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좋은 이름이 성공한 인생을 만든다"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5월 6일

by 귤담 2023. 3. 28.

오늘의 역사 5월 6일

 

 

제 몸이 성하더라도 토르소는 매일 운다

무심히 관찰하면 예감할 수 없는 일도

늦봄의

아카시아 꽃들이

떨어짐을 보고 안다.

 

우린 항상 습성처럼 상상력의 꿈을 꾸고

혼란스런 머리로는 모두 알 수 없는 이 땅

온몸이

비틀려 보면

내가 아닌 나를 본다.

                  -이재창 시인의 「年代記的 몽타주 · 13」 전문 (열린시조 창간호, 1996 겨울호)

*국제 다이어트반대의 날,

―1992년 식이장애로 고통겪던 영국의 메리 에반스가 다이어트로 죽어간 여성들 추모하며 외모지상주의 사회에 문제제기, 세계 곳곳에서 ‘노 다이어트, 노 성형수술’로 자신의 몸을 사랑하자는 목소리 높아짐

*교사의 날: 자메이카

*순교자의 날

*콘돔의 날: 일본

 

 

1064년 [윤]문종(文宗) 18년, 병부의 건의로 군반씨족의 장부를 개정함

1226년 [음]高宗 13年, 반란을 모의한 서경인 조영수 등을 참수함

1298년 [음]충선왕(忠宣王) 즉위년, 관직명과 관제의 개혁을 지시함

1412년 [음]태종 12년, 5부 학당(五部學堂)에 전지(田地) 100결을 내림

1424년 [음]세종 6년, 내시위(內侍衛)를 혁파하여 내금위(內禁衛)에 통합함

1508년 [음]중종 3년, 홍문관(弘文館)이 대자사(大慈寺) 수리 불가를 논함

1513년 [음]중종 8년, 소릉(昭陵, 문종 비 현덕 왕후 능)을 현릉(顯陵, 문종 능) 왼쪽으로 옮김

1518년 [음]중종 13년, 공서린(孔瑞麟)이 5자급(資級)을 뛰어넘어 대사간에 임명됨

1570년 [음]선조 3년, 조광조에게 문정(文正) 시호를 내림

ㅡ조광조(趙光祖)의 시호(諡號)를 문정(文正)으로, 이언적(李彦迪)의 시호를 문원(文元)으로, 권벌(權橃)의 시호를 충정(忠定)으로 내렸다.

1606년 [음]선조 39년, 명나라와 염초(焰硝) 무역을 시작함

1618년 조선조의 무신 강항 사망

1680년 [음]숙종 6년, 허견(許堅)이 사사됨(경신대출척)

1689년 [음] 숙종 15년희빈 장씨(장옥정)에게 왕비 책봉의 전지를 내림

1722년 [음]경종 2년, 숙종 비 인경 왕후·인현 왕후의 휘호와 존호를 정함

1722년 [음]남구만·윤지완·박세채·최석정을 숙종의 묘정에 배향하기로 함

1730년 [음]영조 6년, 숙종의 업적을 기록한 《숙묘보감(肅廟寶鑑)》이 완성됨

1730년 [음]남한산성의 부족한 무기를 보충하고자 평총(平銃)·장총(長銃) 제조를 명함

1760년 [음]영조 36년, 청에서 왕비(정순 왕후) 책봉 칙사가 옴

1763년 [음]영조 39년, 시신(侍臣)들에게 여색(女色)을 경계하게 함

1771년 [음]영조 47년, 황구첨정(黃口簽丁)·인족 침징(隣族侵徵) 등 군포(軍布)의 폐단을 금하게 함

1780년 [음]정조 4년, 전옥서(典獄署)의 관리가 죄수를 침학하는 것을 금지함

1789년 [윤]정조 13년, 해서와 영남에 전염병이 퍼져 구료 방법·구휼책을 세우게 함

1808년 [윤]순조 8년, 산림(山林)에서 독서하는 선비를 별도로 기록해 올리게 함

1830년 [음]순조 30년, 왕세자(익종)가 죽음

1893년 위당 정인보 출생

ㅡ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로 국혼 환기 운동을 전개한 위당 정인보 선생이 1893년 5월 6일 출생했다.

위당은 1923년 연희전문 교수로 부임한 이후 국학 관련 논설을 조선일보 등에 활발히 게재했으며 1930년에는 `5천년간 조선의 얼`을 발표, "육체의 죽음보다 더한 것인 마음의 죽음으로, 우리 민족의 마음이 되살아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단군 없이 한국과 한국인은 없다고 강조해 단군연구 운동을 진작했으며, 우리 역사가 낳은 큰 인물로 단군과 세종대왕, 충무공 이순신, 다산 정약용을 들기도 했다.

