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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이름이 성공한 인생을 만든다"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4월 16일

by 귤담 2023. 3. 19.

오늘의 역사 4월 16일

 

 

“다시는 만나지 못할 유채꽃 가슴으로/낯선 인연 하나둘씩 시위하며 건너갈 때/당신은 不倫의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속살 비빈 당신의 환한 미소까지도/밤마다 신음하듯 중얼거리건 한 잎 낙화로/불륜을 맺고 있었다 모든 사내 품 속에서//항상 부푼 가슴 오름처럼 취하는 듯/맑은 바닷물 소리 몇 잔 술로 흔들리는/당신은 불륜의 여자 스스럼없이 알몸 내민//또다시 내 가슴 절규할 수 있는 여자/이렇게 화려하게 사는 이유 알 것 같은/오늘도 봄의 미학처럼 서 있었다 당신은”    -이재창 시인의 「성산포」 전문

 

“눈에 보이지 않는/너희가/꽃을 피게 하고/새순을 돋게 할 거야//불러도 대답 없는/너희가/아침이 오게 하고/저녁이 깃들게 할 거야//빈방의 주인인/너희가/시간을 가게 만들고/물건들을 낡게 할 거야//아이 때부터의 사진으로만 남은/너희가/역사를 흐르게 하고/문명을 만들 거야//바다를 벗어나/천공 무한 공간에서 자유로운/너희가/인간의 양심을 어루만지고/사람을 영원히 슬프게도 할 거야” -나해철 ‘세월에 잠긴 아이에게 -세월호 4주기 광장에서’

 

“기울어가는 그 배에서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구명조끼 입어 ...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진 배에서 ... 그랬다. 나는 그 말이 숨져간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탄 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세계 음성의 날 ( 世界 音聲의 날 , World Voice Day)

*마르그레테 2세 여왕 탄생일: 덴마크

*국민안전의 날: 대한민국

 

 

958년 (고려 광종9)중국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도 실시

1128년 [음]인종(仁宗) 6년, 대방공(帶方公) 왕보(王俌)가 사망함

1401년 [음]태종 1년, 태조가 함경도 안변(安邊) 등지에서 오래 머물겠다는 뜻을 전해 오자 정종과 태종이 눈물을 흘림

1408년 [음]태종 8년, 명나라에 바칠 여자아이를 모으고 나라에 금혼령을 내림

1421년 [음]세종 3년, 진상하는 그릇의 밑바닥에 만든 장인(匠人)의 이름을 써 넣게 함

1445년 [음]세종 27년, 권근(權近)의 아들인 우찬성 권제(權踶) 죽음

1472년 [음]성종 3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석형 등이 《대학연의집략(大學衍義輯略)》을 편찬함

1488년 조선 11대 국왕 중종 출생

1494년 [음]성종 25년, 문소전(文昭殿)을 수리함

1510년 [음]중종 5년, 경기·충청·강원도 관찰사에게 군사를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라고 명함

1605년 [음]선조 38년, 선조가 호성 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게 유시를 내림

