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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이름이 성공한 인생을 만든다"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5월 14일

by 귤담 2023. 5. 7.

오늘의 역사 5월 14일

 

 

 

틈 밖에 보인 우주 우중충하지 않다

그 안에 아이들이 장난감 쌓아 놓고

어릴적 우리들이 놀던 세상놀이 분주하다.

흡사한 직장생활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들만의 세계 속에 눈발이 어지럽다

오늘도 저녁연기 피워 올리는 우리들은 길짐승.

아이들이 틈 밖에서 잠시 머문 세기말에

외투깃을 세우며 귀가하는 한 잎 바람

땅그늘 묻히는 온갖 사악함이 뻔뻔하다.

온갖 아집 온갖 추함 낙엽으로 지더라도

잊을 것과 버릴 것은 여전히 끈덕진 심

지킨 꿈 벗는 개운함으로 생명의 덫 껴안은다.

                           -이재창 시인의 「살아남기 - 年代記的 몽타주․18」 전문

 

 

 

*식품안전의 날 ; 식중독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여름이 되기 전 더 안전하고 건강한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널리 알리기 위해 오늘을 식품안전의 날로 정함

*세계공정무역의 날 ; 세계공정무역기구(IFTO)가 2001년에 5월 둘째 주 토요일을 세계공정무역의 날로 정함, 공정무역(Fair Trade)=구조적으로 가난을 못 벗어나는 저개발국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가격 지불해 경제적 자립 돕는 운동

*세계 철새의 날 ; 철새와 서식지 보존의 중요성을 조명하고 인식을 향상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글로벌 캠페인, 5월과 10월 둘째 주 토요일, 2020 세계 철새의 날 주제 “세계를 이어주는 철새들”

*라이베리아 국가연합의 날 (라이베리아의 공휴일)

 

 

1009년 [음]현종(顯宗) 즉위년, 영화관(英華館)을 회동관(會同館)으로 고침

1021년 [음]현종(顯宗) 12년, 고선사와 창림사의 금라가사와 불정골, 불아를 내전에 안치함

ㅡ무자 상서좌승(尙書左丞) 이가도(李可道)에게 명령하여 경주(慶州) 고선사(高僊寺)의 금라가사(金羅袈裟)와 부처 정수리뼈[佛頂骨], 창림사(昌林寺)의 부처 어금니[佛牙]를 가서 가져오게 하였고, 모두 내전(內殿)에 안치하였다.

1036년 [음]정종(靖宗) 2년, 아들 4명 중 1명의 출가를 허락함

1065년 [음]문종(文宗) 19년, 왕이 경령전(景靈殿)에 가서 왕사 난원(爛圓)을 불러 왕자 왕후(王煦)(의천)를 승려로 출가시킴

1094년 [음]헌종(獻宗) 즉위년, 선종(宣宗)을 인릉(仁陵)에 장사지냄

1270년 [음]원종(元宗) 11년, 임유무를 죽이고 그 일당을 유배보냄

ㅡ계축 어사중승(御史中丞) 홍문계(洪文系)와 직문하성사(直門下省事) 송송례(宋松禮)가 임유무(林惟茂)를 죽이고 그 일당 사공(司空) 이응렬(李應烈)과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송군비(宋君斐)를 유배보냈으며, 서방(書房) 3번(番)과 조성색(造成色)을 없애니 온 나라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1274년 [음]원종(元宗) 15년, 원의 일본 정벌군 15,000인이 입국함

1277년 [음]충렬왕(忠烈王) 3년, 유경과 김구에게 『고종실록』의 편찬을 명령함

1391년 [음]공양왕(恭讓王) 3년, 대명률에 따라 상복제도를 다시 정함

ㅡ5월 경자 복제(服制)를 다시 정하면서 일체 『대명률(大明律)』의 복제 규정을 따랐다. 다만 외조부·외조모 및 처부모의 상복만은 친백부, 친숙부와 같게 하였다. 후사가 없는 사람으로 3세 이전에 버려진 아이에게 자기의 성을 주어 호적에 올린 자는 자기 자식과 동일하게 하고, 가까운 일가 아이를 우선하여 후계로 삼은 자도 역시 상복을 입도록 허락하였다. 3년상은 천하가 모두 행하는 상례이므로, 이제부터는 3년의 상기를 마칠 것을 허락하나, 그 가운데 국가의 중요한 일과 관계되어 마땅히 기복(起復)해야 할 사람은 그 정황을 〈국왕에게〉 보고하여 탈정(奪情) 기복하도록 한다. 대소(大小) 군관(軍官) 및 〈3년상을〉 허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100일 동안만 상을 치른다. 부모상의 경우, 25개월 안에는 매달 삭망제(朔望祭)를 지내고 13개월의 첫 기일(忌日)에는 소상제(小祥祭)를 지내며 25개월의 두 번째 기일에는 대상제(大祥祭)를 지내고, 27개월의 그믐날에는 담제(禫祭)를 지낸다. 그리고 28개월째 되는 첫 날에 비로소 길복을 입는다. 3년상 안에는 장가를 들거나 잔치를 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1393년 [음]태조 2년, 왜적이 강화도 교동(喬桐)에 침입함

1410년 [음]태종 10년, 흥천사(興天寺) 탑을 고쳐 세우게 함

1414년 [음]태종 14년, 우사단(雩祀壇)을 흥인문(興仁門) 밖에 세움

1419년 [음]세종 1년, 대마도 정벌 계획을 세움

ㅡ양상(兩上)이 유정현·박은·이원·허조(許稠)들을 불러,

"허술한 틈을 타서 대마도를 치는 것이 좋을까 어떨까."

를 의논하니, 모두 아뢰기를,

"허술한 틈을 타는 것은 불가하고, 마땅히 적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서 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 유독 조말생만이,

"허술한 틈을 타서 쳐야 합니다."

