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4월 21일
“봉숭아꽃 들여다보면 유년의 봄 배어있다/꽃물 든 손톱 위로 내 중년의 징후들이/옷 벗고/마음도 벗고/욕망처럼 누워 있다.//흔적 없는 적요의 길 잊어도 되는 걸까/확실한 명함 하나 찍지 못한 익명의 세상/그리움/뇌관처럼 위태롭게/수제비꽃 폈다 지운다.//여우비 반짝이며 뿌려낸 페로몬 향기/이젠 몸만 가시라, 빈 잔 넉넉히 채워 놓고/세상은/층층나무 상상력/뼛속 출렁인 연가.” -이재창 시인의 「이젠 사람이 그리운 마을에 살고 싶다」 전문 (문학사상 2003년 11월호)
“한눈에 들어오는 창문 밖 살구나무/저 살구나무 아래로 놀러가 연애하자/꽃들이 자꾸 피어서/다닥다닥 붙어서//새끼손가락만 한 가지를 덮어주어/만개한 꽃송이들 구름처럼 번진 의자/가볍게 신발을 벗고/백 년 동안 앉아보자//굵은 빗방울이 멈춘/푸른 그늘 저만치로/봄날이 가기 전에 애인을 기다리자/허공의 꽃 진 자리마다/풋살구가 열린다” -이석구 ‘곡우’
*오늘은 과학의 날, 1967년 오늘 과학기술처 발족, 1968년에 과학의 날로 지정
*브라질리아 천도 기념일(Inauguration of Brasília): 브라질
*식목일(National Tree Planting Day): 케냐
991년 [음]성종(成宗) 10년, 송에서 돌아온 한언경이 대장경을 바침
1078년 [음]문종(文宗) 32년, 송황제의 생일을 맞아 동림사(東林寺)와 대운사(大雲寺)에서 축수재(祝壽齋)를 엶
1388년 [음]우왕(禑王) 14년, 명 연호의 사용을 중지하고 호복(胡服)을 입게 함
1403년 [음]태종 3년, 명나라에서 고명(誥命)과 인장(印章)을 준 데 대해 사신을 보내 사례함
1473년 [음]성종 4년, 보병(步兵)이 재주를 연마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정함
1509년 [음]중종 4년, 4도에 어사를 보내 남형(濫刑)·남수(濫囚)·불법 등을 감찰하게 함
1527년 [음]중종 22년, 작서(灼鼠)의 변'(불탄 쥐를 매달아 동궁을 저주한 사건)으로 후궁 경빈 박씨가 폐서인되고, 박씨의 아들 복성군의 작호가 삭탈됨
1548년 [음]명종 3년, 전라도에서 역질로 359명이 죽음
1571년 명종실록 인쇄
1594년 [음]선조 27년, 2품 이하 종실에게 포 쏘는 법을 익히게 함
1601년 [음]선조 34년, 《승정원일기》를 수정하게 함
1615년 [음]광해 7년, 인정전(仁政殿)의 노끈으로 엮은 그물을 철망으로 바꾸게 함
1618년 [윤]광해 10년, 광해군이 명나라 파병 반대의 뜻을 말함
1619년 [음]광해 11년, 도성에 화재가 발생하여 불길이 남별궁 뒤에까지 미침
1636년 [음]인조 14년, 경기도 여주·이천·죽산 등지의 도적들을 처단함
1669년 [음]현종 10년, 전(前) 집의(執義) 윤선거(尹宣擧) 죽음
1694년 [음]숙종 20년, 인현 왕후의 복위(復位)를 태묘(太廟)에 고함
1704년 [음]숙종 30년, 강화도에 내성(內城)을 쌓기로 함
1732년 [음]영조 8년, 경상도 전역에 전염병과 천연두가 발생함. 영덕현(盈德縣)에서는 괴질(怪疾)로 한꺼번에 64명이 죽었다.