1675년 [음]숙종 1년, 신덕 왕후(神德王后, 태조 비)의 위패를 함흥과 함흥(咸興)과 영흥(永興)함

1676년 [음]숙종 2년, 개성에서 화재로 민가 30호가 연소됨

1727년 [음]영조 3년, 평양에서 화재로 민가 235호가 연소됨

1728년 [음]영조 4년, 무신 난에 관련된 안익태(安益泰)를 절도에 정배하도록 함

1731년 [음]영조 7년, 선혜청(宣惠廳) 관리 성탁(成琢)이 밀봉한 편지를 바쳐 고변함

1737년 [음]영조 13년, 개성의 태평관(太平館, 중국 사신이 머물던 숙소)에 불이 남

1746년 [음]영조 22년, 비단·명주 등에 무늬를 놓는 것을 금하게 함

1762년 [음]영조 38년, 제주에 표류한 사람에게 돌아갈 양식과 옷을 지급함

1763년 [음]영조 39년, 곡식 운반에 수고한 사공(沙工)·격군(格軍)에게 신역(身役)을 감하여 줌

1767년 [음]영조 43년, 해서(海西)의 100세와 99세 노인들에게 가자(加資)함

1773년 [음]영조 49년, 전설사(典設司, 장막 치는 일을 하던 관청)에 희우랑(喜雨廊)이라고 쓴 현판을 걸게 함

1787년 [음]정조 11년, 암행어사가 황해도·평안도의 향직(鄕職) 매매하는 폐단을 보고함

1799년 (조선 정조23)실학자 박지원 『과농소초』 완성

1802년 [음]순조 2년, 신임사화로 죽은 김용택·이희지·이천기·심상길·정인중에게 증직(贈職)함

1819년 [음]순조 19년, 왕세자(익종, 뒤에 문조)의 가례(嘉禮)를 위해 금혼령을 내림

1852년 [음]철종 3년,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청나라 칙사(勅使)를 접견함

1895년 〈한성사범학교 관제〉 공포

1898년 (대한제국 광무2)백두산정계비와 토문 문제 조사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던 간도(間島·지금의 중국 지린성 옌볜자치주)에서 조선인과 청나라 사람들 간의 크고 작은 분쟁이 발생하자 1712년(숙종38년) 청(淸)의 요청으로 천지(天池) 동남쪽 4km 지점에 양국 간 경계를 분명히 하기 위한 ‘백두산 정계비(定界碑)’가 세워진다. 양국이 함께 백두산을 답사한 뒤 결정했다고는 하지만 청이 일방적으로 그은 경계였다.

청계비에 “서쪽은 압록강으로, 동쪽은 토문강(土門江)으로 정계를 삼는다”고 씌어졌다고 해서 간도 들판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의 생활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선인들에게 토문강은 쑹화(松花) 강 상류였기 때문이다. 간도는 두만강과 쑹화강 사이에 위치한 평원. 하지만 청은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해석해 ‘정계비’는 훗날 양국 간 영토분쟁의 불씨가 된다. 1881년 청이 간도개척에 본격 나서고 두만강 북쪽에 있는 조선인들을 소환하라고 조선에 요구하면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다. 정계비 주변을 답사하고 토문강이 쑹화강 상류임을 재차 확인한 조선은 청과 이른바 ‘감계담판(勘界談判)’을 시도했으나 서로의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1897년 함경북도 관찰사가 간도문제를 시급히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간도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정부는 1898년 4월 16일 함경북도 경원(慶源)군수 박일헌 등을 보내 정계비와 토문강 문제를 조사하도록 재차 지시한다. 답사대가 보내온 보고도 마찬가지였다. 간도가 우리 영토라는 것이다. 청조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1902년 우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간도 주민들을 우리 국적에 올리는 초강수를 두면서 간도를 사실상 우리 영토로 편입했으나 1909년 일본이 청으로부터 남만주철도부설권을 얻는 대신 간도의 소유권을 청에 넘기면서 간도는 다시 우리로부터 멀어지게 됐다.

 

1905년 통신기관을 일본에 이양

1906년 초량-서울 급행열차 11시간에 주파

1907년 내부 경무국, 잡지 발행 대표에 발행 전 검열 통고

1923년 이동휘 등, 연해주에서 조선인 군대 결성

1930년 동아일보 정간

1939년 경남 김천 351명, 만주로 집단 이민

1941년 조선총독부, 〈신문 잡지 용지 규정 요령〉 발표

1944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한명숙 출생

1946년 냉면 한 그릇에 19원 50전

1948년 5·10 총선거 입후보자 등록 마감, 934명 등록

1949년 전범으로 복역 중인 자바의 한국인들, 대한민국 정부에 구출요망 진정서 발송

1953년 독립운동가·3.1운동 민족대표33인·서예가 오세창 세상떠남

1953년 문화인 등록령 공포

1958년 일본 정부로부터 우리 문화재 106점 인수

1959년 한국-이탈리아 공관 대사급으로 승격

1960년 이정용 경남 경찰국장, 국회 조사단에 마산사건 배후에 공산당 사주는 없다고 증언

1963년 조흥은행 본점 화재

1963년 김재춘 중앙정보부장, 쿠데타 음모사건 관련으로 박임항 등 34명을 군법 재판소에 송치

1965년 한일협정 반대데모로 서울시 대학 휴고

1965년 덴마크로부터 선사시대유물 59점 기증받음

1966년 한국-미국 정상회담서 ‘한반도 3원칙’ 선언

1971년 호남 통혁당 재건 간첩단 검거

1971년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 전주 유세에서 박정희 정권의 종신 총통제 획책 증거 역설