8.15 해방과 더불어 대한민국 건국 준비사업에 참여, 건국 후 초대 감찰위원장을 맡아 관기를 바로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6.25 전쟁중 병상에 납북된 후 소식이 끊겼다. 문화관광부는 위당을 2000년 `7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1909년 강화 전등사 장서각의 사책 경복궁으로 옮김

1916년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경기장인 YMCA실내경기장 신축

1932년 제1회 전조선 궁술 대회, 경성에서 개최

1938년 〈동(銅)의 사용 제한에 관한 건〉 개정(5.10. 시행)

1941년 〈국방보안법 시행령〉 공포(5.10. 시행)

194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생계 위원회 설치

1946년 미 · 소 공동위원회 무기 휴회

1948년 김구-김규식, 남북협상에 대한 공동성명

1948년 제2육군병원 대전에 설치

1949년 변호사 시험령 제정

1950년 주한 미군 원화 채무, 대한민국 정부가 인수하기로 협약

1951년 0시를 기하여 서머타임 실시

1952년 서울-부산 민간전화 개통

1952년 국회, 장택상 국무총리 인준

1962년 대한제국 말 이래 공문서를 정리하여 179만 권만 보존 결정

1963년 박임항 등 20명, 쿠데타 음모사건 관련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구속, 기소

대한민국사 연표

1963년 동화작가 강소천 세상떠남 『꿈을 찍는 사진관』 『호박꽃 초롱』

ㅡ함남 고원군에서 태어난 선생의 본명은 용률. 소천은 필명이다.

선생은 24세 되던 1939년, 동화 `돌멩이`로 본격적인 아동문학가로 나서 조선일보와 어린이 잡지 `아이생활` 등에 동화를 게재했다. 광복 후 고원중-청진여중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아동문학 활성화에 애쓰던 선생은 6.25가 터지자 월남, 문교부 편수국에서 교과서를 만들면서 아동 교육에도 관심을 두었다. 1957년 어린이 날, 선생이 기초해 아동문학가협회 이름으로 발표한 어린이헌장은 어린이 사랑운동의 결실이었다. 선생은 1959년 이후 연세대와 이화여대에서 아동문학 강좌를 맡아 어린이 신문발간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동요 시집 `호박꽃 초롱`, 동화집 `조그만 사진첩`, `꿈을 찍는 사진관`, `인형의 꿈` 등이 있다.

1965년 선생이 한국의 아동문학에 남긴 업적을 기리기 위해 소천아동문학상이 제정되었고 이후 제6회 시상 뒤부터 강소천 아동문학상 운영위원회가 발족돼 연간 발표된 작품 중 우수작을 선정, 매년 5월 5일 어린이날 시상했다. 1972년부터 선생의 기일(忌日)인 5월 6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5년 신아일보 창간

1965년 화가 박수근 세상떠남(51세) ‘빨래터’가 2007년 5월에 45억2천만원에 팔림

ㅡ박수근은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을 뿐 천재들에게서 흔히 목격되는 정열과 광기, 드라마틱한 삶의 역정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다. 소박한 소시민이었고 보통사람이었으며 더없이 자상한 아버지였다. 그림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질박한 삶이 묻어 나온다.

가난과 전란 속에서 춘천, 평양 그리고 서울의 창신동을 떠돌며 때로는 도청 서기로, 때로는 미군부대 초상화가로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언제나 꿈을 잃지 않았고 화필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평생 그의 벗이 되고 만 가난 탓에 아들을 잃었고, 화가에게 생명같은 눈이 실명되는 불은을 겪었다.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 ” 1965년 5월 6일 그가 숨지면서 한 마지막 말이었다.

1968년 서독 브란트 외상, 동베를린 사건 관련자 17명 전원 송환 요구

1969년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발표

1970년 민간 기업에 병역 기피자 해고하라고 통첩

1971년 진산파동, 신민당 유진산 당수, 전국구 1번으로 등록. 당내의 반발 유발

1973년 동화작가 강소천 세상 떠남

1974년 정부 정부미 혼합곡으로만 방출한다고 발표

1974년 여간첩 채수정 사건

1975년 성년의날 5월 6일로 변경

1976년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서 해방후 최초 남북대결. 1 : 0으로 패배

1977년 경기도 여주에서 석기시대 농기구 발견

1977년 세검정 중건

1979년 미 브루킹스 연구소, 북한 공군력은 한국 3배라고 공표

1980년 대학가시위, 학원문제에서 정치문제로 번지며 가두진출

1981년 공정거래위원회 발족

1981년 한국 아르헨티나 무역해운협정 체결

1982년 워커 주한 미국대사, 관훈클럽 초청 연설에서 한국내 반미감정은 보편적 움직임이 아니라고 지적

1983년 호남고속도로 대전∼광주 4차선 확장 기공식.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 여의도서 우리나라 천주교 순교자 103명 성인으로 시성