1761년 [음]영조 37년, 금주령을 어기는 자를 엄히 다스리게 함
1776년 [음]정조 즉위년, 이조 참판·이조 참의를 예전대로 세 사람을 추천하게 함
1812년 [음]순조 12년, 평안 감사가 홍경래(洪景來) 등을 참획(斬獲)했다고 보고함
1830년 [음]순조 30년, 담양(潭陽府)에서 화재로 민가 132호가 연소됨
1834년 [음]순조 34년, 창경궁(昌慶宮) 각 건물이 재건됨
1853년 [음]철종 4년, 서울에서 화재로 서강(西江)의 민가 143호가 연소됨
1861년 [음]철종 12년, 철종의 어진(御眞)을 주합루(宙合樓)에 봉안함
1867년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이회영 출생
1882년 [음]조영 수호 통상 조약 체결(영국 해군 제독 윌스, 인천 제물포)
1903년 러시아군, 용암포 강점
1906년 엄귀비(嚴貴妃), 진명여학교 설립
1913년 조선총독부, 각국 거류지 철폐에 관한 의정서에 조인
1924년 조선청년총동맹 조직됨 : 사회주의자가 주도한 전국청년조직. 회원 3만7000여명.
1925년 고려공산당청년회ㆍ흑기 결성
1926년 동대문 훈련원~장충단 간 전차 노선 개통
1941년 조선·만주국·일본 식량교류 협정 성립
1942년 한국의 독립운동가 이필주 작고
1944년 신사참배 거부한 주기철 목사 옥중순교
--1938년, 한국 종교계가 질곡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조여오던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부쩍 강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이미 1936년 5월에 신사참배를 용인하는 로마 교황청의 결정에 따라 신사를 참배하고 있었고 같은 해에 안식교도 신사참배를 시작했다.
감리교·성결교·성공회 등도 뒤를 따르자 1938년 2월 일제의 강압으로 장로교 평북노회마저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그러나 숭실학교·숭의학교 등 기독교계 학교들은 스스로 폐교(1938년 3월)까지 하며 항의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와중에 1938년 8월 평양 산정현교회의 주기철 목사가 두 번째로 투옥됐다. 평소 교회를 수호하겠다는 결의를 거듭 밝혀온 데다 과거에도 ‘신사참배 반대 결의안’을 주도했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1938년 9월 9일, 주 목사가 투옥된 틈을 타 한국 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평양에서 열린다. 친일 목사들에 의해 신사참배가 가결되자 회의를 지켜보던 교인들이 곳곳에서 흐느꼈다.
“나는 하나님께 상소하오”라고 외친 교인은 경찰에 끌려갔다.
일제는 회유와 협박, 심지어는 고문까지 자행하며 주 목사의 의지를 꺾어보려 했으나 주 목사는 완강했다.
마침내 일제는 산정현교회를 폐쇄시키고, 1940년 9월 네 번째로 그를 투옥시킨다. 목사직까지 박탈했다.
1944년 4월 21일 밤 9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예감한 주 목사는 눈을 감았다.
“내 영혼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 죽음을 앞둔 마지막 기도였다
1946년 이희승 홍기문 등 조선언어학회 조직
1950년 신성모,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
1952년 서울지방법원 수원지원 권순영 판사, 〈비상 사태하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 조치령〉 제9조 위헌 여부 제청
1953년 국무총리에 백두진임명(24일 국회 인준)
1953년 국회 통일없는 휴전 반대결의
1958년 창경원 벚꽃놀이 시작
1960년 국무위원 일괄사표 제출
1960년 북한, 남한에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구성제의
1960년 소설가 이무영 사망
1960년 4·19 사상자 명단 발표, 사망자 111명·경찰 4명, 부상자 666명·경찰 169명
1960년 매카나기 미국대사, 대통령 방문하여 4·19 수습 위한 미국 견해 전달
1961년 한국최초의 여판사 황윤석 의문의 죽음
--4.19혁명 1주년을 맞아 19일과 20일은 전국적으로 각종 이유를 내건 데모 시위가 밤늦게까지 벌어졌다. 이런 소용돌이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기미가 보이던 21일, 라디오에서 충격적인 뉴스가 발표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판사 황윤석의 의문사였다.
이날 오전 9시경 서울시 중구 신당동 자택 방에 숨져있는 황윤석씨를 시아버지 손병도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우리나라 여판사 1호, 황윤석 판사, 그녀는 192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당시 사학가 황의돈의 딸이었던 황윤석은 어려서부터 철학과 문학에 관심이 컸으나,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법률을 공부하게 됐다.