1973년 ‘한국미술 2천년전’ 개막

1974년 서울 암사동 한강변에서 5천년 전 신석기시대 움집 터 발굴

1979년 온산선 완공

1980년 국내최초의 청평 양수발전소 1,2호기 준공

1982년 한국, 아티과(과테말라) 마부다 외상 공동성명발표

1985년 3당대표 회담, 조기 국회개원 원칙에 합의. 22일까지 원 구성 하기로 합의

1985년 한국과학기술원 윤한식 박사팀, 세계 최초로 석면 대체의 첨단신소재 아라미드펄프 개발

1985년 대법원, 미성년자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 배상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는 판례 남김

1985년 대우자동차 부평 공장 노동자 700여 명, 임금 인상 요구 파업, 곧 인천 공장과 사무직에까지 확산.

1987년 민주당, 김대중 민추협 의장자택 봉쇄와 이철 의원 기소는 신당창당 방해행위라고 비난

1987년 한글 문화단체 모두모임'창립.

1987년 평택 LNG기지 공급설비 준공

1988년 야권, 전두환 전 대통령부부에 대한 조사 요구

1988년 제13대총선 전국116개 지역구 첫합동 연설회

1988년 대검 중앙수사부, 새마을본부 비리수사 마무리. 전경환 등 12명 관련 구속자 12명 기소

1989년 전자통신연구소 초고속 갈륨비소 반도체 개발

1989년 제17회 제네바국제발명신기술 전시회서 신석균씨등 3명이 금상 수상

1989년 김봉준 WBA 미니멈급 세계챔피언 획득

1990년 전남 광주시, 5·18 민주화 운동 피해자들(1,302명)에게 보상금(165억 원) 지급

1992년 노태우대통령, 한국과 북한이 통일된다 하더라도 미군은 한국에 계속 남아있어야만 한다고 밝혀

1992년 농림수산부, 농가경영주 50대 34.2% 60대 25.2%, 40대 19.2%, 30대 10.8%, 70대 9.2%로 집계.

1993년 서울지검, 민주당 이동근 의원을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공갈)혐의로 구속.

1994년 이기택 민주당 대표. 김동길 국민당 대표. 이종찬 새한국당 대표, 3당통합을 합의

1994년 김일성 북한주석,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군사시설은 어느나라도 공개하지 않는 것' 핵사찰 거부

1994년 하나회 장성 8명 보직 해임, 하나회 출신 중장급 이상 장성 모두 전역

1994년 전세계 111개국,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최종 의정서에 서명

1996년 김영삼 대통령ㆍ클린턴 미국 대통령, 서울 정상 회담,남.북, 미국, 중국 4자회담 조속 개최 공동제안

1996년 북한, 한반도평화를 위해 남,북한,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갖자는 한국-미국 제의를 거부

1996년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 대법원이 헌법재판소 결정 파기의 판결 선고

1996년 성균관대 황혜인 씨 분신자살

1996년 金泳三,클린턴 제주도 韓-美정상회담서 한반도 3원칙 선언

--김영삼 대통령과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1996년 4월 16일 제주도서 정상회담을 갖고 그동안 북한이 집요하게 요구해오던 미-북 평화협정 체결 주장과 관련 한반도 평화문제에 관해서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 협의를 일절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이날 양국 정상은 ▲한반도 평화 문제와 미-북 양자간 대화 문제는 분리하여 처리한다 ▲한반도 평화문제는 미국이 앞장서지 않고 한국이 주도한다 ▲미국은 한반도 평화 문제에 관해서는 일절 북한과 직접 협의하지 않는다는 3원칙에 합의했다.