1984년 서울시 경찰국, 내한중인 교황에게 장난감총을 쏜 정신질환 증세 대학생 이준규를 검거

1985년 제17차 한ㆍ미연 안보협의회의 개막(∼8일, 워싱턴). 북한의 기습남침대처방안 마련코 공동성명 발표

1985년 서울 마포일대 14개 동(1만여가구)에서 대낮에 도시가스 동시폭발. 주택 13채 소실

ㅡ12시20분쯤부터 40여분 동안 서울 마포구일대 11개동과 서대문구의 3개동 등 14개동에서 도시가스가 누출되거나 폭발하는 가스사고가 발생했다. 수많은 가구의 가스레인지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곳곳에서 지하가스매설관과 도로가 터지는 등 일대소동을 치렀다. 이 사고로 1만여가구가 피해를 입고, 10여집에 불이 나고, 10여개의 맨홀이 터졌지만 다행이 사망자는 없었다.

사고의 1차적 원인은 서울도시가스공장의 압력자동조절장치에 이물질이 끼여 고장이 일어난데 있었으며, 또 서교정압실 주위의 배관이 잘못돼 고압가스가 정압실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저압관을 통해 가정으로 공급된 것이 2차원인이었다.

1985년 호우로 변한 봄비, 영·호남을 강타. 사망 3명·이재민 250명

1986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민주화위한 시국성명서 발표

1987년 제9차 한,미안보회의 개막(워싱턴), 7일긴급 통신망설치.방위산업협력각서교환 등 13개항공동성명

1987년 조선대방화 폭행-불지르고 교수등에 각목세례

1987년 한양대 안산캠퍼스 학생 500여명, 지방캠퍼스 차별 항의 및 학내민주화 요구 방화 시위

1988년 서울시내 228개 택시회사, 임금인상안에 불만 2일간의 시한부파업에 들어가, 7일 타결

1988년 현대건설 노조위원장 납치-관리이사 충성심 강해 저질러

1988년 한미 무역실무회담 타결

1989년 폴란드 유학 북한학생 동연준·김운학군 망명, 김포공항 도착

1989년 전대협, 비폭력 평화시위 선언. 경찰에 최루탄 사용, 강경진압 중지 요구

1990년 MBC 노조, KBS에 공권력이 투입된 데 항의, 시작한 제작거부 농성을 7일부터 조건부 정상화 결정.

1991년 정부, 방위소집 대상자 가운데 5년간 기능직 근로자로 일할 경우 병역의무를 마친 것으로 인정키로.

1991년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6월.포르투갈)1차 평가전을 갖는 북측선수단 70명 판문점 거쳐 서울 도착.

1992년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려 고령 이산가족 교환 방문에 우선 합의. 8.15전후 인원 240명씩으로 합의

1992년 민주당, 3.24총선거 선거비용 수입지출을 공개- 우리나라 선거 및 정당 史上 최초.

1992년 삼성전자,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4메가 S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

1992년 북한, 핵폭탄 제조용 플루토늄 생산을 최초 시인

1994년 한국공보원(중국명 한국문화신문처), 중국 북경에 개관

1994년 유로 터널 개통-영국-파리 연결 49.9킬로미터

1995년 경기 남양주시 오남출장소, 오남면으로 승격

1996년 북한, 나진ㆍ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두만강 유역 개발자금 마련 위해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추진

1996년 전 합참의장 한신씨 별세

ㅡ그는 6.25때 큰 전공을 세웠으며, 청렴 강직한 생활로 군내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대표적인 원로장성이었다. 1922년 함남 영흥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 일본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광복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1946년 월남,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육사2기로 입학했다.

그는 6.25발발 이후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전투 때 수도사단 1연대장으로 경북 안강 기계전투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둬 북진의 발판을 마련했다. 때문에 6.25를 통틀어 `방어작전엔 한신`이라는 말을 들었다. 휴전 이후 수도사 단장, 6군단장, 교육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군사혁명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그는 5.16 당시 모의과정엔 참여하지 않았으나 동기생인 박정희 최고회의부의장의 권유로 입각, 1963년까지 내무장관 및 감사원장을 지냈다.

