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5월 4일
성숙한 배고픔으로 나는 매일 살아 있고
한 조각의 빵 굽는 냄새 거리마다 자유로울 때
우리는
이십일 세기의
부끄러운 꿈을 꾼다.
우리는 어디쯤에 집을 짓고 살 것인가
한 때의 우울함과 서정의 햇살을 건너
내 삶의
무게로 떠오르는
조간신문의 잉크 냄새.
그렇다, 숨막히는 우리들 빵과 사랑
이제 버려도 좋을 우리들 빵과 자유
누군가
의지의 풀씨를 뿌리는
활자 컷 행간의 자유.
-이재창 시인의 「年代記的 몽타주·10 - 우리들 빵과 자유」 전문 (시조시학, 1996 하반기호)
*오늘은 국제 소방관의 날
*멕시코 메리다 시의 오늘은 한국의 날, 1905년 오늘 한국 최초의 이민자 1,031명 멕시코 살리나 크루즈 항에 도착
*5·4 운동과 관련한 중화권의 기념일
*중화인민공화국 청년의 날
*중화민국 문화예술의 날
*일본 녹색의 날 - 2007년부터
*스타 워즈의 날(May the 4th be with you)
1108년 [음]예종(睿宗) 3년, 오연총(吳延寵)이 여진을 격퇴함
1281년 [음]충렬왕(忠烈王) 7년, 흔도(忻都, 힌두)·홍차구(洪茶丘) 및 김방경(金方慶)·박구(朴球)·김주정(金周鼎) 등이 수군을 거느리고 일본 정벌에 나섰다.
1392년 고려의 문신, 성리학자 정몽주 작고
1402년 [음]태종 2년, 조운선(漕運船) 251척을 만듦. 삼도 체찰사(三道體察使) 임정(林整)이 조운선(漕運船)을 만들었으니, 경상도에 1백 11척, 전라도에 80척, 충청도에 60척이었다.
1411년 [음]태종 11년, 태조와 개국 공신의 영정을 그려서 장생전(長生殿)에 봉안하게 함
1446년 [음]세종 28년, 사재감(司宰監)의 겸부정(兼副正)·겸주부(兼注簿)을 혁파하고, 전운색(轉運色)을 다시 설치함
1504년 [음]연산 10년, 성준(成俊)을 처형하여 효수함(갑자사화)
1504년 [음]한치형(韓致亨)을 부관참시 함(갑자사화)
1548년 [음]명종 3년, 충청도에서 전염병으로 187명이 죽음
1595년 [음]선조 28년, 명나라 사신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요청함
1608년 [음]광해 즉위년, 이항복(李恒福)을 좌의정으로 삼음
ㅡ항복은 풍골(風骨)과 기절(氣節)이 있으며 문자를 잘해서 그 당시 어진 재상으로 일컬어졌다. 그런데 선종(宣宗) 말년에 시사(時事)가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자 고상한 담론이나 하며 세상일에 신경쓰지 않아 진 국공(晉國公) 배도(裵度) 같이 세속 사람들과 서로 어울려 지낸다는 비방을 받았는데, 결국에는 정철(鄭澈)의 당으로 군소배들에게 배척을 받았다.
이때에 이르러 다시 재상으로 들이니, 차자를 올려 사직하기를 "이름이 간당(姦黨) 속에 있으니 다시 재상의 자리에 있을 수 없다." 하고, 거듭 사직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1636년 (조선 인조14)정충신 장군, 조정이 후금과 화의하자 분사
1641년 [음]인조 19년, 청에 파병된 이사룡(李士龍)이 포탄을 제거한 채 공포(空砲)를 쏘아 처형됨
ㅡ영병장(領兵將) 유림(柳琳)이 금주위(錦州衛)에 도착하여 서로 전투가 벌어졌을 때, 성주(星州)의 군사 김득평(金得平)은 대포를 쏘아 맞히지 못했고, 이사룡(李士龍)은 탄환을 제거한 채 공포(空砲)를 쏘았는데, 감호(監胡)가 알고 매우 노하여 이사룡은 참수하고 김득평은 장형(杖刑)에 처했다고 한다.