한-미 정상이 합의한 원칙은 내용상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나 앞으로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 유지 및 통일 등 한민족의 장래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한국의 뜻에 어긋나게 북한과 직접 협의를 진행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 분명히 한 것이다

1996년 법정관리 서주산업 부도, 윤석민씨 구속

1999년 한국-카타르 투자보장협정 체결

2001년 이봉주 선수 제105회 보스턴마라톤대회 우승(2시간9분43초)

--한국 마라톤의 ‘대들보’ 이봉주 선수가 2001년 4월 16일 제105회 미국 보스턴마라톤을 2시간9분43초의 기록으로 제패, 영예의 월계관을 머리에 썼다. 한국인의 보스턴마라톤 제패는 서윤복(1947년), 함기용(1950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이날 보스턴 상공에는 51년 만에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처음부터 선두그룹을 이룬 이봉주는 40km 지점부터 독주하기 시작, 2위 실비오 구에라(에콰도르)를 24초 차이로 제치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케냐의 대회 11연패를 저지한 이봉주는 2000년 12월 일본 후쿠오카마라톤 2위에 이어 세계 최고 권위의 보스턴대회를 제패, 시드니올림픽에서의 부진(24위)을 말끔히 씻었다

2003년 대북송금 특별검사팀(특별 검사 송두환), 공식 출범

2003년 중국, 고구려 장천 1호 고분 도굴한 조선족 3명 사형집행

2003년 유엔, 북한 인권 규탄안 채택(찬성28, 반대10, 기권14, 한국은 불참)

2007년 재미교포1.5세대 조승희 버지니아공대에서 총기난사하고 자살 사망33명 부상29명

2009년 북한 원자력기구(IAEA) 검증팀 추방

--북한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 채택에 반발, 6자회담 불참과 불능화한 핵시설 원상복구를 선언한 북한이 2009년 4월 16일 핵시설에 설치했던 봉인을 제거하고 감시카메라 작동을 중지하는 등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중단한 것은 물론 불능화작업을 감독해오던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팀을 추방했다.

북한에서 IAEA 검증팀으로 활동해온 3명의 전문가는 이날 항공편으로 북한을 떠나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이로써 2007년 7월 북한이 영변 핵시설 가동을 중단한 뒤 불능화 작업을 모니터하기 위해 북한에 들어간 IAEA 검증팀은 1년 9개월만에 북한에서 나오게 됐다. 앞서 북한은 2008년 9월에도 미국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지연하자 불능화한 핵시설 원상복구를 주장하며 미국을 압박했었다.

당시 북한은 검증팀을 추방하지 않은 채 이들이 핵시설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한 가운데 봉인 제거, 감시카메라 작동 중지 등 핵시설 원상회복 조치를 전세계에 널리 알리도록 하는 ‘스피커’로 검증팀을 활용했다. 당시 북한의 행동이 대미(對美)협상용임을 드러냈던 것. 하지만 이번의 경우 북한은 곧바로 IAEA 검증팀을 내쫓았다. 뿐만아니라 IAEA 검증팀과 함께 영변 핵시설에서 활동해왔던 미국 정부 관계자 4명에 대해서도 북한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뿐만아니라 북한은 불능화 작업을 중단한 데 이어 앞으로 불능화된 시설을 원상복구하는 절차를 하나씩 밟아가며 국제사회 특히 미국을 겨냥한 압박수위를 점차 높여갈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불능화조치에 따라 수조에 넣어 보관해오던 6천500여개의 폐연료봉을 다시 꺼내 재처리 시설에 넣고 이를 가동,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에 들어갈 경우 추가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의 플루토늄 재생산은 그동안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해왔던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로선 ‘소망스럽지 않은 상황’ 이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불능화한 영변핵시설을 완전복구하는 데까지는 1년 안팎이 걸리지만 폐연료봉 재처리 착수까지는 1~2개월이면 충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09년 러시아 한국학 대부 미하일 박교수 별세

--러시아 내 한국학의 대부이자 고려인 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미하일 박(한국명 박준호) 모스크바 국립대 공훈교수가 2009년 4월 16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1918년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 현(縣)에서 고려인 2세로 태어난 미하일 박은 1930년대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가족들과 함께 시베리아의 여러 도시를 떠돌았다.