하니, 상왕이 말하기를,

"금일의 의논이 전일에 계책한 것과 다르니, 만일 물리치지 못하고 항상 침노만 받는다면, 한(漢)나라가 흉노에게 욕을 당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허술한 틈을 타서 쳐부수는 것만 같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처자식을 잡아 오고, 우리 군사는 거제도에 물러 있다가 적이 돌아옴을 기다려서 요격하여, 그 배를 빼앗아 불사르고, 장사하러 온 자와 배에 머물러 있는 자는 모두 구류(拘留)하고, 만일 명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베어버리고, 구주(九州)에서 온 왜인만은 구류하여 경동(驚動)하는 일이 없게 하라. 또 우리가 약한 것을 보이는 것은 불가하니, 후일의 환이 어찌 다함이 있으랴."

하고, 곧 장천군(長川君) 이종무를 삼군 도체찰사(三軍都體察使)로 명하여, 중군(中軍)을 거느리게 하고, 우박·이숙묘·황상을 중군 절제사로, 유습(柳濕)을 좌군 도절제사로, 박초·박실을 좌군 절제사로, 이지실을 우군 도절제사로, 김을화(金乙和)·이순몽(李順蒙)을 우군 절제사로 삼아, 경상·전라·충청의 3도 병선 2백 척과 하번 갑사(下番甲士), 별패(別牌), 시위패(侍衛牌) 및 수성군 영속(守城軍營屬)과 재인(才人)과 화척(禾尺)006) ·한량 인민(閑良人民)·향리(鄕吏)·일수 양반(日守兩班) 중에서 배 타는 데 능숙한 군정(軍丁)들을 거느려, 왜구의 돌아오는 길목을 맞이하고, 6월 초8일에 각도의 병선들을 함께 견내량(見乃梁)에 모여서 기다리기로 약속하였다.

1452년 [음]문종 2년, 이조 5대 왕 문종(文宗)이 승하함

1478년 [음]성종 9년, 우의정(右議政) 윤자운(尹子雲) 죽음

1512년 [음]중종 7년, 여진 100여 명이 함경도 무산진(茂山鎭)에 침입함

1523년 [음]중종 18년, 평안도 절도사가 여연(閭延)·무창(茂昌)의 지도를 그려 바침

1541년 [음]중종 36년, 진휼청(賑恤廳)의 절목(節目)을 정함

ㅡ진휼청(賑恤廳)의 절목(節目)을 정원에 내리고 일렀다.

"전에 흉년이 들었을 때 유랑하는 백성이 먹을 것을 얻기 어려워서 자식이 많은 자는 혹 버리거나 나무에 매어 두고 가기도 하였다 하니, 지극히 잔인하다. 힘을 다하여 진휼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할 것도 아울러 이 절목에 넣도록 하라."

진휼청의 절목은 다음과 같다.

1. 사사로이 다는 것을 금지하여 못하게 하는 법을 더욱 밝힐 것.

1. 각 고을과 각역의 교군(轎軍)을 무덤을 만드는 데에 징발하는 것을 금하는 영을 더욱 밝힐 것.

1. 이처럼 가뭄의 재변이 박절하여 위아래가 황급할 때에 수령이 근심을 같이하고 백성을 사랑하여 기르는 뜻을 고려하지 않고서 자신을 공양하고 객을 접대하되 힘써 사치스럽게 하며 날마다 잔치를 열어 술마시기를 일삼으면, 사치가 지나쳐 백성을 괴롭히는 것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으니, 감사를 시켜 늘 바로잡고 살펴서 오랜 병폐를 통렬히 고치게 할 것.

1. 민간에서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서, 잔치를 열어 술 마시는 일과 귀신을 제사하고 부처를 공양하는 일에 드는 모든 낭비를 풍속에 얽매여 그만두지 않다가 앉아서 굶주리게 되니 지극히 어리석다. 일체 금지하되 잘 금지하지 못하는 수령·감고(監考)·색장(色掌)은 모두 추고하여 죄를 다스릴 것.

1. 각도의 개만(箇滿)171) 한 수령들은 바야흐로 흉년이 든 때 맞이하고 보내는 데에 폐단이 있으니, 가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체직하지 말 것.

1. 정재인(呈才人)·백정(白丁) 등은 본디 떳떳한 생업이 없는 사람으로서 우희(優戲)를 전업(專業)하여 여염을 횡행하며 양식을 구걸한다 하나 실은 겁탈을 마음대로 하여 온 식구가 의지하여 살며, 민가에 붙어 살다가 조금만 마음에 맞지 않으면 불을 지를 뿐 아니라 기회를 엿보아 도둑질을 하므로 해를 끼치는 것이 적지 않다. 올해에는 흉년이 들어서 도둑질을 자행하는 것이 전보다 훨씬 많을 것이니, 경내를 횡행하는 이러한 무리를 일체 금하되, 금하는 것을 늦추는 수령·감고·색장은 추고하여 엄중하게 죄를 논할 것.

1. 올해 가물어 흉년 드는 것은 각도가 한결같으므로 진구(賑救)할 곡식을 다른 데에서 옮겨 올 곳이 없다. 재해를 입은 각 고을은, 경내의 부유하여 곡식을 많이 저축한 집을 그 고을의 수령이 상세히 적발하여 그 집에서 먹을 곡식은 충분하게 남겨 두고 그 나머지 수량을 적어서 감사에게 보고하고 감사는 위에 아뢰었다가, 관가 창고의 곡식이 모자라거든 백성을 불러 고르게 나누어 주고, 가을 곡식이 익거든 공채(公債)의 규례에 따라 수령이 단속하여 본 주인에게 돌려주되, 호조를 시켜 치부(置簿)하였다가 해유(解由) 때에 참고하며, 적발되는 것을 꺼려서 나누어 숨기는 곡식 임자와 받아 쓴 뒤에 갚지 않는 자는 감사를 시켜 추고하여 죄를 다스릴 것.