1963년 6군단장으로 군에 돌아와 교육사령관-2군사령관을 거쳐 1969년 1군사령관에 임명됐다. 그 뒤 군내에선 그가 육군 참모총장으로 영전할 것을 기대했으나 대쪽같은 성품으로 군 안팎의 견제를 받아 1972년 합참의장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5년 예편할 때까지 군전력증강사업(율곡사업) 등 자주국방 계획의 골격을 짰으며, 아세아자동차사장 및 회장, 대한중석사장을 역임했다

1997년 유종하 외무장관, “북한은 연간 약5000t의

1997년 화학무기 생산능력과 현재 약5000t의 화학무기 보유 추정

1997년 대우중공업(주), 방청도장후 탱크 내부에서 폭발사고 발생, 사망1, 부상 9명.

1997년 교육부, 1998년부터 교원 차등보수제 도입

1998년 국무회의, `98년 규제개혁종합지침' 의결

1998년 행정자치부, 7월1일부터 정부의 모든 문서에 정책실명제를 실시키로 했다고 밝혀

1998년 삼성그룹, 주력업종 4~5개를 제외한 전업종 처분 구조 조정안 발표

1999년 임진각에 21톤 `평화의 종` 건립

1999년 이승엽, 최연소 100호 홈런 달성

2001년 이형택 선수, ATP 공식 투어 결승 진출

ㅡ한국 테니스의 희망 이형택(25·삼성증권)이 마침내 세계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 공식 투어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전인미답의 길에 발을 올려 놓았다.

세계 81위 이형택은 6일(한국시각) 미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US클레이코트 챔피언십(총상금 35만달러) 단식 준결승에서 체코의 미할 타바라(73위)에게 2대1(4―6, 6―2, 6―1)로 역전승했다. 남녀를 통틀어 한국선수가 공식투어대회 결승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자는 이형택이 지난해 영국 삼성오픈에서, 여자는 94년 박성희(은퇴)가 인도네시아 오픈에서 각각 준결승에 진출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이형택은 랭킹 포인트 24점과 최소 2만7000달러의 상금을 확보했다. 대회 우승상금은 4만6000달러다.

지난해 US오픈 16강 진출로 세계 테니스계의 주목을 받았던 이형택은 이로써 ‘반짝 스타’가 아니라 ‘노련한 강호’로 성장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2002년 최경주, 한국인 첫 PGA 제패 - PGA 컴팩클래식 우승

ㅡ최경주 선수가 컴팩클래식대회에서 우승함으로 한국인으로는 처음 미국PGA투어 챔피언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최경주는 2002년 5월6일(한국시각) 뉴올리언스의 잉글리시턴골프클럽에서 끝난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5언더파 67타를 쳐 4라운드 합계 17언더파 271타로 우승, 상금 81만달러를 차지했다. 최경주에 앞서 동양인으로는 일본의 아오키 이사오(1983년)와 마루야마 시게키(2001년), 대만의 첸지충(1987년)이 PGA투어에서 우승한 바 있다.

1970년(실제로는 1968년) 전남 완도에서 출생한 최경주는 화흥초등학교 시절부터 역도 선수를 하다가 완도수산고 1학년 때 생긴 골프부에 뽑혀 난생 처음 골프라는 운동을 접했다. 완도의 한 연습장에서 볼을 치던 그를 눈여겨본 서울 한서고 재단이사장 김재천씨가 다시 한서고 골프부에 스카우트했고, 거기서 골프에 본격 입문했다. 1993년 프로테스트를 단번에 통과, 직업 골퍼의 세계에 뛰어든 최경주는 1995년 팬텀오픈에서 첫승을 거머쥐며 상금랭킹 7위에 오른 데 이어 1996, 1997년에 2년연속 상금 1위에 올라 국내에선 더 이상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9년까지 국내에서 7승을 거둔 뒤 일본에 진출, `꿈의 무대`라는 미국PGA투어로 향하는 문을 열어 젖혔다. 1999년 말 가족을 데리고 플로리다주 잭슨빌로 이주한 최경주는 2000년 1월 소니오픈에 턱걸이로 참가했다. 결과는 컷오프. 투어 카드만 있으면 될 줄 알았던 미국PGA투어 벽은 높았다. 에어캐나다챔피언십에서는 톱10(공동8위)도 한번 경험했지만 그해 상금액 30만5745달러(랭킹 134위)로는 2001년 출전권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도 뚝심의 최경주는 좌절하지 않았다. 두 번 b가기 싫다는 `지옥` 같은 Q스쿨을 또 거쳤다. 2년차의 여유를 찾은 그는 2001년 29개 대회에 참가, 19개 대회에서 상금을 받았고 톱10에 다섯 차례 들었다. 80만326달러로 상금랭킹 65위. 2002년 출전권은 자동 확보됐고 출전대회의 격도 달라졌다. 미국그린에 적응이 빨라지면서 그의 성적도 일취월장했다.