1938년 아버지(니콜라이 박)가 간첩 혐의로 소련 당국에 의해 처형되고, 형도 체포되어 복역하는 등 가슴 아픈 고려인의 이주사(史)를 한몸에 간직한 살아 있는 역사였다.

그는 전(全) 소련 고려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고려인의 단합과 민족의식을 고취했고, 타계 직전까지도 명예회장으로서 한국과 러시아 두 나라의 우호협력을 위해 힘썼다.

1947년 모스크바 철학·문학·역사대학(MIFLI)에서 김옥균(金玉均) 등 급진개화파를 비판한 논문 〈19세기 후반 조선정치사 개요〉로 박사 학위를 받고 1949년 모스크바대 교수로 부임한 미하일 박은 학문 활동에도 커다란 족적(足跡)을 남겼다.

그는 1959년 《삼국사기》〈신라본기〉의 러시아어 번역 발간을 시작으로 《삼국사기》 번역에 착수하여 2002년 84세 고령에 전체를 완역했다. 그는 또 이순신 장군 연구에도 남다른 관심을 두면서 2004년에는 ’임진왜란(1592~1598 일한전쟁)에 관한 러시아 역사가들의 서술’이란 제목의 연구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고대사회를 '노예 소유제'로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스탈린주의에 반대하고 한국 고대사회를 국가 관료제 중심의 귀족적 성격을 가진 '초기 봉건사회'로 규정했다. 또 "북한의 연구는 '지시'와 '교시'에 얼마나 맞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 됐다"며 "북한 사학의 주요 특징은 교조주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2003년에는 러시아 동료 교수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고구려가 한민족이 세운 국가라는 것은 세계사의 엄연한 정설"이라고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판하기도 했다.

미하일 박은 1991년 모스크바대에 한국학 국제학술센터를 설립하고 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1997년 모스크바국립대 최고학술상(로모노소브상)을 비롯, 옛 소련 및 러시아 정부로부터 명예훈장 등 10여개 메달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1992년 국민훈장 동백장, 1999년 KBS 해외 한민족상을 수상했다. 장례식은 18일 모스크바대 교정에서 열렸고, 묘소는 모스크바 고려인 전용묘지에 마련됐다

2014년 세월호 승객476명 태우고 진도 앞바다에 침몰 304명 목숨잃음

--11월11일 수색종료 때까지 9명 못찾음 “가만히 있으라.”-세월호 선내방송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박근혜 대통령, 세월호는 침몰 1,073일만인 2017.3.24에 인양됨

2014년 일본군위안부피해자문제 논의 제1차 한·일국장급 협의

2015년 박노수 판사, 박종철고문치사사건 축소은폐한 박상옥 검사 대법관후보임명 공개비판

2016년 WBA 슈퍼페더급 전 챔피언 최용수(44세) 은퇴13년만의 복귀전 승리

2018년 영화배우 최은희 세상떠남(92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2021년 백악관 “문대통령-바이든 5월 하순 정상회담 개최” 확인

2021년 대북전단금지법 미의회 청문회

2021년 미의회, 베트남전 참전 한국계 미국인에 보훈혜택 본격 논의

 

 

 

69년 로마제국 황제 오토 자살

--제7대 로마제국 황제 오토가 69년 4월 15일 자살했다. 오토는 전임 황제 갈바를 살해하고 황제에 올랐으나 그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사령관 비텔리우스를 황제로 옹립하려는 게르마니아군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자 칼로 가슴을 찌르고 자살했다.

게르마니아군 7개 군단 10만여명이 남하하자 오토는 2만명이 채 안되는 근위대와 검투사들로 이에 맞서게 했다. 게르마니아군의 라인군단은 오토를 부정했으나 발칸반도에 있는 도나우군단과 에스파니아의 제7군단은 오토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들 군대가 로마로 돌아오기전 라인군단이 이탈리아 북쪽 포강에 다다르자 오토는 할 수없이 근위대와 검투사들을 전선에 내보내게 된 것이다. 1차 베드리아쿰 전투였다. 오토는 전투에서 패하자 도나우군단이 곧 당도한다는 신하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택했다. 즉위 3개월만이었다.