1657년 [음]효종 8년, 김육이 노비 종량법(奴婢從良法)을 건의함
1659년 [음]현종 즉위년, 북벌추진중 효종(孝宗)이 승하함(41세)
1689년 [음]숙종 15년, 전 응교(應敎) 박태보(朴泰輔) 죽음
1712년 (숙종38)북한산성 축성
1728년 [음]영조 4년, 무신난에 관한 옥사(獄事)의 전말을 상세히 써서 책자로 만들게 함
1729년 [음]영조 5년, 안변(安邊)의 채은(採銀)을 정지시킴
1751년 [음]영조 27년, 평안도에 해일(海溢)이 일어남
1755년 [음]영조 31년, 난언(鼎衍)을 적었던 심정연(沈鼎衍)을 친국하였는데, 복주(伏誅)되었음
1778년 [음]정조 2년, 8도에 이전의 적곡(糴穀) 10만 석을 감해 주게 함
1778년 [음]조신들이 백화(白靴)를 신고 궁궐에 들어오는 풍습을 금함
1785년 [음]정조 9년, 무신(武臣)이 환관(宦官)과 교통하는 것을 경계함
1787년 [음]정조 11년, 재물을 받고 향직을 파는 수령은 7년 금고(禁錮)에 처하게 함
1835년 [음]헌종 1년, 청나라 칙사(勅使)를 맞이하고 조문을 받음
1884년 [음]미국 보빙사 민영익 일행, 귀국 시 가져온 농기구와 종자로 시험 농장 개설
1899년 (고종36)홍화문(경희궁)-동대문 전차 개통
ㅡ전차운행 맡은 한성전기회사는 고종과 미국인 공동소유로 알려졌으나 실제는 고종이 단독출자한 황실기업, 러시아 등의 간섭 피하려 이근배 김두승 이름으로 회사세움 1898.9.15 경희궁에서 기공식, 12.25 서대문-홍릉(10km) 공사 완료, 당시 명성황후능이 있어 고종이 홍릉 주장
- 1899.5.20부터 일반시민 전차 이용 시작, 오전8시부터 오후6시까지 정거장 따로 없어 승객이 손을 들어 전차를 세워 타고내림 5.26 파고다공원앞에서 철로건너던 어린아이가 치어죽는 첫 교통사고 일어나 성난 시민들이 전차를 부수고 불태움
1906년 축구경기 첫 공개
1908년 홍범도 의병 부대 300여 명, 함남 도하리에서 일본군과 접전
1910년 통감부, 일본제국대학 교수가 요청한 진서(珍書) 1,500책을 일본에 반출
1921년 전로 고려 공산당, 제1차 한인 공산주의자 대회 소집
1924년 박원희·정종명 등 14명, 재동 조선 여자 강습원에서 조선 여성 동우회 발기회 개최
1926년 경성제국대학 법학부 의학부 개설
1938년 조선총독부 학무국, 제3차 조선교육령 개정으로 교가·교기 등 제반 시설 개정 통첩
1944년 휴일에도 학교수업 실시하기로 함
1946년 식목일 제정
1947년 민간물자 보급소, 식량·석탄·자동차 등을 관계 기관에 할당
1947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진표 출생
1949년 개성에서 남한측에 의한 남북총격전, 공식집계 사망자=북한4백명 남한12명 민간인 수백명
1949년 육군 300여명이 38선을 넘어 월북.
1949년 `육탄 10용사` 사건
ㅡ6.25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전면전을 예고하는 소규모 전투가 38선 일대에서 수시로 일어났고, 특히 6.25가 일어나기 1년 전인 1949년에는 그 횟수가 잦았다. 1949년 4월 남천점(南川店)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은 인민군 1사단 제3연대 병력 1천여 명을 개성 송악산 후방에 집결시켰다가 5월 3일 새벽 송악산 능선을 따라 기습 남침, 38선 남방 일대의 고지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1949년 5월 4일, 한국군은 빼앗긴 송악산 고지의 재탈환을 수십 차례 시도했으나 수적열세와 적의 토치카(tochka, 지하 참호)에서 쏘아대는 기관총 공격에 시간이 지날수록 아군의 피해만 늘어갔다. 결국 국군 제1사단 제11연대는 송악산 능선에 버티고 있는 북한군의 토치카 10개소를 파괴하는 것만이 38선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적진에 폭탄을 안고 뛰어들 용사를 모집했다. 적진에 폭탄을 안고 뛰어든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목숨과 직접 맞바꿔야 하는 작전이었으므로, 공격대원을 지정할 수가 없는 문제였기에 지원자를 받기로 한 것이다.