스물 셋 나이로 고등고시에 합격한 황윤석은 이듬해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여판사가 됐다.
황윤석의 죽음이 신문, 라디오를 통해 떠들썩하게 보도되자 검찰은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하여 담당 검사에 오탁근 부장검사를 배정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황윤석의 시체해부 결과 밝혀진 것은 베나드릴이라는 약물이 검출되었을 뿐이었다. 이렇듯 황윤석 판사의 사인이 뚜렷하게 규명되지 않자 항간의 관심도 점차 커져만갔다. 그러나 때마침 5.16군사 쿠데타가 발생해 묻혀버리고 말았다
1962년 경주에서 신라문화제 열림
1965년 UN군사령관에 비치 중장 취임
1965년 한국-감비아 국교 수립
1967년 과학기술처 설립
1968년 과학의 날 제정
1977년 충북대발굴팀 청원군에서 호랑이머리 음각된 20만년전 벽화 발견
1978년 대한항공 B707 여객기(KE902편), 소련 무르만스크 남 200마일 빙판에 강제착륙.
--승객 97명과 승무원 13명을 태운 파리발 서울행 대한항공 보잉 707기가 1978년 4월 21일 오전 북극항로를 비행중 항로 잘못으로 소련 영공에 진입, 전투기 총격을 받은 후 무르만스크시 남쪽 2백마일 켐마을 부근의 얼어붙은 호수에 비상착륙했다. 총격때 승객 2명이 사망, 10명이 부상을 당했다. 소련당국은 억류됐던 탑승자를 3일 만에, 기장과 항법사는 10일 만에 석방했으나 기체는 미송환됐다. 항로 실수의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1980년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광부700여명 임금인상불만 유혈소요, 최대의 광산노사분규, 경찰1명 사망 광부92명 사상
--국내 최대의 민영 탄광인 강원도 사북읍 동원탄좌에서 사북 노동자 총파업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사북탄광촌 어용노조 지부장이 회사측과 짜고 그해 노조원의 임금인상률을 노조측이 요구하던 42.75% 가 아닌 20% 로 몰래 서명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회사와 어용노조의 담합사실이 전해지자 분노한 노조원들이 지부장에게 몰려가 임금인상 경위 등을 추궁하며 4월 17일부터 농성에 돌입했다.
그러던 중, 4월 21일 오후 5시쯤 광부를 가장해 농성장에 잠입했다가 신분이 탄로 나 지프차를 타고 도망치던 경찰이 수십 명의 노동자가 앞에 있는데도 그대로 질주, 4명의 광부들을 다치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동료가 죽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탄광촌에 퍼지자 흥분한 노동자들이 몰려들어 경찰과 충돌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농성이 유혈폭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노동자들은 임금 30% 인상과 상여금 400% 지급, 어용노조 지부장 사퇴 등을 요구하면서 거의 전원이 들고 일어나 노조 사무실과 광업소 사무실, 정선경찰서 사북지서 등을 점거했다.
정선경찰서와 이웃 장성·영월 경찰서 병력이 총동원되고 서울에서 500여 명의 기동경찰이 급파되었다. 대규모 경찰 병력이 투입됐지만 저항하는 5,000명의 시위대를 당해내진 못했다. 하지만 경찰관 1명이 숨지고 경찰과 광부 160여 명이 부상하는 등 양측 모두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마침내 4월 24일, 광부 측과 정부 측 대표는 밤샘 협상 끝에 노조 집행부 사퇴, 상여금인상 등 11개항의 협상안을 타결지었다.