2002 시즌 들어 첫 대회인 소니오픈에서 공동7위로 톱10을 장식한 최경주는 마침내 컴팩클래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10년 계획이라지만 내심 5년을 바라보고 있던 그로서는 최소 2년은 앞당긴 우승이다. 1m72의 크지 않은 키이지만 82kg의 탄탄한 체구에 역도로 단련된 강한 다리힘과 어깨 근육을 바탕으로 외국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스윙을 갖췄다.

2002년 금융 감독 위원회, 올 1/4분기 카드 현금 대출액 100조 원 돌파 발표

2004년 한국산 토종늑대 30년 만에 재탄생

2005년 간호사들의 ‘신생아 학대’ 사진 논란

ㅡ신생아 부모들 모임 인터넷 카페 등에 신생아의 콧구멍에 볼펜 2개를 끼워 놓은 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인터넷에서는 모 사이트에서 가져온 글이라며 “자는 아기 깨워 온갖 반사실험을 다했다. 머리 온갖 데 다 눌러보며. 애기 고생 좀 했겠지만, 나는 배운 거 실제로 해봐서 좋고. 서로서로 좋은 일이었다” 글이 돌아다녔다.

이밖에도 카트형 장바구니에 두 살 전후의 어린아이를 접어 넣어 끌고 가는 사진과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할 미숙아를 소파에 앉혀 젖병을 굴리는 사진 등이 유포됐다. 누군가가 두 손으로 신생아의 얼굴을 감싸안고 찍은 ‘인간 복숭아’ 제목의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콧구멍에 볼펜을 끼우고 있는 신생아 사진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경찰은 “사진의 주인은 간호사가 아닌 일반 사무직으로 2003년 그만뒀으며, 사진 속의 신생아는 신생아실에서 착용이 불가능한 털모자 등을 쓰고 있는 점 등으로 미뤄 신생아실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찍힌 사진일 가능성이 크다” 고 밝혔다.

한편 대구 동부경찰서는 8일 병원에서 신생아를 괴롭히는 모습을 연출해 사진을 찍고, 이를 인터넷 미니홈페이지에 올린 혐의로 간호조무사 이모(여·24)씨와 김모(여·25)씨, 장모(여·24)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와 김씨는 직장인 대구 A, B산부인과에서 신생아의 얼굴을 손으로 일그러뜨리거나 비닐팩 속에 집어넣는 가학적인 장면을 연출해 사진을 찍은 혐의다. 장씨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이씨를 도와 신생아를 괴롭히는 사진을 찍은 혐의다.

경찰은 또 A산부인과 원장 배모(36)씨에 대해 노동복지법상의 관리책임을 물어 형사처벌키로 했다.

이씨 등은 경찰에서 “아기들이 예뻐서 미니 홈페이지를 꾸미려고 그랬을 뿐 괴롭힐 의도는 없었다. 아기들과 보호자들에게 미안하다” 고 말했다.

2007년 작곡가 김순애 세상떠남 ‘모란이 피기까지는’

2009년 주택청약종합통장 출시,

―형편대로 납입하고 골라서 청약할 수 있는 주택청약종합저축은 공공주택청약 가능한 청약저축 기능에 민영주택청약 가능한 청약예·부금 기능을 하나로 합쳐 '만능청약통장'으로 불림

2009년 350m '한강전도' 그린 김학수 화백 별세

―역사풍속화가 혜촌(惠村) 김학수(金學洙·90) 화백이 2009년 5월 6일 오전 2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1919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이당(以堂) 김은호와 소정(小亭) 변관식을 사사했고, '궁궐도' '삼강행실도' '광대줄타기' '의사 안중근' 등 역사풍속화를 비롯해 산수화·위인화를 주로 그려왔다.

1964년부터 2006년까지 한강과 그 일대를 현장 답사하며 화폭에 담은 유명한 '한강전도'를 남겼다. 한강 1300리를 폭 48㎝, 길이 20m가량의 화선지 두루마리 26개에 옮긴 것으로 길이만 350m 가까이에 이른다. 고인은 또 한국외항선교회 창립 멤버로 참여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성화(聖畵)를 많이 남겼다. 김 화백은 6·25 때 부인과 2남2녀를 북에 남겨두고 월남한 뒤 재혼하지 않고 50년 넘게 홀로 살았다.

2009년 산악인 오은선, 히말라야 칸첸중가봉 무산소 등정 성공

―한국의 간판 여성 산악인 오은선(43·블랙야크)이 2009년 5월 6일(이하 현지시각) 네팔 히말라야 칸첸중가봉(Kanchenjunga·해발 8586m)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이로써 히말라야 14좌(해발 8000m 이상) 중 10개 봉 등정에 성공한 오 대장은 세계 여성 산악인 최초의 히말라야 14좌 정복의 꿈에 한걸음 더 바짝 다가섰다.