이에 서부덕 이등상사를 공격대장으로 하는 9명의 군인들이 용감하게 자원하여, 목숨을 걸고 박격포탄과 폭약을 안고 스스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하늘을 뒤덮는 폭음과 함께 적의 토치카는 박살났고, 한국군은 송악산의 주요 고지를 무사히 탈환할 수 있었다.
이에 앞서 낮 12시경 중화기 소대 분대장 박창근 하사가 토치카를 파괴하기 위해 단신으로 수류탄 7개를 몸에 지니고 돌진하다가, 적의 집중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아홉명의 용사에 박하사를 포함한 열명의 용사를 '육탄 10용사'로 명명하고 이들의 조국애와 희생정신을 기려, 서부덕 상사는 소위로, 다른 9명은 상사로 특진시키는 동시에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고 모두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1951년 `대학교육에 관한 전시 특별조치령` 발표, 전시연합대학 설치
ㅡ `대학교육에 관한 전시 특별조치령`을 발표하여 `전시연합대학`을 부산, 전주, 대구, 광주, 대전, 제주 등에 설치 운영하는 한편 대학생에 대한 징집연기 조치를 취했다.
전시연합대학은 1950년 11월과 12월 두 달간 500여명을 대상으로 서울에서 운영된 적도 있었으나 학생들의 징집, 전쟁의 장기화 등으로 계속되지 못했었다.
1951년 2월 18일 다시 부산에서 문을 연 전시연합대학의 법적인 근거를 마련한 것이 이날 발표된 특별조치령이었다.
"전화로 인해 정상 수업이 불가능한 대학생은 타 대학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고, 정상 수업이 가능한 대학은 사정이 허락하는 한 그 학교 소재지로 옮겨온 타 대학 학생의 취학을 허락해야 한다."는게 그 요지였다. 경비는 서울과 부산의 국립대 예산에서 충당했다.
부산, 광주, 전주, 대전에 설치된 4개 대학에 수용된 학생은 6,455명, 동원된 교수는 444명이었다. 전시연합대학은 가교사를 짓고 점차 자리를 잡아갔지만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든 1952년 5월 31일자로 해체됐다.
세계교육사상 전례가 없는 전시연합대학은 백낙준 당시 문교부 장관이 "전쟁 중이라해서 교육을 중단할 수 없다"는 신념에서 비롯됐다. 오늘날의 지방 국립대학은 대부분 전시연합대학이 모체가 되어 설립된 것이다.
이처럼 6·25전쟁 중에도 교육열은 식지 않았고, 피란지의 노천학교, 야외학교의 모습은 눈물겨웠다.
당시 미국의 뉴욕타임스지 보도. "남한에서는 정거장, 약탈당한 건물안, 천막, 묘지에서 까지 수업을 하고 있다. 어느 시골에 가도 나무 밑에 학생들이 모여 앉아 나무에 흑판을 걸고 책을 돌려가며 공부하고 있다."
1958년 제4대 민의원 총선거(자유당 126, 민주당 79, 무소속 27)
1958년 서머타임제 실시
1959년 농림부, 농지개혁 이후 소유권 이전등록 완료는 소요건수의 39%에 불과하다고 발표
1959년 〈뉴욕타임즈〉, 〈경향신문〉 폐간은 진정한 자유에 비효과적이라고 논평
1960년 정부, 일본인 기자의 무제한 입국 허용
1961년 서울대 민족통일학생연맹 남북학생회담 제안
1966년 한국·일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한국인 유해 1천 8백여 위 송환 합의
1968년 덕수궁에 세종대왕 동상 세움
1969년 서울 대왕국민학교 학생들, 한센병 미감아(未感兒)들과의 수업에 등교 거부
1973년 근대조각의 선구자라 불린 조각가 권진규 세상떠남(51세),
ㅡ그의 작품들이 개인의 초상이라기보다 인간근원의 원형과 순수함을 탐구하고자 한 작가정신의 기록에 가깝다는 평가 “허영과 종교로 분신한 모델, 그 모델의 면피(面皮)를 나폴나폴 벗기면서 진흙을 발라야 한다. 두툼한 입술에서 욕정을 도려내고 정화수로 뱀같은 눈언저리를 닦아내야겠다. 모가지 길이가 몇치쯤 아쉽다. 송곳으로 찔러보아도 피가 솟아나올 것 같지 않다.”-권진규의 노트
1977년 문공부, 일본 요미우리신문 편집국장 평양발언 문제삼아 서울지국 폐쇄
1979년 쿠르트 발트하임 유엔사무총장 서울방문
1980년 네팔 관광부, 동국대 산악회의 세계 5번째 마나슬루봉 정복(4월28일) 발표
1980년 동력자원부, 석유가 41.92%·연탄가 35.29% 인상 발표
1982년 조훈현, 바둑 사상 첫 9단 입신
1982년 대검 이철희 장영자를 외국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
ㅡ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1982년 5월 4일 거액의 어음사기사건으로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군림해온 장영자와 남편 이철희를 구속했다. 권력의 후원을 내세워 1981년 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6,404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어음사기행각을 벌인 이들 부부는 대화산업이란 회사를 차려놓고 자금이 필요한 기업을 대상으로 연리 20-22%로 비교적 낮은 금리에 2년 거치 3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는 대신 견질어음을 대출액의 3-4배 요구, 이를 다시 사채시장에서 할인해 또 다른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등 거액의 사채놀이를 해왔다.