1980년 한국의 시인. 문학평론가. 영문학자 송욱 사망
1981년 멀둔 뉴질랜드 수상 내한, 양국간의 통상·경제 협력 증진 방안 등을 협의
1981년 노동부, 80년 11만 3375명의 노동자가 산업 재해를 입었다고 발표
1982년 비무장지대에서 집단 월남을 기도한 탈출병을 저지하려고 북한군이 아군 초소에 800여 발의 총격
1982년 한-영 문화협정 체결
1983년 한국여성개발원 개원
1984년 한국-카타르, 경제기술무역협정 체결
1985년 한국 외교관 2명, 유엔세미나(북경) 참석위해 중공 첫 입국
1986년 세계올림픽연합회 서울총회 개막(∼26일), 152개국 842명 참가
1986년 전두환 대통령, 유럽순방 마치고 귀국
1987년 천주교 신부 13명, 전남 광주서 직선제개헌을 요구하며 단식기도(∼29일). 서울등 전국으로 확산
1987년 정부, 농어민융자금 1조원을 전국 농.수.축협 창구를 통해 방출 시작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대회 각목폭력-괴 청년등 난동 47곳중 18곳
1988년 영화ㆍ연극의 필름. 대본 무수정방침, 예술성이 높은 일본.공산권 영화의 수입키로
1988년 노태우 대통령, 취임 후 첫 기자회견. 자신의 재산목록 공개
1988년 대우조선 노사분규, 파업 21일만에 15차 임금 교섭에서 타결
1989년 서울지검, 동해시 재선거 후보 매수사건 관련 前민주당사무총장 서석재의원을 구속 수감
1989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실, 백화점의 할인특매 일수를 연간 40일, 1회 10일 이내로 확정
1989년 국토개발연구원 조사결과, 민간소유토지 지가 상승으로 발생한 자본이득이 GNP의 35% 차지
1989년 덕혜옹주 사망 작고
--덕혜옹주는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여났다. 1931년 옛 쓰시마 번주 가문의 당주이자 백작 소다케유와 정략결혼을 하는 등 인생이 불우했다. 1962년 대한민국으로 영구 귀국해 창덕궁 낙선재 내의 수강재에서 거주하다 1989년 4월21일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1990년 전민련.전노협.전대협등 13개 재야단체와 대학생 3000여명, 연세대에서 「국민연합」 결성
1990년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추기경으로는 사법사상 최초로 서울고법 303호 법정 증언.
1990년 30대 재벌기업소유 부동산은 89년말 현재 1억 3258만 8000평, 13조 1391억원어치.
1990년 김대중 평민당총재, 노태우대통령은 3당합당 취소하거나 중간평가를 실시, 국민의 심판을 받으라고 촉구
1990년 제주-고흥 간 해저광케이블 준공
1992년 한국과 베트남,서울과 하노이에 상호 연락 대표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고 외무부가 발표.
1992년 지난 14대 총선거 개표때 경북성주 투표함에서 발견된 민자당 장영철 후보 무더기표 89장 발견
1993년 김재용, 97회 보스톤 마라톤에서 2시간 9분 43초로 준우승 차지.
1993년 지하철 4호선 상계-당고개 구간 운행개시
1995년 정부, 세계무역기구(WTO)협정에 따라 57년 이후 사망한 외국저작자 저작권을 소급보호 -개정안 발표
1995년 비전향 장기수 김인서 씨, 북한 가족과 45년 만에 국제통화
1997년 정부 부도유예협약실시, 진로그룹 첫 적용
1997년 진로그룹 부도 부도방지협약 적용
1997년 박경식, 국회 한보청문회에서 김현철 국정개입 관련 증언
1999년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 사퇴
2004년 황우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윤덕용 한국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과 석좌교수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상 수상
2004년 박종호(삼성 라이온즈) 39경기(2003.8.29부터) 연속안타 프로야구 최다연속경기안타
2006년 새만금 방조제 15년 만에 연결, 세계 최장 33km
2007년 프로야구 이대호 사직구장 최초 장외홈런 기록.
2008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국가태풍센터 개소.
2008년 광주광역시 광주원음방송 개국.
2008년 참여정부 때였던 2008년 2월 중순에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의 전산망이 해킹당한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2012년 원로 작곡가 김성태 별세
--'산유화' '동심초' '이별의 노래' 등 주옥같은 가곡을 남긴 원로 작곡가 김성태(金聖泰·102)
김 명예교수는 연희전문학교 상과 졸업반 때인 1934년 첫 동요 작곡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출간했으며, 1946년 서울대 음대 창설 당시부터 교수와 학장으로 봉직했으며,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과 예음문화재단 대표 등을 지냈다. 1945년에는 스승인 작곡가 현제명, 지휘자 김생려 등과 한국 첫 교향악단인 고려교향악단(현 서울시향)을 창단해서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다.