69년 제8대 로마제국 황제 비텔리우스 즉위

73년 마사다 요새가 함락되고, 로마 제국에 대한 유태인들의 반란이 진압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동로마 제국이 위기에 처하다.

1319년 장 2세, 프랑스 발루아 왕가의 2대 왕 출생

1446년 이탈리아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사망

1730년 영국의 정치가, 미국 독립 전쟁 중 영국군의 북아메리카 총사령관 헨리 클린턴 출생

1786년 영국 항해가 탐험가 존 프랭클린 출생

1824년 영국시인 바이런(36세) 세상떠남 “칼을 사용하면 칼집이 헤어지고 영혼이 괴로우면 가슴이 헌다. 심장도 숨쉬려면 쉬어야하고 사랑에도 휴식이 있어야한다.”-‘이젠 더 이상 헤매지 말자’ 터키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그리스독립전쟁 도우려 자신의 시까지 내다팔아 120톤의 배를 사 ‘헤라클레스’라 이름붙이고 병사 고용해 참전, 전쟁터에서 열병을 얻어 주치의가 관자놀이에 12마리의 거머리를 붙여서 피를 뽑아냈으나 치료못함

1828년 스페인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세상떠남(82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1828년 4월 16일 프랑스 보르도에서 82세로 사망했다. 생전에 빛과 어둠이 수시로 교차되는 삶을 살았던 고야는 스페인의 벽촌에서 태어나 1798년 궁정 수석화가로 화가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명성과 지위를 차지했다.

일생동안 초상화나 인물화를 그린 그의 작품경향은 크게 두가지로 대별된다. 전기 작품은 주로 후기 로코코 풍의 정통성에 충실한 작품이 주조를 이뤄 왕조풍의 화려함과 환락의 덧없음을 그렸으나 후기 작품은 위험하고 관능적인 여성 표현 등 점차 악마적 분위기가 주조를 이뤘다. 청각을 잃을 정도로 크게 앓은 개인체험과 나폴레옹군의 스페인 침입 이후 나타난 민족의식 때문이었다.

특히 연작판화 `전쟁의 참화`(1810-1814)에는 82장의 흑백 에칭에 살육, 광기, 폭력, 허무같은 원초적 주제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 그림을 포함한 후기 고야의 그림에는 스페인 특유의 니힐리즘이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1844년 프랑스 작가 아나톨 프랑스 출생

1859년 프랑스 정치인·정치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 세상떠남(64세) 『미국의 민주주의』

1867년 동력 비행기를 제작하고 최초로 비행에 성공시킨 미국인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 출생

1877년 러시아-루마니아 동맹조약 체결

1889년 찰리 채플린 출생

1927년 교황 베네딕토 16세 출생

1935년 미국의 가수 보비 빈턴 출생

1939년 영국의 가수 더스티 스프링필드 출생

1940년 덴마크의 군주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출생

1946년 국제연맹 정식 해산

1947년 미국 텍사스에서 대형폭발사고 사망561명

1948년 유럽경제협력기구 창설

1956년 미국의 우주인 데이비드 맥도웰 브라운 출생

1958년 영국의 생물물리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작고

1917년 레닌 봉인열차타고 귀국(4월 테제 발표)

--1917년 4월 16일 깊은 밤,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러시아 혁명지도자 레닌이 포로교환의 조건으로 러시아와 교전 중이던 독일이 제공한 봉인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 10년 만에 조국 땅을 밟았다. 같은 해 일어난 2월 혁명으로 지주-부르조아들의 임시정부와 노동자-병사들의 소비에트간의 대립이 첨예하게 맞서던 러시아였다.

다음날 4월 17일 오후 개최된 볼셰비키 회의에서 레닌은 10개항에 걸친 ‘4월 테제(April Theses)’를 발표했다. 그 내용인 즉,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 전쟁을 계속하고자 하는 ‘임시정부 타도’, ‘자본주의의 타도 없이 종전은 불가능하다’ 등이었다.

