, 1851.1.23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1872년(고종9) 알성문과 장원급제, 박규수 유대치 등의 영향으로 개화파가 됨, 1884.12.4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과 함께 우정국 낙성식 틈타 갑신정변 일으켰으나 청나라 군대(2천명) 개입으로 3일만에 실패하자 일본 망명, 10년뒤 청나라로 건너감

1894년 박영효, 동경서 이일식에 피습 부상

1899년 (대한제국 광무3)관립의학교(교장 지석영) 설립

1900년 (광무4)한국통감부 개청

1900년 최태영(~2005년) 출생 : 대한민국의 법학자

1906년 통감 이토 히로부미, 정부 인사들을 통갑 취임 피로연에 초대하여 식민지 정책 설교

1910년 이승만 저, 『독립정신』(대동공보사) 간행

1910년 치안 방해를 이유로 안중근의 사진 발매 금지

1912년 일제, 〈조선관세령〉·〈조선관세정률령〉·〈조선톤세령〉·〈조선보세창고령〉 등 공포·실시

1913년 독립운동가 규호 이규창 출생

1922년 김익상 의거. 김익상 철혈단원, 상해에서 일본 田中義一 대장에 폭탄 던져, 살해 미수

1922년 조선총독부, 〈사립학교 교원자격 및 인원수에 관한 규정〉 공포(4.1. 시행)

1925년 대한민국의 목회자 김준곤 출생

1929년 인도 시인 타고르가 <동아일보>에 「조선은 아시아의 등불」이라는 시를 기고.

1932년 국방헌금 100만원대 돌파, 애국비행기 총계 18기

1933년 미곡 통제령 공포 : 미곡의 양과 가격을 통제 조절하기 위한 정책.

1934년 전남 경찰부가 공산주의 비밀 결사 혐의로 300여 명 검거.

1941년 조선총독부, 양지(洋紙) 배급 통제 방침 결정(4.1. 시행)

1943년 일제, 배 만든다고 석왕사의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벌목

1946년 굶주린 서울시민들 미군정 규탄하며 쌀 달라 시위

1947년 쌀 5되 430원, 쇠고기 1근 200원, 설탕 1근 320원, 탁주 60원

1950년 남로당 총책 김삼룡 검거

남로당 총책 김삼룡이 1950년 3월 28일 서울 아현동에서 검거됐다. 그와 함께 남로당을 이끌어온 이주하도 하루 전 검거되고 남로당 조직원 142명도 일망타진됨으로써 남로당 조직은 사실상 와해 단계로 접어들었다.

김삼룡은 박헌영이 월북한 이후 3년간이나 남로당을 이끌어온 실질적인 책임자였고 이주하는 김삼룡의 고문으로 무장총책임을 맡고 있었다. 특히 김삼룡은 머리가 비상하고 변장술에도 뛰어나 경찰을 골탕먹이기가 일쑤였다. 체포될 때도 엿장수로 변장한 모습이었고 색안경을 7개나 소지하고 있었다. 비밀 아지트도 서울에만 8개나 돼 수시로 장소를 변경하며 경찰의 추격을 따돌렸다.

이주하는 일제하의 노동운동가로 그가 이끌었던 '태평양노동조합'은 1930년대의 가장 중요한 현장조직이었다. 일제하에서 5년간 복역하기도 했던 이주하는 일제 말에 대부분의 공산주의자들이 전향하거나 은둔하고 있을 때 끝까지 노동운동에 몸 바친 '전위혁명가'였다.

남로당의 몰락은 1949년 9월 김삼룡의 한 심복이 검거되면서 시작됐다. 김삼룡의 은신처를 확인한 경찰이 비밀 아지트를 급습하자 김삼룡은 철조망을 넘어 피신하고 이주하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당시 이주하는 극약을 삼켰지만 경찰의 응급조치로 20여 일간 병원 신세를 지는데 그쳤다.

김삼룡이 검거된 뒤 김삼룡과 이주하는 1950년 5월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둘은 북한의 위장평화공세의 소재로 이용된다. 6월 10일 북한이 강제억류 중인 조만식과 이들을 38선에서 교환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제안을 수락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북한은 교환일자를 연기하는 등 교묘한 지연책을 쓰다가 6.25 남침을 감행했다. 6.25가 발발하자 김삼룡과 이주하는 이튿날인 26일 한강 백사장에서 총살형으로 처형됐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북한의 공식 역사에서도 이름이 지워져 남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혁명가로 남게됐다.