그는 100곡에 가까운 가곡을 비롯해 실내악과 독주곡, 관현악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으며, 대한민국 문화훈장과 예술원상, 아시아영화제 최우수 영화음악상 등을 수상했다.
2016년 야구장 맥주보이 다시 허용
2016년 대한민국 유일의 판다 체험공간 에버랜드 판다월드가 개장
2021년 대기업 작년 부채 1천500조원 돌파...연내 갚아야 할 빚 780조원
2022년 美 스텐포드대, K팝.북한 안보 주제 ‘한국한 콘퍼런스’ 개최
BC753년 로마시의 탄생일로 정해짐
--“큰바구니에 담긴 쌍둥이아이가 티베르강(이탈리아 중부의 강)을 따라 떠내려오는 것을 늑대가 발견해 젖을 먹여 키웠다. 성인이 된 이들은 스스로 형은 ‘로므스’ 동생은 ‘레므스’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숙부의 흉계로 자기들이 버려졌음을 알게 되어 그에게 복수를 하고 둘이 힘을 합쳐 도시를 하나 건설하였다. 둘은 서로 왕이 되려고 싸우다가 형이 동생을 죽이고 자기의 이름을 따 도시 이름을 ‘로마’라 지었다. 그뒤 양심의 가책을 느낀 형은 동생이 죽은 4월21일을 로마시의 탄생일로 정했다.”-로마의 전설
1109년 영국 철학자 안셀무스 작고
1142년 프랑스 스콜라 철학자 피에르 아벨라르 사망
--프랑스의 스콜라 철학자 피에르 아벨라르가 1142년 4월 21일 63세로 사망했다. 1079년 프랑스 낭트에서 태어난 그는 22세 때 파리로 가 기욤으로부터 논리학과 수사학을 공부했고, 파리 성당 학교의 교수 시절에는 문필과 강연에도 크게 활약했다.
중세 스콜라 철학과 신학을 논쟁하는 자리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그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그를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여제자 엘로이즈와의 사랑이었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아벨라르의 명성이 한창이던 1118년이었다. 39세의 남자와 18세의 여자였다. 첫 눈에 반한 그는 그녀를 유괴까지하며 결혼했으나 둘간의 결혼을 반대한 엘로이즈 삼촌의 사주로 그는 극부가 잘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아벨라르는 수치심과 절망, 그리고 삼위일체설을 제창한 그의 저서 `신의 일체성과 위격에 관하여`가 1121년 스와송 공의회에서 사설(邪說)이라는 이유로 분서(焚書) 선고를 받자 부르타뉴의 생메다르 수도원으로 가 신앙과 학문에 전념했다. 끊임없이 읽고 쓰고 또 논쟁했다.
그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그린 `나의 불행한 이야기`는 당시 유럽 독서계를 풍미했고 심지어 교황청안에서도 몰래 읽혔다고 전해진다. 여자도 수녀가 됐지만 둘은 서로 편지만 주고받았을 뿐 만나는 것을 자제했다. 편지도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종교적이고 정신적인 사랑만을 담았다. 엘로이즈는 그가 사망하자 22년동안 그의 무덤을 지키기다 63세로 생을 마감했다. 두 사람의 사랑은 600년이 지난 뒤 루소의 소설 `쥘리 또는 새 엘로이즈`에서 다시 부활했다.
1509년 헨리 8세가 잉글랜드 왕국의 왕위에 오르다.