1. 농사를 그르친 각 고을의 굶주린 백성에게 지금부터 공채를 나누어 주면 많지 않은 창고의 곡식이 지탱하기 어려운 형세이나, 가난이 더욱 심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자는 관가에서 진구하지 않으면 유랑하다가 굶어 죽게 될 것이니, 각 고을의 수령이 몸소 점검하여 장년·노년·어린아이를 분간하여 쌀·콩·염장(鹽醬) 따위의 물건을 절약하여 나누어 주어 유랑하다가 굶어 죽지 않게 할 것.

1. 진휼 사목(事目) 안에서 죄줄 사람은 모두 사령(赦令) 이전도 분간하지 말고 추고하여 결단할 것.

1617년 (조선 광해5)임란때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 세상떠남 66세

1628년 [음]인조 6년, 모반 세력이 왕으로 추대했던 인성군(仁城君, 선조의 일곱째 아들)을 자결하게 함

1634년 [음]인조 12년, 훈련도감에서 장관(將官)을 더 뽑게 함

1680년 [음]숙종 6년, 윤휴(尹鑴)가 유배됨

1690년 [음]숙종 16년, 권대운·목내선 등을 춘방(春坊, 세자시강원)의 관원으로 차출함

ㅡ비로소 춘방(春坊)의 관원(官員)을 차출하였는데, 권대운(權大運)을 겸세자사(兼世子師)로, 목내선(睦來善)을 겸세자부(兼世子傅)로, 민암(閔黯)·이관징(李觀徵)을 겸좌빈객(兼左賓客)·겸우빈객(兼右賓客)으로, 민종도(閔宗道)·이담명(李聃命)을 겸좌부빈객(兼左副賓客)·겸우부빈객(兼右副賓客)으로, 이현일(李玄逸)을 겸찬선(兼贊善)으로, 정시한(丁時翰)을 진선(進善)으로, 이인징(李麟徵)을 보덕(輔德)으로, 심벌(沈橃)을 겸보덕(兼輔德)으로, 권기(權愭)를 필선(弼善)으로, 김주(金澍)를 겸필선(兼弼善)으로, 유재(柳栽)를 문학(文學)으로, 이현조(李玄祚)를 겸문학(兼文學)으로, 홍돈(洪墩)을 사서(司書)로, 민창도(閔昌道)를 겸사서(兼司書)로, 이우겸(李宇謙)을 설서(說書)로, 박정(朴挺)을 겸설서(兼說書)로 삼았고, 이일정(李日井)을 부수찬(副修撰)으로 삼고, 이봉징(李鳳徵)을 병조 참판(兵曹參判)으로 특승(特陞)하였다.

1737년 [음]영조 13년, 몽골에 대비하여 몽학 총민청(蒙學聰敏廳)을 설치함

1753년 [음]영조 29년, 가뭄이 심하여 감선(減膳, 음식 수를 줄임)하기로 함

1758년 [음]영조 34년, 청나라에서 매년 말을 사와 제주에 방목하게 함

1762년 [윤]영조 38년, 세자의 비행을 종용한 환자(宦者) 박필수(朴弼秀)와 여승 가선(假仙) 등이 처형됨

ㅡ환자(宦者) 박필수(朴弼秀)와 여승(女僧) 가선(假仙) 등이 복주(伏誅)되었다. 처음에 박필수가 세자를 따라 유연(遊宴)하면서 세자를 종용하여 좋지 못한 일을 많이 저질렀고, 여승 가선이란 자는 바로 안암동(安巖洞)의 여승인데, 머리를 기르고 입궁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박필수와 가선 및 서읍(西邑)의 기녀 다섯 명을 참(斬)하라고 명하였다.

1784년 [음]정조 8년, 기내(畿內)에 흑충(黑虫)이 발생하자 포제(酺祭)를 지냄

1806년 [음]순조 6년, 전라도 영광·여산의 기민 45만여 명을 진휼함

ㅡ호남(湖南)에 진휼(賑恤)을 끝마쳤다. 【영광(靈光) 등 27읍진(邑鎭)에 열 번 순시하여 기민(飢民) 43만 8천 55구(口)에 나누어 진휼한 여러 가지 곡식이 2만 4천 2백 30석(石) 영(零)이고, 여산(礪山) 등 13읍진의 기민 1만8천 1백 86구에 구급(救急)한 여러 가지 곡식이 1천 20석 영이다.】

1862년 [음]철종 13년, 충청도 회덕(懷德) 민란의 주동자를 체포하는 대로 효수하게 함

1896년 베베르·고무라 각서 교환, 친러 정부 인정, 일본의 을미 사변 책임 인정

 

 

1900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유석현 출생.

ㅡ일제강점기의 항일 운동가이며, 대한민국의 언론인이다. 다른 이름으로 김세진(金世震), 유금산(劉錦山)이 있다.

유석현은 충청북도 충주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하였다가 그해 11월에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0년 7월에 중국 톈진에서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2년에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조선으로 잠입하였다. 1922년 말에는 의열단원 김지섭이 조선총독부 판사 백윤화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받으려다가 백윤화의 밀고로 실패한 사건이 발생했다. 유석현도 김지섭과 함께 이 사건에 가담하였다.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김지섭, 김시현 등과 함께 베이징에서 무기를 마련한 뒤 이를 소지하고 조선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 공모자 중에는 현직 경찰인 황옥이 포함되어 있었다. 황옥의 밀고로 의열단의 계획은 좌절되었으며, 유석현은 1923년 3월에 체포되고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는 합동통신을 창립하는 등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고, 광복회 고문과 회장을 지냈다. 1980년대에는 민주정의당 발기위원장과 고문을 역임하며 제5공화국 집권 세력을 지지한 바 있다.