건국후 최대규모의 금융사기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사회전체에 엄청난 충격과 파문을 일으켜 공영토건, 일신제강 등의 기업이 도산하는가 하면 조흥은행장, 상업은행장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씨 등 30여명이 구속됐다. 또한 이 파동으로 국무총리 등 4부장관이 모두 해임됐다.
재판결과 이철희, 장영자 부부에게는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에 미화 40만달러, 일화800만엔 몰수, 추징금 1억6,254만원이 선고됐다.
1984년 여학생 계모임 확산-목돈타서 옷사입고 퍼머하고-
1984년 국무회의, 토지거래 허가 및 신고제를 실시하도록 한 국토이용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
1984년 고려대에서 6개 대학 5000여명, 강제징집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
1985년 문공부·경찰합동반, 이념서적·불온 유인물 일제단속
1987년 제133회 임시국회 개회(∼13일)
1987년 정부ㆍ여당, 지자제 실시방안 확정, 88년1월 24개지역에 시범실시후 5월에 전면실시키로
1987년 이민우 신민당 총재, '4ㆍ13조치' 철회ㆍ개헌논의재개 촉구
1987년 한ㆍ일외무장관회담 개막(서울)
1987년 검찰 33억원대 금괴밀수 사건 적발, 세관원 등 7명 구속
1988년 서울市, '2000년대 서울도시기본계획안' 마련
1988년 문교부, 중·고교 보충수업 허용
1988년 수감 중인 김근태·안제근씨 부부에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 수상
1989년 합동수사부, 동의대생 주동자 5명을 살인·방화죄 적용 구속. 6명 수배
1989년 상공부, 다이아몬드원석 골동품 등 7개 품목을 7월 1일부터 수입자유화
1991년 국제의회연맹 제85차 평양총회 북한등 핵 안전 협정 맺지 않은 국가들에 협정체결촉구결의안 채택
1991년 서울 등 전국 21개 도시에서 6만명이 참가한 가두시위 격렬, 서울에서는 신민 민주당원 600여명 참가.
1992년 북한, 핵안전협정에 따라 북한이 보유한 핵물질과 시설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를 IAEA에 제출
1992년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 한인 1명 사망·부상 46명, 피해액 총 3억 790만 달러
1993년 정덕진 슬롯머신 대부 검거-박철언 이건계등 비호세력
1994년 통합예멘 두 조각-4년만에 내전 확대
1994년 김영삼 대통령 핵개발 계속하면 북한 자멸할 것이라고 경고
1995년 서울 민사지법 고문피해자 문국진 씨에게 국가배상 1억4천만원 판결
1996년 한국은행 1995년말 현재 총외채 789억8천만$라고 발표(전년말보다 38.9%인 221억3000만달러 증가)
1998년 외국인 투자자 매도로 주가 4백선 붕괴
1999년 김대중 대통령 대북포용정책 5개과제 발표, 남북간 화해협력, 북한의 대외개방환경 조성, 군비통제, 정전체제의 남북간평화체제 전환
2001년 시인 이성선 타계
ㅡ평생을 고향에서 머물며 청정무구한 언어로 ‘설악산’과 자연을 노래한 ‘설악의 시인’ 이성선씨가 2001년 5월 4일 60세의 나이로 강원도 속초 자택에서 숨졌다.