1526년 인도 무굴제국 세워짐
1652년 프랑스 수학자 미셸 롤 출생
1657년 신성로마제국 페르디난도 3세 사망
1671년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 존 로 출생
1699년 프랑스 극작가 장 라신 사망
1774년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장바티스트 비오 출생
1782년 독일의 유치원 창시자, 교육개혁가인 프리드리히 프뢰벨 출생
1816년 영국 소설가 샬롯 브론테 출생
1830년 영국 기어자전거 발명가 제임스 스탤리 출생
1835년 미국의 면직공업 창시자 슬레이터 사망
1838년 자연주의 철학자-작가 존 무어 출생
1852년 유치원 창시자 프뢰벨 세상떠남, 페스탈로치와 루소의 영향으로 평생을 어린이교육에 바침 1840년 블란켄부르크에 세계최초의 유치원 문 염
1864년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 출생
1896년 미국, 쿠바독립 승인
1910년 미국문학의 뿌리 만들어 ‘미국문학의 링컨’으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 세상떠남(75세) --“우리 삶의 책임이 세상에 있다고 하지 말자. 세상은 우리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 우리가 있기 전에 세상이 먼저 있었다.” “유머는 기쁨이 아니라 언제나 슬픔에서 나온다. 따라서 천국에는 유머가 없는 셈이다.” “현대 미국문학은 모두 단 한권의 책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비롯됐다”-헤밍웨이
-- 인쇄공 등 10여종의 직업 전전하다 20대 초반에 미시시피강 뱃길안내원이 됨, 마크 트웨인은 필명(본명=사뮤엘 클레멘스)인데 ‘두 길 깊이’라는 뜻의 선원들이 쓰는 말, 당시 체험이 바탕이 된 소설이 미시시피강을 무대로 한 『톰 소여의 모험』
1910년 `톰 소여의 모험` 작가 마크 트웨인 사망
1915년 배우 안소니 퀸 출생
1921년 모스크바에서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이 코민테른에 의해 설립
1926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출생
1941년 그리스, 독일에 항복
1944년 프랑스의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활약한 독일 군인 발터 모델 사망
1946년 영국경제학자 케인즈 세상떠남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영국 케임브리지셔에서 태어난 케인즈는 영국 최고의 교육기관인 이튼고와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공무원이 되어 인도부 및 재무부에서 근무했다.
1911년~1945년 영국의 대표적 경제잡지 `이코노믹 저널`의 편집자로 있으면서, 재무성 수석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 후 재무상 고문, 국민상호보험회사 사장, 투자회사의 경영자, `뉴 스테이츠먼 앤드 네이션`지의 사장, 브레튼우즈 협정 영국대표,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총재, 20세기 문예운동의 하나인 블룸즈버리그룹 회원, 음악미술장려회 회장 등을 지냈다. 케인즈는 경제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철학, 고전, 사상 및 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케인즈 경제학`의 원전은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다. 케인즈는 1930년대 대공황시대의 대량 실업을 배경으로 집필한 이 책에서 흔히 `케인즈 혁명`으로 불리는 유효수요의 이론을 제창했다. 그는 이 책에서 고용을 늘리려면 자유방임주의를 폐기하고 소비와 투자, 곧 유효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공공 지출 등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업의 원인을 유효수요의 부족에서 찾고, 유효수요의 창출을 위해 정부가 조세, 화폐, 금융, 재정 등 경제 전반에 걸쳐 간섭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951년 미국의 수학자 마이클 프리드먼 출생
1953년 조지프 매카시의 수석 조수 두 명이 USIS 도서관이 소장한 30000여권의 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
1960년 브라질 새 수도 브라질리아로 천도.
--쿠비체크 대통령 축성, 설계는 도시전문가 코스타, 건축은 니메이어, 회화와 조각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건물들 창조, 성당과 의사당 등은 20세기 최고걸작중 하나, 특히 자동차 우선으로 계획된 최초의 도시로 최대한 교차로를 피하도록 하고 차가 속력내지 못하도록 특별히 고안되는 등 혁신을 이루었다고 평가
1967년 그리스에서 육군 대령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다.