1901년 한국 최초의 목사 안수(김창식, 김기범)

1905년 제1회 관-사립소학교 연합운동회 개최

1912년 일제, 〈국유삼림산야 보호규칙〉 공포

1926년 경성 의학 전문학교 학생 300여 명, 교장 불신임안 결의

1928년 독립운동가 조영하 의거, 일본 천황 히로히토의 장인인 구미노미야 기니히코 육군 대장을 독검으로 공격.

ㅡ5월14일 오전 9시55분경, 무개차 한 대가 대만 타이중(臺中)시 다이쇼초 도서관 앞을 지나고 있었다. 차가 커브길을 도는 순간 군중 속에서 한 청년이 차로 뛰어올랐다.

차 안에는 대만 주둔 일본군을 검열하기 위해 대만을 방문한 일본 천황 히로히토의 장인이자 육군 대장인 구니노미야 구니히코(久邇宮邦彦)가 타고 있었다.

청년이 독이 묻은 단검으로 구니노미야를 찔렀으나 독검은 그의 왼쪽 어깨를 스치기만 하고 운전사 손에 꽂히고 말았다. 다시 군인을 향해 독검을 던졌다. 역시 빗나갔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현장에서 체포된 청년은 스물 세살의 조명하(趙明河)였다.

조명하가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것은 6ㆍ10만세운동을 겪고 나서였다. 대만은 조명하가 일본에서 상하이로 가던 중 일시 체류하고 있던 곳이었다. 조명하는 `항일을 위해서는 우선 일본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현해탄을 건너 낮에는 공장ㆍ상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며 기회를 노렸으나 좀처럼 기회가 오지않자 상하이에서 뜻을 펼칠 생각이었다.

구니노미야는 이때 입은 상처로 이듬해 1월 사망했고, 조명하는 황족위해죄로 그해 10월10일 이국땅에서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는 유언을 남기고 처형됐다.

1932년 1월부터 전국에 천연두 창궐, 사망 276명

1948년 북한, 남한 단독선거에 대한 항의로 12시부터 대남송전 중단

1950년 국민이 성금모아 항공기 건국호(AT-6) 10대 공군에 기증

1951년 국회 이시영 부통령 사표 수리 가결

1952년 정부, 제4차 개헌안(대통령직선제˙양원제) 제출

1952년 이승만, 대통령직선제 및 국회양원제 개헌안 제출

1956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새날신문이 창간

1962년 중소기업 협동조합 중앙회 설립

1962년 넝마주이 1,280명, 근로재건대 조직

1963년 남대문 국보 제1호 중수 공사 완공 준공식-윤태일 서울 시장

1963년 민정당 창당(대표 김병로, 대통령 후보 윤보선). 공화당, 박정희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

1969년 중앙정보부 국회의원 김규남 등 60여명 관련된 간첩단사건 발표

1971년 묵호 근해 간첩선 사건

1971년 일본, 재일동포 북송 재개

1971년 경찰, 복개한 청계천 아래에서 마약굴 적발

1972년 동양화가 이상범 사망

ㅡ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화가이다. 아호는 청전(靑田)이다. 김은호와 함께 대한민국 동양화 분야의 토대를 닦은 거장이다. 청전(靑田)은 그의 스승 안중식이 자신의 호 심전(心田)을 따 청년 심전이라는 뜻으로 지어준 것이다.

ㅡ그는 한국의 새로운 남종화의 방향을 개척한 화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초기 화풍은 안중식의 산수화 중 남북종을 절충한 형태와 유사했으나, 차츰 독특한 구도를 선보이는 등 독자적인 세계로 진입했다. 흔히 고요한 향토색을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표현하며, 변관식과 함께 한국적인 산수화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황량한 분위기나 짧은 붓질이 일본의 남화풍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ㅡ동아일보에서 삽화를 그리는 미술 담당 기자로 근무하던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다. 그는 이길용의 일장기 말소 제안에 동조하여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처음 삭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에 가담하고, 반도총후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을 지내는 등 국방헌금을 모금하기 위한 국책 기획전에 참가하여 친일 행위를 한 바 있다. 《매일신보》에 징병제 실시를 축하하며 기고한 삽화 〈나팔수〉 등 친일 작품도 남아 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미술 부문에 월북 화가인 장남 이건영과 함께 선정되었다.

1974년 자수간첩 조찬환 사건

1974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장건상 작고

ㅡ대한민국의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 통일운동가이다. 본관은 인동(仁同). 아명(兒名)은 장명상(張明相)이고 자(字)는 찬성(贊成)이며 아호(雅號)는 소해(宵海).

ㅡ일본과 미국 유학 후 1916년 신규식의 요청으로 상하이에 건너가 동제사에 참여한 뒤 상하이 임시정부 발족에 참여하여 외무부 차장을 지냈다. 그러나 뒤에 임정을 탈퇴, 1920년 말 베이징으로 건너가 국민대표자대회, 고려공산당 등에 참여하고, 임정의 노선에 비판적인 인사들과 함께 군사통일회의를 조직했다.

1922년 1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피압박민족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와 12월 고려공산당 성립을 위한 꼬르뷰로 임원에 피선되었다. 1923년 베이징으로 돌아와 김성숙 등과 함께 창일당(創一黨)을 조직였다. 이후 잡지 《혁명》 지의 발간과 편집원으로 활동하다 1926년 10월 한국유일독립당촉성회 집행위원이 되었다.

1937년 상하이에서 영사관 경찰에 체포된 뒤 송환, 일제로부터 김원봉을 유인할 목적으로 중국에 파견되었다가 탈출하여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민족혁명당에 가담했고 1940년 임시정부에 재 입각, 임정 국무위원, 학무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해방 후 1946년 임정을 탈퇴, 근로인민당 부위원장과 민족주의 민주전선 등에서 활동하다가 1947년 여운형이 죽자 근로인민당을 이끌었으며 1948년 남북협상에 참여하였다. 남북협상 기간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의 일방적 협상결정에 반발하여 감금당했다가 홍명희·김두봉 등과의 인연으로 풀려났다.