1953년 북한, 부상포로 교환에 합의

1956년 민주당, 이승만 대통령 3선 지지 데모는 조작이라고 성명

1956년 농민은행 자본금30억환으로 설립 결정

1957년 일본정부 한일의정서 작성 합의, 주요내용=을사조약무효·한국내 일본인재산 포기

1960년 이승만 대통령, 치안국장 이강학을 문책 해임하고 조인구 임명

1964년 쌍용(주), 연산 40만톤 규모의 영월시멘트 공장 가동

1968년 한-미 사증(비자)발급협정 체결

1968년 한국경제인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로 개칭

1969년 김수환 대주교 국내 첫 추기경 서품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은 한국 천주교계의 큰 별이였다.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었고 정신적 지주였다. 1970~1980년대 민주주의가 억압받던 군사정권 시절엔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대변했으며, 우리 사회가 반미 친북으로 심하게 요동치던 2000년대에는 자유민주주의의 중심을 잡아주는 조타수 역할을 했다.

김수환은 대구의 가난한 옹기장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1868년 무진박해 때 순교하고 부모 역시 신자였던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다. 순교자의 후손답게 깊은 신앙심을 지닌 그는 모친의 권유에 따라 1933년 11살 때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에 진학해 성직자의 길을 선택했다.

1941년 서울 동성상업학교(현 동성고)를 졸업하고 그해 4월 당시 교장이던 장면 박사의 추천으로 일본 조치대 철학과로 유학을 떠났으나 1944년 태평양전쟁에 학병으로 끌려가 남태평양의 한 섬에서 광복을 맞았다. 일본에서 나머지 학업을 마친 그는 1946년 12월 귀국해 서울의 성신대(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1951년 9월 15일 대구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독일 뮌스터대에서 1956년부터 7년간 신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뒤에는 1966년 2월 주교로 서품되어 초대 마산교구장에 임명되었다. 1968년 노기남 대주교가 사임한 뒤를 이어 서울대교구장으로 착좌했으며 대주교 승품 후인 1969년 마침내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에 임명되었다.

1963년 공군수송기 C46 추락 11명 사망

1972년 정홍진 중앙정보부 협의조정국장 방북(-31일)

1974년 한국-오만, 국교수립

1975년 연세대생 데모(이후 각대학으로 파급, 3.31 고대, 4.2 한신대)

1979년 신민당 긴급조치해제건의안 제출

1980년 박동진 외무부장관, 스리랑카서 주최한 리셉션에 PLO대표 초청하고자 접촉

1983년 농업보험 1987년부터 실시 계획

1986년 고려대교수38명 시국성명서 발표, 학원자율화 개헌에 대한 의사표현의 자유 등 주장

1987년 부천 성고문 피해자 권인숙, 공문서 변조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선고

1987년 한국인이 탄 싱가포르 유조선, 페르시아만서 이란 미사일에 피격. 한국인 선원 5명 사망

1988년 대검중앙수사부, 전경환이 기업체 새마을성금 중 상당액을 개인 용도에 쓴 사실 확인

1988년 김영삼 민주당 총재, 국정감사권을 발동 全斗煥 전 대통령 인척이 연루된 부정 진상이 밝혀야 한다 주장

1989년 개인의 외환 보유한도를 5천달러서 7000~ 8000달러로 확대등 87개 규제조치를 완화키로

1989년 북경아시안게임 단일팀구성위한 제2차남북체육회담 열림, 단일팀 영문표기 ‘KOREA’ 합의

1990년 수교협의 등 김영삼 위원 고르바초프와의 극비 회동 밝혀

1990년 한국 신생국 나미비아와 대사급 수교 서명

1990년 80년대 전국 지가 동향, 80(80~89년) 10년간 전국 땅값은 평균 3.8배(275.9%)올라.

1991년 보건사회부, 생수의 내수 판매 전면 허용

1991년 정부, 차세대전투기사업의 기종을 미국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의 F16으로 확정 120대 도입 계획 발표

1991년 국무회의, 경범죄 처벌시행령 개정안을 의결- 휴지나 담배꽁초 벌칙금을 2만5000원으로 올려

1991년 대우조선 노동자3천명 회사안에서 격렬한 시위

1992년 외국인 범죄 흉악 급증-파키스탄인, 불법체류 기간 2명살해

1992년 경제기획원,작년 상반기중 모두 16만 9061개의 사업체가 신설된 반면 9만 9246개가 폐업 발표

1993년 변정일 WBC 밴텀급 세계챔피언 획득

1993년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 부산 구포역에서 열차 탈선전복 사망78명 부상112명

1994년 김영삼 대통령, 강택민 중국 주석과의 정상회담

1995년 국방부, 국내기술로 개발해온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K-SAM)인 `天馬'의 시험발사 성공했다고 밝혀

국방부가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해온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K-SAM) `천마`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1995년 3월 28일 발표했다. 국산 지대공 미사일 개발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천마는 국방과학연구소(ADD)와 민간 방위산업체가 1980년대 말부터 공동개발해 온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로 유효 사정거리는 5㎞다.