1971년 14년간 장기 집권한 아이티 대통령 장 클로드 뒤발리에 사망
1972년 아폴로16호 달 착륙
1975년 티우 남베트남대통령 사임
1979년 로디지아 정부 초대수상에 무조레와 주교 취임
1980년 러시아 생화학자 알렉산드르 오파린 세상떠남(86세)
--『생명의 기원』에서 생명발생설 비판하고 지구 초기상태에서 생물이 발생해 현재까지의 형태로 발전했다고 주장
1985년 21년간 군정통치후 첫 브라질 민선대통령 탕크레두 네베스 취임 전날(3월14일) 미사 중쓰러진지 5주만에 세상떠남(75세)
1986년 방글라데시 여객선 2척 데카 근해서 침몰 사망700여명
1993년 제49회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이사회(ESCAP)가 방콕서 개막
1994년 태양계 밖에 있는 행성을 최초로 발견
1996년 체첸 독립 상징 조하르 두다예프 사망
--조하르 두다예프(52) 체첸반군 대통령이 1996년 4월 21일 사망했다. 체첸 출생인 두다예프는 모스크바에서 공군학교를 졸업, 전투기 조종사로 출세가도를 달려 소련공군 소장으로 예편한 이색적인 인물이었다. 대통령으로 선출된 직후인 1991년 11월 체첸 독립을 선포한 뒤 러시아와 힘겨운 투쟁을 계속해 `체첸독립운동의 영웅`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죽음은 위성 이동통신을 통해 모스크바와 전화 협상을 하다 이 전화 주파수를 추적한 러시아군의 미사일에 맞아 폭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러시아 정보기관은 전화 통화를 역추적해 이동전화의 전파를 잡아낸 뒤 두다예프 전화의 주파수를 입력한 유도 미사일을 준비했다. 러시아 전투기는 두다예프의 이동전화 주파수 추적 장치를 장착한 공대지미사일을 탑재하고 게히추 마을 부근으로 출격, 두다예프가 모스크바측과 통화하는 것을 포착한 뒤 미사일을 발사했다. 당시 두다예프는 러시아군에 위치가 발각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제 지프 니바를 타고 이동하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으며 통화가 길어지면 끊었다가 다시 걸곤 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러시아 전투기는 미사일 발사 시간을 4번이나 놓치고 5번째에 성공했다. 두다예프가 탄 지프는 완전히 박살났으며 두다예프를 비롯, 함께 탑승했던 측근도 그 자리에서 숨졌다. 두다예프의 자리를 이은 젤림한 얀다르비예프도 4월 29일 피살됐다.
1998년 독일에서 테러단체인 독일 적군파가 자진 해
1999년 동티모르 평화협정 서명
--‘독립이냐, 잔류냐’를 놓고 유혈극을 빚어온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의 독립지지 게릴라와 독립 반대 무장 민병대가 21일 상호 폭력 사용 중단을 명시한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CNN은 이날 독립 지지파 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가 가택 연금중인 자카르타의 안가에서 협정에 서명한데 이어, 친(親)인도네시아 민병대 지도자들이 동티모르 주도(主都) 딜리에서 서명을 마쳤다고 보도했다. 이날 평화 협정 서명은 인도네시아 군사령관 위란토 장군과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카를로스 벨로 주교의 입회하에 이뤄졌다.
독립반대 민병대 지도자 바실리오 아라우조는 서명식이 끝난 뒤 이번 협정이 “양 세력간 휴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폭력 사태를 중단하는데 합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동티모르는 지난 75년 인도네시아의 침공으로 강제합병됐으며, 이후 20여년간 무장투쟁과 내전으로 전체 인구 80만명 가운데 20만명이 희생됐다. 오는 7월 유엔 감시하에 자치안에 대한 주민투표가 실시될 예정이지만, 투표가 다가옴에 따라 독립 지지파와 독립 반대파의 해묵은 갈등이 격화, 지난 한주일 동안 양 세력간 방화 폭력 살인극으로 30여명이 숨졌다.
2000년 러시아 의회,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
--러시아 하원은 21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omprehensive Test Ban Treaty·CTBT)’ 을 승인했다
지난달 26일 대통령에 당선된 블라디미르 푸틴 당선자의 강경 이미지에 대해 국제사회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안보위원회는 이날 강력한 새 군사 독트린을 발표했다. 대통령궁 발표에 따르면 신 군사 독트린은 “러시아 연방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모든 수단들이 실패하거나 효과적이지 않을 경우, 핵무기를 포함해 모든 군사력과 동원 가능한 수단의 사용을 염두에 두고 있다” 고 돼있다.