남북협상의 실패 이후 단독정부에는 불참하였으나, 반대하지는 않았다. 1948년 7월 대한민국 정부 조각 이후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으로부터 내각 입각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고, 이후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정치인으로 활동하였으나, 한민당 계열로부터 번번히 사상논쟁 시비에 휘말렸다. 한국민주당원을 극도로 미워했던 그는 한때 원내 자유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1954년 호헌동지회에는 참여했으나 민주당 창당에는 불참했다.

1957년 11월 박정호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으나 무죄로 석방, 1958년 진보당 사건에 연루되어 입건되었다가 풀려났고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사상범으로 투옥되었으나 박정희의 특별 배려로 석방되었다. 사후 1986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1975년 양담배 판매·흡연자, 10년 이하 징역 5백만원 이하 벌금 부과방침 수립

1976년 북, 중앙 인민위, 인민 무력부장 최현 해임, 후임에 오진우 임명.

1976년 서울 남산3호터널 기공

1976년 공연윤리위원회 창립

1978년 한국-요르단, 항공협정 체결

1980년 서울 20개 대학 1만여 명·지방 17개 대학 대학생, 야간까지 가두 시위

1981년 경북 경산에서 열차추돌, 사망54명·부상 253명

ㅡ5월 14일 오후 4시 경상북도 경산군 고사면 경부선 매호건널목 상행선에서 부산발 대구행 보통급 열차가 앞서가던 서울행 특급열차를 추돌, 승객 52명이 사망하고 2백33명이 부상했다. 철도사상 최대의 이 참사는 급행열차가 건널목에 버려진 오토바이를 들이받고서 현장수습을 위해 후진하던 중 안전신호를 무시하고 과속으로 뒤따라오던 보통급행에 들이받쳐 일어났다. 열차까지 동원한 현장검증이 실시됐고 황해중 철도청장이 물러났다.

1982년 미국 국방성, 주한 미군사령관에 로버트 W. 세네월드 대장을 임명

1983년 한국형 경비함 진수

1983년 찰스 도미니카연방 수상 내한

1984년 해운항만청, 해운회사 63개사를 통폐합하기 위한 해운산업합리화방안 발표

1984년 미국 연방대법원, 통일교주 문선명 목사에게 징역18개월 확정

1984년 세계보건기구(WHO) 이사회, 한국을 서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는 이사국으로 선출(제네바)

1985년 서울역 앞에서 200여 대학생 시위, 5개대생 115명 연행

1986년 문교부, 전국 111개 대학에 교직원에 의한 수색 작업을 지시. 시위용품 7590점 수거

1987년 서울시, 국내 처음으로 장애인 18명을 공무원으로 채용키로 결정

1987년 공기업민영화방안 확정, 국민은행 등 7개기관 3년내 민영화, 한국전력 등 3개기관의 주식 매각키로

1988년 정부 통일논의와 자료 일반에 공개하기로 결정, 남북한대화 창구는 정부로 일원화

1989년 전교협, 서울ㆍ부산등 전국 10개 지역서 교원 노조발기인대회 강행

1990년 외무부는 비자발급업무를 개시하지 않고 있어 주한 소련 영사처장 대리에게 공식 항의했다'고 발표.

1990년 KBS 부분 정상화

1990년 문교부 문화부 총무처간 마찰을 빚었던 도서관 업무가 문화부 소관으로 3부간 최종 합의.

1991년 한국-터키 투자보장협정 체결

1992년 이삼노 일.북한수교회담 북한대표, 북한에서 플루토늄을 증식 카네기재단 보고서, 사실이라고 시인

1992년 미 고장난 위성 궤도재배치-엔데베호 우주유영 8시간만에

1992년 정부,과학기술투자를 국민총생산 (GNP) 2.24% 에서 2.8%인 7조 2000억원으로 늘리기로.

1993년 정부, 5.18 명예회복 방안에 대한 후속조치로 연행구금등 보상금 지급키로 확정.

1993년 통계청, 「83~92년 실업구조 변화」 발표. 실업자수는 83년 61만3000명, 92년 46만3000명

1994년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 시작

1995년 부산 대구 광주 대전의 4개 민영TV 첫 전파 지역민방시대 열림

1996년 권오기 통일원장관, 북한에 4자회담 수용을 촉구

1998년 이대진 투수(해태 타이거스) 현대 상대로 10타자 연속삼진 기록,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딱 두 번 나온 기록, 일본 프로야구는 없음

1998년 한글판 조선왕조실록 발견

ㅡ조선왕조실록. 한글로 된 조선왕조실록이 있었다. 제작연도는 구한말 때인 1908년 경, 대한제국 황실이 ‘왕조 정사’를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한국 정신문화연구원 국어학자료팀 이광호 박사는 1998년 5월 14일 조선조 시대 최고의 사료인 ‘조선왕조실록’ (국보 151호) 중 현종(18대)에서 철종(25대)에 이르는 기사를 발췌해 한글로 번역한 ‘실록초본’을 서고에서 발굴,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조선왕조실록은 가로 23.4cm 세로 34.4cm, 총 1백37장 규모에 다섯개의 구멍을 뚫어 명주실로 제책한 ‘실록초본’이 1908년 국왕을 위해 편찬된 왕실역사서 ‘국조보감’과 짝을 이뤄 왕실 내 여성과 아동을 위해 만든 한글판 ‘국조보감’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글씨는 남성의 필체로 짐작되는 단정한 해서체다. 내용은 인명만 한자이고 나머지는 순한글이며 왕의 등극 사망 왕세자책봉 종묘사직제사 정치사건 등 국왕의 재위 당시 주요 사건들을 편년체로 서술하는 형식으로 돼있다.