5월4일 해발 5600m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오 대장은 5일 오후 10시10분 캠프4(해발 7600m)를 떠나 19시간30분 만인 6일 오후 5시40분 칸첸중가 정상을 밟았다. 지난 3월 19일 인천공항을 통해 칸첸중가 원정에 오른 지 49일 만이다.

네팔과 인도 국경에 위치한 칸첸중가는 히말라야 14좌 중 최동쪽에 위치해 '히말라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비추는 산', '하늘 위에 빛나는 보석'이라 불린다.

현재 칸첸중가 베이스캠프에는 오 대장을 비롯해 미국, 스페인, 네덜란드 등 모두 7개팀이 모여 정상 정복에 도전했으나 오 대장이 가장 먼저 성공했다.

오 대장은 1997년 갸셔브롬 2봉(8035m)에 오르며 히말라야 정복에 나섰다. 2004년 아시아 여성 최초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해발 8848m)를 등정했고, 지난해에는 마칼루(8463m), 로체(8516m), 브로드피크(8047m), 마나슬루(8156m) 등 4개 봉 연속 등정에 성공해 '철(鐵)의 여인'으로 불렸다.

히말라야 14좌는 1986년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산악인 라이홀트 메스너가 처음으로 등정한 뒤 국내에선 박영석·엄홍길·한왕용씨가 차례로 완등했지만 여성 산악인은 아직 세계 어느 누구도 정복하지 못했다.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36)과 호주의 겔린데 칼텐브루너(39), 이탈리아의 니베스메로이(48) 등 세계의 간판 여성 산악인 3명이 모두 11좌 등정에 성공했고, 한국의 오 대장과 고미영(41·코오롱스포츠) 대장이 각각 10개봉과 8개 봉 정상에 올라 바짝 추격하고 있다.

2010년 서울 수복 ‘태극기 게양’ 박정모 대령 별세

―6·25전쟁 당시 ‘9·28 서울 수복(1950년 9월 28일)’ 전날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던 박정모 예비역 대령이 2010년 5월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4세.

1926년 전남 신안군 도초면에서 태어난 박 대령은 1944년 일본 후쿠오카 오리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명령으로 이듬해 1월 다나베 해병단에 입대했다.

박 대령은 광복 때 일본군을 탈출한 뒤 대한민국 해군에 다시 입대해, 1950년 1월에 해병대 소위로 임관했다. 6·25 때는 해병 소대장으로서 인천상륙작전, 금곡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다.

특히 1950년 9월 27일 오전 6시 10분에 중앙청 옥상에서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올려 미국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세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공훈”이라는 표창을 받았다. 박 대령은 1961년 7월 대령으로 예편했고, 을지·충무·화랑 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 개각 단행

―이명박 대통령은 기획재정부 장관에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을 내정하는 등 5개 부처에 대한 개각을 실시했다. 당초 류우익 주중국 대사와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 등 이 대통령의 측근들이 통일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에 각각 유력 검토됐으나 이들의 기용은 보류됐다.

이 대통령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서규용 전 농림부 차관, 환경부 장관에는 유영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 고용노동부 장관에는 이채필 노동부 차관, 국토해양부 장관에는 권도엽 전 국토부 1차관을 각각 내정했다

이번에 발표된 내정자들은 지역적으로는 울산·충북·강원·경북·경남이 각 1명씩이다. 유 환경장관 내정자는 여성이고, 이 고용부장관 내정자는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 출신이다.

2013년 강원 고성의 탄소배출권조림조합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등록

2016년 북한노동당 36년만에 제7차 대회 열림

2020년 영화 ‘바람꽃’(감독 고훈) 미국 휴스턴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안성기), 최우수외국어영화상(백금상) 받음

2022년 4경기 4골 1도움 폭발...손흥민 EPL 4월의 선수 후보 선정

2022년 미 상원, 주한미대사 지명자 만장일치 인준

2022년 대한민국의 한학자 기세춘 작고

 

 

 

973년 신성로마황제(1002~1024) 하인리히 2세 출생.