우리 군의 약점으로 지적돼 온 저고도 적 항공기에 대한 요격용으로 개발된 천마는, 역시 국내기술로 개발된 30㎜ 대공자주포 비호 (사정거리 3㎞)와 함께 주로 기계화부대나 공군기지의 대공 방어용으로 실전 배치돼 활용되고 있다. 천마가 개발되기 전까지 수도권 및 공군기지에 주로 배치돼 있던 단거리 지대공미사일은 미국제인 스팅어 , 프랑스제인 미스트랄 , 영국제인 재블린 등이었다.

1995년 미 군축국보고서 군사력순위 한국10위 북한21위

1995년 정부 남북경협 추진기업의 방북 유보방침 발표

1996년 서울고등법원, 성폭행 피하려다 저지른 살인은 과잉 방어라도 처벌할 수 없다고 무죄 선고

1997년 희귀야생 동·식물 서식하는 국내유일의 고층습원 대암산용늪(강원도 인제) 우리나라 최초로 람사르 습지 등록

1997년 진우화성(주), IPBC의 정제공정고 SPG의 원심 분리공정 운전중 폭발화재, 사망3, 중상4.

1997년 한보그룹 정보근 부회장 횡령혐의 구속

1999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잠실종합운동장 친선 경기에서 김도훈의 극장골로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동아시아 최초이자 유일하게 브라질 상대로 승리를 거둔 기록을 보유

2001년 김포국제공항, 국제공항 시대 마감

‘국제’ 공항으로서 마지막 날을 맞은 28일 오후 11시 김포공항 2청사 계류장. 비행기를 끌 때 쓰이는 견인 장비인 50t 토잉트랙터를 견인차에 싣기 위해 D운송업체 직원 10여명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형광 주황색 조끼를 입은 이들은 트랙터를 이용, 특수견인차에 토잉트랙터를 싣느라 바삐 움직였다.

국제선 2청사 2층 건물 외곽에 붙어있던 항공사별 안내표지판도 철거됐고 대신 체크인 카운터 위쪽 벽에 ‘김포공항에서 함께 한 32년, 성원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렸다.

오후 9시 50분, 국제선 1청사에서는 28일 김포공항에서 떠나는 마지막 항공편인 우즈베크 항공 HY514편이 이륙했다. 한국공항공단 김건호 이사장은 이륙 직전 기장 카디로브마흐티에르(47)씨에게 기념 꽃다발을 건네기도 했다.

마지막 항공편이 어두운 하늘을 날아오르자 김포공항 여객청사에도 불이 꺼졌다

2002년 최규선 게이트 첫 폭로

2003년 일본, ‘한반도 정찰위성’ 발사

2003년 인천 백령도 서남서80km 해역 진도5.0 지진

2003년 4대종단 성직자(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 새만금살리기 삼보일배 시작,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청와대앞까지 65일간 진행(-5.31)

2004년 대법원, 대북송금사건 관련하여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 6명에 유죄 확정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 사형제 폐지 결의

200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황해에 여러 발의 미사일을 발사

2009년 캐나다 연구팀이 중국 해커집단이 전 세계 103개국의 컴퓨터에 침투해 정보를 빼내고 있다고 발표

2009년 런던에서 G20이 가난과 기후변화, 실직에 대해 해결하라는 대규모 집회가 열려

2009년 탈레반 무장 세력이 파키스탄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 소속 트럭 12대 파괴

2012년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가 19세기 말에 제작된 일본 지도를 공개

2014년 헌법재판소 야간시위(해가 진 뒤부터 자정까지) 금지한 집시법 위헌판결

2014년 박근혜 대통령 평화통일구상 발표(드레스덴 선언)

2015년 서울 지하철9호선 2단계 구간(신논현~종합운동장 4.5km) 연장개통

2015년 신생팀 KT 위즈를 포함하여 10개 구단이 참가하는 2015년 KBO 리그가 개막

2020년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임진강역과 동해선 광역전철 부산원동역이 개통