이날 레닌이 발표한 연설의 혁신성을 이해하지 못한 청중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들은 오히려 오랫동안 계속된 망명생활로 천재 레닌이 바보가 됐다고까지 비아냥댔다. 그러나 그로부터 10여일 후 4월 27일. 볼셰비키와 임시정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천재적 혁명지도자 레닌은 제 지위를 찾아갔고, 이에 ‘4월 테제’에 찬성하는 지지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4월 테제로 촉발된 10월 혁명은 하룻밤 사이에 러시아를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었으나, 그들이 타도한 황제보다도 훨씬 무자비한 공산당의 독재가 향후 70여 년 동안 계속됐다

1934년 일본 나가사키 화재

1945년 소련의 붉은 군대가 베를린 주변의 독일군에게 최종 공격을 가하기 시작하다

1945년 피난민과 군 병력을 싣고 가던 독일 수송선 고야호가 소련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침몰하다. 승선인원 7천여명 중 6천여명이 사망하다.

1946년 시리아 독립

1948년 서구 16개국 유럽경제협력기구(OEEC) 조약 조임

1963년 라오스 3파 휴전 합의

1964년 로디지아 독립운동

1970년 미,소 간 제1차 SALT(전략무기제한협상) 회담 개최

1972년 노벨문학상 받은 일본작가 가와바다 야스나리(73세) 스스로 목숨끊음 『설국』

1972년 아폴로 16호가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발사

1982년 중-소국경무역 20년만에 재개

1987년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창설

--미사일기술통제체제 (MTCR : 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가 1987년 4월16일 미국의 제안에 의해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영국 미국 등 7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비공식 협정형식으로 창설됐다.

MTCR은 1970년대 개발도상국들의 미사일 개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1985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국가안보 결심명령서 제70호`를 통해 탄도 미사일 확산방지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하면서 처음 구상됐다.

MTCR은 일종의 미사일 확산방지를 위한 규범적 차원의 약속체계다. 공식적인 국제조약이나 협약은 아니며 법적인 효력도 각국의 국내법에 따른다. 처음엔 `핵무기 운반 미사일`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1993년 1월 이후 `모든 대량파괴무기 운반용 미사일`까지 확대됐다. 2001년 현재 회원국은 33개국이며 회원가입은 만장일치제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1년 3월2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특별회의에서 회원으로 정식 가입됐다.

1988년 카릴 알 와지르 PLO 부사령관 튀니지에서 피살

1990년 네팔 야당 임시정부 수락 총리에 바타라이

1991년 유고 세르비아공화국의 노동자70만명 밀린 임금 지급 요구하며 파업

1994년 전세계 111개국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최종의정서 서명

1998년 세계 최고령 할머니 마리 루이스 메이외르 별세

2000년 워싱턴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총회에 전세계 NGO활동가 모여 시위

2003년 세계보건기구(WHO), 사스(SARS)유발원인이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발표

2003년 제 1회 세계 음성의 날(World Voice Day) 행사가 개최되다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으로 33명이 사망.

2008년 오버 도퍼 존스홉킨스 대학교 교수가 밴 플리트상을 공동으로 수상

2008년 미국의 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 작고

2008년 유엔 최악의 식량파동 막기 위해 제2의 농업혁명 촉구, 중국 인도의 식량소비 급증으로 식료품가격 뛰고 식량생산에 필요한 원유와 비료가격 덩달아 오르면서 전세계적으로 식량부족사태 확대, 2008년1분기에만 밀 옥수수 쌀 등 필수곡물가격53% 급등, 카메룬 예멘 이집트 세네갈 모리타니 모잠비크 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와 멕시코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태국 등 25개 나라에서 폭동과 대규모시위, 식량농업기구(FAO)는 경작지 감소, 토질악화, 인구급증, 자연재해 등이 겹쳐 세계인구의 25%인 15억이 식량난 겪을 가능성 크다고 경고

2013년 티후아나 문화 센터를 설계한 멕시코의 건축가 페드로 라미레스 바스케스 작고

2016년 일본 구마모토 지진이 발생

2017년 터키 개헌국민투표, 의원내각제에서 강력한 대통령중심제로 바꿈

2019년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 작고

2020년 칠레소설가 루이스 세폴베다 코로나19로 세상떠남(71세) 『연애소설 읽는 노인』

2021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언어학자 대니얼 케인 작고

2021년 미국 이어 폴란드도 러시아 제재...외교관 3명 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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