시인 최명길은 “그는 온몸을 붓대로 하여 시를 썼던 사람”이라면서 “생명의 불꽃을 시에 다 주어 버리고는 그가 경배하는 대상이었던 설악산 품속으로 들어갔다”고 추모했다.
그는 강원도 고성 출생으로 고려대를 졸업한 뒤 고향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를 지내며 산, 달, 별 등과의 교감을 노래해온 ‘자연의 시인’이었다. 1970년 ‘문학비평’으로 등단한 이래, 시집 ‘시인의 병풍’ ‘빈 산이 젖고 있다’ ‘산시’ 등을 발표하며 정지용문학상, 시와시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1996년에는 속초, 양양, 고성 지역 환경운동연합을 결성해 공동의장을 역임하는 등 남다른 자연사랑을 실천해 왔다.
2002년 미그 19전투기를 몰고 월남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 이웅평 작고
2008년 보령 바닷물 범람사고 발생
2009년 한국해군, 해적에 쫓기던 북한 상선 구조
ㅡ청해부대의 문무대왕함은 한국시간으로 오전 11시 40분 경, 소말리아 해역에서 우리나라의 선박을 호송하는 임무를 마친 후, 아덴항 인근 국제권 교통항로 상에서 감시와 정찰활동을 수행하던 중이었다. 이 때, 아덴만 남방 37km 해상에서 북한 국적의 6,399톤급 화물선인 ‘다박솔(DABAK SOL)’호가 해적으로부터 쫓기고 있다는 긴박한 구조 신호를 포착하였다. 당시 다박솔호는 문무대왕함으로부터 96km의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하여 링스헬기가 다박솔호 상공에 낮 12시 20분에 도착하였을 때, 해적선에는 북한 화물선에 올라타기 위한 사다리와 보트가 준비되어 있었고, 다박솔호를 불과 3.2km까지 추격하고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곧바로 링스헬기는 경고 사격자세를 취했고, 이에 놀란 해적선은 약 10분 뒤 방향을 틀어 마침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후 링스헬기는 오후 1시 30분에 문무대왕함에 복귀하기 전까지 110분여 동안 다박솔호를 안전지대로 인도하는 작전 비행을 펼쳤다. 이렇듯 이 날의 청해부대가 펼친 구조 활동은 대한민국 해군이 북한 상선을 해적으로부터 구조한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2013년 숭례문 불탄지 5년3개월만에 복구 준공
2019년 북한 원산 호도반도에서 발사체(신형 전술유도무기) 발사
2019년 영화 ‘어벤저스-엔드게임’ 개봉(4.24) 11일만에 관객1,000만 돌파
2021년 문대통령 상반기 접종목표 1,300만명으로 상향
2022년 현대산업개발, 광주 화정 아이파크 8개동 전면 철거후 재시공키로
2022년 6월부터 제주.양양공항 외국인 무사증 입국
1415년 종교 개혁가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가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다.
1471년 영국의 국왕 헨리 6세의 아들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 작고
1519년 피렌체의 통치자 로렌초 2세 데 메디치 작고
1654년 청나라 2대 황제 강희제 출생
1655년 이탈리아의 악기제조자이자 피아노의 발명가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출생
1776년 과학적 교육의 창시자인 독일의 헤르바르트 출생
1814년 나폴레옹, 엘바섬으로 유배
1825년 영국 생물학자 T.H.헉슬리 출생
1904년 파나마운하(대서양-태평양 연결) 착공, 1880년 시작됐으나 우여곡절끝에 미국이 운하건설 인수해 1904년 본격공사 시작 1914년 완공, 운하를 처음 통과한 배는 퀸엘리자베스 호
1912년 성(性)이 특정 염색체에 의해 결정됨을 최초로 발견한 미국의 생물학자 스티븐스 사망
1916년 미국의 도시계획가 제인 제이콥스 출생
1919년 중국 5.4운동(3천여명 지식인 베이징 텐안먼광장에서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시위) 일어남
ㅡ중국 북경의 13개 대학교 학생 약 3천명이 1919년 5월 4일 천안문 앞에서 집회를 가진후 가두 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5.4운동의 시작이었다. 이들의 시위는 1차 대전이 끝난 후 전승국인 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이 파리 회의에서 패전국 독일이 갖고 있던 중국 산둥성에 대한 특권을 일본이 계승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대한 항의에서 출발했다.