1405년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 스칸데르베그 출생

1405년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 스칸데르베그 출생

1501년 222대 로마 교황 교황 마르첼로 2세 출생

1758년 프랑스 혁명가 로베스피에르 출생

1840년 영국에서 사상처음 우표사용, 1페니짜리 우표 5월1일 발행해서 오늘 처음 사용됨

ㅡ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우표가 영국의 교육자 로랜드 힐에 의해 탄생했다. 우표가 탄생되기 전에도 공식, 비공식으로 우편증지를 사용했지만 그때는 주로 편지를 받는 사람이 우편요금을 부담했고 거리별, 무게별로 요금도 모두 달랐기 때문에 몹시 번거롭고 복잡하여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때 마침 힐이 우편제도 개혁의 실효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각계의 큰 호응을 얻었다. 힐은 거리와 지역에 관계없이 보내는 사람을 부담자로 한다는 취지로 우편제도 개혁을 제안, 1839년 영국 의회에서 채택된 후 빅토리아 여왕의 서명을 받아 1840년 1월 1일부터 정식 발효됐다.

하지만 최초로 붙이는 식의 우표를 구상해낸 사람은 로랜드 힐이 아닌 스코틀랜드의 한 책방주인이자 인쇄소의 주인이었던 제임스 찰머스였다. 이 제안이 로랜드 힐에 의해 받아들여진 후 우표 디자인을 고심하던 힐이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식 기념 메달을 소재로 디자인해 이날 1페니 짜리 흑색 우표가 발행됐다. 이것이 바로 세계최초의 우표 ‘페니블랙 원페니(One Penny)’이다. 이틀 후인 5월 8일에는 2펜스 짜리 우표 ‘펜스블루 투펜스(Two Pence)`가 발행됐다. 이는 우표의 색깔이 흑색과 청색이어서 붙여진 이름들이었다.

최초로 우표를 탄생시킨 힐은 1846년부터 1864년까지 영국의 우편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을 수행하며 근대우편제도를 정착시키는데 큰 공헌을 해 후에 기사작위까지 받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또한 새로운 우편제도의 실시에 따른 우편업무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우편함이 설치되도록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는 세계 최초의 우표가 탄생된 지 44년 후인 1884년 11월 18일 홍영식 선생에 의해 5문과 10문(문(文):당시 화폐단위) 2종의 우표가 발행됐다.

1843년 미국의 지형학자 그로브 칼 길버트 출생

1856년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출생

1856년 미국의 북극탐험가 로버트 피어리 출생

1861년 인도 시인 타고르 출생

1862년 미국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44세) 세상떠남 『월든』

1902년 영국 기선 커모토호 버마 앞바다에서 침몰 사망7백여명

1904년 독일 화가 프란츠 폰 렌바흐 사망

1906년 러시아 헌법 공포

1906년 프랑스 수학자 앙드레 베유 출생

1910년 영국 에드워드 7세 사망, 조지 5세 즉위

1921년 독일-소련 통상조약 조인

1932년 프랑스 대통령 두메르 암살

ㅡ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75세의 늙은 프랑스 대통령 폴 두메르가 1932년 5월 6일 총격을 받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 사망했다. 두메르는 이날 오후3시경 로스차일드 재단본부에서 거행된 `종군작가 구제를 위한 도서판매회`에 참석해 `전쟁`이라는 책한권을 사고 나와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연설을 하려던 중이었다. 범인은 정신이상인 러시아 시인 고르굴로프로 밝혀졌으며 그는 후에 사형에 처해졌다

1937년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 공중폭발(승객96명중 사망36명)로 비행선시대 막 내리고 비행기시대 시작, 독일-미국간 정기항로 재개소식에 카메라맨들이 뉴저지 공항 대기중 240m 정도 길이의 힌덴부르크 호가 공항에 닻줄 내린 직후 벼락에 의한 감전 추정 폭발

1946년 제1회 IMF이사회 미국 워싱턴에서 열림

1949년 벨기에극작가 메테를링크 세상떠남 『파랑새』

1950년 여성 저널리스트 아그네스 스메들리 사망

1952년 이탈리아의 교육자 몬테소리 사망

ㅡ몬테소리는 안코나에서 태어나 로마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그 부속병원의 정신과 조수로 직업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자 의대생이었고, 최초의 여성 의사였다. 19세기 말까지도 이탈리아의 의과대학에서는 여학생을 받지 않았던 터라, 몬테소리는 왕과 교황에게 탄원한 끝에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로마대학에서 다시 심리학 및 교육학을 전공한 뒤 1907년 1월 6일 3세∼6세까지의 노동자 자녀를 위한 유치원인 `어린이의 집`을 열어 몬테소리법에 의한 교육을 실시했다.

1909년에는 '몬테소리 방법'을 출간했으며 유아원의 기적으로 불린 그녀의 교육방법은 곧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13년에 정식으로 국제 몬테소리 교원양성 코스가 창설됐고 1929년에는 국제몬테소리협회가 독일 베를린에 설립됐다.