2021년 마지막 조선인전범(BC급)으로 일본의 전쟁책임 묻는 투쟁을 이끈 이학래(96세) 동진회 회장 일본에서 세상떠남

2022년 “윤석열 국정수행 ‘잘할 것’ 46%...‘잘 못할 것’ 49.6%”

2022년 에디슨모터스 쌍용차 인수 무산...인수자금 마련 실패가 원인

2022년 대한민국의 물리학자 최덕인 작고

 

 

 

37년 로마의 상원이 부여한 원수(Principate)의 칭호를 칼리굴라 황제가 받아들이다.

193년 로마제국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작고

1194년 리처드 1세가 노팅엄 성을 함락하고 항복한 동생 존을 용서

1430년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 사망

1584년 이반 4세(1530년~) 작고 : 러시아의 군주

1592년 칼빈주의 신학과 철학에 기초한 개혁 신학자, 교육학자인 코메니우스 출생

1687년 콘스탄틴 하위헌스(1596년~) 작고 : 네덜란드의 외교관,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의 아버지

1794년 프랑스의 수학자, 찰학자, 정치가 콩도르세 작고

1797년 나타니엘 브리그스 세탁기특허 받음

1819년 영국의 사진가 로저 펜튼 출생

1828년 윌리엄 손턴(1759년~) 작고 : 미국의 건축가, 발명가

1842년 미국의 군인 윌리엄 H. 카니 출생

1851년 포루투갈의 대통령(1915~17, 1925~26) 마샤두 출생

1854년 크림전쟁에서 영국-프랑스가 러시아에 선전포고

1868년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창시한 막심 고리키 출생

1871년 파리코뮌 수립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 중심의 자치정부인 파리코뮌이 1871년 3월 28일 수립됐다. 시청앞에 운집한 20만 군중은 `코뮌 만세`를 외쳐대며 감격했다.

혁명의 도화선은 보불전쟁에서 싹튼 애국심에 있었다. 전쟁이 패배로 기울어지자 공화주의자들은 1870년 9월 나폴레옹 제정을 폐지하고 제3공화정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임시정부가 프로이센과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체결하자 파리민중은 반정부-반프로이센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시청을 점거하고 `중앙위원회`를 결성했다.

코뮌은 재산의 국유와, 노동자의 최저생계보장 등 사회주의적 혁신을 주창했다.

그러나 파리코뮌은 수립 2개월만인 5월 27일 부르조아 공화파가 이끄는 정부군에 의해 3만명이 사망하는 참극속에 붕괴되고 말았다.

파리코뮌의 모체는 1870년 9월 파리 20구(區)의 노동자-시민이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천명하며 결성한 `20구 중앙위원회`였다

1881년 러시아의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 작고

1882년 프랑스 시민교육 실시, 6세-13세의 남녀어린이 위한 초등교육 의무화, 교육과정의 비종교성(laïcité) 원칙 확립

1910년 앙리 파브르, 최초의 수상기 개발. 비행 성공

1914년 체코의 작가 보후밀 흐라발 출생

1928년 독일의 수학자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출생

1930년 일본 무교회주의를 선도한 신학자 우치무라 간조 사망

1938년 정샤오쉬(1860년~) 작고 : 만주국 총리대신

1938년 중국 남경에 일본의 괴뢰정부 수립

1939년 ‘2차대전의 리허설’ 스페인 내전 종결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파시스트 반란군이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입성함으로써 2년 8개월간을 끌어온 스페인 내전이 사실상 끝났다. 대부분 지역이 이미 반란군에 점령돼 사기가 극도로 저하된 상태에서 마지막 보루 마드리드를 지키는 인민전선 내부의 갈등이 패배를 재촉했다. 결사항전파와 교섭을 통한 전쟁중단파 간의 대립은 급기야 결사항전파를 프랑스로 내몰았고 전쟁중단파는 무조건 항복을 결정했다.

‘2차 세계대전의 리허설’, ‘학살병기의 실험장’ 등으로 불린 스페인 내전이 일어난 것은 1936년 7월 17일. 스페인령 모로코에서 군부가 반란을 일으키고 이튿날 스페인령 카나리아 군도에 좌천돼 있던 프랑코가 쿠데타를 선언하면서였다.