이에 분격한 베이징대학 학생들은 `밖으로 국권을 쟁취하고 안으로 국적을 징벌하자` `21개조 취소`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베이징의 군벌 정부가 군경을 파견하여 학생 30여명을 체포하자 학생들은 이에 항의, 총파업을 결의하고 전국적인 항의시위를 벌였다. 파업은 천진, 상해, 남경, 무한으로까지 파급되어 민족 위기를 호소하고 국산품 장려, 일본 상품 불매 등을 외쳤다. 6월 3일 군벌정부는 다시 대규모 탄압을 감행, 학생 약 1,000명이 체포됐다.
1928년 이집트의 군인, 정치가 무바라크 출생
1929년 미국의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 출생
1929년 일본군 산동 철수
1943년 미국의 정치인, 시애틀의 첫 흑인 시장 노먼 라이 출생
1951년 이란, 석유 국유화법 성립
1955년 영국-프랑스 원자력 정보교환 협정 조인
1961년 프랑스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 작고
1961년 폼페이 유적 발견
1966년 북경시장 팽진, 일체의 공직에서 해임
1970년 미국 주 방위군, 반전운동 시위를 벌이던 켄트대 학생들에 발포해 4명 사망
ㅡ미국 오하이오주 방위군이 월남전 반대 시위를 벌이던 켄트대학 학생들에게 13초동안 61발의 기총사격을 가해 4명의 학생이 숨지고 9명의 학생들이 크게 다쳤다.
당시 켄트대를 비롯한 미국 전역 250개 대학에서는 격렬한 반전시위가 벌어졌다. 미군이 캄보디아를 침공하는 등 베트남전이 점차 확대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대학마다 들불처럼 일어났던 것이다.
켄트대학에는 학군단 건물이 불에 타는 등 반전시위가 사흘동안 치열하게 진행됐으며 이를 진압하기 위해 주 방위군이 캠퍼스에 진입해 있던 상황이었다.
이날의 사태는 미 전역에 학원분쟁을 불러왔다.
1974년 엑스포74 미국서 개최
1979년 영국총선거 보수당 압승 대처 첫 여성총리 취임
ㅡ“그녀는 주택위기 은행위기 실업수당위기를 만들어냈다. 실로 오늘날 우리가 맞고있는 모든 현실적 문제는 그녀가 근본적으로 잘못한 일들의 유산이다.”-리빙스턴(대처 총리 시절 런던시장)
1980년 요시프 티토 유고 초대대통령 세상떠남(88세),
ㅡ독자적 사회주의 목표로 비동맹중립외교 추진.
35년간 유고를 통치해 온 요시프 브로즈 티토 대통령이 1980년 5월 4일 87세를 일기로 베오그라드에서 사망했다.
2차대전 후 동서냉전시대 비동맹의 창시자이며 탈소공산주의 독자노선을 추구해온 티토의 죽음은 티토이즘의 종말과 함께 동서양진영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온 유고의 안보에 대한 커다란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크로아티아의 금속 노동자 출신인 티토는 제1차 대전에 참전, 러시아의 포로가 된 뒤 혁명에 투신했다.
2차 대전 때는 독일에 대항하는 빨치산으로 활약하다 유고가 독립하자 정권을 장악했다. 이때부터 유고는 티토의 화합적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안정된 국가를 유지했다. 티토는 스탈린주의와 거리를 두는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펼치며 냉전시대 양극대결에 휘말리지 않는 지혜를 보였다.
소련과의 일정한 거리를 두는 독립노선을 추구하는 바람에 유고 공산당은 1948년 코민포름에서 제명됐지만 티토는 오히려 자주관리제를 중심으로 한 독자적 사회주의를 추진하며 비동맹 중립 외교 정책을 굳건히 지켜 나갔다.
그의 죽음 후에 장기화된 분쟁으로 희생자가 늘어나고 생활이 피폐해지면서 세르비아인들조차 나라를 통일했던 그의 치적을 재평가하고 있다.