이 독트린은 러시아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경우 러시아에 핵 선제공격권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신 군사 독트린은 지난 93년 채택된 독트린을 개정한 것이며, 푸틴 당선자의 주도로 이날 승인됐다. 신 군사 독트린을 논의하는 회의석상에는 러시아 고위 군 관리들과 에너지업계 대기업의 총수 2명이 참석했다.
2001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에 농둑만 선출
2002년 프랑스 대통령선거 극우 국민전선 프렌 후보 결선투표 진출
2004년 이츠케리아 체첸 공화국 제1대 대통령 조하르 두다예프. 작고
2005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장춘차오 작고
2006년 네팔의 갸넨드라 국왕, 입헌군주제 실시 발표
2009년 유럽 남방 천문대는 지금까지 발견된 외계 행성들 중 지구와 가장 비슷한 크기의 글리제 581 e를 발견했다고 공식 발표
2010년 사마란치 전 IOC위원장 별세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89)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으로 체육 관료를 거쳐 1980년 제7대 IOC 위원장에 당선된 사마란치는 2001년 자크 로게(벨기에) 현 위원장에게 자리를 넘길 때까지 21년간 IOC를 이끌어 왔다. 사마란치 아래에서 올림픽은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로 성장했다. 그러나 1999년엔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뇌물 스캔들에 휘말려 위기를 맞았다. 미 솔트레이크시티가 올림픽 유치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을 IOC 수뇌부에 뿌렸다는 폭로로 사마란치는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으며, 이는 결국 그가 권좌에서 물러나는 원인이 됐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를 통해 한국 스포츠와도 깊은 관계를 맺었다.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쎄울(Seoul), 코레아”라고 1988년의 올림픽 개최지를 발표한 이가 그였다. 구소련과 미국의 대립으로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1984년 LA올림픽이 각각 반쪽 대회로 치러진 상태에서 사마란치는 적극적으로 서울올림픽을 지지하고 후원했다. 그는 또 한국의 국기(國技)인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사마란치는 시드니올림픽 남북한 공동 입장을 막후에서 적극적으로 중재해 성사시켰다.
2014년 버마 최장기양심수 우윈틴 세상떠남, 사후 제4회 진실의 힘 인권상(2014) 받음
2015년 독일 뤼네부르크 법원에서 아우슈비츠 경비원 오스카 그로닝(93세) 나치 전범(살인방조죄)으로 재판
2016년 음반 1억장 넘게 팔린 팝의 전설 프린스(57세) 세상떠남
2019년 우크라이나대선 코미디언출신 블로디미르 젤렌스키(41세) 당선(73% 득표)
2019년 스리랑카 콜롬보 등 9곳 연쇄폭발테러 사망 최소290명 부상500명 이상
2020년 독일의 음악가 플로리안 슈나이더 작고
2021년 인도네시아 해군 잠수함 낭갈라함 실종 전원사망
--독일산 재래식 1천400t급 잠수함 낭갈라함은 21일 오전 3시 25분(이하 자카르타 시각 기준)께 발리섬 북부 96㎞ 해상에서 어뢰 훈련을 위해 잠수한 뒤 실종됐다.
탑승자는 49명의 승조원과 사령관 1명, 무기 관계자 3명이며, 낭갈라함은 해저 600∼700m까지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됐다.
낭갈라함은 잠수 중 침수가 발생하면서 전력이 끊기고, 통제력을 잃어 심해로 가라앉았을 가능성이 크다.
인도네시아 해군 최고위 관계자는 기자회견에서 "낭갈라함의 전기가 끊긴 상태에서 산소 비축량은 72시간에 불과하기에, 토요일 오전 3시가 구조 시한"이라고 발표했는데, 아무런 흔적도 못 찾은 채 구조 시한이 지나버렸다.
잠수함 전문가들은 "낭갈라함은 건조된 지 40년이 지난 재래함이고, 최대 잠항심도가 250m라서 수심 600∼700m까지 가라앉았으면 사고 당시 이미 찌그러져 탑승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없다"고 전했다.
2021년 후쿠시마 앞바다 생선에서 또 기준치 초과 세슘 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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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러시아 ‘히로시마 원폭의 2천배 위력’ 차세대 ICBM 시험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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