남한에서 ‘조선왕조실록’은 1968년부터 1993년까지 26년에 걸쳐 민간단체인 민족문화추진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 의해 국역완간됐으며, 북한에서는 1972년부터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실 주도로 시작돼 1991년 완간됐다. 남한판 실록은 주석과 색인이 충실한 반면 번역이 연구용이라는 지적을 받은 데 비해 북한판 실록은 순한글로 번역해 대중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번역했지만 학술적 이용에는 문제가 많다는 평을 듣고 있다.

1999년 전국대학교수 536명,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노동자 참여 및 고용보장 요구 시국선언

 

2002년 수지 김 사건의 피의자 윤태식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됨.

2004년 헌법재판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기각

ㅡ헌정 사상 초유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해온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주선회 재판관)는 14일 오전 10시 선고 공판을 열고 “탄핵 결정에 필요한 재판관 수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63일간 권한이 정지됐던 노 대통령은 헌재 선고와 동시에 직무에 복귀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은 선거법이 규정하고 있는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으며, 재신임 국민투표 발언 등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통령에 대한 파면은 더 이상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해야 한다”면서 “노 대통령의 법 위반행위는 파면 결정을 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기각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국회가 의결한 탄핵사유 중 측근 비리에 대해 “대통령 임기 중 발생한 비리가 아니며, 대통령의 직접 연루 여부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탄핵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경제 파탄 등 국정 혼란에 대해서도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때’에 해당되지 않아 탄핵소추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밖의 국회가 가결한 나머지 탄핵사유에 대해서도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2005년 고교생들의 두발제한 폐지 집회

2007년 김태환 제주도지사 강정을 제주해군기지 최우선 대상지로 발표

2008년 동대문운동장 철거

2009년 천주교 수원교구 제4대 교구장 이용훈 주교의 착좌식이 거행

2014년 삼성전자가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백혈병 등 난치병발병에 처음으로 사과

2014년 박지성 25년선수생활 마치고 은퇴, A매치 100경기(13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05경기(27골) 비유럽권출신 선수 첫 맨유 홍보대사

- 아시아 최초 FIFA 월드컵 3대회 연속 득점(2002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전, 2006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 2010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 FIFA 월드컵 아시아 선수 최다 Man of the Match, 한국 FIFA 월드컵 본선 최다승리와 최다득점, 아시아 최초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2007-08 시즌), 아시아 최초·최다 프리미어리그 우승, 아시아 최초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아시아 최초 프리미어리그 100경기 출장

2015년 원로 영화감독 심우섭 별세

2015년 대법원 강기훈 씨의 유서대필조작사건 재심에서 무죄 판결

2015년 김종필 전 총리, 일대기 화보집 출간

ㅡ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일대기를 담은 화보집 ‘운정(雲庭) 김종필’ 출판기념회가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그는 “여러 국면을 지나 오늘의 발전된 조국을 보면서 그래도 역사는 우리 편 아니냐는 생각을 해본다. 역사는 갈 지(之)자로 어긋나도 결국은 정의를 향해서 나아간다”며 “사(私)를 버리고 정(正)을 취할 때 역사는 우리의 편”이라고 했다. 김 전 총리는 “지금 비록 손에 쥔 것은 없지만 역사 앞에 떳떳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행사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 등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정직하고 반듯하게 살아가길 희구(希求)한다”며 “정치하는 사람이 때로는 편의상 말도 바꿀 수 있지만, 절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2017년 북한 평북 구성에서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1발 발사

2019년 서윤복(1947년 아시아선수로는 첫 보스턴마라톤 우승)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됨

2021년 미성년 제자 성폭행 왕기춘 항소 기각...징역 6년

2022년 대한민국의 법조인 배만운 작고.

ㅡ대한민국의 대법관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본관은 달성이며, 전라남도 나주시 출신이다.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서 태어났다. 광주고등학교와 전남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1988년에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되어 1992년 3월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이회창 대법관과 함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소수의견을 제시했다.[1] 1992년 6월에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도 피의자가 인정할 때에만 효력이 있다"고 하였고 1993년 11월에 "수사기관이 형사 피의자를 강제연행한 뒤 사후 구속영장이 아닌 일반 영장을 발부받았다면 불법구금에 해당된다"는 등으로 "수사기관의 무리한 수사 관행을 깨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2년 김정은 “건국 이래 대동란”...北, 어제 코로나로 21명 사망

2022년 美 국무부 “남북한 방역협력지지...코백스, 화이자 北 지원시지지”

 

 

 

649년 73대 로마 교황 교황 테오도로 1세 작고.

964년 130대 로마 교황 교황 요한 12세 작고.

1264년 영국의 서식스에서 몽포르와 헨리 3세 사이에 루이스 전투가 발발

1316년 독일 왕 및 보헤미아 왕(1346-78)이며, 신성 로마 황제(1355-78) 카를4세 출생

1610년 프랑스 부르봉왕조 창건한 앙리4세 피살

ㅡ‘낭트 칙령’을 공포, 신교파인 위그노에게 조건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30년간 계속된 프랑스의 종교전쟁(일명 위그노 전쟁)을 종식시킨 장본인인 앙리 4세가 1610년 5월 14일 구교도 광신자의 칼에 찔려 숨을 거뒀다.

1533년 스페인 북부의 돈독한 칼뱅파 개신교인 여왕인 어머니와 카페의 혈통인 방돔 공작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프로테스탄트의 엄격한 원칙에 따라 키워졌다. 그후 1572년 신ㆍ구 양 교도의 화의를 다지기 위해 프랑스 왕 샤를 9세의 여동생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와 결혼했다.