1982년 아르헨티나 공군 엑소세미사일로 영국 구축함 격침
1983년 이란 공산당 해체
1984년 폴란드 주교단 정치범 석방촉구
1986년 일본 동경서 제12회 서방7개국 정상회담 개막
1989년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에서 금성궤도선 마젤란 발사
1990년 소련 내 라트비아공화국 독립선언
1991년 멕시코 베라쿠르스주에서 화학공장 폭발, 유출 독가스에 500여명 중독
1994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예리코시에 대한 자치협정 서명
ㅡ앙숙관계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1994년 5월 4일 카이로에서 이스라엘 점령 요르단강 서안의 예리코시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를 출범시키는 역사적인 협정에 서명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다시 자유를 돌려주는 첫번째 조치가 된 이 협정으로 이스라엘 점령 가자지구와 예리코시에서 지난 1967년 중동전 이후 27년간 계속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정은 부분적으로나마 막을 내리고 제한된 범위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시대가 열리게 됐다.
팔레스타인 경찰은 5월 12일 가자지구의 자치권을 넘겨받았고 아라파트 PLO 의장이 7월 1일 팔레스타인 땅으로 귀환했으며 10월 26일 이스라엘은 요르단과 평화협정을 맺어 시리아에 대한 골란고원의 반환의사도 밝혔다.
1999년 세계최고문자 새겨진 `도기조각` 파키스탄 하라파 유적서 발굴
ㅡ인류가 기록한 최고의 문자가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도기가 파키스탄의 고대문명 유적지에서 발견됐다고 1999년 5월 4일 영국 BBC방송이 전했다. 문자가 새겨진 도기들은 4천500년전에 번성했던 인더스 문명의 하라파 유적지대에서 발견된 것으로 표면에는 용기안의 내용물을 나타내거나 혹은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기호가 새겨져 있다.
도기조각에 새겨진 나무 모양의 삼지창 무늬기호가 약 5천500년전의 것으로 추정돼 1998년 이집트 남부 전갈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고대 문자(BC3200-3300년)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보고 리처드 메도우 하버드대학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고대 문자는 지금까지 발견된 다른 어느 문자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 이전까지는 BC 31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수메리아인들이 기록한 문자가 최고의 문자로 알려져 왔다.
1999년 뉴욕 대형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 창사 130년 만에 첫 뉴욕증시에 상장
2003년 미국 우주비행사, 러시아 우주선 타고 첫 귀환
ㅡ지난달 말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킹했던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이 임무를 마친 3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우고 4일 지구로 귀환했다고 러시아 우주통제센터가 밝혔다.
러시아 우주통제센터는 지난달 28일 ISS에 도킹한 소유즈 TMA-1호가 이날 새벽 2시43분 ISS로부터 분리에 성공했으며 오전 6시19분에 낙하산을 이용, 카자흐스탄의 초원지대에 착륙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미국의 케네스 바워삭스, 도널드 페팃, 러시아의 니콜라이 부다린 등 3명의 우주비행사는 5개월여간의 ISS 생활을 마치고 무사히 귀환하게 됐다.
또 바워삭스와 페팃은 외국 우주선을 통해 귀환하는 첫 미국인 우주비행사로 기록됐다. 이들은 당초 지난 3월 지구로 귀환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2월 발생한 미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폭발사건의 여파로 귀환 일정이 늦어졌다.
2011년 팬들이 5월4일을 스타워즈의 날(Star Wars Day)로 정해 다양한 행사를 벌이며 즐기기 시작함, 영화속 제다이와 저항군의 인사말 “포스가 함께 하길 May the force be with you.”가 'May the 4th be with you'와 비슷하게 들리는 것에서 유래됨,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공식지정
2013년 벨기에의 세포학자 겸 생화학자, 노벨상 수상자 크리스티앙 드 뒤브 작고
2018년 스웨덴 한림원이 미투운동 여파로 인하여 2018년 노벨문학상 개최 및 시상을 취소
2021년 빌게이츠 27년만에 이혼...“자선재단은 유지”
2021년 독 경찰, 세계최대 아동포르노플랫폼 폐쇄...3명 체포
2022년 미 국방장관 “유사시 대비 아태지역에 충분한 군 자산 사전배치”
'오늘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역사 5월 6일 (2) | 2023.03.28 |
---|---|
오늘의 역사 5월 5일 (0) | 2023.03.27 |
오늘의 역사 5월 3일 (1) | 2023.03.25 |
오늘의 역사 5월 2일 (2) | 2023.03.25 |
오늘의 역사 5월 1일 (0) | 2023.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