1936년 2월 총선에서 과반수를 획득한 인민전선이 정교 분리, 농지개혁 등 진보적 정책을 펼치며 중산층과 노동자·농민의 지지를 받자 가톨릭과 지주·자본가들은 불안해졌고 이 틈을 이용한 군부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본토의 세빌리아, 바르셀로나, 안다루시아 등에서도 반란이 일어나 곧 수도 마드리드를 점령할 태세였지만 민병들의 거센 저항이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소련을 비롯한 55개국에서 모인 4만 명에 달하는 국제의용군 ‘국제여단’이 인민전선에 합류하고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파견된 정규군이 반란군에 가담함으로써 전쟁은 국제전 양상을 띠었다. 앙드레 말로, 어네스트 헤밍웨이 등 세계적인 지성들도 인민전선 지원에 나섰다. 사망자만 30만∼60만명, 망명자가 25만∼50만명을 헤아렸다.

1941년 영국작가 버지니아 울프 스스로 목숨끊음 『등대로』 『미세스 델러웨이』 “지금 나는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끔찍한 시기를 견디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회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환청이 들리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겠습니다. 이제껏 나의 행복은 당신이 준 것이고 이제 더 당신의 삶을 망칠 수 없습니다.”-아우스 강에 뛰어들기 직전 남편에게 남긴 글 “여성은 이 수백년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크기의 두배로 비쳐주는 마력을 지닌 거울의 역할을 해왔다.”

1943년 러시아계 미국인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작고

1945년 필리핀의 정치인, 전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 출생

1961년 도쿄메트로 히비야선이 개통

1962년 아르헨티나, 군부 쿠데타

1962년 시리아, 군부쿠데타로 쿠드시 대통령 취임

1964년 알래스카 진도8.4 지진 사망120여명

1965년 칠레에 지진, 약 5백여명 사망

1966년 카말 귀르셀이 터키대통령의 임기를 끝냈다

1969년 아이젠하워 미대통령 세상떠남

1979년 영국 캘러헌 노동당정부 붕괴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원자력발전소(펜실베이니아)에서 방사능 대량누출, 펌프 터빈 정지의 이상상태 연료용융과 수소가스 발생, 주민20만여명 대피, 주민1000명중 11명꼴로 암 발생, 경제손실10억$

1980년 미국-터키 군사협력협정 조인

1982년 멕시코 치아파스의 엘치콘 화산 폭발로 약2천여명 사망

1983년 소련, 아시아태평양지역담당 사령부 신설

1985년 프랑스화가 마르크 샤갈 세상떠남(98세), 샤갈은 딸이 태어나자 스스로를 그림속에서 “구름속에 둥둥 떠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묘사한 그림을 그렸는데, ‘포도주잔을 들고 있는 화가의 자화상’이 바로 그 작품

1991년 소련 모스크바주재 미국대사관 화재발생

1995년 유엔기후회의 열림 1백30여개 나라 대표1천여명 참석

1995년 아프리카단결기구(OAU) 선진공업국에 약3천억$ 외채 경감요구

1999년 루이스 곤살레스, 파라과이 대통령 취임

2003년 벨기에의 화학자 일리야 프리고진 작고

2004년 오스카상 수상자이자 영국의 저명한 배우 겸 극작가인 피터 유스티노프 사망

2005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진도8.6 지진 사망1,300여명

2006년 15대 국방장관 등을 역임한 미국의 정치인 캐스퍼 와인버거 작고

2008년 1945년 일본 오키나와 현에서 발생한 주민들의 집단자결에 일본군이 깊이 관여한 사실이 인정된 다는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2009년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지구의 시간 행사 2009에 참가

2009년 런던에서 G20이 가난과 기후 변화, 실직에 대해 해결하라는 대규모 집회

2009년 탈레반 무장 세력이 파키스탄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 소속 트럭 12대 파괴.

2009년 미국의 레드 강 수위가 12m 이상으로 올라가 노스다코타 주에서 긴급 대피 명령

2009년 캐나다 연구팀이 중국 해커 집단이 전 세계 103개국의 컴퓨터에 침투해 정보 를 빼내고 있다고 발표

2010년 중국 산시성 (산서성) 왕자링 탄광에서 침수 사고

2014년 러시아와 미국의 우주인이 탑승한 소유스 TMA-12M이 국제 우주 정거장과의 자동 도킹에 성공

2016년 미국 법무부 아이폰 잠금해제 협조 강제요청소송 취하하면서 아이폰 잠금해제 성공 발표

2021년 마다가스카르의 제6대 대통령 디디에 라치라카 작고

2022년 러.우크라 터키서 5차 평화협상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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