앙리 4세가 즉위할 당시 프랑스는 신ㆍ구 양파의 종교적 대립으로 극도의 혼란으로 치닫고 있었다. 게다가 구교도가 그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자 에스파냐의 침입을 받기도 했다. 왕은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신교에서 구교로 개종하면서 신교도(위그노)에게도 어느 정도의 자유를 인정하는 ‘낭트 칙령’을 공포했다. 내전을 정리하고 명실상부한 프랑스의 왕이 된 앙리 4세는 베르뱅조약을 맺어 에스파냐와의 국경문제를 정리하고 내전으로 피폐해진 국가를 재건하는 데 힘썼다.

30년간 계속된 내전을 종식시키고 강력한 왕권을 확립한 후 여러 가지 사회제도를 개선해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힘쓴 공로로 그는 오늘날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왕’으로 기록되고 있다.

1610년 프랑스 루이 13세,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

1643년 루이 14세,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

1686년 독일 물리학자 가브리엘 파렌하이트 출생

1727년 18세기 영국의 가장 뛰어난 초상화가, 풍경화가 게인즈버러 출생

1771년 사상가 오엔 출생

1787년 미국 필라델피아서 헌법개혁 위해 대륙회의 개최

1796년 영국 외과의사 제너 천연두예방 종두법 개발,

ㅡ우두에 감염되면 평생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 발견하고 8살난 아들에게 처음으로 종두 실시해 천연두예방 성공, 197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선포

ㅡ에드워드 제너가 소로 인해 병에 걸린 하녀의 손바닥 종기에서 고름을 채취, 하녀의 여덟 살 난 아이에게 주사했다. 최초의 종두 주사였다. 종두(種痘)는 사람 몸에 우두를 접종하는 것이고, 우두(牛痘)는 병에 걸린 소의 몸에서 뽑아낸 면역물질을 뜻한다. 따라서 이날 주사한 고름은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한 최초의 백신인 셈이었다. 백신이란 말도 소를 뜻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나왔다. 아이가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자 제너는 6주후 진짜 천연두에서 뽑아낸 고름을 주사했다. 역시 아무런 탈이 없었다. 천연두로부터 인류가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두창(痘瘡)의 일본식 명칭인 천연두는 유사이래 인류를 괴롭혀 온 ‘죽음의 사자’였다. 치사율도 높은 데다가 목숨을 건져도 얼굴에 곰보를 남겼다. 로마 황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와 영국 여왕 메리 2세를 쓰러뜨린 것도 천연두였다. 우리나라에서도 1951년에 4만3000명이 병에 걸려 1만10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될 정도로 극성을 부렸지만 1960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보고는 없다.

세계적으로도 1977년 소말리아 환자를 마지막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져 세계보건기구(WHO)가

1811년 파라과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1863년 캐나다의 수학자 존 필즈 (John Fields) 출생

1863년 독일 작곡가 페르디난트 바이어 사망

1881년 자메이카의 간호사 메리 시콜 작고.

1885년 독일의 지휘자 오토 클렘페러 출생.

1904년 제3회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개막

ㅡ루이지애나 구입 100주년을 기념하고 세인트루이스 박람회 여흥의 일환으로 제3회 올림픽이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개막됐다. 1904년 5월 14일부터 11월말까지 계속된 전대회의 참가자는 10개국 496명이었다. 이중 미국선수가 431명이었다. 8월 29일에는 2천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올림픽 육상경기 개막식이 따로 거행됐다.

이 대회는 2가지 면에서 올림픽사에 남는 기록을 남겼다. 하나는 마라톤경기에서 1위로 골인한 선수가 레이스도중 자동차를 타고 대회장에 도착해 실격당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이 미국의 완비된 조직과 운영, 설비에 충격을 받아 귀국후 스포츠에 비로소 눈을 떴다는 점이다

1907년 파키스탄 근대화에 기여한 대통령(1958-1969) 아유브 칸 출생

1913년 록펠러재단 설립

1939년 리나 메디나가 5살 나이에 사내아이를 분만해 세계에서 가장 나이 어린 어머니가 됨.

1940년 네덜란드 독일군에 항복

1943년 영국의 베이시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잭 브루스 출생.

1943년 벨기에의 국제변호사 라퐁텐 사망 - 국제평화국 국장(1907~1943)으로서 191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

1948년 미국 종교가 플래나간 사망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영국군 철수, 아랍국들이 이스라엘 공격 제1차 중동전쟁 일어남

ㅡ유대인들은 2,000년동안 나라없이 세계각국을 떠돌며 지내왔다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하는 라디오 방송에 5월15일 이집트 전투기들이 텔아비브를 폭격하였고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이 아랍연합군을 형성하여 전쟁에 참가하여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다

이스라엘은 부족한 병력과 무기로 20여일이 넘게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지켜냄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제1차 중동전쟁은 1949년 2월 이집트에서 양측간의 평화조약이 조인되면서 종결 되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건국 당시 영토의 2배를 획득하고 세계 각국의 인준을 받아 정식 국가로 태여 났다

하지만 9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함으로 후일 중동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

1954년 미국-일본 선박대여협정 조인

1955년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 7개국 바르샤바조약 기구 창설

ㅡ5월 14일 동구권 국가들을 하나로 묶는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가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체결됐다. 이 조약기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항하기 위해 체결된 `동구 우호 상호원조 조약`이라는 군사동맹 조직으로 조약체결국은 소련·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알바니아·동독 등 8개국이다.

이 조약은 소련의 위성국들에 대한 지배 강화 및 사회주의국가들의 동맹 강화를 목적으로 체결됐다. 조약의 내용은 무력 공격의 위협에 대처하는 협의 및 무력 공격에 대한 공동 방위가 근간을 이룬다. 이날 서명국들은 국제문제 해결에 있어 무력사용의 자제에 동의하고 군비철폐와 평화를 위해 협조할 것을 다짐했다.

1957년 미국, 유고 원조재개를 발표

1963년 쿠웨이트, 유엔 가입.