1953년 미국에서 인공심장을 사용한 심장수술 성공

1955년 서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1968년 프랑스 파리에서 학교개혁 요구하는 학생시위대와 경찰 충돌, 5월혁명 시작됨

1974년 브란트 서독총리 개인비서 기욤의 스파이사건으로 사퇴

1981년 미국, 국제테러행위 지원혐의로 미국주재 리비아외교관에 추방령

1987년 중국 서북부 산림 대화재, 사망 193명 피해면적 1만1000km2

1990년 러시아 공화국, 사회민주당 창당

1994년 영국과 프랑스 잇는 채널 터널 완공

ㅡ영-불간 도버해협을 연결하는 해저터널을 이용한 특급 열차 ‘유로 스타’가 개통했다.

영-불해저터널은 지난 1986년 미테랑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가 서명한 건설협정에 따라 총공사비 1백50억달러(약 12조원)를 투입, 약 7년 만에 완공한 것으로, 도버해협의 최단거리인 프랑스 칼레와 영국 폭스톤 사이의 해저 약 50㎞를 3개의 지하터널로 연결하고 있다.

워털루 역에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함께 기차에 몸을 실었다. 쏜살같이 달린 `유로 스타`는 시속 300㎞로 3시간 만에 런던과 파리를

이 해저터널은 세계 첨단기술이 총동원된 기술혁신의 상징이자 지금까지 항공편이나 배편으로만 건널수 있던 도버해협을 사상 처음으로 육로로 연결한 것이었다.

이 터널의 개통으로 지금까지 배편으로 최소한 2시간 걸리던 것이 35분으로 단축되었고, 유로스타는 파리~런던을 3시간에 런던~브뤼셀을 3시간15분에 주파할 수 있게 됐다.

1996년 호주, 사상 첫 원주민 판사(보브 벨레어) 탄생.

1999년 인류최고(最古)로 추정되는 `돌 연장` 케냐서 발견 후 공개

2000년 아일랜드공화군(IRA) 무기사찰 수용

ㅡ아일랜드공화군(IRA)이 6일 “국제적 공인을 받은 제3자에 의한 정기적인 무기 사찰을 허용하겠다” 고 선언했다. 1998년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이 체결됐으나, IRA가 무장해제 이행을 거부해 협상은 1999년 12월 이후 교착 상태를 보여 왔다.

2003년 미국 싱가포르와 아시아 국가 최초로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2007년 프랑스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사르코지 당선, 4월22일 제1차투표 1위 사르코지(여당, 국민운동연합)는 결선투표에서 53.06% 획득해 2위 루아얄(46.94%, 사회당)에게 이김

-- 유대계 헝가리 이민2세 사르코지는 신선한 개혁바람 타고 실용주의노선으로 논란 일으켰고 사생활 언론노출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끔

2012년 프랑스 17년만에 좌파정권 탄생, 프랑수아 올랑드(사회당) 결선투표에서 현직 사르코지 누르고 대통령 당선

2017년 스포츠회사 나이키 이탈리아 밀라노 몬차 자동차경주장에서 ‘브레이킹2(마라톤에서 2시간미만에 도전하는 경기)‘ 실험, 킵초게(케냐) 2시간25초로 실패

2018년 78명 탄 러시아機 '낙뢰' 맞고 비상착륙중 불..사망 41명

ㅡ승객과 승무원 78명이 탄 러시아 국내선 여객기가 비상착륙하는 과정에서 기체에 화재가 나 41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현지 언론들은 사고기가 이륙 직후 낙뢰를 맞은 것으로 전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사 소속 '수호이 슈퍼 제트 100' 여객기가 5월5일 오후 6시 2분께 북부 도시 무르만스크로 가기 위해 모스크바 북쪽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을 이륙했다가 28분 뒤 회항을 결정했다.

여객기는 이륙 후 모스크바 인근 상공을 몇 차례 선회 비행하다 급격히 고도를 낮춘 뒤 비상착륙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객기는 너무 빠른 하강 속도 때문에 두 번의 시도 끝에 착륙에 겨우 성공했으나 이 과정에서 기체 뒷부분이 화염에 휩싸였다.

착륙 기어가 지상과 충돌하며 부서졌고 그 파편이 엔진으로 날아들면서 불이 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칠레의 생물학자 움베르토 마투라나 작고

2021년 미 ”코로나 백신 지재권 면제지지“

2022년 미국의 만화가 조지 페레스 작고

 

 

 

 

 

'오늘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역사 5월 8일  (1) 2023.05.04
오늘의 역사 5월 7일  (0) 2023.05.04
오늘의 역사 5월 5일  (0) 2023.03.27
오늘의 역사 5월 4일  (0) 2023.03.26
오늘의 역사 5월 3일  (1) 2023.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