1965년 각료직에 오른 최초의 여성 정치가 퍼킨스 사망

1973년 미국 스카이랩 1호 발사, 워싱턴-동경간 하틀라인(비상전화선) 개통

1979년 미국 중국 무역협정 가조인

1980년 5월 ‘천연두 박멸’을 선언함으로써 인류가 ‘정복’한 유일한 전염병이 됐다

1987년 미국의 영화 배우이자 무용가 리타 헤이워드 작고.

1998년 미국가수 프랭크 시나트라(82세 심장병) 세상떠남

ㅡ“이제 곧 끝머리군/난 마지막 커튼을 마주보고 있어/친구여...내 삶은 충만했고/난 세상의 모든 길을 돌아다녔어/게다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내가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My Way’(가수 폴 앵카가 은퇴하는 친구 시나트라의 일생을 담아 가사를 씀)

1989년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당선

ㅡ페론당의 카를로스 메넴이 1989년 5월 14일 아르헨티나 제4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28년 이후 61년 만에 처음으로 민정에서 민정으로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룩된 순간이었다.

메넴은 1958년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한 것을 계기로 정치 전면에 나섰다. 이때 페론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한 뒤 1973년 라 리오하주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주지사에 당선, 많은 공공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면서 전국적인 인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1976년 3월 군부쿠데타로 5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메넴은 당초 12월10일 취임할 예정이었으나 경제악화로 조기 사임 압력을 받아온 라울 알폰신 대통령이 6월12일 사임을 발표함에 따라 5개월 일찍 정권을 이양받아 7월 8일 취임했으나 2003년 퇴임했다.

1990년 고르비,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의 독립선언을 불법화

1991년 중국 강청 자살

1991년 부시, 로버트 게이츠를 CIA국장으로 지명

2000년 오부치 게이조 전(前) 일본총리 뇌경색으로 사망

2003년 카를로스 메넴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사퇴, 차기 대통령에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취임

ㅡ카를로스 메넴(Menem·72)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이 14일 대선(大選) 후보 사퇴를 공식 발표, 산타 크루스주(州) 주지사인 네스토르 키르츠네르(Kirchner·53)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됐다.

1989~1999년 대통령을 연임했던 메넴은 이번 대선에서 3선을 노렸으나 지지율이 키르츠네르 후보에 비해 30~40% 뒤져 승산이 없는 것으로 조사되자 오는 18일 2차 결선투표를 앞두고 사퇴 결정을 내렸다. 메넴은 지난달 27일 실시된 1차 투표에선 유효표의 24%를 득표해 22%를 얻은 키르츠네르를 앞섰으나, 재임 기간 중 불법 무기거래 등 부정부패 전력(前歷)과 미국이 종용한 신자유주의를 맹종해 2001년 말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초래한 데 따른 반(反)메넴 여론이 비등하면서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한편 중도 좌파 성향의 키르츠네르 후보가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당선됨에 따라 남미권에선 기존의 피델 카스트로(Castro) 쿠바 대통령과 우고 차베스(Chavez) 베네수엘라 대통령, 지난 1월 취임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da Silva) 브라질 대통령과 루이스 구티에레스(Gutierrez) 에콰도르 대통령 등 좌파 또는 중도 좌파 지도자들의 연대(連帶)와 반(反)신자유주의 움직임이 더욱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9년 미얀마, 아웅산 수치 여사 투옥

ㅡ총 13년간 가택에 연금돼 온 미얀마의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64) 여사가 2009년 5월 14일 투옥됐다. 수치 여사는 이날 ‘미국인의 자택 잠입 사건’과 관련해 법을 위반한 혐의로 정치범 수용소로 이송됐다.

이번 수감은 지난 3일 밤 존 윌리엄 예토(Yettaw·53)라는 미국인 남성이 호수변에 있는 수치 여사의 자택에 헤엄을 쳐서 잠입한 뒤 이틀간 머물고 몰래 빠져나오다 체포된 데 따른 것이다.

군정 치하의 미얀마에서는 심야에 친족이 아닌 손님을 맞은 사람은 즉각 현지 관리에게 통보해야 한다. 또 외국인 손님은 아예 미얀마인 집에서 숙박할 수 없다. 수치 여사 변호인측은 수치 여사와 가정부들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최고 징역 5년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은 오는 18일 인세인 감옥에서 시작될 예정이다.

예토가 수치 여사의 자택에 잠입한 동기와 잠입 후 행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치 여사의 변호인측은 예토의 행동이 개인적인 모험심에 따른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주장한다. 예토 역시 출입금지 지역에 불법 침입한 혐의와 이민법을 위반한 혐의로 14일 기소됐으며, 최대 6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이 공식적으로 끝나는 오는 5월 27일을 불과 2주 앞두고 일어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군부측에서 함정을 팠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이끌고 있는 수치 여사는 1988년부터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공로로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그동안 군정의 탄압을 받아 여러 차례 가택연금을 당했다. 가장 최근의 가택연금 조치는 지난 2003년 5월에 내려졌다.

2010년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가 발사

2015년 세계 기타리스트들의 ‘영원한 영웅’ B.B. 킹 별세

ㅡ블루스 기타리스트의 전설 비비 킹(B.B. King)이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15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의 일간지 USA투데이는 AP통신을 인용해 14일 비비 킹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타계했다고 보도했다.

비비킹은 지난 5일 당뇨로 인한 탈수 증세로 라스베이거스 자택 근처에 위치한 병원 응급실로 긴급 후송된 바 있다.

한편, 비비 킹은 미국 내 흑인 블루스의 산 증인으로 지난 1987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헌액된 바 있다.

2018년 미국의 소설가 톰 울프 작고.

2021년 중국국가항천국은 화성의 유토피아 플라니티에 주룽호 탐사선을 착륙하고 중국은 4번째로 우주선을 착륙시키고 두 번째로 탐사선을 착륙하였다.

2021년 美참전용사 7명 멋대로 안락사 한 간호조무사 ‘7연속 종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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